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2부 1화 개학 전날 데이트(1)
* * *
내가 지은이에게 강제 스터디를 당한지 어느덧 2주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사람이 이렇게까지 공부할 수 있다는걸 깨달을 정도로 공부를 했고, 덕분에 고1 진도는 완전히 끝냈다.
그리고..어느새 개학 전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약속대로 데이트를 하는 날.
(회상)
"시현아. 내가 보기에도 이정도 분량을 2주만에 끝내는건 좀 말도 안되는 소리 같기는 해."
"그..그렇지? 역시.."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해. 나랑 같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
"나도 미안하게는 생각해. 대신 진짜로 다 끝내면 마지막 날은 데이트 해줄게.
"데이트야 맨날 했던 거잖아.."
"음..그럼 원하는 조건 하나 들어줄게. 예를 들면 고양이귀 쓰고 데이트라든가.."
"지..진짜?"
"응. 대신 못끝내면..알지?"
"당연하지!"
(현재)
그리고 어제 밤, 마침내 정해진 분량까지 공부를 끝냈다.
끝내자마자 쓰러지다시피 잠든건 덤.
어쨌든 그래서 오늘은 조건 하나+데이트 인데..
무슨 조건을 걸어야 될까?
마음 같아선 고양이귀 같은거 시키고 싶긴 하지만..그래도 밖을 돌아다니는 거다 보니 그런 걸 시킬 순 없다.
내 여친의 권위는 내 권위와도 직결되기에.
그렇다고 보이지 않게 노브라 혹은 노팬티로 다니라고 하기엔.. 그러다 실수로 다른 사람이 볼 까봐 무서워서 못 시키겠고..
근데..그러면 딱히 시킬 게 없는데?
..
음..
일단 데이트 하면서 생각하자.
뭐.. 애초에 지은이도 나 공부시키려고 그런 조건을 건 거니.. 내가 그걸 악용하면 안되겠지.
그래..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개소리)
데이트 갈 준비나 하자.
난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지은이를 깨우고 옷 갈아히고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의 데이트는 원래의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데이트와는 다르게 명백한 목적이 있다.
그건 바로 책가방과 필기도구, 그리고 문제집 등을 사는 것.
교복도 사야 되기는 하지만 그건 지은이가 알아서 해결했다고 하니..걱정 안해도 되겠지.
..
응?
잠깐만..
교복?
..
.....
이거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나는 바로 옷을 갈아입는 중인 지은이에게 달려갔다.
"지은아!!!"
"까..깜짝아. 왜?"
"교복."
"응? 당연히 사러 가야지. 왜?"
"아니 입으라고. 고등학교때 교복."
"아..아니..뭔 소리야..갑자기 뭔.."
"이게 조건이야. 그러니 중학교때 교복으로 바꾸기 전에 빨리 입어."
"...."
조건을 들먹이자 지은이가 할 말이 없다는 듯 물러났다.
..고 생각했지만..
"너가 이러고도 앞으로의 공부 생활이 순탄할 거라고 생각해?"
이젠 협박을 해왔다.
하지만..이런 상황에서 저 협박에 굴복해봤자 어차피 나중가서 날 위한거라며 빡쌔게 굴릴게 뻔하다.
즉, 어차피 내가 저 협박에 굴복하든 굴복하지 않든 달라질건 없으니 굴복하지 않는게 낫다는 소리.
"지은아. 내가 고작 그런 협박에 당할거 같아? 그리고 너가 분명 자의로 준 '조건' 인데 이제와서 이렇게 째째하게 구는건 너무 추하지 않을까?"
아까 '애초에 지은이도 나 공부시키려고 그런 조건을 건 거니.. 내가 그걸 악용하면 안되겠지.' 라고 생각하던 사람은 어디 갔지?
..
뭐..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그런데 지은이가 의외로 끈질겼다.
"생각 잘해... 진짜 후환이 두렵지 않겠어?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댔어."
"괜찮아~."
"뭐야..뭘 믿고 그렇게 당당한거야?"
"너가 나한테 해가 되는 일을 할리가 없다는 사실을 믿고?"
"...."
지은이가 얼굴이 빨개졌다.
난 별 생각없이 한 말이었는데 부끄러웠나 보네.
"후..알았어.입으면 되잖아. 대신 앞으로 내가 이런 선물을 줄 일은 없을거야."
"상관 없어~."
