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44화 데이트
* * *
일단 그렇게 세수를 끝내고 우린 부엌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졸림은 세수를 끝내니 사라져 있었고 나는 개운한 마음으로 식탁에 앉을 수 있었다.
"아침 먹고 싶은거 있어?"
"아니."
"그래? 그럼 내가 먹고싶은 걸로 한다?"
"...."
난 대답하지 않았지만 시현이는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요리를 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근데..저 '아니'의 뜻은 딱히 먹고 싶은게 없다는 뜻이 아니라 뭘 먹어도 안 괜찮을거 같다는 뜻이었는데..
거기다 시현이가 무슨 초절정 셰프도 아니고 기껏해야 최하급을 간신히 벗어난 수준의 삼류 요리사잖아..?
물론 난 그것조차 못 되는 최하급 요리사지만..
뭐…어쨌든 그래서 아마…어떤 요리든간에 내가 그걸 맛있게 받아들일 확률은 제로에 수렴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시현이가 간장계란밥을 가지고 왔다.
....
아..
간장계란밥..
확실히 지금같이 빨리 먹고 나가야 될때 좋은 음식이긴 하다.
내가 지금 딱히 먹고 싶지 않다는 점만 제외하면.
하지만..그렇다고 진짜로 안먹을 수도 없었기에 결국 자리에 앉아서 한숟가락을 떠먹었다.
..
.....
맛없네..
그렇게 느끼던 와중 마침 시현이가 물어봤다.
"어때?"
"별로 맛......"
....
맛..
맛없다고..말해야 되는데..
"맛..맛있네..꽤나...."
차마 저 감상을 물어보는 순수한 얼굴에 침을 뱉을 순 없었다.
..
"진짜? 헤헤.."
그래..이거면 된 거야..
시현이가 좋아하면 구라든 뭐든 뭘 못해주겠어..
그렇게 난 남은 밥도 맛있어하는 표정으로 꾸역꾸역 쳐먹었다.
..
먹자마자 우린 산책겸 바로 밖으로 나섰다.
어차피 집에 있어봐야 할 것도 없기 때문에.
이러면서 좀 걷다가 머리만 깎고 데이트하면 되겠지.
..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그냥 갑자기 시현이가 귀엽게 느껴져서 한번 껴안아줬다.
"뭐..뭐야..! 왜 이래 갑자기!"
"아니 그냥..오늘따라 시현이가 귀여워 보여서♡"
"뭐..뭔 소리야 그게!"
깜짝 놀라며 시현이가 날 떼어냈지만 딱히 싫어하는 티는 나지 않았다.
그냥 별 이유도 없이 밖에서 이러는게 부끄러워서 그런 거겠지.
얼굴 빨개져서 고개 돌린거보면 빼박.
그리고..
쪽♡~
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시현이 볼에 빠르게 키스해줬다.
..
"아..아니..뭐하는거야!"
"응? 갑자기 고개 돌리길래..키스해달라는거 아니었어?"
"아니..그럴리가 없잖아..!!"
"그럼 고개는 왜 돌린건데?"
"그..그건.."
후후..
시현이 성격상 부끄러워서 고개 돌렸다고 자기 입으로 말할 순 없겠지.
그렇다고 대답을 안하는건 패배랑 동급일테니 그럴리도 없을테고..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
....
"그..그..갑자기 저쪽에서 나 부르는 소리가 들린거 같길래.."
..
생각보다 재미없는 변명이었다.
"뭐..뭐야..! 그 실망한듯한 표정은.."
"아니..시현아..그 좀 재밌는 변명 없어?"
"뭔 소리야 또.."
우린 그런 잡담들을 하며 미용실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걸으면서 떠들다보니 어느새 미용실에 도착해있다.
"여기가 엄마가 말했던 그 미용실인가."
"응..그런 것 같네."
확실히 한눈에 보기에도 다른 미용실들과 격이 다른 아우라가 느껴졌다.
군계일학이 뭔지 알 거 같은 느낌.
엄마가 시현이의 머리를 위해 엄선한 미용실이니 그럴만 하겠지만..
"일단..들어가자."
"응."
..
들어가자마자 엄청 예쁜 언니가 우리를 반겨줬다.
"어서오세요~ 이시현님 이지은님 맞으시죠?"
"엥..저희를 아세요?"
"하하..네. 오늘 이 가게를 빌리신 분이 말해주셨어요. 머리 망치면 이 가게가 없어질 거라는 말과 함께."
"아..그렇군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난 시현이를 미용사 분께 맡겼다.
..
