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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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시녀가 술을 가져오고, 리아와 카르티안은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둘 사이에는 침울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원래 항상 분위기 환기를 하는 이는 카르티안이었지만, 이번만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리아는 개의치 않았다.

굳이 밝은 척하며, 분위기를 띄워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술은 리아의 취향에 맞춰 달달한 과실주였다. 도수가 너무 높지 않은.

"그럼 짠."

리아가 먼저 잔을 들어 내밀었고, 카르티안이 그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리아는 가볍게 잔을 비웠고, 뒤따라 카르티안도 술을 마셨다.

그러나 술에 취하면 곤란하기에 다비우지는 않았다.

"달고 맛있네."

"……응, 그러네."

카르티안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단것은 술이든 뭐든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지만, 리아가 좋아하니까.

어쩌면 리아가 떠나고 나면 더더욱 단것을 못 먹을 터였다.

단것을 먹을 때마다 리아가 생각날 테니까.

그 이후로 리아와 카르티안은 조용히 술을 마셨다.

가장 먼저 술에 취한 것은 리아였다.

"리아?"

카르티안이 조심스레 리아를 불렀다.

어쩐지 눈이 풀린 것 같은 게, 리아가 취한 것 같았다.

"……으응?"

리아가 몽롱하게 카르티안을 바라보았다.

"취했어?"

"으음, 취했나?"

말을 늘리며, 리아가 배시시 웃었다.

그 미소에 카르티안은 심쿵했다.

'사람이 진짜 저렇게 예쁠 수 있는 거야?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

그녀에 대한 마음을 누르기는커녕 이래서야 더 커질 것 같았다.

"티안은…… 누굴 닮아 그리 잘생겼나?"

리아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나 잘생겼어?"

"흐음."

카르티안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리아가 카르티안의 볼을 꼬집었다. 그러다가도 양손으로 카르티안의 볼을 눌러 붕어 입이 되게 했다. 나중에는 카르티안의 얼굴을 마구 늘이고 잡아당겼다.

그런 행동에도 카르티안은 리아를 말리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이래도 잘생겼단 말이야."

불만인 듯 리아가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싫어?"

"아니."

비교적 단호한 음성으로 리아가 말했다.

"리아는 귀여워."

"으응?"

카르티안의 말에 리아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리아가 하나의 행동을 취했다.

그 순간, 카르티안은 이런 이유로도 죽을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아가 두 손으로 꽃받침을 하듯 턱을 받치고 카르티안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눈을 깜빡이며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그 행동에 카르티안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리아가 술에 취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아무리 술에 취해도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건가?

"나 귀여워?"

확인하듯 리아가 물으며 눈을 깜빡였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살랑거리는 속눈썹에 카르티안은 시선을 빼앗겼다.

한 마리의 나비처럼 살랑거리는 속눈썹이 어찌 이리도 아찔하고 요염한지. 붉어진 얼굴 아래에 받쳐진 하얀 손도 너무 어여뻤다.

카르티안이 쉽게 말을 잇지 못하자, 리아가 불만인 듯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난 안 귀여워?"

일부러 귀여워 보이라고 이런 건데. 그럼 어쩔 수 없지. 리아가 속으로 생각하며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뗐다.

그러고는 검지로 양 볼을 찌르며 눈웃음을 쳤다. 알고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살살 접히는 그 눈꼬리가 어찌나 요염한지.

치켜 올라가 있던 눈매가 접히자, 그 순간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리아, 이제 그만해."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듯 카르티안이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잠깐 눈을 떴다가 그 모습을 본 카르티안이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내 심장 멀쩡해? 아니, 어쩌면 저렇게 귀여울 수 있지?"

그동안 리아가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은 한 적 있어도, 귀엽다는 생각은 거의 한 적 없었던 카르티안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리아도 충분히 귀엽다는 것을.

"나, 죽을 것 같아."

카르티안이 절망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이런 모습을 보고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예쁜 그녀인데, 오늘따라 왜 자꾸 저리 예쁘고 귀여운 짓만 하는지.

"왜?"

리아가 또 한 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을 깜빡이는 것은 덤이었다.

그 모습에 카르티안은 자신의 행동을 자책했다. 맨정신으로 이런 일을 감당해야 할 줄 알았다면 그냥 자신도 같이 술을 마시고 취해버릴걸.

