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외전 이세계에 간 시현이 下
* * *
(이거 외전임)
잠시 뒤에 지은이가 무언가를 가지고 내려왔다.
"오래 기다렸지? 미안..잠깐 할 일이 있어가지고."
"응? 아..아냐..얻어먹는 입장인데 뭘..미안해 할 거 없어~."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지은이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여기 지은이는 요리 잘할라나?
저렇게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무언가를 만드는걸 보면..
잘할지도?
애초에 여기서 혼자 꽤나 오랫동안 산 거 같은데..
그럼 확실히 요리 할 줄은 알아야 하겠지.
...
그럼 기대해도 되는 거겠지?
그렇게 한참 뒤. 지은이의 요리가 완성되었다.
지은이가 내온건 볶음밥이랑 뭔지 모를 차.
"자..다됐다. 한번 먹어봐."
"응."
..
근데 이게 뭐지?
"이게 뭐야?"
난 볶음밥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
"고기."
"..무슨 고기?"
"오크고기!"
.....
이거 맞나?
아닌거 같은데..
아니 씨..무슨 오크 고기를 먹어..
아니 근데 애초에 오크가 있나..?
뭐..슬라임도 봤던 입장에서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닌가..
일단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오크고기 말고는 정상적인 볶음밥같다는 점이다.
..
일단 먹어는 보자.
이렇게 무료로 요리까지 해줬는데..안먹으면 그건 쓰레기겠지.
근데..
"이 차는 뭐야?"
"아~ 그거? 식후에 마시면 소화를 도와주는 차야. 이 세계에선 꽤나 유명해."
"..그래?"
뭔가 구라치는 느낌인데..
아니 근데 뭐..구라라고 해봤자 별 일 있겠어?
딱봐도 지은이 매우 착해보이는구만..
난 별 생각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
"맛있다!"
"그래?"
오오..진짜 여기 지은이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오크고기도 의외로 나쁘지 않다.
그냥 돼지고기 비슷한 느낌..
..
이게 얼마만에 먹어보는 맛있는 집밥이냐..
나는 흡족해하며 빠르게 밥을 다먹었다.
그리고 지은이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고.
..
부담스럽게 왜 저런 눈으로 바라보는 거야?
분명 날 모를텐데..
아닌가?
혹시 아는데 모르는 체를 하는 건가?
왜?
..
봐봐..그럴 이유가 없잖아..?
그냥 쓸데없이 내 오감이 예민해져서 그런건가보지~.
..
차나 마시자.
차를 입에 대봤지만 의외로 뜨겁지가 않아서 한번에 다 들이켰다.
근데..
지은이 표정이 뭔가 이상한데..
웃고 있긴 한데 뭔가 사악한....
잠깐만...뭔가...이상한데.......왜 중심이..안잡.......
털썩!
"잘 자. 사랑하는 내 동생."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내 의식은 꺼졌다.
으음..
뭔가 푹신한 침대가 느껴진다..
아..
원래 집으로 돌아온건가?
그럼 일어나야..
잠깐만..
왼팔에 뭔가가 있다.
.....
수갑이다..
침대에 고정돼서 못 벗어나게 만든 수갑.
..
설마 지은이가 한 건가?
..
아..아니겠지?
도둑이 침입해서 그런거고 지금 지은이도 나처럼 어딘가에 잡혀있을거야..!
물론 그게 더 안좋은 상황이긴 하지만..
난 차라리 그러길 빌었다.
지은이에게 배신당하는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하지만 그런 내 기대를 깨부수는 목소리가 들렸다.
"깼어? 내 동생.."
지은이 목소리다.
...
역시..지은이가 범인이었나..
난 엄청난 실망감과 느끼며 자는척을 포기하고 일어났다.
..
"이 수갑 채운거 너가 한 짓이야?
난 그래도 진짜 마지막 희망을 걸고서 물어봤지만..
"어허..언니한테 너라니..아직 우리 동생이 교육이 많이 부족한가 보구나? 괜찮아..이제 널린게 시간이니까..언니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줄게.."
..
"그..근데 내가 왜 너의 동생이야? 나..나도 20살이야.."
"어머~ 나랑 동갑이네..? 하지만 괜찮아..넌..시현이잖아? 그러니까 내 동생일 수밖에 없어..헤헤.."
..
"..시현이가 너의 동생이었다고?"
"그래~ 틈만 나면 이 언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귀여운 동생이었지..지금은 없지만.. 그래도 괜찮아! 다른세계의 동생이 나에게 왔잖아?"
..
이 대화로 인해 두가지 사실을 알았다.
1. 이년은 제대로 미친년이다.
2. 난 ㅈ됐다.
..
여기서 벗어나야 해..
"..일단 이거 좀 풀어주고 얘기하면 안될까?"
"안돼! 풀어주면 도망칠 거잖아?"
....
"후후..걱정마..필요한건 이 언니가 다 가져다 줄 테니..우리 귀여운 동생은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단다?"
