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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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리아와 유시안은 시녀의 안내를 따라 황제의 침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리아는 침대에 앉아 있는 카르티안을 바라보다 인사를 했다.

"제국의 빛, 고귀한 광명,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전이었다면 미련 없이 인사를 생략한 채, 카르티안에게 다가갔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다.

특히나 자신을 바라보던 카르티안의 시선. 그것은 분명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카르티안은 자신을 보자마자 눈꼬리를 내리며 더없이 다정한 시선을 보냈을 터였다. 그러나 카르티안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카르티안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품에 안고 계단을 굴렀던 것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랬다. 하다못해 괜찮냐는 말을 던지는 것이 맞았다.

"의외군. 황후와 재상이 같이 오다니."

리아를 향해 서늘한 기색으로 카르티안이 말했다.

그 말을 통해서도 리아는 깨달았다. 자신이 예상하는 그 상황이 왔음을. 기억을 잃은 후, 카르티안은 자신을 황후로 지칭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리아, 라는 다정한 호칭을 입에 담았었다.

"마침 같이 있었으니까요."

확 달라진 황제의 태도에 유시안이 당황하는 것과 달리, 리아는 담담히 말했다. 어떠한 동요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호오."

카르티안의 서늘한 시선이 리아를 향했다. 그 시선에도 리아는 흔들림이 없었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일어난 걸 보니 멀쩡해 보이긴 했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쳤다는 사실을 감안해, 리아가 질문을 던졌다.

"그대가 언제부터 나를 걱정했다고,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인지 모르겠군."

"걱정하는 것은 제 마음일 텐데요?"

걱정하는 것도 문제가 되냐는 듯 리아가 무심히 말했다. 그에 카르티안의 시선이 잠시 동요했다. 저렇듯 무심한 말투를 사용하는 리아를, 카르티안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것이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얼마 동안 쓰러져 있던 것이지?"

"하루입니다."

이번은 리아를 대신해 유시안이 답했다.

"그래, 황후, 그대의 죄를 알고 있겠지?"

'나의 죄를 알고 있냐라.'

그 물음을 통해, 리아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황제는 기억을 찾음과 동시에, 기억을 잃었던 당시의 기억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질문을 던질 리 없었다.

지금 그가 정신을 잃었다 차린 것은, 리아의 잘못이 아니라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런 것이었으니까.

"재상의 말을 다시 정정해 드려야 겠네요. 폐하께서는 이미 한차례 정신을 잃었다 차리신 적이 있고, 두번째로 정신을 잃은지 하루 만에 정신을 차린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내가 두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고?"

카르티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말 그대로예요."

자세한 설명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리아는 그러지 않았다. 예상했던 상황이라고 하지만, 저렇게 달라진 그의 태도를 보니 묘하게 가슴이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어차피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하고, 정을 줬던 것은 기억을 잃은 후 자신을 따랐던 그 카르티안이지, 지금의 저 카르티안이 아니었다. 그러니 저런 황제를 향해 자신이 배려를 보일 필요는 없었다.

리아의 무심한 말에 뒤에 있던 유시안이 살짝 인사를 찌푸리며 리아가 생략한 것들에 대해 설명을 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유시안의 설명을 들은 카르티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유시안의 설명 역시도, 일정 부분 생략한 것이 있었지만, 리아의 설명보다는 자세했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을 잃은 후, 황후를 지키기 위해 다시 또 다쳤다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유시안의 대답에 카르티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황후를 지키기 위해 대신 다쳤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재상의 얼굴에는 어떠한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어째서 황제의 옥체를 상하게 한 황후가 저리 멀쩡하게 다니고 있는 것이지?"

유시안의 말대로 그녀를 지키기 위해 다쳤다고 한다면, 그것은 황후의 죄가 아니니 황후에게 죄를 물을 수 없지만, 그 이전에 일어난 그 사건은 분명 황후에게 죄가 있었다.

카르티안의 말에 유시안이 난감한 기색을 표했다.

그런 유시안과 달리 리아는 담담했다. 안 그래도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황제에게 받아낸 것이 있었다.

"이건 폐하께서 정신을 차리신 후, 제게 주신 겁니다."

리아가 품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카르티안에게 건넸다.

서류를 받아 내용을 읽은 카르티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억을 잃으셨다고 해서 황제 폐하가 아니신 건 아니니, 설마 그 내용을 지키지 않겠다고 하시진 않으리라 믿어요."

리아가 카르티안에게 건넨 서류는 예전, 카르티안이 기억을 잃은 후 작성했던 각서였다. 리아의 행동에 대해 이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던.

"하."

카르티안이 서류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리아의 말대로,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자신이 작성한 것이었다. 게다가 황제의 인장까지 찍혀 있으니, 위조도 아닐 터였다.

"그러면 몸은 괜찮으신 것 같으니, 저는 이만 나가 보도록 하죠."

어차피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었다. 예상했음에도 묘하게 가슴이 일렁이는 것이 더 이상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방을 나서는 리아를 카르티안은 잡지 않았다.

유시안이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린채 리아를 바라보았지만, 황제가 가만히 있는데 자신이 나서서 그녀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도대체 내가 기억을 잃은 후 어떤 일이 있었던 거지?"

이런 각서를 작성한 것부터, 자신이 황후를 지키기 위해 대신 다쳤다니.

정신을 잃었다 차리고 나니, 전과 많이 달라져 버린 상황에 카르티안이 혼란을 느끼며 유시안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유시안은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해야 하는 것일까.

설마 그가 기억을 찾았다고 해서 이렇게 확 변할 줄은 몰랐다. 특히나 기억을 잃은 동안에 있었던 일을 잊어버리게 될 줄도.

황후인 리아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으나, 유시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다만 황제의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상황 설명은 필요할 것 같았다.

유시안은 황제가 기억을 잃은 후, 황후를 향해 어떤 감정을 품고 어떻게 대했는지를 생략한 채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 모든 답을 듣고서도, 카르티안은 혼란을 지우지 못했다. 그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황후에게 모든 권한을 돌려주고, 그녀를 인정했다고?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그는 이상한 일이었다.

"황후마마께서는 예전과 많이 달라 지셨습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싸늘한 그 대답에 유시안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황제인 그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유시안과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던 카르티안은 이내 유시안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황후가 달라졌다고?"

빈말은 하지 않는 유시안이니, 거짓은 아닐 터였다. 특히나 유시안의 태도만 봐도, 황후에게 무언가의 변화가 있기는 했을 터였다.

그게 아니고서야, 자신 못지않게 황후를 싫어하던 유시안이 그녀를 향해 호의 어린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황후를 향한 자신의 반응이었다. 그녀 앞에서 애써 평소처럼 무심하고 서늘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를 본 순간 심장이 떨렸다. 알 수 없는 환희를 느끼며, 안도를 느꼈다. 그녀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런 것을 보면 그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다쳤다는 사실이 맞는 것 같지만, 이런 반응이 생소했다.

도대체 기억을 잃은 사이에 그녀와 자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유시안에게서 대략적인 내용을 들었지만, 자신이 가진 의문을 모두 해소할 수 없었다. 유시안은 무언가를 수믹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자꾸 황후가 보고 싶어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조금 전, 황후가 방을 나갔을 때, 카르티안은 그녀를 붙잡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것 같아 가슴이 잠깐 욱신거렸었다.

'어째서 자신이 황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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