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카르티안의 몸이 움찔거렸다. 리아의 손에 잡혀 있던 그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며, 카르티안이 천천히 눈을 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느릿하게 눈을 뜬 카르티안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자신의 손을 잡고 엎드려 자는 리아를 바라보며 카르티안이 미소를 지었다.
"……아."
리아가 깰까, 리아의 손을 잡은 채로 카르티안이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검에 찔린 복부의 고통이 느껴지자, 그제야 카르티안은 어째서 자신이 이곳에 누워 있는지, 리아가 어째서 자신의 방에 있는지를 깨달았다.
"미안……."
얼핏 드러난 리아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초췌함에 카르티안이 사과의 말을 꺼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했던 자신의 행동이 그녀에게 또다시 아픔을 준 모양이었다.
그녀가 아팠을 때,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떠올리며 카르티안은 미안함에 차마 그녀를 향해 손을 뻗을 수도 없었다.
다정한 리아니, 자신 때문에 카르티안이 다쳤다고 생각하며 많이 미안해하고 많이 걱정했겠지. 그러려고 그녀를 대신해 다친 것은 아니었는데.
"정말, 미안."
자고 있는 리아가 자신의 목소리에 깰까 카르티안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녀는 떠나겠지.
하필이면 그녀와의 마지막을 그렇게 망쳐 버렸다는 사실에 카르티안은 미안함을 느꼈다.
좀 더 제대로 그녀와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겠지. 이제 더이상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없는 거겠지.
리아와의 마지막을 예감하며, 카르티안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물었었던가.
자신이 떠나도 상관없냐고, 아무렇지 않냐고.
어찌 그럴까.
리아를 볼 때마다 그녀를 잡고 싶어, 매시간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금방이라도 그녀를 붙잡고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것을, 엄청난 인내로 참아 넘겨야 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겠지.
"리아…… 나의 리아."
이제 더 이상 나의 리아가 될 수 없는 리아.
그래도 그녀를 만나서 행복했었다.
그녀가 자신의 황후라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라서. 일장춘몽과도 같은 경험이라고 해도.
리아에게 말했드시, 리아가 떠나도 카르티안은 그 누구도 자신의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 있어 황후는 리아가 유일했다. 다른 이를 그 자리에 세우고 싶지 않았다.
후계자야,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이 있으니, 그에게 맡기면 될 터였다.
절대 그 누구도 리아를 대신할 수 없었다. 그에게 리아는 유일한 존재였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사람에게 심장은 하나뿐이듯, 카르티안에게도 리아는 단 한 명뿐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시녀가 들어왔다.
정신을 차리고 앉아 있는 카르티안의 모습에 시녀가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카르티안이 조용히 하라며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이내 시녀는 황급히 의원을 부르기 위해 방을 나섰고, 의원과 유시안이 시녀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독은 완전히 빠졌지만, 복부의 상처는 아직 다 낫지 않았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 정도는 괜찮네."
이렇게 큰 부상을 입은 적은 처음이었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에 카르티안은 만족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리아를 볼 수 있음에, 그녀와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복부의 상처를 소독하고, 다시 붕대를 감은 의원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방을 나섰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유시안의 물음에 카르티안이 조용히 답했다.
그런 카르티안을 유시안이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떠나실까요?"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지, 이 시간에도 잠들어 있는 리아를 바라보며 유시안이 물었다.
"그러겠지."
혹시나 자신에게 미안해서 남아 있겠다는 말은 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가 생겼지만, 카르티안은 애써 그 기대를 지웠다.
카르티안은 그녀가 그러길 원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녀의 인생을 버려서는 안 되었다. 자신으로 인해 누구보다 힘들었을 그녀인데.
"리아는…… 어땠지?"
자신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카르티안이 물었다.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폐하께서 자신 때문에 다쳤다며 많이 괴로워하고, 많이 미안해하셨습니다."
잠시도 카르티안의 곁을 떠나지 않을 만큼.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그랬을 만크.
"결국 마지막까지 폐를 끼쳐 버렸네."
카르티안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아닙니까."
애써 카르티안을 위로하듯 유시안이 말했다.
"그래서 더 문제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리 쉽게 무너질 이가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확실하게 조사를 하고, 공작과 관련된 이를 모두 잡아들였어야 했는데."
"어찌 그게 그대의 탓이겠나. 나의 탓이겠지."
조용히 리아를 바라보던 카르티안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리아의 머리를 매만졌다.
'이렇게 그녀를 만질 수 있는 것도 마지막이겠지.'
그것을 생각하니 심장이 너무 아팠다.
숨을 쉴 수도 없을 만큼.
