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27화 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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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느끼는건데..
요즘들어 내 이미지가 박살이 난거같다.
분명 내가 구상했던 내 이미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엄마같은 이미지였는데..
요리도 못하고..놀이공원 가서는 토나 하고..반지 때문에 엄마한테 왕창 깨지고..시현이가 화내면 풀어줘야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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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론 안된다.
다시 예전의 그 위엄있던(?) 이미지를 되찾아야 해.
그러려면.. 일단 위의 저 4문제를 해결해야겠지.
1.요리 못함
2.고소공포증..은 아니고 높은 곳을 무서워함(=고소공포증)
3.돈 없음
4.화 풀어줘야 됨
근데..솔직히 2번은 사실상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건 최대한 높은 곳을 피하는 것 뿐이지.. 놀이공원 같은건 꿈도 꾸지 말고.
뭐..그럼 2는 해결했다 치고..
1은....음.....
엄마도 요리 못하잖아? 그럼 된 거지~
그럼 1도 해결한거나 마찬가지고..(?)
남은건 3,4구만..그 중에서도 4.
일단 3은..내가 지금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한다고 없는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절약하는 것 뿐.
물론 그 기간만큼 거지 이미지가 붙겠지만..솔직히 다이아 반지 사줬는데..이 정도는 양해해 줘야지..
그럼 3도 해결한거고..
4....
이건 어떻게 해결해야 되지?
좀 이따 마스터키 문제로 시현이가 또 화낼 가능성이 높으니..지금 방법을 생각해 놔야 한다.
일단 최선은 화나게 만들지 않는 거지만..그게 가능하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겠지.
음..
일단 내 기준으로 화가 났을 때의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냅두면 화가 사그라드는 사람과 파국으로 치닫는 사람.
화가 사그라드는 사람 >
가만히 냅둠> 알아서 화가 풀림 > 평소대로
사과함> 화가 더 빨리 풀림 > 평소대로
인 반면에...
파국으로 치닫는 사람 >
가만히 냅둠 > '내가 화났는데 왜 사과를 안해?' > 파국 > ㅈ망
사과함 > 화가 풀림 > 평소대로
그 중에서 시현이는....높은 확률로 사그라드는 사람이다..!
그렇다면..시현이가 화났을때 그 시간 동안 시현이랑 못 노는게 좀 아쉽긴 하지만..가만히 냅둬봐야겠군.
근데 만약 내 판단이 틀렸으면 어떡하지..?
시현이가 만약 파국형이었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럼 일단 시현이를 화나게 만들어볼까.
"시현아. 일어나.."
"음냐......"
정말 해맑은 모습으로 자고있네..
음..존나 귀여운데..?
이거 굳이 깨워야 되나?
그래..어차피 깨워봤자 싫어하면 싫어했지 적어도 좋아하진 않을거 아냐?
그렇게 미움스택 쌓을바엔 그냥 이 귀여운 얼굴이나 감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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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지은아? 일어나.."
"음냐..조금만 더......엥?"
아이씨..그새를 못참고 잠들었네.
"어..시현아. 좋은 아침이야.."
"그래. 좋은 아침이지. 근데 혹시 뭐 줄거없어?"
;;
칫..까먹었기를 바랬는데..
일단 마스터키 준다고 한 건 잠결에 한 말이긴 했으니 모르는 척을 해보자.
물론 시현이를 화내게 만들려면 알지만 일부러 안주려는 척을 하는게 맞겠지만..
그래도 여친으로서 일부러 시현이를 화나게 만드는건 좀 그렇지..
애초에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화내지 않겠어?
그때 시험해보면 되는거지.
만약 영원히 안 화내면..그건 개이득인거고.
어쨌든 그래서 모르는 척을 하자.
"응? 뭐 줄거 있었어?"
진짜 혼신의 연기로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했다.
"아니..너..기억 안나? 나한테 마스터키 주기로 했잖아!"
"엥..? 진짜? 언제?"
