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36화 레이싱
* * *
그렇게 우린 엄마의 도발을 받아들이며 개인용 패드 비슷한걸로 레이싱 게임에 접속했다.
그런데 방을 만들던 도중 갑자기 엄마가 물어봤다.
"근데..우리..그냥 하는건 재미없으니 뭐 걸고 하는게 어때?"
"..응?"
"...."
솔직히 지은이는 자신 없었지만…그렇다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좋아."
"...."
시현이는 마음에 안든다는 눈치였지만 우리 둘이 동의하니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근데 뭐 걸게? 설마 돈 같은건 아닐테고.."
"음..뭘 건다기보다는.. 꼴찌했을때 벌칙을 주는거로 하자."
..
뭔가 불안한데..
"무슨 벌칙?"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음..잠시만.....찾았다! 한시간동안 이걸 쓰고 다니는 거야!"
그러면서 토끼 귀 머리띠를 꺼냈다.
..
저런건 언제 챙겨왔대..
아니 근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토끼귀??
....
아무리 생각해봐도 에바같은데..
고양이 머리띠도 아니고 토끼 귀 머리띠를 쓰라고?
심지어 토끼 귀가 생각보다 크다.
..
거절하는게 맞다 이건.
"토끼 귀는 좀 무리지 않을까...."
시현이도 좀 아니다 싶었는지 내 의견에 동조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
개귀엽네..
근데 우리가 거절을 하자 엄마가 의외라는 듯이 물어봤다.
"이걸 거절한다고? 만약 내가 꼴찌면 내가 저 벌칙을 수행해야 되는데?"
..
어?
그러네?
엄마가 토끼 귀 머리띠를 쓴다고?
문득 시현이쪽을 바라보니 시현이도 비슷한 눈빛으로 날 보고 있었다.
..
그리고 곧 우리의 눈빛엔 비장한 결의가 감돌았다.
""가자.""
그렇게 우린 비장한 결의를 한 채로 자신만만하게 연습도 하지 않은 채 경기에 돌입했고....
개털렸다.
[1등! 냥냥시현이님 02:38 ]
[2등! 컴퓨터 04:06 ]
[3등! 이지은 05:39 ]
[4등! 이시현 06:01 ]
..
처참한데..
우린 심지어 컴퓨터도 못 이겼다.
다행히 시현이 덕분에 꼴찌는 아니지만..좋아할 일이 아니다.
언제 꼴찌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기에..
거가다가 원래 목표였던 엄마 토끼귀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
"엄마..잠깐만 타임.."
"응? 왜?"
"벌칙좀 바꾸자. 아니면 차라리 연습 시간이라도 좀.."
"안돼."
..
"어머님 한번만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맨 입으로?"
..
"바라는게 뭔데.."
"음..딱히 지금은 바라는게 없는데..그럼 빚으로 달아둘까?"
"...."
빚이라..
별로 좋은 느낌이 들지는 않지만..그렇다고 거절 할 수 있는건 아니니..
"..알았어.."
"좋아. 그래서 뭘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벌칙을 바꾸....지는 말고 그냥 차라리 연습시간을 줘. 아까 판은 무효로 하고."
벌칙을 바꾸면 엄마가 수행할 벌칙도 바뀌기 때문에..의미가 없다. 그럴바엔 차라리 힘으로 찍어누른다.
"뭐..알았어. 시간은 어느정도?"
"30분."
"좋아. 그럼 30분 뒤에 보자."
"엉."
그 뒤로 난 원래 자리로 돌아와서 시현이랑 연습을 시작했다.
20분 뒤.
[1등! 이시현 02:02 ]
[2등! 이지은 02:06 ]
[3등! 컴퓨터 04:22 ]
[4등! 컴퓨터 04:38 ]
"이거 의외로 쉬운데?"
"그러게?
첫판에 그런 궤멸적인 시간이 걸렸던 것은 그냥 단순한 연습 부족이었다는 듯이 우린 꽤나 나쁘지 않은 시간을 기록했다.
"이정도면..우리가 큰 실수 하지 않는 이상 이기겠는데?"
"헤헤..그렇겠지?"
시현이는 엄마의 토끼귀가 상상이라도 되는지 실실 웃었다.
"그래도..혹시 모르니 남은 10분동안 팀워크좀 연습하자."
"응."
개인 레이싱에서 팀워크를 연습하는 이유는 단 하나.
엄마를 효과적으로 방해하기 위해서.
..
....이라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 별 효과는 없었다.
그냥 놀지는 않았다는 자기만족이 필요할 뿐.
그만큼 그 둘은 당연히 이길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10분 후..
