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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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오늘은 귀족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카르티안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귀족 회의로 인해 리아와 같이 있을 시간이 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귀족 회의에서 나올 말도 달갑지 않았다.

귀족 회의라고 해봤자 매번 뻔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 좀 다르긴 하겠지만.

가기 싫은 마음과 달리, 카르티안은 귀족 회의를 위해 회의장으로 향했다. 특히나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 귀족 회의를 위해 준비한 것이 있었으니까. 정확하게는 공작을 위해 준비한 거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모든 귀족이 미리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카르티안의 시선은 귀족 중 한 명에게 꽂혀 있었다. 세로니안 공작. 리아의 아버지이자, 그녀를 힘들게한 또 다른 주범.

잠시 세로니안 공작의 시선이 황제를 향했다. 세로니안 공작은 고개를 숙이며 황제에게 인사했다.

카르티안은 가장 상석에 위치한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자, 귀족들이 일어나 카르티안에게 황제에 대한 예를 표했다.

카르티안은 조용히 귀족들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시작하지."

귀족들의 인사를 받으며 카르티안이 말했다.

"그전에 내가 먼저 말하지."

카르티안은 유시안이 준비한 서류를 회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는 유시안이 앉아 있었다.

"이것은 그동안 나 몰래 귀족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서류네."

말이 일이지,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다. 서류에는 귀족들이 남몰래 저지른 범죄에 대한 것들이 적혀 있었다. 비리는 당연했고, 평민을 대상으로 한 범죄와 기타적인 것들이 적혀 있었다.

명단에 적힌 귀족들은 당연하게도 귀족파 귀족들이었다. 정확하게는 세로니안 공작의 편에 선.

카르티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명단에 적힌 귀족들을 끌고 갔다.

설마 이렇게 변명의 여지도 없이 끌려가게 될 줄은 몰랐기에 귀족들은 당황했다.

기사들에게 끌려가며 귀족들이 뭐라 입을 열려고 했지만, 카르티안은 듣지 않았다.

애초에 증거는 명백했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죄를 줄일 수 없었다. 그걸 위해 그리도 열심히 그들의 뒤를 캐고 다닌 것이었다.

순식간에 회의장을 꽉 채욱 있던 귀족들이 줄어들었다. 곳곳에 빈자리가 보였다.

그런 황제의 과감힌 행동에 귀족들은 긴장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혹시나 자신들은 황제 몰래 일을 저지르진 않았을까, 들키진 않았을까 고민하며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그중 가장 표정이 좋지 않은 건 세로니안 공작이었다.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어도 끌려간 대부분의 귀족이 자신의 편에 선 이들이었다.

"그럼 내가 할 말은 끝난 것 같으니, 이제 그대들의 안건을 꺼내보게."

마치 조금 전까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카르티안이 덤덤하게 말했다.

카르티안의 말에도 귀족들은 황제의 눈치만 볼 뿐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여기서 말 하나 잘못 꺼냈다간 자신들도 기사들의 손에 이끌려 감옥에 가게 될 것 같았다.

죄 없는 이들을 끌고 간 것이 아니라지만 그 수가 적지 않았기에 귀족들은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회의장은 모처럼 아주 조용했다.

"할 말이 없다면, 이쯤 해서 회의를 끝내지."

머뭇거리고만 있는 귀족들을 보며 카르티안이 말했다. 그에 표정을 굳히고 있던 세로니안 공작이 애써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였다.

"황후마마에 대하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세로니안 공작의 말에 귀족들이 숨을 들이켰다.

황후인 리아르나를 견제할 수 있는 프레야도 사라진 이상, 황후의 권력은 강해졌다. 특히나 황제 역시도 리아르나에 대한 애정을 여전히 보이고 있었다.

세로니안 공작은 황후의 아비이니, 황후에 대한 말을 꺼내기가 보다 수월할 수 있겠지만,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황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귀족들은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 무슨 말이지?"

앞에 꼭 또, 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귀족들은 숨을 죽이며 세로니안 공작의 말을 기다렸다.

"며칠 전, 수도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공작은 참 소식이 빨라."

카르티안이 여상스레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 세로니안 공작은 살짝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제 여식과 관련된 일이니, 어찌 신경을 쏟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로니안 공작의 말에 카르티안이 조소를 지었다.

언제부터 황후를 자신의 여식이라 생각하며 신경 썼다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세로니안 공작이 황후에 대해 신경 썼다면, 그럴 정도의 상황까지 처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아니, 공작의 여식이 아니라 나의 황후겠지. 출가외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카르티안이 무심히 말했다.

그 말에 세로니안 공작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카르티안은 그 말로 자신과 리아의 사이를 깨뜨렸다. 더 이상 세로니안 공작이 관여할 수 있는 여식이 아니라, 자신의 아내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황후와 공작의 관계를 분리하는 것이었다.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황후마마에 대한 호위를 강화하는 것이 어떨가 싶습니다."

세로니안 공작의 말에 카르티안은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것 같았다. 마침 오늘이 귀족 회의니, 그에 대한 말을 꺼내기 딱 적당할 터였다.

생각대로 흐르는 상황에 카르티안의 얼굴이 더없이 싸늘했다.

"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카르티안은 그가 단순히 호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카르티안의 표정은 매우 싸늘했다.

원래도 공작과 사이가 좋지 않은 카르티안이기에, 카르티안의 싸늘한 반응에도 귀족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황후마마는 황성에 들어와 여러 좋지 않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그래, 그랬지."

결국 그것에 일조한 이 중에 세로니안 공작, 본인도 들어가 있을 텐데, 마치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듯 뻔뻔하게 구는 모습에 카르티안은 살심을 느꼈다.

