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보고를 위해 카르티안을 찾은 유시안은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 카르티안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래."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카르티안이 단호하게 말했다.
대답하는 카르티안의 입꼬리가 연신 움찔거렸다.
"어떤 일인지 여쭤봐도 됩니까?"
"음."
카르티안이 잠시 고민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정말 너무 기분이 좋아서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다니.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편이라는 그 말만으로도 카르티안은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
생애 처음으로 기뻐서 잠을 자지 못했을 정도로.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 건지, 처음으로 잠이 들었음에도 악몽을 꾸지 않았다.
거의 매일같이 리아가 떠나는 악몽을 꿨던 카르티안이었다. 그 탓에 잠을 자는 것이 제일 힘들어하고 무서워했었다.
그러나 어제는 그런 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편안히 잘 수 있었다. 수면 시간만 따지면 부족했지만, 그렇게 편안하게 잔것은 리아를 만난 후 거의 처음 있는 일이라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어제 리아가 내게 싫어하지 않는 다고,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해줬어."
말을 하면서도 어찌나 수줍어하는지, 유시안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원래도 리아 앞에서는 종종 그런 모습을 보였던 카르티안이지만, 이렇게 제대로 보고 있자니, 차마 보고 있기 민망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편이라고요?"
"응."
유시안의 떨떠름은 알아채지 못한채, 카르티안이 배시시 웃음을 보였다. 리아 외에 다른 사람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미소였지만, 그런 것 따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역시 마마는 참 매정하시네요."
'이왕 말할 거 좋아한다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좋아하는 편이라는 말에 저 정도로 좋아하는 카르티안이라니.
참 소박하다 싶었다.
도대체 얼마나 리아가 카르티안에게 매정하게 굴었으면 그 말에 저 정도로 기뻐할까 싶기도 했다.
"리아는 절대 매정하지 않아."
조금 전 헤실거렸던 것이 무색하게 카르티안이 표정을 굳히며 단호하게 말했다.
리아가 얼마나 다정한데, 매정하다니.
욕을 하기 위해 그런 말을 꺼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리아를 매정하다고 칭하는 유시안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 폐하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거겠지요."
카르티안의 말을 인정할 수 없었지만, 여기서 더 이상 뭐라 했다간 제대로 화를 낼 기세라 유시안은 그냥 수긍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 거겠지요, 가 아니라 리아는 매정하지 않은 것이 맞아."
어설프게 넘어가려고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키르티안이 강하게 말했다.
"아니……."
"리아는 매정한 것이 아니라 다정해."
뭐라 변명하려는 유시안의 말을 막으며, 카르티안이 다시금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에 유시안은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싶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매정하지 않다는 말은 그렇다 치고, 다정하다고? 리아의 어디가? 어디를 봐도 다정한 부분은 없는데?
그것은 비단 황후가 자신에게 유독 차갑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이를 대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좀 나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다정하다는 말에는 좀 어폐가 있었다.
아니면 다른 이들이 있을 땐 매정하게 굴지만, 둘만 있으면 좀 다정해지기라도 하는 것인가.
유시안은 쉽게 카르티아의 말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그의 말을 반박하고 나선다고 해도, 카르티안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유시안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물었다.
"그러면 마마께서 떠나기로 하신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말에 카르티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 모습에 유시안은 대답을 알 수 있었다.
"그 결정을 취소하지는 않은 겁니까?"
그래도 긍정적인 그 말에 혹시나 했는데.
유시안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리아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리아가 황후 자리에서 내려와 떠나겠다고 한 말은 받아들인 것은 나야."
"하지만 그래도 마마가 떠나는 걸 원하지 않지 않습니까?"
잠깐만 대화를 나눠 봐도, 카르티안이 얼마나 그녀를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지 알 수 있는데. 어째서 그녀를 잡으려 하지 않는지.
물론 그가 어째서 그런 리아의 결정을 받아들였고, 잡지 않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시안에게 중요한 이는 리아보다는 카르티안이었다.
카르티안 쪽에 마음이 더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난 받아들이기로 했어. 그러니 그녀에게 내 곁에 남아달라고 말할 수는 없어."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카르티안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단호한 카르티안의 태도에 리아를 잡으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유시안이 은근히 말을 꺼냈다.
"마마께서 남아 있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겁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꺼낸 유시안의 말에 카르티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리아가 황성에 남아 있고 싶게 만들라고? 어떻게?'
그녀를 잡을 수는 없었다. 남아달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마마께 매달리거나, 잡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마마가 스스로 결정을 무르게 할 수는 있는 거 아닙니까?"
"설마 나에게 황제의 권위를 내세워 그렇게 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혹시나 싶어 카르티안이 얼굴을 굳혔다.
"그럴 리가요. 마마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순순히 따르지도 않을 테고요. 그러니까 마마를 유혹하는 겁니다."
"리아를 유혹하라고?"
"네. 좋아하는 편이라는 말까지 하셨다고 하니,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마마가 폐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말입니다."
