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8화 항복
* * *
목욕을 끝내고 아빠를 만나서 집으로 갔다.
이제.. 좀만 있으면 엄마랑 따로 산다!
그런데.. 엄마는 도대체 언제까지 시현이랑 붙어 있을 거야?
아까 목욕탕에서 부터 지금까지 시현이랑 계속 붙어있네..
아니야.. 이제 곧 같이 살잖아..?
조금만 더 참자.
그런데..
"나 오늘 엄마랑 같이 잘래!"
?
짐을 다 새 집으로 옮긴 후 시현이가 갑자기 오더니 말했다.
아니.. 저기요?
기껏 새 집에서 잘 준비를 끝냈는데..
갑자기 예전 집에서 엄마랑 같이 잔다고..?
엄마가 도대체 어떻게 구슬렸길래..
"저.. 저기 시현아..? 도대체 왜?"
"아니 엄마가 가족끼리 한번은 같이 자야 되지 않겠냐는데.."
아니.. 이 양반이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 그럼 나도 같이 잘래!"
"어머~ 이 좁은 침대에 4명이서 자려고~?"
"그럼 애초에 시현이도 거기서 자면 안되잖아! 그 침대는 2인용이라고!"
엄마가 다가오더니 시현이한테 안들리게 속삭였다.
"음.. 근데 귀염둥이는 작잖아..? 특정 부위는 크지만 말이야~."
윽.. 엄마가 설마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설 줄이야..
이게 설마 엄마가 말한 '배신한 대가'인가?
"응 맞아~. 내가 최선을 다해서 너랑 귀염둥이를 떨어트려 놓으려 하는것. 이게 '배신한 대가'야."
이런..젠장.. 엄마가 진심으로 나서면 꽤나 힘들어 지는데..
"그리고 아빠도 귀염둥이랑 한번쯤은 같이 자봐야 되지 않겠니?" (이상한 의미 아님)
칫..이러면 혼자 자야 되겠는데.. 그래도 마지막까지 발악은 해봐야지.
엄마한테 말해봐야 소용 없을 테니 시현이를 따로 불렀다.
"시현아.. 어차피 이제 딸이 된 건데 언제든 같이 잘수 있지 않을까..? 굳이 오늘 엄마랑 같이 자야 돼?"
"근데 그렇게 따지면 너랑도 언제든 같이 잘수 있는거 아니야? 심지어 같이 사는데."
음..그러면 할 말이 없는데..
"그냥 오늘 하루만 외박하는 셈 쳐주라.."
시현이가 불쌍해 보이게 말했다. 언제 또 저런걸 배워가지고..
아.. 저렇게 말하는데 안들어 줄수는 없고..
"......오늘만이야."
"알았어!"
기쁜듯이 안방으로 달려가는 시현이.
저렇게 기쁜가?
살짝 짜증이 날려 하는데..
됐다. 분위기 깨지 말고 내 집가서 잠이나 자자~.
연인한테 버림받은 패배자는 얼른 사라져 주는게 맞겠지.
빠라바밤 바밤밤 바밤밤 바밤밤~
가뜩이나 꿀꿀한 아침에 알맞는 거지 같은 알람 소리다.
기분 별로일땐 시현이 만나러 가야지~
바로 엄마 집으로 향했다.
음? 근데 왜 엄마 신발이랑 시현이 신발만 없지?
아빠 신발은 있는데..
뭐지.. 싶어서 안방에 들어가보니 역시 아빠만 있었다.
"아빠. 엄마랑 시현이 어디갔어?"
"아~ 엄마가 시현이 옷좀 더 사주겠다면서 데리고 나갔는데?"
아니.. 이 엄마가..
"아니.. 왜 날 안불렀어!"
아빠한테도 배신감이 느껴진다.
"엄마가 부르지 말래.. 아빠는 잘못 없다."
음.. 이건 무죄로 인정해야 되나?
아니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그래서? 어디 옷 가게로 갈지는 말 안해줬어?"
"응.."
하.. 진짜 이 엄마가 전면전을 하자는 건가..?
일단 시현이에게 어딘지 물어보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엄마라면 절대 안알려 주겠지만.. 시현이라면 그래도 알려주겠지?
띠링!
오! 받았다.
"여보세요? 시현아! 지금 어디야?"
그런데..
[어머~ 너의 그 귀여운 연인은 나랑 지금 사랑의 도피를 하는 중이란다~.]
이런 망할..
"아니.. 시현이 폰을 왜 엄마가 가지고 있어!"
[우리 귀염둥이는 지금 내가 골라준 옷을 입고 있는 중이란다~.]
아니 진짜.. 이 엄마가..
"아니.. 그래서 지금 진짜 어디야?"
어차피 안 알려 주겠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는 보았다.
"사랑의 도피 중이라니깐? 위치를 알려주면 안되지~."
역시.. 그럴줄 알았어.
"음.. 하지만 우리 딸이 '성의'를 보인다면야.. 못 알려줄 것도 없지?"