"아니 그..그..나에게도 자유라는게.."
"..그래..자유라..내 동생은 어릴때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었지..그게 바로 내 동생의 자유의지 아니겠어? 내 동생은 자신의 의지로 날따라다닌건데 넌 내 동생이잖아? 그럼 당연히 풀어줘도 날 따라다닐거 아니야? 그럼 풀려나나 묶여있으나 똑같은거 아닐까?"
..
틀렸다..
논리가 안통해..
그리고 이젠 심지어 다른세계에서 온 동생이라고도 안해..
..
그럼 난 여기서 평생 못 벗어나는건가..
아니야..이대로 저 미친년의 뜻대로 당할 순 없어..
..
근데 이 미친년 아까부터 뭐하는거야?
아까부터 내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
"뭐..뭐하는거야..!"
"응? 언니가 동생좀 만지겠다는데..문제있어?"
..
넘쳐흐르지..개새..
아니야..일단 심기를 거스르지 말고 지내보자..
그리고 탈출할 기회를 노려보자.
근데 이 미친년이 허벅지에서 손이 점점 올라간다?
..
이윽고 손은 가슴에 도달했다.
꽈악!
"꺄악?!"
"헤에..귀여운 비명이네..?"
"그..그런거 아니야.."
"헤에..우리 귀여운 동생이 이런 훌륭한 가슴을 가졌다니..언니는 기쁘네.."
"..."
그래..뭐..이정도는 원래 지은이도 하는 일이니까..넘어가자.
"흐음..그러고보니 이제 슬슬 아침먹을 시간인가? 좀만 기다려. 바로 가져올게!"
그렇게 지은이가 나갔다.
..
지금 생각해야 된다..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
일단 한동안은 경계가 심해서 힘들거 같긴 한데..
그럼 일단 수갑만 어떻게든 벗기게 만들어보고..며칠 여기서 생활해보자,
그 다음..경계가 느슨해졌을때.. 바로 탈출.
좋아..
잠시 뒤. 지은이가 밥을 가지고 들어왔다.
"오래 기다렸지?"
"...."
"많이 먹어~."
"저..저기 지은아.."
"어허! 언니라고 불러야지!"
..
아 진짜..이 미친년이..
아니야..지금은 뜻에 따라야 된다..
"어..어..언니.."
"그래 왜?"
"그..원래 내 세계에선 나랑 언..니랑 연인이라고 햇었잖아.."
"근데?"
"그..그러니까 나도 언니를 사랑하는 입장인데..이거 좀 풀어주면 안될까? 어차피 안 도망칠거야.."
물론 개구라.
어떻게든 도망쳐야지..
근데 의외로 지은이가 꽤나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했다.
당연히 안될줄 알았는데.. 사랑한다는 말이 통한건가?
"음..원래 세계로 도망칠 수도 있잖아."
"그게 되면 진작 했겠지.."
"..그런가?"
오..
느낌 나쁘지 않은데..?
..
"좋아. 풀어줄게."
"진짜?"
"대신. 증거를 보여봐."
"응?"
"날 사랑한다는 증거."
..
아이 미친년이 진짜..
곱게 좀 풀어주지..
..
사랑한다는 증거라..
..
어쩔 수 없나..
난 지은이에게 다가간 다음에 묶이지 않은 오른 손으로 지은이 뒷목을 잡고 당겨서 키스를 했다.
..
내 여친이 아닌 사람에게 키스하긴 좀 역겹지만..그래도 얘도 지은이이긴 하니까..
(키스과정생략)
"푸하아.."
".."
"어때?"
지은이는 얼굴이 매우 붉어졌다.
아마 나랑 이런거 해본적은 없었을 테니..
"흐..흠..좋아..인정해줄게..대신 매일 아침 일어나서랑 자기전에 키스해주라."
....
아니..미친년이..진짜..
"알았어.."
하지만..내가 뭐 거절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헤헤..그럼 풀어줄게.."
좋아..일단 풀려나긴 했다.
그래도 한동안은 가만히 있어야지.
경계심을 풀기 위해.
3일이 지났다.
그 동안 수많은 키스와 지은이의 몸 더듬기를 견뎌내고 버티며 지은이의 생활패턴을 몇 개 알아냈다.
1. 백수다.
2. 24시간중 최소 나랑 15시간 이상은 붙어있는다.
3. 무조건 날 먼저 재우고 잠든다.
4. 청소를 안한다.
정도.
여기서 쓸모있는 정보는 3번.
어제 시험해 봤더니 내가 자는척을 하니까 얼마지나지 않아서 자기도 자러 가더라.
물론 어제는 상황보느라 탈출하진 못했고..
오늘 탈출한다.
후..오늘 밤..기대되는군.
그리고 그날 밤.
"시현아~ 이제 슬슬 자야지?"
"응.."
난 지은이에게 키스를 한 뒤 자리에 누웠다.