가장 큰 죄를 저지른 이는 자신이라고 해도, 방관하며 은근히 부채질을 했던 세로니안 공작의 죄 역시 가볍지 않았다.

그 이유는 황후의 입지를 축소하며 자신이 뜻대로 조종하기 위해서겠지.

"그러하여 마마의 호위를 맡은 이들은 마마께서도 편하게 느낄 이들로 배치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추천하고 싶은 이가 있나?"

세로니안 공작의 의도를 알고 있음에도 카르티안이 모른 척 물었다.

"마마께서 어린 시절 가까이 지내던 이가 있었습니다. 기사로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니, 그자를 호위로 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건 곤란하군. 황후와 가까이 지낸 이는 내가 달갑지 않아서. 알다시피 내가 열심히 황후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하는 중이라, 그녀의 곁에 그녀가 친밀함을 느끼는 사내를 두고 싶지 않아."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실상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리아가 정말로 친밀함을 느끼고 있는 이라고 하면, 그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리아를 위해 곁에 둘 수도 있겠지만, 공작이 정말로 리아를 생각해 그런 것이 아닐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수족을 리아의 곁에 심어두고 싶은 것뿐이겠지.'

그랬기에 카르티안은 그런 속내를 숨긴 채 그럴싸한 이유로 공작의 제 안을 거절한 것이었다.

"하지만 폐하……."

세로니안 공작은 황제의 말에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단, 내게 중요한 것은 황후의 의사니, 황후에게 한번 물어보지."

공작의 말을 끊으며 황제가 말했다. 자신이 아는 리아라면, 물어보나 마나 공작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 뻔했다. 그녀 역시 공작을 경계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을 끝으로 카르티안은 회의를 끝냈다.

가장 먼저 회의장을 나온 카르티안은 빠른 걸음으로 리아가 있을지도 모르는 집무실로 향했다.

그냥 리아가 보고 싶었다.

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까.

문을 열고 들어간 카르티안은 집무실에 있는 리아의 모습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의 휴식 시간인 듯 리아는 시녀가 디저트를 즐기고 있었다. 그동안 그는 볼 수 없었던 미소가 리아의 얼굴에 깃들어 있었다.

그 앞에서는 내보인 적 없는 미소였지만, 달달한 디저트가 마음에 드는지 리아는 한결 편한 모습으로 잔잔한 미소를 달고 있었다.

자신이 들어온 것을 알면 그 미소가 사라질까 카르티안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역시, 자신은 그녀에게 짐이겠지.

자신이 자리를 비우고 나서야 편해진 것 같은 리아의 모습에 카르티안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곁을 떠나 리아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더 이상은 자신의 욕심으로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두며 불행하게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상처 따윈 상관없으니, 부디 그녀가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길 바랐다.

디저트를 즐기던 리아의 시선이 이내 카르티안을 향했다. 리아는 카르티안을 향해 작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 행동만으로도 카르티안은 충분한 행복을 느꼈다. 일부러라도 자신에게 정중한 예를 취하던 리아였다.

저 모습을 보니, 자신이 기억을 잃었을 때도 돌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독에 당해 기억을 차린 후, 자신에 대한 예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더 멀어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예전과 달리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받아달라고,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멀어지는 그녀를 보며, 그저 쓰린 가슴을 억누르며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회의는 잘하셨나요?"

가볍게 던져진 리아의 말에도 카르티안은 기쁨을 느꼈다.

그래도 자신에게 조금씩의 관심은 던져 주는 것 같아서.

그녀를 향한 깊은 마음은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말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 바라는 것은 과욕이었다.

"그래. 무사히."

"다행이네요."

카르티안의 시선이 리아가 손에 들고 있는 쿠키에 닿았다.

자신의 이기심이지만, 지금 이 순간 리아의 손에 들린 쿠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순간이라도 그녀의 관심을 오롯이 받고 싶었고, 그녀의 애정을 받고 싶었다. 결국엔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해도.

"오늘 세로니안 공작이 며칠 전 일어난 일에 대해 언급하더군."

"아아."

이제는 아버지라기보다는 완전한 남의 범주에 들어간 공작의 이야기를 들으며 리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대의 지인을 호위로 보내고 싶다고 하더군."

'내 지인?'

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원작 속에 리아르나의 지인이라고 하는 존재는 등장한 적 없었다. 물론 상황이 많이 바뀌어버려 원작에 나오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 이겠지만.

원작에서 보지 못했으니, 당연하게도 그 지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리아르나의 기억을 몇 번 엿보았다고 해도, 그것은 모두 카르티안이나 프레야에 대한 것일 뿐, 그 외의 것은 보지 못했다.

'하긴 상관없으려나.'

지인이든 뭐든 리아는 공작이 보낸 이를 호위로 삼을 생각이 없었다.

"거절하고 싶네요."

"그럴 거라 생각했어."

만약 그녀가 거절하지 않고 알았다고 대답하면, 그녀를 설득해야 할지, 아니면 알았다고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리아는 자신의 생각대로 공작의 제안을 거절했다.

카릐티안의 대답을 끝으로 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카르티안은 리아에게 작은 말 한 마디 하기도 신경이 쓰였고, 리아는 원래 먼저 대화를 시도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드물게도 침묵 속에서 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쿠키라도 하나 드셔 볼래요?"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볼 때마다 아프게 일그러지는 카르티안을 보자니 무시할 수도 없어 가볍게 말을 건넸다.

그 말 한 마디에도 카르티안의 표정이 어찌나 환하게 펴지는지, 리아는 또 한 번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응."

쿠키를 서로 나눠 먹는 리아와 카르티안 사이에는 아주 작지만 따스한 온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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