오..? 알려준다고..? 근데 엄마가 저렇게 말한다는건 가벼운 성의는 아닐 텐데..
"무슨 성의..?"
[나한테 패배를 인정하고 주3회 귀염둥이랑 같이 잘 권리를 양도해.]
?
내가 미쳤다고 그 권리를 양도해?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고.. 주 1회 정도는 양보해 줄테니까 빨리 위치나 알려줘."
[주 3회.]
"하.. 주 2회는 어때?"
진짜 이정도면 많이 양보해줬다.
[주 3회.]
때려쳐.
"협상 결렬이야."
오늘 하루 좀 엄마랑 놀게 냅두더라도 나에겐 시현이랑 잘 권리가 더 중요하다.
[근데 우리 딸~ 생각 잘해야 될걸? 내가 고작 이거 한번으로 끝날거 같아? 아마 너가 항복할 때까지 계속하지 않을까?]
하.. 씨.. 맞는 말이다. 그럼 여기서 대가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되나?
그럼 적어도 이런 식으로 오전중에 엄마한테 시현이를 뺏기는 일은 없을텐데..
아니 근데 나도 자존심이라는게 있는데.. 아 어떡하지..
"자..잠시만 기다려봐.. 이따 다시 전화걸게.. 엄마 폰으로."
[그래~ 생각 잘하렴~]
흠.. 내가 여기서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 이후에 엄마로부터 안자는 시간대에 시현이를 지킬수 있을까?
하지만 시현이를 못 지키더라도 일주일 내내 시현이랑 같이 잘 수는 있다.
어제 분명 오늘만 엄마랑 자도 된다고 했을때 시현이가 알았다고 했으니까..
엄마도 그걸 아니까 시현이랑 잘 권리를 달라고 하는 거겠지.
그만큼 탐나는 권리이긴 하다. 하지만..
그 권리 이상으로 안 잘때 시현이랑 같이 놀수 있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엄마 성격상 아마 내가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일 나가는 날을 제외하고 진짜 거의 매일 시현이를 나 몰래 데리고 나가겠지..
엄마는 일을 불규칙적으로 나가서 언제나갈진 정확히 모르지만 대략 일주일에 4번 정도 나가신다.
그러면 뭐야.. 똑같은데..?
제안을 수락하면 일주일에 3번 시현이랑 같이 못자고..
제안을 거절하면 일주일에 3번 시현이랑 오전,오후 중에 못논다.
그렇다면 사실상 오전중에 시현이랑 놀 권리랑 시현이랑 같이 잘 권리중 뭐가 더 중요한지의 싸움인데..
일단은 잘 권리 < 놀 권리 같긴한데.. 그럼 수락하는게 맞긴 하다는 말이지..?
흠.. 하지만 내가 진짜 단 한번도 엄마로부터 시현이를 못 지켜낼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현이를 붙잡아놓고 있으면 엄마도 별 수 없지 않을까?
거기다가 엄마랑 나랑 자는 집도 다를텐데.. 나 몰래 시현이를 데리고 나가는게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엄마가 진짜 설마 매일 시현이를 데리고 나가겠어?
엄마도 체력이라는게 있을 텐데..
거기다가 학교에 가게 되면 어차피 오전중엔 못 논다.
분명 이렇게만 생각하면 제안을 거절하는게 맞긴 한데..
왜 나의 세포 하나하나가 이 제안을 수락하라고 하는 거지?
뭔가 이 제안을 거절하면 앞으로 벌어질 일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엄마가 물어보는 것 같다..
그래.. 수락하자..
자는 시간은 기껏해야 8시간 정도지만 안자는 시간은 무려 16시간이다..
수락하는게 맞다..
사실상 쫄아서 굴복한 거지만 자기 합리화를 했다.
엄마한테 전화했다.
[어머~ 우리 딸. 벌써 결정 한거야?]
"어.. 제안은 수락할게. 내가 졌어. 항복이야. 대신 조건이 있어."
최소한의 권리라도 지키기 위해 조건을 걸었다.
[음.. 뭐 들어나 보자.]
"조건은 두가지야. 일단 첫째로 만약 아빠가 일 나가든가 해서 안계실땐 나도 같이 자는것."
[뭐.. 그정도야.. 알았어.]
"두번째는 연속된 날짜는 금지."
이틀 혹은 그 이상 날짜를 연속으로 시현이랑 잠 못자게 되면 상당히 많이 우울해질거 같기에 이런 조건을 걸었다.
[음.. 그건 좀 힘들거 같은데.. 그럼 대신 이쪽에서도 조건 좀 걸어도 되나?]
"뭔데?"
[일단 엄마한테 언제 시현이랑 잘 지에 대한 선택권을 줘. 그리고 만약 내가 3박4일 출장을 가면 집에서는 4번밖에 못자잖아? 그럴땐 연속으로 자는걸 허락해 주고. 어때?]
"뭐.. 그정도는 .. 알았어."