"잘 자."
"응."
그리고 난 혼신의 연기로 잠든 척을 했다.
그렇게 체감상 1시간 뒤.
좋아..지은이가 완벽히 잠들었다.
..
그럼 가볼까.
난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평소 모색해뒀던 탈출 루트로 향했다.
정문은 열면 큰 소리가 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측면의 창문을 통한 루트로.
"끼이이이.."
..
좋아..나왔다..
이제 여길 벗어나기만 하면 돼..!
난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쿵!
"아악!!"
뭐..뭐야..!
무언가에 머리를 부딪쳐서 넘어졌다.
..
뭐에 부딪친거야?
앞을 보니 아무것도 없었지만..무언가에 부딪혔다.
..
이거..
결계같은데..?
나 못나가게 할려고..지은이가 설치한..
..
그럼 나 못 나가는 거야?
그런데..그 때 뒤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우리 귀여운 동생을 믿고서 수갑도 풀어줬는데..언니를 이렇게 배신해..?"
......
뒤를 돌아보니..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미친년이 보였다.
그것도 왼손에 검을 들고.
"그래..배신을 했으면 대가를 치뤄야지..이번엔 두 발을 자르는 걸로 넘어갈까? 다시는 도망치지 못하게.."
..
저거 진심이다..
지은이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자..잠깐만..어,.언니 한번만..봐주라..내..내가 잘못했어..!"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게 맞는 거잖아? 그러니 이건 어쩔 수 없는거야. 그래도 괜찮아. 두 발이 잘려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더라도..이 언니가 옆에서 돌봐줄 테니까..그냥 우리 귀여운 동생은 언니를 의지하기만 하면 되는 거란다? 우리 귀여운 동생의 신체가 망가지는건 원치 않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꾸 언니에게서 도망치려 할 테니까..어쩔 수 없는 희생인 거지..아.. 발은 걱정하지마. 최상급의 보호마법을 걸어두고 평생 가보로 삼을게. 그 정도면 괜찮지? 어차피 그렇게 안해도 우리 귀여운 동생의 발이 썩을리가 없겠지만.. 아..그럼 이제 휠체어라도 하나 사야 되는건가? 아니야..언니가 평생 업어주면서 다닐게. 그러면..이제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으면서 지낼 수 있는건가?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우리 귀여운 동생도 그렇게 생각하지? 물론 그렇겠지. 누가 뭐래도 내 동생인걸. 내가 좋아하는걸 우리 동생이 싫어할 리가 없잖아? 아..근데 우리 동생이랑 같이 살기에 이 집은 너무 좁고 낡았어. 우리 동생의 급에 맞는 집으로 이사 갈 필요가 있겠네. 우리의 새로운 신혼집이라 생각하고 이 언니가 좀 더 좋은 집을 구해볼게. 아 물론 우린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테니 그때는 우리 동생도 함께하고 있을 테지만.. "
그렇게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점점 다가왔다.
..
미쳤어..
진짜미쳤어..
"오..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
"헉! 시현아..갑자기 왜 그래?"
"....응?"
"왜 갑자기 자다가 비명을 질러..?"
..?
눈을 떠보니 익숙한 우리 집이었다.
..
뭐야..그럼 꿈이었어?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는데..
..
내 몸에는 아직까지도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시..시현아. 악몽이라도 꾼거야?"
"..그런거 같아.."
"어떤 악몽이었는데?"
..
이걸 말해줘야 되나?
뭐..상관없겠지?
그렇게 일어난 모든 일을 지은이에게 설명했다.
..
"어때?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지?"
".."
"지은아?"
"음..난 그 지은이가 어느정도 이해가 가네."
"..?"
"나도 아마 시현이가 죽어버리면..미쳐버리지 않을까?"
"그..그게 무슨 소리야.."
..
"그래도 마음은 이해를 해도 역시 방법은 이해를 못하겠어. 아무리 다른세계라고 해도 내가 시현이가 싫어하는 짓을 할 리가 없잖아?"
"그..그렇지?"
역시 진짜 지은이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
"근데..이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때의 얘기고..미쳐버리면 후에..그런 상황이 닥쳤을때..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
"그러니까...."
지은이가 갑자기 다가와서 귀에 속삭였다.
"죽으면 안된다?"
..
소름;;
"뭐..뭐야..! 어디로 간 거야?"
내 눈앞에서 벌벌떨던 귀여운 내 동생이 갑자기 빛이 나더니 사라졌다.
..
설마..원래 세계로 돌아간거야?
그거말곤 설명할 방법이 없다.
..........
....
..
하하..
그래....
그렇게까지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거야?
좋아..
어떻게든 찾아내주지..
대신....다시 만나게 되면 각오해야 될 거야..?
귀여운 내 동생♥
그렇게 난 오랜만에 집 밖을 나서서 차원이동과 관련된 책을 찾으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외전 이세계에 간 시현이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