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49화 결심 (1부 完)
* * *
데이트를 갔다 오고서,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우린 딱히 할 일도 없이 빈둥거리며 지내고 있었고, 슬슬 여름이 끝나갔다.
음..슬슬 때가 되었나.
"시현아. 이제 슬슬 결정해야 될 때가 된거같아."
"응? 뭐를?"
"학교. 갈건지 말건지."
"...."
갑자기 진지한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는지 시현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뭘 그렇게 놀라? 슬슬 결정할 때가 되긴 했잖아."
"그렇....긴 하지."
"적어도 이번주까지는 결정해야 될걸?"
"음..알았어. 생각좀 해볼게."
"좀 하지 말고 많이 해."
"알았어."
그 말을 한 뒤 시현이는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시현이 시점)
..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학교..가 있었구나..
..
가야되나?
솔직히 말하자면 당연히 존나 가기 싫다.
지금처럼 매일매일 지은이랑 놀고 싶다.
하지만..
그만큼 지은이랑 같은 대학에 가고 싶다.
물론 안가면 엄마한테 죽어서 그런 것도 있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같은 캠퍼스에서 지은이랑 꽁냥꽁냥대며 데이트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처럼 하면 될 리가 없겠지.
애초에 이래뵈도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인데 그리 쉽게 갈 수 있을리가 없잖아.
학교에 가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가더라도 빡쌔게 공부를 해야겠지.
하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학교에 안가더라도 빡쌔게 공부만 하면 갈 수 있다는 소리다.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졸업한 다음 수능쳐서 들어가면 되니까.
근데..
나도 안다.
난 혼자 냅두면 공부를 절대 안한다는 것을.
그렇다고 지은이에게 내 공부를 맡기기에는 문제가 좀 많다.
내가 애교 좀만 부려도 바로 풀어져서..제대로 봐주지도 못하겠지.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고.
어쨌든 그래서 학교에 안간다는 것은 대학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직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학교에 간다고 무조건 공부를 하게 되는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공부는 하게 되고 무엇보다 정시보다는 훨씬 쉽다는 수시의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대학'만을 본다면 학교에 가는게 무조건 낫다.
..
하지만..
대인기피증에 소심한 성격을 가진 내가 학교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나마 지은이한테는 좀 괜찮아졌지만..
아직도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런다.
어쨌든 그런 내가 가서 왕따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나야 학교 그만두면 되니까 상관없지만..엄마나 지은이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장난이 아니라 진짜 학폭 가해자들은 죽을수도 있다.
..
그럼 어떡해..?
음..
일단 지은이한테 한번 물어볼까?
난 바로 방밖으로 나가서 지은이에게 갔다.
(지은이 시점)
시현이가 방으로 들어간지 한참이 지났다.
음..
확실히 쉽게 결정할 사안은 아니긴 하지.
그럼..꽤나 걸릴거 같으니 난 그동안 낮잠이나 잘까..
라고 생각하자마자 시현이가 방에서 나왔다.
"어..시현아. 결정은 내렸어?"
"아니 아직. 그냥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 나온거야."
"물어보고 싶은거?"
"넌 내가 학교에 갔으면 좋겠어? 참고로 진지한 질문이니까 장난칠 생각은 말고."
그런 생각 안했는데;;
"음..내가 어떻게 답하냐에 따라서 너의 결정이 달라지는 건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그래도 내 결정에 꽤나 큰 영향을 끼치겠지."
음..
학교라..
보내는게 맞을까?
..
사실 고민할 것도 없지.
"응. 갔으면 좋겠어."
그런데 내가 별 고민 없이 말하자 시현이가 꽤나 당황한거 같았다.
"왜..왜? 혹시..나랑 같이 있는게 싫다던가 해서 그래..? 아니면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
뭔 말도 안되는 오해를..
..
일단 좀 많이 불안해 보이는데 진정부터 시켜줘야겠다.
난 시현이의 팔을 잡아당겨서 나에게 안겼다.
"꺅!"
시현이가 귀여운 비명을 내며 나에게 안겼다.
존나 귀엽네 진짜..
"후..일단 진정해. 시현아. 뭐가 그렇게 불안한거야?"
"아니..너가 한치의 고민도 없이..내가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고 하니까..혹시 나랑 있기 싫은건가 해서.."
그렇게 말하는 시현이의 눈에는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하..내가 너랑 있는걸 싫어할 리가 없잖아."
"그..그럼 왜..."
"일단 오해부터 풀고 가자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이건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으..응.."
시현이의 얼굴이 아주 빨개져 있었다.
귀여워라♡..