출장가는 거라는데 뭐.. 별수있나.
애초애 그렇게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럼 이제 위치 알려줘."
[아~ 그거~ 우리 지금 강원도야~.]
?
강원도?
우리 집이 서울인데?
[쫓아 올수 있으면 와보라는 의미에서 한번 멀리 와봤어~.]
하.. 진짜.. 이게 면허랑 차 있는자의 여유인가..
[음.. 사실 장난이고.. 일부러 강원도에 간게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좋은 옷 가게를 찾아봤는데 그게 강원도에 있는거 뿐이야~. 그리고 옷 예쁜거 많이 사가면 결론적으로 너한테도 이득 아니니~?]
맞는 말이긴 하다.
"하.. 알았어. 빨리 들어와.."
엄마는 못이기겠네.. 일찌감치 항복한게 다행이다.
하.. 할게 없어..
"아빠.. 등산이나 하러 가자."
"응? 어디로?"
"북한산으로."
"좋아. 가자!
힘든 산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보니 엄마랑 시현이가 와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난 바로 시현이에게 달려갔다.
"시현아! 이게 얼마 만이야! 보고 싶었.."
"흐엑?!"
뭐..뭐야 왜 놀라는..
?
시현이가 귀여운 프릴이 달린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미친.. 뭐야..? 존나 예쁘잖아?
노출은 적으면서도 몸에 자연스레 밀착된 원피스로 인해 시현이의 잘빠진 몸매가 어김없이 드러났고,시현이의 검은 머리와 새하얀 드레스와의 갭이 오히려 시현이의 예쁨을 살린 것 같았다.
거기다 귀여운 프릴 장식으로 시현이의 예쁨만이 아니라 귀여움도 잘 살린 그야말로 시현이를 위한 옷이었다.
마지막으로 시현이의 부끄러워하는 표정까지.
음.. 지상에 천사가 강림했군.
엄청나게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등산한 직후라 몸이 더럽기도 하고 만약 끌어안았다가 원피스 모양이 망가지면 난 내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을 것 같았기 때문에 참았다.
와.. 근데 진짜 나랑은 패션 센스가 급이 다르구나..
새삼스레 엄마의 위대함에 감탄했다.
마침 엄마를 보니 '거 봐라 내가 뭐랬냐? 너도 좋아할 거랬지?'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인정해주지.
따봉을 날렸다.
내 뒤로 온 아빠도 놀란 눈치였다.
"오~ 우리 딸 아주 예쁜데?"
"으....으..."
아빠한테 까지 그 모습을 보이자 부끄러움을 참을 수가 없었는지 시현이가 우리 집으로 도망쳤다.
하.. 너무 귀엽다.
당장 쫓아가고 싶지만 일단 몸이 더러우니 좀 씻을까?
씻고서 바로 시현이 보러 가야지~
씻고 나서 시현이를 보러 가려는데 갑자기 엄마가 날 불러 세웠다.
"우리 딸 잠깐 와보렴?"
"응?"
엄마가 내 방으로 가더니 비장한 말투로 물어봤다.
"우리.. 여름이 끝나기 전에 봐야 되지 않겠니?"
"응? 뭘?"
"귀염둥이 비키니 입은 모습."
뭐.. 뭐라고?
비키니?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무조건 봐야지!"
"그래..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문제는 오늘 한번 비키니 입혀보려 했는데 우리 귀염둥이가 입는 걸 아주 격렬하게 거부를 하는거야.."
뭐.. 시현이 성격상 당연하겠지.
"그래서 우리가 힘을 합치자."
"어떻게?"
"귀염둥이한테 빚을 만들어둬. 여름방학 동안 최대한 많이. 나도 만들려고 노력할 테니까. 우리가 빚을 빌미로 입어달라고 하면 귀염둥이 성격상 안 입을 리가 없어."
"흠.. 알았어. 근데 비키니 입는다는 건 해수욕장 간다는 거지?"
해수욕장 가면 사람들이 우리 시현이 뚫어지게 쳐다볼 텐데.. 가뜩이나 비키니 입고 갈 텐데..
"음.. 뭘 걱정하는 건지는 알겠어. 그럼 그날 하루 우리가 해수욕장 빌릴까? 그럼 아무도 못 들어오겠지."
응?
아니 생각의 스케일이 다른데..?
"아..아니 그건 스케일이 너무 크고.. 좀 축소해서."
"음.. 그러면.. 굳이 해수욕장일 필요는 없잖아? 우리 집 근처에 수영장 하나 만들자!"
"아..아니 스케일이 더 커졌잖아.."
아니 돈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거야?
"그건 그냥 나중에 생각하고 시현이 비키니나 입히기 위해 노력하자."
"음.. 귀염둥이 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귀여운 딸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알았어."
그냥 귀여운 딸이라고 하지 꼭 앞에 쓸데없는 사족이 붙네..
그럼 나는 '작전'을 수행하러 가볼까..
어느 때보다 비장한 발걸음을 옮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