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카르티안이 급하게 소집한 귀족 회의에서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우선 카르티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기도 했고, 오늘따라 회의장안에 기사들이 빼곡했다.
회의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죽으러 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회의장의 분위기는 날카롭고 묵직했다.
귀족이 모두 모임과 동시에, 카르티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그대들을 모이게 한 것은 아주 중요한 사안을 공표하기 위함이네."
세로니안 공작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그를 향해 짙은 시선을 던지며 카르티안이 말했다.
살기를 숨기지 않는 카르티안의 표정에 세로니안 공작은 불안감을 느꼈다.
조만간 계획을 실행하겠다는 서신을 세른에게 받은 후, 그 이후로는 별다른 소식을 듣지 못했다.
결국 계획을 실행했는지, 그래서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회의장의 분위기로 보아 무언가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세로니안 공작을 반역죄로 체포하려고 하네."
카르티안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귀족들이 경악했다. 그중 가장 큰 충격에 빠진 건 세로니안 공작이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로니안 공작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것은 그대의 반역에 대한 증거네. 동시에 그대가 세른 카리안과 사주하여 황후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적혀 있지."
"그게 무슨……."
세로니안 공작이 아니라고 부정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기사들이 빨랐다.
미리 황제에게 명을 받은 기사들은 세로니안 공작을 곧바로 포박했다.
"그, 그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기사들에게 끌려가기 전, 공작이 다급하게 말했다.
"현 황후마마는 가짜입니다!"
"가짜?"
카르티안이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세로니안 공작을 바라보았다.
"저 역시 몰랐으나, 현 황후마마는 저의 여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상관없다는 듯 무심히 말하는 카르티안의 말에 세로니안 공작이 당황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황후가 본인 입으로 말을 했네. 하지만 나는 넘어가기로 했지. 황후가 누구의 여식이든 상관없어. 나를 속인 적 없으니, 그에 대한 죄도 물을 수 없겠지."
애초에 황후의 자리에 공작가의 여식만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상관없었다.
사실 리아가 본인 입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공작이 보낸 서신을 자신이 미리 읽었기에 알게 된 것이라고 해도.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지금 그 사실을 공작이 언급한 것은.
리아가 그의 여식이 아니라면, 세로니안 공작의 반역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반역을 저지른 자의 3대를 멸하는 것은 보통 혈족에 한해서 그런 것이니까.
그 스스로가 자식을 부정했으니, 리아는 반역의 죄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로서는 그것을 바라고 말을 꺼낸 것이 아니겠지만.
물론 그로는 부족했다. 진짜로 피가 섞인 자식이 아니라도, 황후에게도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를 위해서는 이미 준비해 놓은 것이 있으니 상관없었다.
이내 세로니안 공작을 필두로 하여, 그와 함께 반역에 가담한 다른 귀족 역시 우후죽순 기사들에게 끌려갔다.
안 그래도 딱딱학게 굳어 있는 회의장의 분위기는 목을 조르듯 강하게 귀족들을 압박해 왔다.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제국의 또 다른 기둥 중 하나인 사론티안 후작이 반역죄로 처형당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공작마저 반역죄로 처형을 당하게 되다니.
게다가 황후가 공작의 여식이 아니라고?
귀족들은 제대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그대들이 황후 역시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할까 준비한 것이 있지."
귀족 중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았다.
카르티안이 지금까지 준비한 또 하나의 사실을 폭로했다.
그 사실을 직접적으로 입 밖으로 내뱉은 건 재상, 유시안이었다.
"황후마마께서는 폐하의 음식에 약을 탔습니다. 확인한 결과, 이는 특정 독에 대한 해독제였습니다. 죄인, 세로니안은 폐하의 음식에 독을 타려고 했고, 다행히도 미수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마께서 폐하를 위해 노력한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 이후로도 유시안은 카르티안이 리아에게서 받아온 서신과 리아의 행적에 대해 모든 것을 읊었다.
리아는 세로니안 공작의 반역과 무관하며, 오히려 황제를 지키려 했다는 사실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니 원칙대로 세로니안 공작을 비롯하여, 공작가의 식솔 모두 반역에 대한 벌을 받겠지만, 황후는 아니네. 이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말해보게."
말해보라고 한 것과 달리, 카르티안의 분위기는 누구든 그에 대한 입을 열면 저들과 같이 끌고 가겠다는 듯 살벌했다.
몇몇 귀족이 뭐라 입을 열려고 했지만, 날카로운 카르티안의 위압감에 질려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렇게 모든 일은 마무리되었다.
자신의 여식이 아니라는 공작의 말과 함께, 리아가 공작의 계획을 알고서 황제를 지키려고 한 행동으로인해, 리아는 공작의 반역죄에서 벗어나 무사할 수 있었다.
귀족들의 반발이 있긴 했지만, 어차피 그 정도 따위 가뿐하게 무시하기로 한 카르티안이었다.
"드디어 끝이군."
귀족 회의가 끝나고, 회의장을 나오며 카르티안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네요."
그동안 고생한 것에 비하면 너무 싱거운 결말이었지만, 그래도 모든 일이 해결됐다는 사실에 유시안은 한결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카르티안의 표정은 어두웠다.
"왜 그러십니까?"
유시안이 카르티안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어쩌면 리아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끝이 다가온 것 같아서."
리아는 직접적으로 언제 떠날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곧 떠날 것 같았다. 그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니, 모든 일을 끝냈음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말 이대로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그녀에게 한 약속이었다. 이미 한번 그녀와의 약속을 어긴 적 있으니, 이번만은 그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잔뜩 가라앉은 카르티안의 분위기에 유시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몇 번이나 그녀를 잡아 보라고 말했었다. 그때마다 카르티안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와서 다시 그런 말을 꺼낸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을 터였다.
카르티안만큼이나 가라앉은 표정으로 유시안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