"리아도 다친 거로 알고 있는데, 치료는 받은 거겠지."
"네. 다행히도 상처가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녀가 다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 아주 작은 상처라도.
결국 마지막까지 그녀와의 약속을 어기게 된 것 같아 카르티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요."
"무엇이 말이지?"
"제가 알기론 마마께서 예민하셔서, 조금만 뒤척거려도 금방 잠에서 깬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몇 명의 사람이 들락거리고,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미동도 없이 조용히 자고 있었다.
그만큼 피곤한 탓도 있겠지만,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
유시안의 말에 카르티안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가 깰까 자신이 최대한 조심하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유시안의 말대로 이상했다.
"그녀도 검에 베였지. 검에 독이 묻어 있었다고 했고."
카르티안이 말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유시안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아 보이셨습니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당장 의원을 불러와."
뒤늦게 독이 퍼질 수도 있을 테니.
카르티안이 다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방을 나섰던 의원은 다시금 황제의 방에 불려왔고, 리아를 진찰했다.
"아무런 이상도 없습니다."
독에 중독된 것도 아니었다.
진찰 결과, 그녀는 그저 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카르티안은 안심할 수 없었다.
의원이 리아를 진찰할 수 있도록 리아를 안아 침대에 눕혔는데,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리아는 깨지 않았다.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전에도 그랬었다. 분명 독은 다 해독했다고 했는데도 리아는 며칠 동안 깨어나지 못했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그녀도 검에 베였었다. 그 상처가 클 수도 있지 않나?"
다시 제대로 진찰을 해보라는 듯 카르티안이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상처는 깊지 않습니다. 이정도 상처는 금방 회복될 것입니다."
실제로 다친 지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리아의 몸에 있던 상처는 대부분 아물어 있었다.
아주 의아할 정도로.
"단지 자고 있을 뿐이라고?"
카르티안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자각하지 못했던 이상함을 깨닫고나니, 급격하게 불안해졌다.
설마, 이대로 리아를 보지 못하는 것은.
그러나 그때였다.
리아의 몸이 움찔거리며 리아가 서서히 눈을 떴다.
"리아?!"
카르티안의 부름을 들으며 리아가 눈을 깜빡였다.
"……티안?"
"응, 나야. 리아, 괜찮아?"
리아가 뻗은 손을 가져가 자신의 얼굴에 대며 카르티안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리아를 바라보았다.
"이거 꿈은 아니죠?"
"꿈일 리가 없잖아. 확인하고 싶으면 날 꼬집어도 돼."
"환자를 꼬집을 정도로 제가 생각이 없지는 않아요."
얼마나 잠을 잔 것인지 목소리가 다소 갈라져 있었지만,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 진짜 티안이 정신을 차린 거예요? 이젠 괜찮아요?"
무사히 눈을 떴다고 하지만, 안심할 수 없어 리아가 물었다.
"난…… 괜찮아."
"다행이다."
중얼거리듯 말한 리아가 카르티안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복부의 상처로 인해 카르티안이 잠시 고통을 호소하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카르티안의 온기를 느끼며 리아가 안도했다.
이제 정말…… 괜찮아.
카르티안이 눈을 떴어.
많이 걱정했는데. 많이 무서웠는데.
"미안해요, 티안. 나 때문에……."
"아니, 그건 절대 리아 때문이 아니야. 내가 약해서 그래. 내가 무능해서 그래."
"그러지 마요. 그러면 나 화낼 거야."
더 이상 카르티안이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가 무사히 눈을 떴다는 사실만으로도, 리아는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 그녀의 몸을 잠식했던 모든 어두움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럼 좋은 시간 가지십시오."
유시안도 남아서 둘의 무사함을 축하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빠져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유시안이 인사를 한 후 방을 나갔다.
"티안, 나 할 말이 있어요."
잠시 카르티안을 끌어안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카르티안을 느끼고 있던 리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응."
어쩌면 그 말이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카르티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해요."
나직한 리아의 목소리가 카르티안의 귓가에 울렸다.
"그, 그게…… 무…… 슨?"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할 수 없어 카르티안이 멍하니 되물었다.
"두 번은 말 안 할 거예요."
자신이 먼저 고백하는 것은 처음이라, 그 말을 하기도 어찌나 민망하고 부끄러운데, 어찌 다시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아? 날 좋아…… 한다고?"
"……네."
"그건 그냥 인간으로서 좋아하는 뜻이겠지?"
설마 그녀가 자신을 남자로서 좋아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카르티안이 물었다.
"인간이니 인간으로서도 좋아하겠지만, 제가 말한 것은 이성 간의 감정을 말하는 거예요."
