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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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를 풀기 위해 다소 오래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던 리아는 카르티안이 기다릴까 빠르게 준비를 마친 후 식당으로 향했다.

그러나 음식이 준비된 식탁과 달리 카르티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늦는 건지, 아니면 씻다가 잠이라도 든 건지 알 수 없었다.

황제가 오지 않았기에 먼저 식사를 할 수 없었던 리아는 조용히 식탁에 앉아 카르티안을 기다렸다. 어차피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뒤늦게 준비를 마친 카르티안이 식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카르티안을 본 리아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터뜨릴 뻔했다. 그만큼 그의 모습은 지금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다.

"어디 가요?"

그게 아니고서야 카르티안의 모습을 납득할 수 없었다.

카르티안은 무도회에 참석하는 귀족 영애처럼 잔뜩 치장한 상태였다.

평소 가벼운 제복 차림만 하고 있었던 것과 달리, 카르티안은 머리도 깔끔하게 넘긴 채로, 완벽한 제복을 입고 있었다.

"아…… 니."

"그런데 그 모습은……?"

정말로 카르티안이 왜 그러고 왔는지 몰라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제는 카르티안에게 제법 익숙해진 것인지, 왜 그가 이렇게 입고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다만 그 이유라는 것이 리아가 생각하기엔 좀 우스웠다.

그에 카르티안은 대답을 망설였다.

이유야 간단했다.

아침에 너무 못생긴 모습을 보인 것 같아 그것이 신경 쓰여 일부러 더 신경 써서 꾸민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괜찮을까 고민하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더 흘러 있었고, 생각 이상으로 차려입은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후회는 되지 않았다.

리아를 기다리게 한 것은 미안했지만, 그녀에게 언제나 멋진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그것이……."

"뭐, 됐어요. 잘 어울려요. 멋있고."

리아가 무심한 듯 칭찬을 입에 담았다.

"어, 아……."

설마 리아가 그런 칭찬을 할 줄 몰랐다는 듯 카르티안이 눈을 크게 떴다. 왠지 그녀의 반응을 보니 어쩌새 자신이 이렇게 입고 왔는지 그 이유를 알아챈 것 같았다. 민망하면서도 그녀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리아는 항상 예뻐……."

괜스레 시선은 자신 앞에 놓인 그릇을 향해 둔 채 카르티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복이죠."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법도 하고, 아침에 막 일어나면 부스스할 텐데도, 이 몸은 그럴 것이 없었다.

피곤한 기색이 있긴 하지만, 평소와 비교하면 손색이 없었다.

"……."

짐짓 부럽다는 듯 카르티안이 리아를 바라보았다.

리아는 언제나 예쁜데, 자신은 왜.

게다가 리아 앞에서 몇 번이나 운것인지. 괜스레 과거의 행동들이 떠오르며, 카르티안은 축 처졌다.

"티안도 항상 멋있으니까, 그런 반응 보일 필요 없어요."

그동안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카르티안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멋있었다. 조금 전처럼 땀범벅이 되어 있어도, 그로 인해 머리가 얼굴에 달라붙어 미역 모양이 되어도, 흐트러진 모양새도 보기 흉하기 보다는 그것 역시 하나의 매력처럼 느껴졌다.

그에 카르티안이 또 한 번 눈을 크게 떴다. 아까의 칭찬도 놀라운데, 지금 또.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눈이 흔들렸다.

"아니야, 나는……."

"그럼 제 눈이 이상한가 보죠. 멋있어 보였으니까."

카르티안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카르티안이 멋있는 건 사실이었다.

자신이 독에 충독당해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카르티안의 몰골은 정말 가관이 아니었다.

다른 이였다면, 그냥 폐인 정도로 보였을 모습을 하고 있었을 때도 카르티안의 외모는 빛을 잃지 않았으니까.

그것을 생각하니 새삼 우습게 느껴졌다. 그때는 더한 몰골을 하고서도, 별 생각 없더니, 오늘 아침은 왜 그리 유난히 겉모습을 신경 쓰는 건지.

"아니야! 리아 눈은 안 이상해!"

가볍게 농담조로 건네진 말이라도, 카르티안이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요, 그러니 걱정 말고 식사나 하세요."

아까부터 깨적거리고만 있는 카르티안의 행동을 알아챈 리아가 말했다.

"……응. 그런데 나 진짜 멋있어?"

카르티안이 기대를 담고 리아를 바라보았다.

그 물음에 리아는 고민했다.

사실을 말하면 멋있었다. 다만 저리 기대로 반짝이는 시선을 보니, 괜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

"멋있긴 해요."

잠시 고민하던 리아가 사실을 말했다.

그 말에 카르티안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단순히 외모에 대한 칭찬이라고 해도, 그녀의 입에서 나온 칭찬이 기분 좋았다.

"오늘은 피곤할 테니, 일하지 말고 쉬어."

황후의 일이 많다고 해서, 매일 쉬지 않고 꼬박꼬박해야 할 정도는 아니니.

카르티안이 음식을 씹으며 말했다.

"음."

리아가 잠깐 고민했다.

사실 정신이 살짝 몽롱한 것이 쉬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또 내내 카르티안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오늘은 좀 꺼려졌다.

어젯밤 일 때문인 듯했다.

카르티안은 어제의 일을 잊은 듯 굴고 있었지만, 리아는 그때 카르티안이 내보인 그 감정의 깊이글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만큼이나 짙고 강렬한 것이었다.

아마 카르티안이 그런 불안함을 느낀 것은 어제가 처음이 아닐 터였다.

기억을 잃었을 때도 그런 일이 있었고, 듣자 하니 카르티안이 제대로 잠을 청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것을 생각하니, 그가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 이상의 감정일지도 몰랐다. 이제는 단순한 연민 정도로는 넘어가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러죠."

리아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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