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79 (80/125)

                                                                      * * *                                                                       

카르티안과 리아는 집무실을 나와 황실 정원으로 향했다. 카르티안은 리아의 옆에서 연신 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주변을 배회했다.

"개예요?"

카르티안의 모습을 보다 못한 리아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개? 나, 개새끼야?"

질문을 던진 카르티안은 혼자서 도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침울한 기색을 했다.

'그래, 나는 개새끼야. 그대에게 한 행동을 생각하면, 개새끼라는 말로도 부족하지.'

카르티안이 홀로 수긍하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새끼라고는 안 했는데요?"

도대체 개라는 말이 어째서 개새끼라는 결론으로 간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 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꾸만 그가 미안해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이 어쩐지 보기 싫었다.

"당연하지! 리아는 착하니까……."

카르티안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안 착해요. 착하다는 말 좋아하지도 않고."

딱히 카르티안에게 착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신이 그리 대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 때문에 그토록 힘들어 했으면서도 착하다는 말을 하니 약간 불편하기도 했다. 자신이 정말 착했다면 카르티안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았을 테고,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동안에는 카르티안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대해 별다른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아, 미안……."

이제 그녀만 보면 자동적으로 나오는 그 말을 하며, 카르티안이 침울한 기색을 했다.

"그냥 착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자신의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금세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는 카르티안을 향해 리아가 애써 날카롭지 않게 말했다.

더 이상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응."

카르티안의 침울한 기색을 느끼며 리아가 화제를 돌리듯 말을 꺼냈다.

"정원이 참 예쁘네요."

황성의 정원이라 그런지 꼭 그냥 공원 같았다. 색색의 꽃들이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딱히 꽃에 관심이 없는 리아의 눈에도 이런 광경은 예뻐 보였다.

"……그대가 더 예뻐."

카르티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제가 봐도 이 얼굴이 예쁘긴 하더라고요."

원래의 자신의 얼굴이라면 저 말에 가볍게 코웃음 쳤을지 몰라도, 리아르나의 얼굴은 누가 봐도 예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났다.

기억을 잃은 카르티안이 자신에게 반한 이유는 단순히 이 외모 때문이 아닐까 했을 정도로.

"아니야. 그대의 얼굴을 말하는 것이 아니야."

"아, 그럼 외모는 별로다?"

"아니, 아니!"

리아의 말에 카르티안이 당황하며 황급히 강하게 부정했다.

"그냥, 그대는 다 예뻐! 한 군도데 안 예쁜 곳이 없어."

"결국 그게 외모가 그렇다는 거 아닌가요?"

리아가 놀리듯 말했다.

"그대의 외모도 예쁘지만, 그보다는 그대의 모든 것이 예뻐."

눈에 보이는 곳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 모든 것도.

카르티안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기억을 잃은 후, 그녀를 처음 봤을 때의 그 감정을.

그 당시 카르티안은 리아에게서 흘러나오는 그 강한 빛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 빛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카르티안은 리아를 처음 본 순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지금도 리아는 그랬다. 다른 이들은 리아의 외모에 먼저 시선을 빼앗겼을지 몰라도, 카르티안은 아니었다.

카르티안의 눈에 들어온 것은 리아의 외모보다는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그 알 수 없는 빛의 눈부심이었다. 그녀에게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따스한 무언가.

외모에 전혀 시선이 가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말이겠지만, 리아가 아니라면, 그 외모엔 조금도 시선이 가지 않았을 터였다.

카르티안은 리아의 모든 것이 좋았다. 무심한 듯 굴면서도 가끔씩 내보이는 그 배려가. 때때로는 자신을 압도하는 그 분위기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강하게 부딪혀 오는 그 모습도. 자신을 숨기기 급급한 사람들 속에서, 솔직함을 내보이는 그 모습도.

리아를 좋아하는 이유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었다.

그녀를 향해 느끼는 그 미안함만큼이나, 그녀의 모든 것은 하나하나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

리아는 카르티안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정원을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어찌하든 떠날 자신이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칭찬에 화답하여 칭찬을 되돌려주자니 그도 걸렸다.

남겨질 그를 위해서도 너무 다정하게 구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처럼 매정하게 굴 수도 없어, 그를 대할 때마다 리아는 당황스럽고 고민이 되었다.

"저는 결국 떠나게 될 거예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리아가 말했다. 말을 하는 리아의 기분도 그 말을 듣는 카르티안만큼이나 복잡했다.

"……알아. 알고 있어. 그대는 나를 떠날 것이고, 그대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그러나 알고 있다고 해서 사라질 감정이 아니었다. 리아에게 자신의 감정을 강요할 생각 역시 없었다.

이제는 자신의 감정을 이유로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둘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겠…… 죠."

리아의 대답은 그것이 끝이었다. 그 이상의 말은 할 수 없었다.

떠나겠다는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카르티안은 충분히 힘들 터였다. 언제고 제대로 말을 해야 하기에 지금 그런 말을 꺼내긴 했지만, 그 이상 그를 몰아붙일 수는 없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뒤로한 채, 카르티안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말에 늘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 리아이지만, 그녀가 그렇게 차가운 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리아의 태도만으로도 카르티안은 그녀 역시도 떠난다는 말을 하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거면 되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는 아니라는 뜻이니까.

그러니 그녀가 자신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도록, 혹시나 남아 있을 자신을 향해 조금의 미안함도 가지지 못하도록, 카르티안은 최대한 밝은 모습을 보였다.

"리아, 기억해?"

카르티안의 물음에 꽃을 향해 시선을 주고 있던 리아가 카르티안을 바라보았다.

"같이 밖을 나가자고 했던 것."

"아아, 그랬었죠."

미처 나가지 못한 채, 카르티안이 기억을 찾고 이런저런 일을 겪어 흐지부지된 일이었다.