이건 그냥 고난도 아니고, 역경이었다.

또 생각해 보면, 자신도 술에 취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할 것 같았다. 맨정신으로도 참기 힘들어서 죽겠는데, 술에 취한 자신이 리아를 상대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었다.

"리아가 너무 예뻐서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터져서 죽을지도 몰라."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듯, 카르티안이 말했다.

"흐응."

카르티안의 말에 리아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티안도 귀여워. 예뻐."

"아까는 잘생겼다면서?"

왜 다시 귀엽고 예쁜 것으로 돌아온 것인지. 그거는 리아한테만 해당하는 말인데.

카르티안이 입을 삐죽였다.

"잘생기고, 귀엽고 예쁘고, 티안 다해."

리아가 배시시 웃었다.

술에 취하니, 유독 미소가 많아져 카르티안은 리아를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있지, 티안."

"……응."

고뇌 속에 갈라진 목소리로 카르티안이 답했다.

"만약 티안이 황제가 아니고, 내가 황후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예전, 카르티안이 한 번 한 적 있던 물음이었다.

그때 리아는 만약의 가정 따위 필요 없다는 듯 칼같이 끊어냈었지만, 이제 와 반대로 리아가 그 물음을 던졌다.

카르티안과 함께하면 할수록, 들었던 생각이었다.

이렇게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를 받아줬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티안을 좋아하는 것일까?"

카르티안의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것은 아니었는지, 카르티안이 미처 뭐라고 대답하기 전, 리아가 다시금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카르티안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저 물음이었다.

자신이 카르티안을 좋아하는 것이냐는.

그러나 그 말이 꼭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 카르티안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전에 한 번 좋아하는 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순간 모든 시간과 사고가 멈춘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리아, 날…… 좋아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카르티안이 물었다.

"그건 내가 물은 거잖아. 나도 몰…… 라."

정말 알 수 없다는 듯, 리아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는데, 자꾸만 그에게 흔들리는 자신을 보니 꼭 그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자신은 떠날 사람인데.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그의 존재가, 때때로 그로 인해 가슴이 설레는 것이, 그 모든 것이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고 치부하기엔 감정이 좀 튼 듯했다.

"티안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 파."

리아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카르티안의 표정 역시 어두워졌다.

역시 자신은 그녀에게 아프게 하는 그런 존재인 것일까.

그것을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그러나 리아가 말한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를 두고 떠난 후, 그가 힘들어 하고 괴로워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픈 것이었다.

그의 곁에 자신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좋지 않은 시작으로 인해, 그에게 조금의 기회도 주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애초에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리아였고, 누구도 그녀가 떠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럼에도 리아의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어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카르티안의 곁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이 카르티안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럴 수는 없었다.

리아는 좋아한다는 감정 하나 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꾸 카르티안이 신경 쓰이고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역시 그를 좋아하기 때문일까.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 일지도 몰랐다.

이제 와 자각했다고 보기엔, 너무 서서히 물들어버렸다. 그에게 젖고 있는 줄도 모르게.

"많이 힘들겠지……? 많이 아파하겠지……?"

비단 카르티안뿐 아니라, 리아 자신도.

예전에는 이곳을 떠나도 괜찮을 거라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그가 아파하는 것만큼이나, 자신도 아파할 것 같았다. 비록 그 아픔과 고통이 카르티안의 감정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애초에 이렇게까지 리아, 자신을 흔들었던 이는 카르티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짝사랑도 하고, 외사랑도 해봤지만, 감정을 끊어냄에 있어 가차 없었고, 잠시 아프다 말았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전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끊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 와 선택을 바꾸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리아는 두려웠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에 남아 있기가.

비록 자신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셔서 남은 가족은 자신 한 명이 전부라지만, 그곳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었다.

부모님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황후의 자리에서 덤덤히 지낼 수 있었던 건, 언제고 끝날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현실이 아니라 책이라 생각했고, 빙의했으니 곧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이곳에서의 생활이 현실이 되고, 평생 이곳에서 지내야 한다면…….

과연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두려웠다.

게다가 시간 나면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곳에 남아 있게 된다면,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지내야 했다.

더 이상 소중한 친구들을 보지 못하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다시는 겪을 수 없을 것이었다.

"티안."

