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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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리아는 익숙하지 않은 감각을 느끼며 눈을 떴다.

지난 밤 술을 마신 것 치고는 어쩐지 푹 숙면을 취한 것 같았다.

잠자리를 가려서 이곳에 와서 잘자지 못했던 것 같은데, 옆에 카르티안을 두고서 정말 잘 자버렸다.

그러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아래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몸 위에 덮고 있는 이불의 감각도 이상했다. 그러니까 꼭 알몸에 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달까.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로 자신은 알몸이었다. 게다가 몸 곳곳에 순흔이 가득했다.

자신이 멋모르는 소녀도 아니고, 몸에 새겨진 이것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았다. 더불어 아래의 감각도.

설마, 그대로 카르티안과 관계를 가진 것을까.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술김에 이성을 잃은 적도 사고를 친 적도 없었는데.

그러나 카르티안을 탓할 수도 없었다.

이왕 술 취한 김에 필름도 같이 끊기면 좋으련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선명하게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어떤 의도로 그랬든, 자신이 먼저 카르티안을 유혹했다.

좋아하는 여자가 먼저 입술을 들이 대며 유혹을 하는데,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하아, 정말……."

리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래서야 합방일에 합방한 척한 게 무색했다.

결국 이리 그와 하게 될 것을.

정신은 또렷하지만, 침대를 벗어나고 싶지 않아 리아는 침대에 등을 기댄 채 얌전히 앉아 있었다.

도대체 어제 얼마나 해댄 것인지, 아래도 욱신거리고 몸 여기저기가 쑤셨다.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움직일 자신도 없었다.

리아가 고개를 숙여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누운 카르티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전처럼 악몽을 꾸지 않고 있는지, 눈을 감고 있는 카르티안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얼굴도 묘하게 반질거리는 것 같고,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역시 이렇게 카르티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가 얄미워져 그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옆에서 느껴지는 부스럭거림에 잠에서 깰 법도 한데, 어찌나 잘 자고 있는지.

그래도 볼을 찌르는 손가락을 느껴지는지, 카르티안이 잠투정을 하며 리아의 손가락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자신의 품에 가둬 버렸다.

"허?"

일어날 생각은 안 하고.

이번에는 다른 손으로 건드려 볼까 싶어 리아가 잡힌 손 말고, 멀쩡한 오른손으로 카르티안을 툭툭 건드렸다.

"그래도 참 이상한 일이지."

술에 취해 사고를 친 게 무색하게, 덤덤했다. 마치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듯이.

처음에 좀 놀라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했다.

그것과 별개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싶은 마음은 들었다.

떠나기로 한 결정을 무르지도 않은 주제에, 카르티안과 관계를 가지다니.

밤에 피임은 제대로 한 것인지.

툭툭 카르티안을 건드리던 리아는 이내 카르티안을 아예 깨우기로 결심한 듯, 이불을 들쳤다. 알몸인지라, 자신의 몸을 가릴 이불은 놔둔 채로, 카르티안이 덮고 있는 부분의 이불만.

갑작스레 밀려든 한기에 카르티안이 몸을 부르르 떨며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리아의 얼굴에 카르티안이 기분 좋다고 웃는 것도 잠시,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리, 리…… 아."

카르티안이 당황하며 리아를 불렀다.

아직 정신이 몽롱하긴 했지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떠올릴 수 있었다.

"미, 미안."

"뭐가요?"

리아가 모른 척하며 물었다.

"그것이…… 어제……."

차마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본인 입으로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카르티안이 망설였다.

"됐어요. 티안의 잘못이 아니니까."

그냥 술에 취해 잠든 자신을 카르티안이 건드린 것이 아니고, 명백하게 유혹은 이쪽이 먼저 했으니까.

"그래도……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참을 수는 있었고요?"

"……아."

참을 수 있었다면, 이리 얼마나 미안해할 일 없이 진작 아무 일도 없었을 터였다.

"그러니 됐어요."

더 이상 어제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어제 보인 자신의 행동이 당황스럽기도 했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제의 일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리아의 눈에 카르티안의 몸이 보였다.

옷을 입고 있지 않은 리아와 마찬가지로 카르티안도 알몸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카르티안이 덮고 있던 이불을 가져가 버린 탓에 리아는 카르티안의 몸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그나마 아래는 가려져 있다고 하지만, 상체만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좋네."

몸이.

우락부락한 근육은 없었지만, 잘짜인 근육이 빼곡했다.

이런 걸 마른 근육이라고 하던가. 덩치 있는 남자보다는 마른 체질을 좋아하는 리아의 취향을 저격하는 몸이었다.

보기보다 넓은 어깨도, 단단한 가슴도.

어젯밤, 저 가슴에 얼굴만 묻고, 매달렸던 것을 생각하니 새삼 얼굴이 붉어졌다.

동시에 자신이 다리를 들어 그의 허리를 꽉 껴안았던 사실도 떠올랐다.

"응? 리아?"

뭐가 좋다는 건지, 리아의 중얼거림을 들은 카르티안이 되물었다.

"그냥 몸 좋다고요."

뒤늦게 밀려든 민망함에 리아가 일부러 더 뻔뻔하게 굴기로 하며 당당히 말했다.

"아…… 응."

몸이든 뭐든 리아의 입에서 칭찬을 들었다는 사실에 카르티안이 얼굴을 붉혔다.

한편 그런 카르티안의 모습을 보며 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카르티안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어젯밤 정사의 흔적을 그대로 남긴 채로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유혹적이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도, 잘 짜인 몸매도.

카르티안의 등에는 자신이 새긴 것 같은 할퀸 자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깨에는 자신이 문 것인지, 잇자국이 선명했다.

"티안."

"응?"

카르티안이 묘하게 젖은 것 같은 울망한 눈망울로 리아를 바라보았다.

"설마 지금 나 유혹해요?"

"어, 어?!"

리아의 말에 카르티안이 격하게 당황했다.

'유, 유혹이라니!'

"지금도 꼭 유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카르티안이 몸을 바르작거린 탓에 하반신을 가리고 있던 이불이 슬며시 아래로 내려갔다.

그 탓에 카르티안의 하반신이 얼핏 드러났다.

"우선 눈 감고 뒤돌아요. 옷 입을 거니까."

씻으러 갈 생각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옷을 입기보다 그냥 이대로 가는 것이 나을 수 있겠지만, 차마 카르티안의 앞에서 알몸으로 돌아다닐 자신이 없었다.

"……응응."

"티안도 옷 입고."

이래서야 또 자신이 그를 덮치게 될 것 같아 리아가 말했다.

사람이 몸은 왜 저리 좋아서, 자꾸 시선이 가게 하는지.

그러나 이번에는 맨정신이었다. 맨정신으로 다시 그를 덮치고 싶지 않았다.

그와의 관계는 한 번으로 족했다. 두 번은 절대 안 되었다. 그와의 관계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상태로 또 가질 수는 없었다.

"응."

그렇게 서로 뒤돌은 상태로 옷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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