"어젯밤에!"
"....내가 그랬다고?"
"......"
역시. 내 혼신의 연기에 시현이는 할 말이 없어진거 같다.
"아니..하..됐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이스..!
무사히 고비를 넘겼다..!
난 고비를 지배할 수 있다!(?)
"시현아. 근데..너도 알다시피 내가 거지잖아?"
"응. 그렇지."
"그래서 요리 학원 따위는 못가. 우린 우리 스스로 요리 하는 법을 배워야 해."
"..그냥 배달음식 시켜먹으면 안돼?"
"나 거지라고."
"아.."
시현이의 텐션이 급 다운됐다.
뭐..자업자득이지.
"어쨌든 그래서 일단 식재료..를 사러가야 되는데.. 문제는 이제 배달도 못 시켜. 비싸서."
"그..그럼 어떡해..?"
"뭘 어떡해. 우리가 들고 오는거지."
사실 엄마 졸라서 차로 데려다 달라고 말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생각해보니 엄마는 일하러 나갔다.
"걱정 마. 그렇게 많이 사지는 않을거야. 그리고 예전이랑은 다르게 너도 어느정도 힘 쌔졌잖아?" (예전>시현이네 집에서 짐 옮길때)
"그..그런가?"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단련시켰다 보니 이제 무릎 안 닿고도 팔굽혀펴기 5개는 할 수 있다.
다만..문제가 있다면 당연하지만 팔굽혀펴기나 턱걸이 같은 운동은 몸무게가 가벼울수록 하기가 쉽다.
근데..시현이 몸무게에 팔굽혀펴기 5개.....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드럽게 약하다.
전에는 태아 수준이었다가 지금은 영유아 수준..?
그래도 예전엔 진짜로 없는게 나았지만 지금은 없는 것보다는 나은 수준은 되겠지.....?
싶은 기대를 품고 옷을 입었다.
"자..그럼 가볼까."
"응."
나랑 시현이는 각자 큰 책가방을 매고 손으로 들 가방도 몇 개 챙긴 후 집을 나섰다.
"지은아..근데 우리 뭐 살거야?"
응?
아니 뭘 당연한걸 묻냐..
"식재료 사야지."
"아니..식재료가 한두개야? 아니면 다 살거야?"
음..그런가?
확실히 아무 식재료나 살 수는 없겠지..
"그럼.....음식 한두개 정해놓고 그 음식의 재료만 사자."
"오..나쁘지 않네."
내가 생각했지만 좋은 아이디어이긴 했다.
이걸로 또 시현이 속에서의 내 이미지가 상승했으려나?(x)
"그래서 음식 뭐할.."
"햄버거."
"응..햄버거?"
시현이가 정신줄을 놨나보군.
물론 매점에서 파는 햄버거..맛있지.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니가 만든 햄버거가 맛있을거 같냐..?
거기다가 햄버거하면 감자튀김과 콜라가 필수인데..콜라는 그렇다 쳐도 감자튀김은 우리가 재현할수가 없다.
즉..확정적으로 개망한다.
근데..생각해보니 망하는건 뭘 고르든 마찬가지잖아?
"좋아. 햄버거 하자."
그리고 햄버거를 고르면 이 일로 인해서 시현이의 햄버거 호감도가 떨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기 때문에..나쁘지 않다.
"그리고 햄버거 한개만 하긴 좀 그래서 한개 더 고르고 싶은데.."
"그건 너 맘대로 해."
"그래? 난 그럼 김치찌개로."
"ㅇㅋ"
음식을 확정짓고 나랑 시현이는 각자 재료를 카트에 담았다.
그런데 시현이가 갑자기 날 처량한 목소리로 불렀다.
"저기..그..지은아."
"안돼."
"아니 그..아까랑 다른거야.."
달라봤자 거기서 거기일 텐데..
"하..뭔데. 말이나 해봐."
"초..초코바 하나만.."
"절~대 안돼."
