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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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프레야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며칠 동안이나 저잣거리에 매달려 사람들의 돌팔매질을 맞으며, 자신을 욕하고 무시하는 소리를 들은 프레야는 더 이상 사람을 몰골이 아니었다.

처음 그녀를 사로잡았던 분노 역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더 이상 어떤 억울함도, 분노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죽고만 싶었다. 죽어서 이 고통을 끝내고만 싶었다.

아주 잠깐, 자신이 그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질렀나 싶었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말이었다.

겨우 저잣거리에 묶여 있다 황성으로 돌아온 프레야는 후작과 같은 고문을 감당해야 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에, 프레야는 철저하게 진창을 굴렀다.

결국 프레야는 모든 것을 고백했다. 이미 후작도 프레야와의 거래와 계획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털오놓은 참이었다.

그것을 통해 카르티안과 유시안은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프레야가 사실은 후작의 정부였으며, 그와의 거래를 통해 황성에 들어와 의도적으로 황제를 유혹했다는 사실을.

동시에 그녀와 후작의 목적은 황제를 자신들의 꼭두각시로 만들어 제국을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했다는 사실도.

프레야는 황성에 들어온 이후, 황제의 잔에 꾸준히 약을 타서 그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으며, 황후가 된 리아르나에게도 수작을 부려서, 그녀가 몰락의 길을 걷게 했다.

후궁인 프레야가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되면, 황제를 죽이고 자신이 황제의 후계자를 대신하여,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고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프레야가 그토록 꼼꼼하게 숨겨놓았던 진심도 알 수 있었다.

프레야는 스스로의 입으로 말했다.

단 한 번도 황제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단지 그 권력만을 사랑했음을.

그 모든 것을 듣고서도 카르티안은 충격 받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 역시도 프레야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실을 알았음에도 상처받지 않았다.

그녀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순간 이미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카르티안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리아가 다시 정신을 차리는 것.

자신을 미워해도 좋으니, 꼴도 보기 싫다고 마구 욕을 해도 좋으니 리아가 무사히 눈을 뜨는 것.

리아가 정신을 차리면, 그녀가 원하는 대로 폐위 요청서를 승인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자신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힘들어도 그녀가 원한다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로 인해 리아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래도 한편으로는 그녀가 자신의 곁에 남아 있어주기를 바랐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심장은 오로지 리아만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억누르고 싶어도 억누를 수 없는 자신의 진심, 소원 그자체였다. 하지만 그것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에게 매달릴 수도 없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어찌, 괜찮을 수 있을까."

비로소 모든 것을 다 해결했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 자신과 그녀를 괴롭힐 이가 없다고 해도 어찌 안심할 수 있고, 어찌 괜찮을 수 있을까. 지금 이렇게 그녀가 아파하고 있는데.

들리지 않는 그녀의 슬픔이 들리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그녀의 상처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저의 …… 잘못입니다."

유시안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것이 어찌 그대의 탓일까.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무능한 나의 잘못인 것을."

이제 와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미룰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저라도 제대로 판단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폐하가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죠. 동시에 마마의 선택을 말리지도 못 했습니다."

처음 유시안에게서 리아가 어떤 것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카르티안은 깊은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카르티안은 유시안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과연 내가 황제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군."

스스로를 향한 자괴감에 카르티안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리아의 도움으로 결국 프레야의 계획을 알아내고 그 배후를 모두 처리할 수 있었지만, 리아가 없었다면 어찌 됐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

"폐하, 이제라도 바로 잡으면 됩니다."

"소용이 있을까?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카르티안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고 해서, 늦어 버렸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유시안의 말에 카르티안은 애써 밀려드는 좌괴감을 눌렀다. 그의 말대로 소용이 없다고 해서 가만히 포기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싶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후회하지 않도록.

그러다 카르티안의 시선이 리아를 향했다.

왜 그녀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녀만 정신을 차리면 정말 뭐든 다 해줄 수 있는데.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고 싶은데.

의원을 닦달해서 해독제를 찾고, 그 해독제를 리아에게 먹였음에도 리아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분명 독은 해독되었음에도.

의원이 또 엉뚱한 것을 먹인 것은 아닐까 싶어 카르티안이 이성을 잃고 의원에게 달려들려고 했을 때, 막은 것은 바론이었다.

그때 바론은 말했다.

또 후회할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이냐고.

후회, 후회할 짓.

자신은 이미 너무도 많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카르티안이 아프게 리아의 얼굴을 매만졌다.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편해 보였다. 드디어 자신의 곁을 떠날 수 있어 행복해 죽겠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지금 정말 행복할까?

드디어 귀찮은 자신을 떨쳐 낼 수 있다고 만족스러워할까? 그래서 눈을 뜨지 않는 것일까.

눈을 뜨면 자신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싫어서, 너무도 끔찍해서.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자신이 싫으면 그냥 떠나도 좋으니까, 이렇게 정신을 잃고 있을 필요는 없잖아.'

아픈 것은 다 자신이 할 테니까, 부디 그녀만은.

그때였다.

리아의 손이 움찔거렸다.

아주 작은 움직이었지만, 카르티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리아!"

카르티안이 다급하게 리아를 부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 부름에 맞춰 리아가 눈을 떴고, 바로 앞에 보이는 카르티안의 얼굴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카르티안의 얼굴을 때렸다.

조금 전 신을 만난 여파인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을 보니 자연스레 손이 올라갔다.

"아."

자신에게 맞아 붉어진 볼을 하고 있는 카르티안을 보며 리아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더 때려도 돼……."