이건 카르티안도 생각하지 못한 것 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역시도 그녀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카르티안은 고민이 되었다.
"아니, 좋아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유혹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끝까지 소용이 없다면 어쩔 수 없는 법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유혹하는 것 자체가 나를 좋아해 달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좋아해 달라고 매달리는 것과 유혹은 또 다른 것이니까.
어차피 유혹이나, 리아에게 잘하려고 하는 것이나 다를 것도 없어 보였다.
그런 생각에 유시안이 은근하게 말했다.
그 말에 카르티안이 잠시 흔들렸다. 그 정도는 괜ㅊ낳을 것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좀 방법을 다르게, 효과적이게 하는 것뿐이니까요."
덧붙인 유시안의 말에 카르티안이 격하게 동요했다. 자꾸 그의 말을 듣다 보니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살면서 지금까지 누군가를 유혹해 본 적 없는 카르티안인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에 유시안은 최대한 성심성의껏 답을 들려주었다.
유시안도 카르티안과 마찬가지로 여인을 유혹해 본 적은 없지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이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카르티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리아에게 좀 차갑게 굴어보라는 말에 카르티안이 반발했다.
"그건 안 돼!"
"아니, 그러니까 제 말뜻은 평소와 다르게, 조금은 무심하게 굴어보라는 뜻입니다. 원래 사람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관심하게 굴면 신경이 쓰이고 그러는 법입니다. 그리고 남자가 늘 다정하게 굴어도 좋지 않은 법입니다. 때때로는 남자다운 모습도 보여줘야지요."
"하지만……."
"그냥 전처럼 그냥 좋다고만 하지말고, 약간 태도만 조심하라는 겁니다. 너무 좋아하는 티만 내지 말라는 거지요."
유시안의 말에도 카르티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녀만 보면 좋아죽겠는데, 어찌 좋아하는 티를 내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그러나 유시안의 말을 듣다 보니 또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카르티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유시안의 유혹의 방법을 전수하는 사이, 리아가 늦은 출근을 했다.
리아의 등장과 함께 유시안과 카르티안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혹시나 리아가 자신들의 대화를 들은 건가 싶어 카르티안이 리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자신들의 대화를 들은 것 같지 않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폐하, 파이팅입니다!"
자신을 보자마자 왈칵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리아의 모습에 움찔하며 유시안이 황급히 자리를 떴다.
"제 욕이라도 하고 있으셨어요?"
어쩐지 묘한 카르티안의 반응에 리아가 무심히 물었다.
"리아가 욕할 데가 어디 있다고 그런 것을 해! 혹시나 그대를 욕하는 이가 있다면 바로 내게 말해! 아직도 그런 이가 있다면, 절대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테니."
살벌한 표정으로 카르티안이 말했다.
"다행히도 그러는 사람은 없어요."
리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응."
카르티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재상과는 무슨 대화를 나눈 거예요?"
딱히 카르티안이 재상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든 관심 없었지만, 유시안의 마지막 말도 그렇고 신경이 쓰였다.
"그냥 보고를 받은 것뿐이야."
조금 전 유시안과의 대화에서 리아에게 조금쯤은 무심하게 굴라는 말을 기억하며 카르티안이 애써 삐죽이려는 입꼬리를 참으며 말했다.
"아, 그래요?"
'보고를 주고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그러나 카르티안의 분위기를 보니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리아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카르티안이 다른 누구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일일이 자신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무심히 넘기는 리아의 태도에 카르티안은 괜스레 움찔했다.
일이 많지 않아서 출근은 늦게 했지만, 일이 없는 것은 아니라 리아는 저녁 시간까지 집무실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어 있었고, 리아는 몸을 일으키다가 카르티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카르티안이 조용하네.'
자신이 일할 때 방해하는 것을 싫어하는 걸 알고서 일할 땐 따로 말을 걸지 않았지만, 자신이 조금만 쉬려고 하면, 바로 알아채고서 몇마디 말을 걸었던 카르티안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것이 없었다.
덕분에 조용히 일할 수 있어 좋긴 했지만, 약간 마음에 걸렸다.
"식사나 같이하시겠어요?"
리아가 묘한 감정이 드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물었다.
그 말에 카르티안이 머뭇거렸다.
마음이야 당장에라도 좋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유시안과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너무 다 좋다고만 하지 말고 한번쯤은 튕기라고 했던가.'
그게 어째서 유혹법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과 달리 유능한 유시안이니, 맞는 것도 같았다.
좋아하는 여자의 말을 다 들어주면 만만한 남자가 된다고 했던가. 리아에게 만만해 보이는 것은 상관없었다. 다만 그 뒤에 매력 없다고 했던 말이 걸렸다.
이왕이면 리아에게 매력 있는 남자가 되고 싶지, 매력 없는 남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모처럼의 기회인데 거절하고 싶지도 않아 카르티안은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싫으면 말고요."
평소와 달리 머뭇거리는 태도에 리아가 말했다.
"……싫지 않아."
