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다음 날, 리아와 카르티안은 약속했던 대로 시내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그제 밤의 여파로 아직 몸이 안좋긴 했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공작의 처형이 끝나면 자신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티안, 손."
"응?"
"손이요, 손."
어서 손을 내놓으라는 듯 자신의 손을 흔드는 리아를 바라보며 카르티안이 조심스레 리아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아."
"왜요?"
"그냥. 너무 좋아서."
먼저 이렇게 리아가 이렇게 단단히 손을 잡아준 적은 처음이니까.
카르티안이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했다.
"뭐, 그런가요."
'나도 조금 그런 것 같고.'
리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직한 그 말에 카르티안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풋풋한 리아와 카르티안의 분위기에 뒤를 지키고 있던 바론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의 거리감이 무색하게, 리아와 카르티안은 가까워졌다. 곧 이별을 앞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리아와 카르티안의 이별이 아쉽고 마음 아픈 것은 유시안만이 아니었다.
리아의 곁을 지키면서, 리아가 더이상 그 예전의 황후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론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리아는 황후로서 더없이 적합한 여인이었고, 리아만큼 완벽하게 카르티안과 잘 맞는 여인도 없을 터였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렸다. 어째서 떠나야만 하는지. 남아 있을 수는 없는지.
"날도 참 좋네요."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며 리아가 말했다.
"응, 리아도 참 좋아."
구름 한 점 없이 청아한 하늘보다 리아가 더 예뻤다.
아무리 깜깜한 밤이라도, 아무리 우중충한 날이라도, 리아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밝아 보일 터였다.
"혹시 이곳에도 솜사탕이 있어요?"
"솜사탕?"
"네. 하얗고 구름처럼 생긴 사탕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솜사탕이요."
솜사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어 리아가 고민했다.
그러나 마침 그들의 눈에 솜사탕과 비슷하게 생긴 것이 보였다.
"사줄까?"
"네."
리아가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허락에 바론이 자연스레 솜사탕을 사 왔다.
다만 문제는 바론의 손에 들린 솜사탕이 두 개라는 사실이었다.
"하나는 내 거고, 하나는 티안 거네요."
"윽."
단것을 싫어하는 카르티안이 신음을 흘렸다.
"아마 많이 달기는 할 거예요."
순수 설탕으로 만든 것이니.
자신도 솜사탕은 너무 달아서 많이 먹지 못하니까.
"그, 그래도 괜찮아."
리아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같이 즐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카르티안이 말했다.
"그래요?"
과연 괜찮으려나.
리아가 피식 웃었다.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문 리아가 입에 퍼지는 달달함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인지, 전이었다면 그 지나친 달달함에 부담을 느낄 리아였지만, 지금은 만족슬울 정도의 달달함을 느꼈다.
리아의 뒤를 따라 솜사탕을 베어문 카르티안의 얼굴은 리아와 달리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많이 달 거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달 줄이야.
이건 그동안 먹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아주 치명적인 달달함이었다. 너무 달아서 죽을 것 같을 정도로.
"많이 달죠?"
"……."
카르티안이 말없이 눈을 굴렸다.
"너무 달면 안 먹고 남겨도 돼요. 오늘은 하나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아니야, 다 먹…… 을 수 있어."
그러나 말과 달리, 솜사탕을 먹는 카르티안의 얼굴은 독약을 먹는 것 처럼 잔뜩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러나 본인이 먹겠다고 하니, 그냥 보기나 하자는 생각에 리아는 카르티안을 말리지 않았다.
딱 봐도 힘들어 보이는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솜사탕을 먹어치우는 카르티안이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후아."
정말 자신이 이것을 다 먹을 줄이야.
황제가 되었을 때보다 지금 느낀 성취감이 더 큰 것을 느끼며 카르티안이 스스로에게 감탄했다.
"그럼 이번엔 뭘 먹을까요?"
무릇 나들이는 간식이 진리였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먹는 간식은 어떤 것이든 정말 맛있었다.
신나 보이는 리아의 모습에 카르티안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오늘의 이 나들이가 마지막이라는 사실은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리아와 함께 이리저리 걸어 다니던 카르티안은 묘한 위화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따라 사람이 많네요. 전에는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게."
리아의 말에 대답하며 카르티안이 주변을 살폈다.
언제부터 떨어진 것인지, 뒤를 따르던 기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많다고 떨어질 만큼, 무능한 기사들이 아닐 텐데. 다른 기사들은 그렇다 치고 바론만은 그럴 리 없었다.
기사들이 안 보이는 것을 깨달은 카르티안은 리아와 함께 사람들 무리에서 벗어났다.
자신 한 몸 지킬 능력이 있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기사들이 자신을 찾으러 올 때까지 그들을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에 카르티안이 사람들이 적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티안?"
"기사들이 안 보여."
"아?"
카르티안의 말에 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이 많아서 자신들을 바로 뒤따라오지 못한 것인가.
그러나 왜인지 모르게 드는 불안함에 리아는 좀처럼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카르티안의 예민한 감각으로 살기가 느껴졌다.
카르티안은 곧바로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카르티안의 검에 낯선 이의 공격이 막혓다. 그러나 카르티안을 노리고 있는 이는 한 명이 아니었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제법 많은 수의 인영이 카르티안과 리아를 포위하고 있었다.
"리아, 얌전히 있어."
"티안……."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알아챈 리아가 딱딱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자신도 검을 익힌 것은 아닌데.
우선은 카르티안을 믿어보기로 했다. 동시에 그사이에 기사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자신도 검을 배웠다고 하지만, 저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고, 실전 경험은 제로였지만, 섣불리 나서는 것보다는 가만히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낯선 인영들은 짙은 살기를 흘리며 카르티안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카르티안은 비교적 수월하게 인영들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인영들이 노리는 것은 카르티안만이 아니었다. 카르티안의 시야에 벗어난 사내 한 명이 리아를 노렸다.
리아는 황급히 몸을 돌리며 사내의 공격을 피했다.
이미 많은 수의 인영을 상대하고 있는 카르티안이었다. 자신까지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들 만한 것이 없나 주변을 살피던 리아는 마침 자신의 근처에 굴러다니고 있는 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과연 자신이 잘 사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편 그 시각,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 바론은 리아와 카르티안을 놓치고 말았다.
황급히 그녀와 카르티안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 순간이었다.
기사 몇 명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설마 기사들이 자신을 공격할 줄 몰랐다는 듯 바론은 당황했지만, 이내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다른 기사들과 함께 적들을 상대했다.
자신을 공격했다.
살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자신을 죽이려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발목을 잡을 의도인 듯했다.
그렇다고 하면, 황제가 위험하다. 더불어 황후도.
그 생각에 바론이 이를 악물고 기사들을 제압했다.
동시에 나머지 기사들과 함께 다급하게 황제와 황후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쉽게 그들을 찾을 수 없었다.
수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이 많기도 했고, 언제 헤어진 것인지 알 수 없기에 어디에 있을지도 예상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