나직하게 가라앉은 음성에 카르티안이 걱정을 담아 리아를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그녀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이유에 곧 다가온 작별의 시간이 있는 것 같아 카르티안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무서워."

자신의 선택 후, 겪을 그 모든 일이.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카르티안을 생각하며 그리워할까 봐.

혹시나 이대로 남아 있겠다는 결정을 할까 봐.

무엇도 알 수 없는 현실이, 그저 무섭기만 했다.

언제나 확실한 것을 좋아하던 리아였다. 그런 리아에게 이런 큰 결정을 앞두는 것은 크나큰 부담이었다.

그저 카르티안에게 내색하지 않았을 뿐, 그와의 이별이 아팠던 건 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리아."

어째서 무서워하는지, 무엇이 무서운 건지, 카르티안은 알 수 없었지만, 선뜻 손을 뻗어 리아를 끌어안았다.

"괜…… 찮아. 괜찮을 거야."

비록 카르티안 본인도 확실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이런 말이라고 해서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티안…… 티안……."

카르티안의 품에 안겨 리아가 그를 불렀다.

"응, 나 여기 있어."

언젠가, 리아가 자신을 위로했듯이, 카르티안이 리아를 다독이며 말했다.

"티…… 안."

한 번 더 카르티안을 부른 리아가 손을 뻗어 카르티안의 얼굴을 잡았다.

아주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곧 다가올 이별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에.

리아에게 조금의 이성이 남아 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카르티안은 자신의 입술에 그녀의 입술이 닿자 깜짝 놀랐다. 순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당황도 잠시였다.

리아가 술에 취한 시점부터 참아왔던 충동이었다.

이 상황에서까지 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카르티안은 다급하게 리아의 입술을 입안에 머금었다. 술로 인해 촉촉하게 젖은 리아의 입술이 너무도 달았다.

며칠 동안 물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사람처럼 강한 갈증을 느끼며 카르티안은 리아의 입술을 핥고 빨았다.

순순히 벌어진 리아의 입술 사이로 자신의 혀를 넣었다.

리아는 거부하지 않고, 카르티안의 모든 행동을 받아들였다.

비록 술에 취해서 일어난 행동이라고 해도, 카르티안은 이 순간을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일까.

그것을 생각하며 씁쓸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그 마지막 선물로 이리 귀중한 추억을 가질 수 있다면.

리아의 입안으로 혀를 집어넣은 카르티안은 입안 곳곳을 음미했다. 자신의 혀에 닿은 리아의 혀를 감싸며, 질척이는 소리를 냈다.

기나긴 입맞춤 끝에서 카르티안의 입술이 떨어졌다.

리아의 입술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리아가 숨을 몰아쉬며, 젖은 눈으로 카르티안을 바라보았다.

"티…… 안."

자신만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그 시선에 카르티안은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욕망을 느꼈다.

'이 이상은 안 돼. 참아야 돼.'

그런 카르티안의 마음을 모르는 듯, 리아가 손을 뻗어 카르티안을 꽉 끌어안았다.

리아의 입술이 다시 한 번 카르티안의 입술에 닿고, 또다시 농밀한 입맞춤을 했다.

아까와 다른 점은 이번에는 키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필사의 인내로 참던 카르티안은 결국 밀려드는 욕망 앞에서 져 버렸다.

먼저 안겨드는 그녀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변명일 수 있었다. 리아는 술에 취했고, 그래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하는데, 단지 그녀가 먼저 안겨들었다는 이유로.

카르티안은 조심스레 리아의 몸을 안고서 침대로 향했다.

리아의 몸이 침대에 닿고, 카르티안이 그 위에 올라탔다.

카르티안이 짙은 시선으로 아래에 누운 리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리아……."

이 이상 진도가 나가면 정말로 멈출 수 없을지 몰랐다. 그러니 그전에 리아가 자신을 말려주길 바랐다.

그러나 리아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 어떤 상황에 놓인 건지 모르는 건지, 아니면 술에 취해서 아무려면 어떠냐 하는 것인지.

"지금 나는 리아를 가질 거야. 리아와 하나가 될 거야."

혹시 몰라, 이어질 상황에 대해 카르티안이 위협하듯 말했다.

"괜……찮아."

카르티안이 무엇을 하려고 한 것인지 깨달은 리아가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카르티안은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 리아의 모든 것을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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