평소처럼 바로 격하게 부정하려고 하는 자신의 행동을 억누르며 카르티안이 애써 무심하게 말했다.
"그래서 같이 드시겠다고요, 아니면 말겠다고요?"
리아가 무언가 불만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평소와 다른 카르티안의 반응에 묘하게 거슬렸다. 정확히는 거슬린다기보다는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에 카르티안은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역시 그녀와 같이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같이 먹어."
그녀의 제안을 허락은 하지만, 유시안이 말했던 대로 너무 좋아하는 티는 내지 않기 위해 카르티안이 애써 덤덤히 말했다.
그런 카르티안의 태도에 리아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리아와 함께 식당으로 향하며 카르티안은 그녀에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했다.
평소에는 크게 고민한 적 없었는데, 그녀를 유혹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말 한 마디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좋아하는 사람과 공통적인 취향이나 관심사가 있으면 좋다는 말이 떠올라 카르티안이 물음을 던졌다.
"리아는 혹시 좋아하는 것이 있어?"
애써 근엄한 표정으로 카르티안이 물었다.
"그 좋아하는 것의 범주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음식 중에서는 단것을 좋아하고, 취미에 대해 묻는 것이라면 독서를 좋아해요."
리아의 말에 카르티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도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그것에는 리아와 자신의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단것을 아주 싫어했다. 독서라면 그도 좋아하긴 했지만, 같이 독서하는 것은 같이 일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좀 더 다정히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있었으면 싶은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럼 혹시 하고 싶은 건 없어? 매일 일만 하고 책만 읽는 것은 너무…… 심심하잖아."
"심심하지는 않지만, 단조롭긴 하죠."
"그러니까…… 그거 말고 하고 싶은 거나 그런 건 없어?"
카르티안의 말에 리아는 고민했다.
딱히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적이 없었다.
"아. 검술은 배워 보고 싶긴 해요."
몸을 움직이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종류의 운동은 좋아하는 편이었다.
우선 내 몸은 내가 지키자는 주의였다.
이곳의 검술과 한국에서의 검도는 또 다를 테니, 새로운 것을 배우는 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검술?"
리아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카르티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솔직한 마음으로야 리아가 검술을 배우기를 원하지 않았다. 저 여린 몸으로 어찌 그런 무거운 검을 들고 배우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동시에 괜찮다는 생각은 드는 것은 자신이 리아에게 검술을 가르쳐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독서보다는 좀 더 대화를 나누며 교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원래 유능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하니까, 자신의 뛰어난 검술 실력을 보면 리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검술 가르쳐 줄까?"
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카르티안이 물었다.
"티안이 직접이요?"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길래 검술을 배워 보고 싶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선뜻 가르쳐 준다고 하니 의외다 싶었다. 게다가 다른 이에게 시키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직접.
"……싫어?"
카르티안이 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러나 너무 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전전긍긍하지 말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내 말을 덧붙였다.
"싫으면 말…… 든가."
원래는 좀 더 강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어조를 부드럽게 한 카르티안이었다.
이미 그런 말을 한 것 자체가 카르티안에게는 커다란 노력이었다.
"티안만 괜찮으면 상관없어요."
아무래도 자신이 황후다 보니, 다른 기사들에게 배우려고 하면 그들이 불편해할 터였다. 전에 수도에 나갔을 때 본 카르티안의 실력을 생각하면, 그의 실력도 괜찮은 것 같았다.
다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언제 떠날지 모르는 자신이 검술을 배워 봐야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배워두면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 라는 생각에 리아가 긍정의 대답을 했다.
카르티안과 무언가를 같이한다는 사실이 좀 끌리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리아의 마음은 그에게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리아는 애써 그 사실을 자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
카르티안이 애써 좋아 죽으려고 하는 기색을 숨기며 말했다.
그런 카르티안을 리아가 바라보았다. 자시의 착각인지 몰라도 자꾸만 오늘따라 그의 태도가 묘하게 느껴졌다.
특히나 지금의 대답만 봐도 평소의 카르티안이라면, 이 대답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해야 할 텐데, 지금의 카르티안은 좋아하는 기색이 없었다.
'뭐지?'
그런 기색은 식사 시간에도 계속되었다.
카르티안은 어쩐지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고, 간혹 말을 꺼내도 평소와 달랐다.
자신이 정말로 떠날 거라는 생각에 거리를 두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별을 앞두고서 가까워지기보다는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니까.
하지만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런 내색 없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더니, 오늘따라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단순한 이상함을 떠나 리아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었다.
자신의 과민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카르티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따라 왜 그러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기도 하지만, 그럼 자신이 카르티안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티가 날까 꺼려졌다. 단순히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가 아니라, 자신이 이별을 앞두고서 예민해진 것을 수도 있었다. 현재 리아는 정말로 머리가 많이 복잡했으니까.
떠나고 싶은 마음과 떠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어느새 그 두 개의 선택지는 서서히 비슷한 위치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어느 순간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다른 선택지가 조금 더 올라갔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