* * *
그날 밤.
리아는 집무실에서 다소 늦게 벗어났다. 침실로 돌아오니 어느새 밤이되어 있었다.
다시 일이 늘어난 상황에 리아는 피곤함을 느꼈다.
암호 해독도 해독이지만, 황성의 시녀 중 누가 후작가와 프레야의 수족인지도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덕에 침실에 돌아온 리아는 잔뜩 지친 기색으로 금방 잠이 들었다.
리아가 곤히 잠이 들어 작은 숨소리만 방 안을 채우고 있을 때, 창문너머로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검은색 복장을 한 인영은 은밀하게 창문을 넘어 리아가 잠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리아의 침실에 스며든 인영은 리아가 자고 있는 침대에 다가갔다. 리아는 미동도 없이 조용히 자고 있었다.
인영은 리아를 바라보다 무언가를 찾는 듯 그녀의 방을 뒤졌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인영은 다시금 리아에게 다가갔다.
인영이 리아를 향해 손을 뻗은 그순간, 리아가 눈을 떴다. 리아의 눈과 검은 인영의 눈이 그대로 마주쳤다.
리아가 입을 열어 뭐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인영이 리아의 입을 막았다.
"입 다물어."
짙은 살기를 흘리며, 인영이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리아의 목에 검을 겨눴다. 목에 닿은 날카로운 단검에 리아가 숨을 들이켰다.
잠시 당황한 듯 눈이 흔들렸지만, 이내 리아는 평정심을 찾았다.
"열쇠는 어디 있지?"
이왕이면 조용히 찾고 있는 것만 찾고 떠날 생각이었지만, 들켜버린이상 그것은 무리였다.
검은 인영은 단검을 리아의 목에 더 가까이 대며 위협하듯 물었다.
그에 리아는 상황에 맞지 않지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입을 막아놓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뭐 하자는 건지.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 맞는지.
그런 리아의 행동에 인영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러나 리아는 겁을 먹지 않았다.
물론 처음 겪는 상황에 두려움이 일기는 했다. 하지만 리아는 확신했다. 이자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 이라는 사실을.
또한 믿고 있는 것이 있었다.
리아는 인영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로, 이불 속에서 작게 손을 움직였다.
혹시 이럴지 몰라 대비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보통 시녀를 부르기 위한 종이었지만, 이번만은 다른 이를 부르기 위한 것이었다.
쉽게 부르기 위해, 협탁 위에 있어야 할 것이 이불 속 자신의 손에 닿는 곳에 놓아두었었다.
리아의 손이 움직임과 동시에 따릉거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인영이 그 소리를 빠르게 인지하고 몸을 돌려 움직이려고 했지만, 그보다 리아의 행동이 빨랐다.
리아는 인영을 놓치지 않았다.
인영의 움직임에 맞춰, 리아가 다리를 걸었다. 그 행동에 인영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린 사이, 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 바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 안에 숨어든 인영을 확인한 바론은 빠르게 인영에게 다가가 공격하려 했다.
인영이 도망치려 했지만, 리아의 손이 단단히 인영을 붙잡고 있었다. 결국 도망치기에 실패한 인영은 방법을 바꿨는지, 자신을 잡고 있는 리아를 끌어당겨 그녀의 목에 검을 겨눴다.
그 행동에 바론의 행동이 멈춰졌다.
"다가오면 이년은 죽는다."
겨우 떨어졌던 단검이 다시금 리아의 목에 겨눠졌다. 금방이라도 리아의 목을 베어버릴 것 같은 단검에 바론은 숨을 들이켜며 인영의 허점을 찾았다.
그런 바론의 행동을 날카롭게 바라보며, 인영 역시 도망치기 위해 기회를 찾고 있을 때였다.
리아는 순순히 인영이 원하는 대로 끌려갈 생각이 없었다.
이 인영은 뭘 찾고 있는지,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몰라도, 중요한 증인이 될 수 있는 자였다.
그러니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목에 겨눠진 단검에 자연스레 몸이 긴장되고 두려움이 생겼지만, 리아는 망설임 없이 몸을 움직였다.
얌전히 붙잡혀 있던 리아가 그대로 팔꿈치로 인영의 복부를 찍었다. 인영이 잠시 흔들린 찰나, 이번에는 다리를 들어 인영의 무릎을 발로 찼다.
리아의 발꿈치가 정확히 인영의 무릎을 맞췄고, 리아가 인영에게 벗어난 사이를 놓치지 않고, 바론이 빠르게 인영에게 달려들어 인영을 제압했다.
"잡았네."
리아가 바론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는 인영을 향해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으십니까?"
여전히 인영을 제압하고 있는 채로, 바론이 걱정스레 물었다.
"난 괜찮아요."
비록 목에는 단검이 베인 흔적이 있었지만, 이 정도는 괜찮았다.
살짝이었으니까.
그러나 리아의 평안도 계속될 수 없었다.
인영이 바론의 손에 이끌려 침실을 벗어나기 전에, 자결했기 때문이었다.
입안에 숨겨놓고 있던 독을 깨문 복면을 쓴 검은 인영이 그대로 즉사했다.
"하?"
죽어버린 인영을 보며 리아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야 겨우 잡은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바론 역시, 인영이 자결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미 죽어버린 이를 다시 살릴 방법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그러게요. 설마 죽어버릴 줄이야."
물론 잡혀서 어떤 짓을 당하게 될지를 생각하면 자결은 아주 좋은 방법이긴 했지만, 리아의 입장에서는 매우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전문 살수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결을 위한 독을 품고서, 결국 이리 자결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게요."
죽어버린 인영을 바라보며, 리아는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 인영을 잡아 심문하면 누가 보낸 것인지, 무엇을 노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리 죽어버릴 줄이야.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이 가긴 했다.
아마 본래의 목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서신을 훔칠 생각이었겠지.
이를 사주한 자는 프레야 아니면 사론티엔 후작일 테고.
그러나 이는 리아의 추측으로 멈출뿐이었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이가 죽어버렸으니.
"알고 계셨습니까?"
"뭐를요?"
"이자가 오늘 올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했어요."
리아가 심각한 상황을 겪은 것치곤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바론은 감탄했다.
리아가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기전, 자신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다. 만약 방에서 시녀를 부르기 위한 종소리가 들리면 시녀가 아니라, 바론 자신이 들어와 달라고.
또한 앞으로 자신의 방을 지키고 있는 이의 수를 늘려 달라고.
현재 상황을 보면, 오늘 이렇게 누군가가 그녀를 노릴 것을 알고 그런 것을 명한 것 같았다.
"도대체 누가……."
"짐작만 할 뿐이죠."
확신에 가까운 짐작이지만.
"우선 이자부터 치워줬으면 좋겠는데."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방이 아니라 집무실에서 잘게요."
아무래도 시체가 있었던 방에서 자고 싶지 않았으니까.
특히나 이곳에 와서 두 번째 보는 시신이었다.
자신을 노린 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만큼 자책감은 들지 않았지만, 결코 보기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어떤 이유로든, 타인의 시체를 보는 것은 소름 끼치게 했다.
"아니시면 폐하의 방으로 가시는건 어떻겠습니까?"
물론 황후라고 해도, 이 밤중에 황제의 방을 방문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황제도 이해해 줄 것 같았고, 그게 아니라도 황후를 매우 좋아하는 황제니, 리아가 그냥 왔다고 해도 기꺼이 환영해 줄 것 같았다.
그것이 제대로 된 침대도 없는 집무실에 자게 하거나, 다른 빈 방에서 자게 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됐어요."
그건 그것대로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라 리아가 단호하게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