리아에게 맞은 것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카르티안이 더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아뇨, 됐으니까 얼굴이나 치우시죠."

그에 카르티안은 여전히 리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순순히 거리를 벌렸다.

리아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카르티안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알아채지 못했는데, 카르티안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얼굴은 해골이 친구 하자고 할 정도로 바짝 말라 있었고, 눈은 퀭하고, 눈 빝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 건 얼굴만이 아니었다. 옷 사이로 얼핏 드러나는 몸에는 알 수 없는 상처가 가득 했다. 옷차림 역시 잔뜩 흐트러져 순간 황제가 아니라 노숙자가 이 앞에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옆의 유시안 역시도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상대 효과인지, 카르티안의 옆에 있으니 상대적으로 괜찮아 보이긴 했다.

"리아, 정말…… 미안. 모두 내 잘못이야."

카르티안이 진심을 가득 담아 사과했다. 그녀가 눈을 뜨면 하려고 했던 말이었다. 더 이상 예전의 그 망설임은 없었다.

카르티안은 그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감정을 온몸으로 토해냈다. 동시에 카르티안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내 그가 한 행동은 너무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순간, 유시안이 너무 놀라 카르티안을 말리려고 했지만, 카르티안이 단호하게 유시안의 행동을 거부했다.

카르티안의 시선이 오롯이 리아를 향했다.

무릎을 꿇은 카르티안의 행동에 리아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무릎까지 꿇을 줄은 몰랐다. 황제로서 무릎을 꿇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리아는 대충 알 수 있었다.

애초에 황제인 그가 그럴 일이 있겠는가.

황제의 죄는 죄가 아니었다. 누구도 그것을 탓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카르티안은 현재 자신의 자존심을 모두 뒤로한 채, 리아, 자신에게 사과하기 위해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내가 무엇을 한 대도 그대에게 용서받을 수 없겠지. 나는 그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으니까."

용서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듯, 그저 사과하고 싶을 뿐이라는 듯 카르티안이 애절하게 리아를 바라보았다.

"……."

카르티안의 행동에 리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과의 대화로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이렇듯 잘못을 구하는데 매정하게 굴 수는 없었다. 특히나 잔뜩 망가진 그의 모습을 보니 어찌할 수 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행동으로 그가 많이 아파할거라는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로 영향을 받을 줄은 몰랐다. 그의 감정이 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그는 정말로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많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 채 이곳에 끌려와 자신을 향한 많은 적의를 마주하고, 한국에선 겪기 힘든 많은 일을 겪었지만, 이쯤 되니 정말로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 모든 것은 단순히 황제의 탓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신도 어찌하지 못한 걸, 그가 어찌 해결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대가…… 그래. 정말로 나의 곁을 떠나고 싶다면, 그리 해도 좋아. 그대가 건넨 그 폐위 요청서, 승인하지."

너무도 힘든 말이었다. 그 말을 하며, 카르티안은 몇 번이나 무너지려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입에 모래가 가득한 것처럼 입이 텁텁하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칼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 외에는.

자신의 곁에 있어 그녀가 이리 힘든 일을 겪어야 한 것이라면, 그녀를 위해 떠나 보내는 것이 맞았다.

그로 인한 아픔과 고통은 자신이 감내해야 할 것이었다.

카르티안의 말에 유시안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그가 저런 말까지 할 줄은 몰랐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준다고 하면서도, 폐위만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하던 그인데.

그 말을 들은 리아는 그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얼마나 상처를 받았고 힘들어 했을지 또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그건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죠.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신과의 대화로 인해 돌아갈 시기가 늦춰지기도 했고, 지금 그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는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보는 사람도 안쓰러워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많이 망가져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이 변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순순히 받아들이겠다고 하며 그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건 그녀로서도 꺼려졌다.

적어도 그가 어느 정도 회복한 다음에 이야기를 꺼내도 될 터였다. 그때 폐위 이야기를 꺼낸다고 해서 카르티안이 말을 무를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

혹시라도 리아가 자신의 말에 거절하지는 않을까 했던 카르티안은 리아의 대답에 실망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미 각옥한 일이었다. 자신이 기억을 찾자마자 폐위 요청서를 건넸던 그녀였고, 그녀는 많은 일을 겪었다.

다만 진득한 감정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땅이 갈라져 그 깊은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먼저 꺼낸 말임에도, 카르티안은 그 지독한 아픔 속을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리아는 그저 착잡한 표정으로 카르티안을 바라보았다.

"그럼 쉬어……. 폐…… 위에 대한 이야기는 그대의 말대로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지."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지만, 카르티안은 리아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내 카르티안은 리아의 방을 나섰다. 문을 나서자마자 카르티안은 비틀거렸다. 애써 참은 감정들이 그를 흔들리게 했다. 그 옆에서 유시안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카르티안이 리아에게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그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과를 했으니, 이제는 서로의 앙감을 풀고 잘되는 일만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카르티안이 얼마나 힘들게 그런 말을 꺼냈는지 알기에 차마 그에게 섣부르게 말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리아에게도, 카르티안에게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유시안은 그저 리아가 이제라도 카르티안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카르티안과 유시안이 방을 나가고 리아는 진득한 한숨을 토해냈다.

비록 카르티안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자신의 결정을 철회할 수는 없었다. 이미 신에게도 돌아가겠다고 말을 해두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사실은 지금 바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카르티안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의 모습을 본 이상 처음처럼 냉정하게 떠날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서로에게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을 위한 시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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