"아…… 니,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혼란스러움에 카르티안의 시선이 흔들렸다.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와 아무리 술김에라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아요."
술에 취해 그와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덤덤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다 그 때문이었다.
"좋아해요, 정말로 많이."
두 번 말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좀처럼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카르티안을 위해 다시 한 번 이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리아!"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카르티안이 리아를 꽉 끌어안았다.
어찌나 꽉 끌어안았는지, 리아가 호흡곤란을 느낄 정도였다.
"사랑해, 리아."
수없이 사랑한다고 말해도, 내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품 안에 안긴 리아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카르티안이 리아를 끌어안고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적거리며 말했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사실도, 그녀의 고백에 밀려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이 고백이 이별의 선물이라고 해도, 카르티안은 순수하게 기뻐하고 환희했다.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때때로 보이는 다정함도 그저 그녀가 착하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리아는 자신을 안고 있는 카르티안을 보다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고백은 큰 가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고백을 한 적도 없었고, 누군가의 고백을 들어도 별 감정은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카르티안만은 항상 달랐었다. 그가 들려주는 감정들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자신의 깊은 곳을 건드렸다.
동시에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지금, 리아는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도 그만큼 가슴 떨리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로소 완전해진 것 같았다. 이젠 정말 혼자가 아니고, 같이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나 자신의 고백을 듣고 기뻐하는 카르티안을 보니 형연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정말로 지금 이순간,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것 같았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지금의 이 순간만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탓에 미소에 인색한 리아도 자연스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고백에 화답하는 카르티안의 고백도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맞닿은 몸을 통해 서로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말 따스한 기분이었다.
"고마워, 리아. 나를 좋아해 줘서."
"틀려요."
카르티안의 말에 리아가 미소를 지우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말에 카르티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무엇이 틀리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다시금 불안해졌다.
"좋아해 준 것이 아니에요. 나는 내 의지로 카르티안을 좋아하게 된 것이에요."
좋아한다는 말과 좋아해 준다는 말은 분명 다른 것이었다. 자신은 카르티안을 적선하듯 그를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카르티안이 한 말은 오히려 자신이 해야 할 말이었다. 그녀야말로 고마웠다. 카르티안이 자신을 좋아해 줘서.
덕분에 다른 사람의 애정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응."
은근한 물기를 담아 카르티안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지었던 미소 중 가장 환한 미소였다. 미소만으로도 빛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식이 있어요."
"……아."
리아의 말에 미소를 머금었던 카르티안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 순간에도 또 하나의 소식이 있다는 말은 필시 이별에 대한 말일 터였다. 그것을 생각하니 지금까지 느꼈던 기쁨과 환희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 불안함을 완전히 숨길 수 없었다.
"티안."
카르티안의 감정 변화를 느끼며 리아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리아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응."
"티안."
조용한 카르티안의 대답을 들으며 리아가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에도 얼핏 물기가 서린것 같았다.
"……난 괜찮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말하기 힘들어하는 리아를 알아챈 카르티안이 그녀를 위로하려 말했다. 그 말에 리아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기쁜 듯도 슬픈 듯도 했다.
"당연히 괜찮겠죠. 괜찮을 수밖에요."
리아의 말에 카르티안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 떠나지 않기로 했어요."
"뭐?"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것인가 싶어 카르티안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고백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앞으로 우리 함께해요. 이곳에서, 평생."
"……아."
카르티안은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이 환청을 들은 것은 아닌지, 이 모든 것이 사실은 꿈이 아닌지 불안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우린 정말 괜ㅊ낳을 거예요. 이젠 진짜 둘이서 같이 행복해요."
카르티안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리아는 살랑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남아 있기로 한 결정은 리아에게도 꽤 큰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망설이던 것이 무색하게 정작 신에게 그말을 내뱉은 이후, 리아는 놀라울 정도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안도가 되었다.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카르티안의 곁에 남을 거라는 사실이 리아에게 더없는 만족감을 느끼게 했다.
그랬기에 신에게 그런 말을 한 이후, 리아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신 역시도 믿을 수 없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듯 되물었지만, 리아의 대답은 흔들림이 없었다. 대답을 하면 할수록 더더욱 단호해졌다.
"꾸, 꿈은 아니겠지?"
카르티안이 여전히 떨리는 눈으로 리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원한다면 확인시켜 드려요? 아주 과격한 방법으로 말이죠."
리아가 피식 웃으며, 장난스레 카르티안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손에 실린 힘과 달리 리아의 시선은 너무나도 다정해 꿀이 흐를 것 같았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통증에 카르티안은 꿈이 아니라 현실인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