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87 (88/125)

                                                                      * * *                                                                       

리아의 호위는 황제가 엄격하게 선별한 기사들로 채워졌다.

새로운 기사가 추가됐을 뿐, 바론은 여전히 리아의 호위로 남아 있었다.

공작이 보낸 이만 아니면 누가 자신의 호위가 되든, 일만 잘하면 상관없던 리아는 카르티안의 말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

호위를 새로 뽑은 것으로 더 이상 공작의 서신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리아는 다시금 자신에게 보내진 공작의 서신에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도 항상 달갑지 않은 것이었지만, 오늘의 서신은 더욱 그랬다.

강압적이던 서신의 내용은, 이제 완연한 협박조가 서려 있었다. 동시에 서신에는 그녀는 알지 못했던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출생의 비밀에 가까운 것이었다.

지난번 바론과 기사들의 충돌이 있었을 때, 기사가 한 말로 자신의 어미가 사실은 귀족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설마 자신의 아비도 귀족이 아닐 줄이야. 아니, 귀족인지 아닌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공작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쩐지 유난히 자신을 대하는 공작의 태도가 싸늘하다 했더니, 그것이 아내를 좋아하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친딸이 아니기 때문인 것일까.

물론 그녀의 배 속에 있던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아내를 미워하게 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 참, 곤란하네.'

서신 속에서 공작은 그 사실을 빌미로 자신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 사실이 밝혀지길 원하지 않는다면, 태도를 조심히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이야 태도를 조심하라는 것이지, 자신의 개가 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리아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지금 흔들린다면, 자신은 영영 공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자신이 신과 거래한 것도 차질이 생긴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리아는 카르티안을 믿었다. 공작은 이 사실을 황제가 알면 어떻게 할 것 같냐고 위협하고 있었지만, 카르티안이 공작이 원하는 반응을 보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소의 충격은 있을지언정 자신을 밀어내거나 배척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카르티안이 자신에게 품은 감정은 그리 가볍고 얕은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슬픈 사실이지만, 공작만 처리하면 결국 자신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게 될 터였다. 이미 카르티안과도 말을 끝낸 상태였다. 그러니 공작의 말은 큰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이용히 공작을 끌어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야 이 사실을 몰랐다지만, 공작은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황후로 만든 것이니까.

'그러니 상관없지.'

리아가 조소를 머금었다.

동시에 그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공작도 생각이 있는 자라면, 그 사실을 밝힐 때, 본인 역시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따로 무언가를 꾸미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자신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해서, 이 말을 들으면 바로 자신이 사실이 밝혀질까 전전긍긍하며 그의 말을 따라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리아?"

서신을 읽은 리아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느낀 카르티안이 조심스레 리아를 불렀다.

카르티안의 부름에 그를 바라보며 리아가 고민에 잠겼다.

이렇게 공작의 서신을 읽는 것도 짜증 나는데, 아예 공작이 자신에게 서신도 보내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할까.

하지만 그러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생각에 리아는 그저 짜증스레 서신을 구겨 버렸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래."

리아의 말에 카르티안은 그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리아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카르티안은 리아에게 오는 모든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리아를 위해서였다. 혹시나 공작이 자신 몰래 리아에게 무슨 수작을 부릴까 걱정이 되었기에.

그랬기에 카르티아은 리아가 읽은 서신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었다.

공작은 그 사실이 크나큰 변수가 될 거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리아의 출신이 어떻든, 리아는 리아였다.

자신은 리아의 배경을 보고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리아,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사실이 밝혀지면, 귀족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긴 하겠지만, 어떤 말도 꺼낼 수 없게 만들어버리면 그만인 일이었다.

더 이상 리아가 루머와 소문 속에 놓이길 원하지 않았다.

겨우 이제야 황후로서 제대로 된 위치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번만은 반드시, 그녀를 지킬 터였다. 그 어떤 위협과 시련 속에서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