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리아는 사내의 공격을 막으며 손이 찌르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역시 완력 부분에서 리아는 사내의 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아는 제법 능숙하게 사내를 상대하고 있었다.
문제는 리아를 노리고 있는 사내가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카르티안만큼 많은 이가 그녀를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다섯 명의 사내가 리아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리아가 힐끗 눈을 굴리며 카르티안의 상황을 살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카르티안은 인영들을 상대로 잘 싸우고 있었다.
자신도 그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절대 여기서 죽을 수 없었다. 다칠 수도 없었다.
이미 한 번, 그에게 씻지 못할 경험을 하게 했다. 두 번은 사절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리아와 카르티안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을 공격한 인영들의 실력은 생각보다 뛰어났고, 시간이 흐를수록 카르티안이 점점 밀리고 있었다.
리아가 카르티안의 상황을 살피느라 한눈을 판 사이, 사내 한 명의 공격을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뒤늦게 몸을 뒤틀어 피한 탓에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으나, 드레스자락이 갈라지며, 그녀의 옆구리에 자상이 생겼다.
"리아!"
리아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살피고 있던 카르티안이 리아의 부상을 알아채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감히 그녀에게!'
카르티안에게 짙은 살기가 흘러넘쳤다.
죽여도 줄지 않는 인영의 숫자에 암담했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카르티안은 이를 악무로 인영들을 상대했다.
그러나 혼자서 그들 모두를 상대할 수 없었다. 인영들의 공격을 모두 막았던 카르티안은 점차 그들의 공격을 놓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카르티안의 몸에도 인영들의 공격으로 인한 부상이 들었다.
카르티안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부상이 아니었다. 이까짓 부상보다 리아가 더 중요했다.
그때였다.
리아가 앞에 있는 사내를 상대하느라, 잠시 뒤쪽에 틈을 보인 사이, 리아의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사내가 있었다.
카르티안이 황급히 상대하고 있는 인영들을 뒤로하고, 리아를 노리는 사내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중간에 인영들을 상대하다 말고 온 탓에, 그의 어깨에는 깊은 상처가 생겼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리아는 지쳐서 점점 흔들리고 있었고, 카르티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카르티안은 점점 자세가 무너지고 있는 리아를 대신해, 그녀를 노리는 이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검은 뒤로 밀리며, 카르티안의 복부를 사내의 검이 정확히 꿰뚫었다.
카르티안이 피를 울컥 토하며, 리아를 품에 끌어안았다.
"괜…… 찮아?"
자신의 부상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르티안이 리아를 향해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티안!"
리아 역시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카르티안의 상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맞닿은 신체 사이로 끈적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카르티안의 복부에서 흐르는 피가 리아의 드레스를 적시고 있었다.
"티안!"
어쩐지 초점을 잃어가는 카르티안의 모습에 리아가 당황하며 그를 불렀다.
"미안, 내 실수야."
이럴 줄 알았다면, 공작을 완전히 처리한 후 나들이를 나올 것을.
인영들을 상대하며, 카르티안은 검에 베여 드러난 인영의 몸에서 공작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작 일당을 모두 잡아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이는 명백한 자신의 실수였다.
좀 더 확실하게 확인했어야 했는데.
동시에 막다른 벼랑 끝에 몰린 공작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야 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자신이 잡아들이지 못한 이들을 사주해 자신과 리아를 노릴 줄은 몰랐다.
이래서 얻을 것도 없을 텐데. 오히려 자신의 죄가 더 가중될 뿐인데.
흐릿한 시야로 카르티안이 손을 뻗어 리아의 얼굴을 매만졌다.
너무 미안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런 경험을 하게 해서,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서.
이내 카르티안은 정신을 잃었다.
"티안!"
리아가 다급하게, 또 간절하게 카르티안을 불렀지만, 카르티안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리아는 언제까지 카르티안을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들을 노리고 있는 인영들이었기에, 그들의 상황을 배려해 줄 이들이 아니었다.
이때가 기회라는 듯, 인영들이 사납게 리아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카르티안을 품에 안은 채로, 리아가 검을 들어 인영들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자신의 심장을 노리는 사내의 검을 보며, 리아가 질끈 눈을 감았다.
부디 카르티안만은 멀쩡하기를.
자신을 지키려다가 다친 카르티안을 알기에 리아가 자신의 몸으로 카르티안을 가렸다.
잠시 후, 리아는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 없었다.
슬쩍 눈을 떠 앞을 보니, 한 남자의 등이 보였다.
바론이었다. 바론과 함께 다른 기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제야 리아는 안심할 수 있었다.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지만, 그래도 바론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