원래라면..엄마가 오바한 걸테니 그냥 부담 가지지 말고 머리 잘라달라고 말하겠지만..
그러다가 시현이 머리를 망친다면..
나도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물론 그래도 엄마랑은 다르게 가계 폐점까지는 시키진 않겠지만..
..
근데..할게 없네..
......
뭐..그냥 가만히 기다리자.
기다리는건 내가 제일 잘..하는...것.......
"....나."
..
"...일...나....뒤지...싫."(일어나 뒤지기 싫으면)
누가 날 부르는거 같은데..
"셋 센다. 하나..둘.."
"헉!"
..
진짜 지금 안깨면 무언가 ㅈ될거같은 느낌의 목소리가 들려서 잠에서 깼다.
그리고..물론 목소리의 주인은 볼 것도 없이 시현이였고.
"흐아암~ 벌써 다 머리 깎은........"
나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내 눈앞에 무려 시현이가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잠깐만..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미의 여신이 현세에 현현한건가..?
이건 아직 인류가 받아들이기에는 한참은 이른 아름다움인거 같은데..
이거..내가 봐도 되는거야?
혹시 나 곧 죽나?
그래서 죽기 전에 마지막 선물로 이 모습을 보여주는 건가?
그렇다면 난 확신할 수 있다.
나쁘지 않은 죽음이라고.
기꺼이 받아들일만 하다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시현이가 다가와서 내 볼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어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예뻐."
"그래? 다행이네."
응..?
생각보다 시현이의 반응이 미지근했다.
얼굴 붉히면서 부끄러워 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내가 그 이유를 알게 되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이쁘다니 고마워."
시현이가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이 감사를 표해왔다.
그 모습은 얼굴을 붉혔던 평소랑은 많이 달랐지만, 그래도 시현이가 진심이라는 건 알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은이는 왠지모를 서늘함이 느껴졌다.
"아..아니..별 거 아니.."
"그런데.."
..
갑자기 들려온 서늘한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목소리보다도 더 큰 충격이었던 것은 기뻐보였던 시현이의 표정이 한순간에 싸늘한 표정으로 변햇다는 점.
정확히 분위기와 목소리에 걸맞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시현이는 그 말을 한 뒤 내 볼을 놔주고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런데..손이 내려가면서 점점 내 쪽으로 다가와서 내 목을 움겨쥐었다.
그리고 그런 채로 시현이는 말을 계속했다.
"내가..분명 잠자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자..잠깐만..이거 좀 놓고.."
"...."
그래도 아까 그 서늘했던 목소리에 비해 그렇게 빡친건 아니었는지 놔주긴 했다.
..
"후..머리 다 깎은 다음에..이왕 온거 여친한테 보여줄 겸 새로운 머리 스타일 시도해봤는데..나와보니 여친이 자고 있네? 그리고 분명 어제 경고했을 텐데.. 인간이 어디까지 화가 날 수 있을지 궁금하면 (잠자는걸)해보라고.."
"미안.."
"그런데 머리 깎는걸 기다리다가 잠든 거니까 또 뭐라 하기도 좀 그렇고.. 30분 정도 혼자 할것도 없던건 맞긴 할테니.."
"...."
"그래서,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 줄게. 대신....오늘 잘해."
"응..고마워.."
휴..ㅈ되는줄 알았네..
"그런데.."
"응?"
"아까 그 말 진짜야?"
"뭔 말?"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이쁘다는거."
..
시현이도 말하고선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난 진지하게 한 말이었다.
"당연하지. 내 눈에 너보다 이쁜건 없어."
"흥.."
헤헤..귀엽당♡
"그럼 나 오늘 하루는 이러고 지낼까?"
"음...."
..
나야 두팔벌려 환영이긴 한데..
다른 사람들도 이 모습을 보는데..
그건 좀 싫다.
근데 그렇다고 거절을 하면..이유를 물어보겠지.
그리고 대답을 하면.. 집착한다고 여겨지지 않을까..?
그리고 대답을 안하면..별로 안예쁘니까 거절하는 거라고 여겨지겠고..
..
....
"그래~ 나야 좋지."
결국 수락해버렸다.
그래..우매한 인간들에게 신을 영접할 기회정돈 마련해 주는 셈 치자.
물론 영접하는 거에서 만족 못하면..내가 어떻게 나올지 나도 모르겠지만..
제발 한명정도는 나와줬으면 좋겠다.
본보기로 삼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랑 시현이는 가게 밖으로 나섰다.
"안녕히 가세요~."
"네."
그리고..
오랜만에 둘만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