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하루 종일 카르티안의 곁을 지키고 있던 리아는 깜빡 눈을 떴다.
자신이 잠이 들었던가.
그러나 눈을 뜬 후 보이는 상황을 보니, 아직 자신은 잠에서 깬 것이 아닌 듯했다.
이곳은 아주 익숙한 꿈의 공간이었다.
그 순간, 리아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신과의 만남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자신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지, 말지를 선택하는 시간이 될 거라고.
예상대로, 텅 빈 공간에서 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라면 신을 보자마자 주먹을 날렸을 리아였지만, 이번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럴 여유도,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리아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오직, 카르티안 하나뿐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신이 조심스레 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리아는 조용히 신을 바라보았다.
"선택의 시간인가요?"
리아가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심함으로 가장하고 있는 리아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 들어 있었다.
"……네."
신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리아가 조소를 지었다.
신의 저 표정도 꼭 연기인 것만 같았다. 사실은 신이 이 모든 상황을 유도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신의 의도가 어떻든, 지금에 와서 리아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한 가지였다.
카르티안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친 카르티안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뜬 그의 옆을 지키고 싶었다.
그녀 평생에 처음으로 느끼게 된 감정이었다. 카르티안 말고는 그 누구도 좋아할 자신이 없었다.
항상 그녀의 선택에는 그녀의 감정이 중요하지 않았었다. 자신이 상대를 얼마나 좋아하든. 결국 그래서 자신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고 유리할 것인가가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었다. 아니,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웠다.
지금까지 애써 숨겨놓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부모님의 죽음 이후 리아는 소중한 이와의 이별이 두려웠다. 누군가에게 버려지듯 이별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신 쪽에서 이별을 선고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카르티안이 아프로도 계속 자신을 좋아할 거라고 믿으면서도 결국 남아 있겠다는 선택을 하지 못했던 것은, 무의식 속에 아주 강하게 자리 잡은 그 이별의 두려움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 선택의 그녀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지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만약 자신이 이곳에 남아 카르티안의 옆에 있겠다고 결정하게 된다면, 자신은 지금까지 지내왔던 것처럼 지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무엇이 중요할까. 정말로 그를 떠나서 아무렇지 않게 지낼 자신이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카르티안이 혼자 눈 뜨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많은 상처를 받은 그에게 더이상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가 받을 상처보다 자신의 받을 상처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흔들리면서도 쉽게 선택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가 상처받는 것보다 자신이 상처받는 것이 나았고, 자신의 삶을 내걸고서라도 그가 행복했으면 싶었다.
하필이면 그 모든 감정을 이제 와서 제대로 깨달았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가슴 아팠지만, 리아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지, 영원히 이곳에 남을지.
"어떻게 할 건가요?"
리아의 생각을 모르는 것인지, 신이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신을 바라보는 리아의 시선이 싸늘했다. 이 모든 상황에 신이 개입된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에 당연히 신을 향한 그녀의 감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키라트인을 향한 감정이었다.
만약 자신이 카르티안을 두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간다면 절대 행복하지 못할 터였다. 그를 향한 미칠 것 같은 죄책감과 지우지 못할 감정으로 평생을 괴로워할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모든 것을 떨치지 못한 것인지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다. 이 순간에도 망설임을 느끼고 있는 스스로에게 조소가 나왔다.
어차피 내가 할 선택은 한 가지뿐인데. 그것밖에 없는데.
"만약 내가 떠나겠다고 하면, 지금 떠나게 되는 건가요? 인사를 할 시간도 없이?"
혹시나 싶어 리아가 물었다. 그 말에 신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예상했던 대답이라 리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금 씁쓸할 뿐이었다.
"좋아요, 나는……."
지금까지 품은 모든 혼란스러움을 거두고서 리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