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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이 카르티안의 부상을 치료하고,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 자리를 비운 후, 리아는 혼자서 카르티안의 곁을 지켰다.
바론이 방을 나가기 직전, 리아에게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이것은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아니…… 아니에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리아가 애써 괜찮다며 손을 저었고, 혼자 있고 싶다는 말에 유시안과 바론 모두 자리를 비켰다.
혼자 남은 리아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카르티안을 바라보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것은 자신의 계획에 없었는데. 마지막 나들이인 만큼 그에게 좋은 기억만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게다가 리아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카르티안이 자신을 노리는 인영의 공격을 막기 위해 몸을 날린 것을.
카르티안이 아니었다면, 그 공격에 당한 이는 자신이었을 터였다.
'차라리 내가 당하게 놔두지. 왜…….'
그래도 자신이 당했다면, 적어도 독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을 텐데.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아 리아는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이 나들이를 가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테지.
그리 생각하니 카르티안에게 너무 미안해 차마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를 좋아하게 된 지 얼마 안 된 자신도 카르티안이 이렇게 정신을 잃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픈데. 정말로 심장이 뜯어질 듯 아파 죽겠는데.
새삼 자신이 카르티안에게 어떤 짓을 한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그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됐을지도.
동시에 카르티안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이젠 정말 더 이상 부정하거나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리아는 정신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는 카르티안을 보며 끝없이 괴로워했다.
도대체 카르티안은 이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무심하고 냉정하다는 소리를 듣던 자신도, 이 상황이 너무도 힘이 든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낫기만을 바라며 가만히 있는 것은 지독한 통증이었다.
이제 와 새삼 자각하게 된 자신의 감정도, 리아에게는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그 감정의 깊이를 알 수 없었는데, 지금 이 순간 리아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카르티안을 좋아하는지. 자신이 얼마나 그를 마음에 담았는지.
그러나 그 사실에 집중할 틈도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떠나 그가 무사히 정신을 차리는 것이 중요했다.
"……티안."
리아가 나직한 목소리로 카르티안을 불렀다.
혹시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가 눈을 뜨지 않을까. 언제나 작은 자신의 목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던 그이니까. 절대 자신의 말을 무시하지 않던 그이니까. 자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주겠다던 그이니까.
그러나 카르티안은 눈을 뜨지 않았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사그라지는것을 느끼며 리아가 울 듯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많이 아팠겠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런 그의 아픔을 자신이 대신 덜어가 줄 수도 없어 리아는 아프게 카르티안을 바라보았다.
부디 그가 눈을 떴으면.
행복하라고 했는데, 이제 더 이상은 아파하는 일 없이 그렇게.
그런데 아직 자신이 떠나기도 전인데, 이렇게 아파져 버리면 어떡한단 말인가.
이래서야 정말 그를 지울 수도 잊을 수도 없잖아.
원망과 걱정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리아가 멈춘 줄 알았던 눈물을 다시금 흘렸다. 리아의 눈에 맺힌 눈물이 조용히 볼을 타고 흘렀다.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카르티안을 바라보며, 리아가 그의 손을 잡았다.
언제나 따뜻하기만 했던 그의 손이 서늘했다. 죽은 이의 손처럼 차갑지는 않았지만, 평소보다 낮아진 그의 체온은 리아로 하여금 아픔을 느끼게 했다.
정말로 그가 자는 것이 아니라, 아파서 누워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왜 자신은 나들이를 가자고 해서.
비록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했지만, 좀 더 천천히 할 것을. 미루려고 마음만 먹으면 이별의 시간도 미룰 수 있었을 텐데.
자신들을 공격한 이가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리아는 어렴풋이 공작이 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공작을 처리하는 게 너무 쉽긴 했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날 거라고 생각해서는 아니 되었는데.
결국 그 모든 것이 정말로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카르티안이 다시 또 자신을 잊어도 상관없었다. 무사히 눈만 떠준다면.
그러면 이번에는 자신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서, 그가 기억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터였다. 자신이 기억하는 그 모든 순간을 그에게 들려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생전 처음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리아는 혼란을 느낄 틈도 없이 카르티안에 대한 걱정으로 잔뜩 지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지독한 감정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한 적도, 누군가를 향해 이렇게 아픔을 느끼며 괴로워한 적도, 이런 큰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그러나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리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카르티안이었다.
이별의 순간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그를 두고 떠나서는 아니 되었다. 적어도 그가 눈을 뜨는 순간만큼은 그의 곁을 지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