아깐 푸딩 사달라고 하더니 가지가지한다..
"지..진짜 안돼..?"
윽..시현이가 울먹인다.
시현이가 내가 우는거에 약하듯이 나도 시현이가 우는거엔 약한데...
"아..알았어..일단 화장실로 와봐."
"응? 화장실..? 왜?"
"따라오기나 해."
"응.."
"자. 키스해봐."
"..뭐?"
시현이가 잘 들었으면서 안들린 척을 한다. 귀엽게..
"키스해보라고. 내가 만족 할 만큼. 그럼 사줄게. "
"아..아니..그..여긴 사람 올 수도 있고.."
"그럼 저기 들어가서 문 잠그고 하지 뭐."
난 변기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그.."
저건..반박 할 말이 없어서라기보단 할지 말지 고민중이어서 그런 거 같다.
그러면 수락으로 이끌어 주는게 여친의 도리겠지.
"할거야 말거야? 빨리 정해."
"그..근데..키스까지 하는데 고작 초코바 하나 사줄거야..?"
음..하긴. 여기 와서 키스까지 하는데 초코바 하나는 좀 그런가..
"좋아. 5000원 이내에서 사고 싶은거 다 사. 그럼 됐지?"
"어.."
"그럼 저기 들어가자."
"응.."
"자. 이제 키스해줘."
문 잠그고 밖에 사람도 없는 것까지 확인한 다음 말했다.
"아..아니..잠깐 기다려봐. 그.....타이밍이란게 있잖아.."
음..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그럼 나 눈 감고 있을테니 알아서 해."
"응.."
난 눈을 감았다.
잠시 뒤.
"츄읍"
드디어 시현이가 키스를 했다.
음..근데 일단은 시현이에게 키스를 해달라고 하긴 했지만..그래도 리드는 내가 하는게 맞겠지..?
싶은 생각이 들어 시현이가 밀려나지 못하게 오른손으로 시현이의 뒷목을 잡고 혀를 강하게 밀어넣었다.
"우읍?"
시현이는 잠깐 놀란듯 했지만..정신을 차리고 내 혀를 받아주었다.
그래도..시현이도 많이 능숙해졌네.
잠시 뒤.
"푸하아.."
시현이가 숨쉬기 힘들어 하는것 같긴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닌거같다.
역시 좀 여유가 생긴건가..
나도 좀 더 연습하든가 해야지..
"시현아. 기분 좋았어?"
"..응....아..아니..? 딱히..?"
..?
뭐야..? 왜 긍정이었다가 부정으로 바꾼거지? 그것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강조를 하네..?
물론 시현이가 단순히 츤데레여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전에도 키스 기분 좋다고 해줬었는데..?
.....
어..설마 이거 때문인가..?
지금 이 키스는 내가 시현이랑 한 일종의 교환이라고 볼 수 있다.
난 시현이랑 키스해서 기분 좋아지고 시현이는 초코바를 얻어서 기분 좋아지고.
근데 시현이가 여기서 기분이 좋았다면..거래가 성립이 안되지. 내가 너무 손해여서.
그래서 그런건가..?
한번 확인해볼까.
"시현아. 방금 응이라고 한거지?"
"아..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똑똑히 들었구만. 근데..너도 기분 좋았으면..굳이 초코바 사줄 필요는 없는거 아냐..?"
"아..아니..그..그렇긴 한데...."
뭐야..그걸 긍정하면 어떡해..그러면 빼박이잖아..
근데..
"그렇긴 한데 뭐?"
"그..약속했었잖아....사주겠다고.."
..
....
진짜 존나게 귀엽네..
원래라면 '꺄아~ 너무 귀엽다!' 라고 소리지르며 시현이를 껴안았을 텐데..여긴 그래도 공중화장실이니 참았고...
대신..
"시현아..10000원까지 골라."
한계치를 두배로 올려줬다.
그렇게 모든 짐을 다 로그로 산 뒤 우리는 집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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