"연습 많이 했어?"
"물론이지."/"응."
"그럼 시작해볼까?"
""응.""
우린 그렇게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승부에 임했고..
개털렸다.
우린 시작하자마자 엄마를 레일쪽으로 밀치기 위해서 엄마의 차를 들이받으려 했지만..
미끄러졌고...그 미스로 인해서 엄마의 차가 약간 앞서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우린 우리가 진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아직 괜찮아.. 어차피 우리가 엄마보다 레이싱 속도는 빨라. 곧 따라 잡을 수 있어."
"응."
그리고 레이스 중반부.
..
뭐지?
왜 격차가 더 벌어지는 거지?
분명 아깐 10미터 정도 차이였는데..
지금은 최소2~300미터는 차이나 보인다.
..
뭔가 잘못됐다.
아니 분명 우리가 연습해서 엄마 기록 뛰어 넘었었는데..왜 엄마가 지금 우리보다 훨씬 빠른거지?
잠깐만..
연습?
생각해보니..
우리가 연습할 동안 엄마가 연습을 안했을리가 없잖아..!!!
시..발...이 당연한걸 생각 못하고 있었다니..
음..
ㅈ됐군.
그렇게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고..
[1등! 냥냥시현이님 00:58 ]
[2등! 이지은 01:49 ]
[3등! 이시현 02:01 ]
[4등! 컴퓨터 03:59 ]
..?
아니..0분대라고?
나 1분대 한것도 진짜 이번판이 존나 잘된건데..
..
내 머리속에서 빠른 사고회전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머니 살려주십시오."
"어머~ 왜 이래? 징그럽게.."
"제가..제가 어리석었습니다. 한번만 살려주십쇼.."
"그런거 없단다~ 빨리 준비나 하렴~."
....
그 결과는..나와 시현이의 죽음이었다.
..
하지만 곱게 죽을 순 없다.
'시현아.'
'왜?'
'이대로 죽을 순 없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살 방법이 있긴 해?'
'있지..너가 애교부리면 돼.'
'....'
잠깐의 정적이 지나갔다.
'그냥 이대로 죽자.'
'..아..아니..'
'어차피 애교부리는거나 져서 토끼 귀 머리띠 쓰는거나 거기서 거기잖아.'
..
아니..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그..
그렇게 협상은 결렬되었다.
그리고..
냥냥시현이
1등:17번
2등:0번
3등:0번
이지은
1등:0번
2등:10번
3등:7번
이시현
1등:0번
2등:7번
3등:10번
비행기를 내릴때 쯤, 우린 아주 처참하게 발려있었다.
"자..잠깐만..사람들 앞에서 토끼 귀 머리띠를 쓰라고?"
"당연하지. 왜? 문제있어?"
"당연히 문제있지...."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다는 문제가.
..
세상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거 같은 느낌이다.
아..진짜 이걸 어떻게 7시간이나 버텨..
시현이도 내 옆에서 고개를 못 들고 있다.
..
개귀엽네..
순간 시현이의 귀여움에 정신이 나갈 뻔 했지만 가까스로 붙잡은 채 본분을 기억해냈다.
최대한 빨리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본분을.
"근데 이제 여기서 어디로 가야 돼는 거야?"
"항구로 가면 우릴 기다리는 배가 있을거야. 그거 타고 섬으로 가면 돼."
"배..에 다른 사람도 타나?"
"아쉽지만 아니. 우리만 타는 배야."
뭐가 아쉬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은/시현의 입장에선 매우매우 다행인 일이었다.
"그럼..빨리 배로 가기나 하자.."
"찬성.."
이대론 쪽팔려서 죽을거 같다.
우린 지체할거 없이 바로 항구로 출발했다.
물론 쪽팔려서 고개를 들 수는 없었기에 우린 엄마의 양 옆에 달라붙어서 엄마가 가는 길로만 따라갔다.
그런 우리를 엄마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안비밀.
어쨌든 그렇게 쪽팔림을 참으며 걷다보니 어느새 항구에 도착했고, 우린 빛의 속도로 배에 탄 뒤 내부로 숨었다.
그렇게 이제 괜찮다는 안심을 하고 있던 와중..
"거기 우리 배 아닌데?"
"..."
엄마의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배 안에 울려퍼졌다.
그리고..우린 그 어느 때보다도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는 배 밖으로 나와서 우리 배로 찾아갔다.
내가 살면서 이때만큼 부끄러움을 느낀 적은 없었을 정도.
어쨌든 결론적으로 올바른 배에 탑승한 우리는 바로 섬을 향해 출발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