"이제라도 그 약속 지키고 싶은데……. 약속했었으니까."

비록 기억을 찾아도 변하지 않았다고 한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그 약속만은 지키고 싶었다.

"그래요."

리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별을 앞둔 만큼, 그 정도의 약속은 들어줄 수 있었다.

"응."

순순한 허락에 카르티안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도 잠시, 리아의 시선이 내내 꽃에 머물고 있음을 알아챈 카르티안이 물었다.

"꽃, 좋아해?"

"딱히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기는 하네요."

리아의 대답에 카르티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잠시만……."

"그래요."

뭘 하려고 저러는 건가 싶었지만, 리아는 그러라는 듯 그냥 가만히 있었다.

리아의 허락에 카르티안은 아주 잠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 꽃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내 돌아온 카르티안의 손에는 꽃이 한 아름 들려 있었다.

꽃다발 하나와 화관.

수줍은 기색으로 꽃을 꺾어온 카르티안은 조심스레 리아에게 다가왔다.

꽃다발을 리아에게 건넨 카르티안은 나머지 화관 역시 리아의 머리 위에 씌워 주었다.

"이게 무슨……."

머리 위에 쓴 화관에 리아가 어색한 듯 살짝 눈을 찡그렸다.

"예뻐. 잘 어울려."

비록 꽃보나 리아가 더 예뻐서 꽃에는 시신도 가지 않지만.

그러나 카르티안의 감탄과 달리, 리아는 머리에 쓰고 있는 화관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이런 낯간지러운 짓이라니.

어색함을 느끼며 리아가 손을 들어 화관을 벗으려고 했다.

"조, 조금만 하고 있으면 안 될까?"

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카르티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카르티안의 손은 리아의 손에 닿아 있었다. 차마 잡지도 못한 채, 닿아만 있었다.

그 행동에 리아는 자미 망설였다. 어색해서 벗고 싶긴 한데, 카르티안이 저리 간절하게 바라보니 어찌해야 하나 싶었다.

"아니야. 싫으면 벗어도 좋아."

카르티안이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신이 무어라고, 그녀가 벗겠다는데 말리고 있는가. 그녀가 하는 일이라면 그저 다 좋다고 편들어줘도 모자랄 판에.

고작 해야 화관이라고 해도, 자신은 그녀에게 어떤 요구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아니 되었다.

그러나 카르티안의 대답에도 리아는 섣불리 화관을 벗을 수 없었다.

카르티안의 침울한 기색도 신경 쓰였다.

곧 떠날 텐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관이 어색하다고는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황제 주제에 화관 만드는 법은 어찌 알고, 이리도 예쁘게만들었는지.

그 투박한 손길로 자신을 생각하며 만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리아는 아주 조금만 이것을 쓰고 있기로 했다.

그런 사소한 행동에도 카르티안은 기쁘다는 듯 웃었다.

지금만 보면 꼭 그때로, 카르티안이 기억을 잃었을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이제는 그때와 다른데.

그때보다 더 확실하게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는데.

"폐하도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아요."

리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신의 등장과 함께 조금씩 하고 있던 생각이었다.

"아니, 아니야. 나는 그런 것이 아니야."

카르티안이 부정하며 말했다.

"이 일로 인해 티안도 많은 상처를 받고 많은 피해를 입었어요. 그러니 티안도 피해자가 맞아요. 정말 나쁜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카르티안의 부정을 부정하며 리아가 말했다.

그 말에 카르티안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용서하는 듯한 모습에도 카르티안은 기뻐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이 그냥 이별을 위한 준비 과정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차라리 그녀가 자신을 원망해도 좋으니 그냥 남아주면 안 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써 참았다. 스스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그녀에게 매달리며 남아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몇 분 더 정원을 거닐며 산책하던 리아와 카르티안은 이내 본궁으로 향했다.

그러나 집무실에 도착하기 전, 리아와 카르티안은 유시안과 마주해야했다.

"제국의 빛, 고귀한 광명,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제국의 꽃,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리아와 카르티안을 마주한 유시안이 그들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그도 잠시, 유시안은 리아의 머리위에 쓰여 있는 화관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화관, 잘 어울립니다?"

"아."

미처 화관을 벗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내내 화관을 쓰고 있던 리아가 그제야 아직도 자신이 화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아는 애써 무심한 척하며 머리에 쓰고 있던 화관을 벗었다.

"잘 어울리시는데 더 하고 있지 그러십니까?"

"제 맘인데요?"

"아니, 뭐. 그런데 화관은 누가 만들어준 겁니까?"

리아의 말에 할 말을 찾지 못한 유시안은 다른 물음을 던졌다.

"……."

그 말에 카르티안은 그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에 유시안은 화관을 만들어 준 이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두 분 다 괜찮으신가 싶어서."

딱히 볼 일도 당장 보고해야 할것도 없었다. 그냥 리아와 카르티안이 신경 쓰였을 뿐이었다.

특히나 유시안은 리아가 카르티안에게 황성을 떠나겠다고 말을 꺼낸 것을 들었었다. 그 말에 카르티안이 그러라고 했던 말도.

황제가 허락한 이상, 재상인 자신이 황후의 선택을 말릴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자신이 말을 꺼낸다고 해서 리아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도 같지 않았다.

처음과 비교하면 그녀와 자신의 사이가 그나마 좀 나아졌다고 해도, 리아는 여전히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있으니까.

리아가 마지막 순간, 자신을 찾아와 부탁했던 것도, 자신과 가까워져서가 아니라 그냥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괜찮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대답을 망설이는 카르티안을 대신하여, 리아가 답했다.

"뭐, 그렇죠?"

여전히 자신에게는 날카로운 리아의 반응에 유시안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대하기 어려워지는 황후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