"그리고 난 엄마보다도 아빠보다도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너랑 같이 있고 싶어 해. 죽을 때까지 너랑만 같이 살고 싶어. 너만 있으면 다른 건 모두 상관 없을 정도로. 너랑 어딘가 밀폐된 공간에서 갇혀서 죽을대까지 같이 살아야만 한다고 하면 난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어. 만약 너가 내가 싫어서 떠난다고 하면 방에 묶어둬서라도 안 보낼 거야. 만약 너가 다른 사람이랑 바람이 나면 그 상대방을 죽여버린 다음에 집안에 너를 평생 감금할거야. 만약 너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기꺼이 죽어줄 수도 있어. 대신 내 시체를 항상 너의 곁에 둔다는 조건 하에."
"...."
..
헉!
실수로 본심을 말해버렸다..
..
근데 당연히 무서워하거나 벌벌 떨 줄 알았는데 시현이는 의외로 안심한 것처럼 보였다.
잘못 본 거겠지?
"흠..흠! 방금 말한 것들은 충격요법을 위해 일부러 좀 심하게 말한거지만..어쨌든 그만큼 나는 너랑 같이 있고 싶다는 소리야."
"어..응.."
"하지만."
"응?"
"그만큼..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 사랑스런 시현이가 밖에 나가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보고, 많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 우리 귀여운 시현이도 좀 더 크면 사회에 나가서 살아야 될 텐데 언제까지고 집 안에서만 살 수는 없잖아? 물론 시현이가 원한다면 그렇게 살아도 되긴 해. 하지만 아니잖아?"
"...."
시현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이 언니는 귀염둥이가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는 거지."
"누가 언니야.."
자랑은 아니지만 방금 좀 멋졌던거 같은데..나만 그렇게 느낀건가?
"음...."
그나저나 시현이는 내 말을 듣더니 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해 보였다.
..
근데 왜 내 무릎에 엎드린 채로 고민하는거지?
나 자고 싶은데..
원래라면 볼이라도 만지며 놀았겠지만..지금은 중요한 상황이니 그럴 수도 없고..
..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갑자기 시현이가 일어나서 나를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시..시현아?"
"지은아. 결정했어."
"그래?"
"휴학해줘."
"..응?"
웬 휴학?
"미안하지만 2년..아니 3년만 휴학해줘. 그럼 내가 반드시 너가 다니는 대학에 붙을게."
"그..그말은.."
"어..학교가서 빡쌔게 공부할거야."
..
감동..!
그 찐따같던 시현이가 맞나?
감동받은 나는 내 위에 올라탄 시현이의 팔을 당겨서 끌어안았다.
"잘 생각했어. 한번 열심히 해보자."
"응.."
"근데..3년 휴학이 될까?"
"어..찾아보니까 되긴 하더라. 대신 앞으로 휴학 못하긴 하지만.."
"그건 괜찮아. 우리 시현이랑 같은 학년에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있다면야."
"..고마워.."
그 말을 끝으로 시현이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거짓말같이 둘이 동시에 잠에 들었다.
깨어나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것은 엄마한테 전화하는 것이었다.
시현이가 학교에 간다고.
그러자 엄마는 근처의 고등학교로 전학 처리를 해주었고, 1학기 성적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2학기 성적을 그대로 1학년 성적에 반영하기로 했다.
그러니 이번 2학기를 진짜 개빡쌔게 공부해야 된다는 소리.
..
그러면 지금부터 시켜야 되는거 아닌가?
그런 거 같은데..
..
난 바로 시현이를 깨우고 사정을 설명한 뒤에 책상에 앉혔다.
다행히 공부할 책은 가지고 있었고, 바로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지은아..굳이 지금 해야 돼? 그래도 아직 개학하려면 좀 남았는데.."
"안돼. 아까 다짐은 어디갔어? 열심히 하겠다며."
"다..다음에..개학하면.."
"다음은 없어. 그럼 일단 여기부터 풀어봐."
"....."
"왜?"
..
뭔가를 하려는거 같은데..
내 경험상 지금 할만한건..애교인가.
"지은아♡.."
"안돼."
"그러지 말구..한번만♡.."
"절대 안돼."
내가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시현이가 당황했다.
후후..너가 애교만 부리면 모든게 해결 될 거라 생각했겠지..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만..
걸린게 너의 미래라면 얘기는 조금 달라지지.
귀여운 시현이의 말은 최대한 들어주고 싶지만..그것보다는 시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자..그럼..계속해서 풀어볼까?"
"사..살려줘.."
"에이~ 누가 죽인데? 그냥 지옥을 조금 보여줄 뿐이야~"
"차..차라리 죽여줘.."
"그런거 없단다."
"...."
그렇게 시현이는 개학하기 직전까지 나의 지도 아래서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1부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