사실 상관있긴 하지만 이제와서 약한 척을 할 수는 없으니 넘어갔다.
그리고..지은이가 교복을 다 입었다.
"헤~ 예쁘네."
"그..그래? 고마워.."
사실 고등학교 다닐때 질리도록 본 모습이긴 하지만..그래도 교복 데이트라고 생각하니 좀 더 예뻐 보였다.
하지만…그와 동시에 하나의 충동이 떠올랐다.
'그냥 중학교때 교복 입힐까?'
지은이와 시현이가 만난건 고등학교 때 였으니 시현이는 중학교 때 교복을 입은 지은이를 본 적이 없었다.
지은이가 미쳤다고 자신의 졸업 앨범을 보여줬을 리도 없고..
어쨌든 그래서 익숙한 고등학교 교복을 입었을 때도 이렇게 이뻐 보이는데 처음 보는 중학교 교복을 입히면 얼마나 예쁠까?
물론 좀 작아서 불편하기야 하겠지만..내 알바는 아니니까.
"지은아. 그냥 중학교 때 교복 입.."
"개소리하지 말고 나갈 준비나 해."
깔끔하게 컷당했다.
"옷 다 입었으면 슬슬 나갈까."
"...."
"그렇게 쳐다봐도 내 결정은 바뀌지 않아."
아니 근데.. 그까짓 교복 입는게 뭐라고 저렇게 싫어하지?
난 입으라 하면 별 거부 없이 입을 거 같은데.
뭐..내 알바는 아니긴 하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나는 날 원망하는 듯이 쳐다보는 지은이와 함께 우린 데이트를 하러 출발했다.
일단 가장 먼저 우리는 책가방을 사러 출발했다.
왜냐하면 책가방을 사면 나머지(필기도구,문제집등) 을 샀을 때 책가방에 넣을 수 있기 때문.
그렇게 진로를 정한 우리는 일단 책가방을 사러 대형마트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아까부터 지은이가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못 들고있다.
..
뭐..이유야 생각할 것도 없이 부끄러워서 그런 거 겠지.
나도 겪어 봐서 잘 안다. (36화 레이싱 참조)
다만 이해를 못하겠는 점이 하나 있다면..아까 말했듯 고작 교복 입는 것 따위가 뭐가 힘드냐는 것.
..
어차피 생각해봐야 답은 안나올테니 시현이는 그냥 데이트에나 집중하기로 하고 대형마트 쪽으로 걸어갔다.
..
시현이가 나에게 교복을 입혔다.
그것도 강제로..
아니 다른건 몰라도..누가 미쳤다고 일요일날 교복을 입고 돌아다녀;;
물론 나도 교복을 입는것 자체는 상관이 없다.
고등학교 때 몇백번이나 입었으니까.
근데..휴일에 교복을 입는건 좀 아니지;;
휴일에 교복을 입음 > 정신병자인가? > Yes > ..
휴일에 교복을 입음 > 정신병자인가? > No > 집에 돈이 없나? > Yes > 거지
휴일에 교복을 입음 > 정신병자인가? > No > 집에 돈이 없나? > No > 정신병자인가? > ..
이런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뇌피셜)
하지만..이미 밖에 나와버린게 현실.
돌이킬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여기서 내가 취해야 할 선택지는 두가지.
1. 오히려 이럴 때 일수록 당당하게 나선다.
2.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다녀서 얼굴이라도 숨긴다.
음..
사실 남들은 내가 뭘 하든 관심도 없다는 사실 정도야 알고는 있었지만.. 거듭된 피해망상덕에 현재 원활한 사고가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어디선가 환청이 들리는 듯한 경지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야..저기 봐. 저 여자 휴일인데도 교복입고 다녀.'
'어? 진짜네. 혹시 집안에 돈이 없는건가?'
'아니..옆의 여자애를 보면 그건 아닌거 같은데..'
'그럼 그냥 교복이 입고 싶어서 입은 거야? 그럼 미친건가보네..아직 젊은 나이인거 같은데..안타깝게도..'
..
음..
2번으로 하자.
최소한 얼굴이라도 안팔리면 후환은 걱정 안해도 되겠지.
그렇게 땅에 대가리를 박을 기세로 고개를 숙여가면서 갔다.
..
진짜..두고보자..이시현..나에게 이런 치욕을 주다니..
다음에 공부할 때 기대하는게 좋을거야..
..
뭔가 갑자기 오싹해지는 시현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