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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의 숨겨진 글자를 해독하는 일은 이제 리아와 카르티안, 두 사람의 몫이 되었다. 그러나 카르티안도 쉽게 그 글자를 해독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있길래 이렇게 꼼꼼히 숨겨좋은 것인지.
카르티안은 잠시 서신에서 눈을 떼고, 집중하고 있는 리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집중하고 있는 리아의 모습은 항상 그랬듯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힘들지는 않을까. 며칠 내내 서신만 붙잡고 있는 통에 피곤할 텐데.
실제로 리아의 얼굴은 다소 야위어 있었다. 정말 잠잘 때와 먹을 때 말고는 오롯이 일에만 시간을 쓰고 있는 리아였다.
물론 리아는 단순히 서신을 해독하는 것뿐 아니라, 시녀들도 같이 관리하고 있었다.
리아는 틈틈이 시녀들의 신상을 확인하며, 후작이나 프레야와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있는 시녀들을 골라 내고 있었다.
그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과 손을 잡았다는 확실한 무언가가 있지 않은 이상,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도 없었고, 기준도 잡을 수가 없었다. 그 기준이라도 있으면 쉬울 텐데.
시녀들에 대한 내용은 잠시 뒤로 미룬 채로, 리아는 서신을 집어 들었다. 그런 리아의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다.
"아?"
어째서 지금까지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서신에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는 규칙이 있었다.
"리아?"
리아의 입에서 나온 작은 소리에 카르티안이 리아를 불렀다.
"티안, 이거 봐요."
카르티안을 부른 리아가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카르티안은 리아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녀가 가리킨 부분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공백이 있어요. 정확히 두 줄마다."
리아의 지적은 정확했다.
그 공백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리아가 말한 대로 서신에는 두 줄마다 공백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서신에 해독할 수 있는 방법과 내용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규칙적으로 공백이 있을 수는 없으니.
물론 공백이 있다고 해서,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겠지만, 그럴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이 첫 줄의 글자들은 그 밑에 있는 글자들을 읽을 순서인 것 같았다.
모든 글자에는 분명 순서가 있었다. 한글에서 ㄱ은 첫 번째이고, 알파벳의 A 역시 첫 번째 글자이듯이.
만약 그렇다고 하면, 이 글자 순서에 맞춰 다시 글자들을 나열하면 그속에 숨겨진 의미 역시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리아는 글자들을 재조합했다. 리아의 설명을 토대로, 카르티안 역시 그녀의 일을 도와주었다.
"제 생각이 맞나 보네요."
아무렇게나 나열되어 있던 글자들이 그 순서에 맞춰 다시 재조합하자 단어를 만들어 냈다.
물론 그렇게 해서 만들어 낸 것 역시, 단순한 단어들로 그칠 뿐이었지만.
"이제 또 새로운 일이네요."
그동안에는 규칙을 찾기 위해 매진했다면, 이제는 그 글자들을 재조합하기 위한 일을 해야 했다. 둘이 주고받은 서신이 적지 않은 이상, 이 역시도 제법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할 터였다.
그래도 겨우 단서를 얻었다는 생각에 리아는 모처럼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 미소에, 카르티안은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보기 힘든 리아였다. 그동안 웃은 모습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도대체 무슨 내용이 숨어 있는 것인지, 그것이 무엇인지, 기대가 되네요."
특히나 그 모든 것을 알아낸 이후의 상황이.
이 서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었다. 굳이 누구를 잡아들여 심문하지 않아도.
그 생각에 리아의 얼굴에는 싸늘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