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2부 2화 개학 전날 데이트(2)
* * *
걷다보니 어느새 대형마트까지 도착해있었다.
지은이도 시간이 좀 지나니 안정된 것처럼 보였고.
사실상 지금부터가 진짜 데이트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겠지.
일단 원래의 계획대로 우린 책가방부터 사러 대형마트 속으로 들어 간 다음 지체할 거 없이 바로 책가방 파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하이 텐션의 점원이 우리를 받아주셨다.
다만..그냥 하이텐션이 아닌 초 하이텐션의 점원이..
"어서오세요~고객님. 책가방 사러 오신 건가요? 이쪽 분 책가방 사러 오신 거죠? 그럼 이 귀여운 여동생(?)은 언니 책가방 사는데에 따라 온 건가요? 꺄아~ 귀여워라♡!!"
"아..아뇨..그..제 책가방 사러 온 거에요.."
"어머~ 그럼 자기 책가방 사야 되는데 혼자 가기는 무서워서 언니랑 손 꼭 잡고 온 건가요? 너무 귀엽다♡!!"
"아뇨..그..손 잡고....온건 다른...이유가.."
"괜찮아요! 어린애가 혼자 오는걸 좀 무서워 할 수도 있죠! 전혀 부끄러운게 아니에요!"
"아니..저..저..이래뵈도...고등학생인데요.."
"아이구~ 어린이라고 놀려서 싫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은 안돼요! 하지만 귀여우니까 괜찮아요!"
..
이 사람 이상해;;
그 와중 처음 보는 사람이라 말이 자동으로 더듬어졌다.
어쨌든 난 바로 그 하이텐션을 감당할 수 없음을 느끼고는 지은이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지은이쪽을 봤다.
그런데..
"뭘 좀 아시는군요!! 저희 시현이가 좀 많이 귀엽긴 하죠!"
..
저쪽 편에 붙어버렸다.
이 개새..
(TMI: 시현이 키는 154cm. 초6~중1 정도의 키다.)
배신자랑 점원은 그 뒤로 뭔가 하하호호 떠들더니 갑자기 심도있어 보이는 토론을 시작했다.
"시현이는 메이드복이 제일 귀여워요!"
"뭘 모르시는 군요. 이렇게 귀여운 아이는 바니걸이 제일 잘 어울릴 거에요."
"흥. 메이드복 입은 모습은 보지도 않으셨으면서.."
"제가 옷 가게에서 접객일을 하면서 느낀건데요, 거유에게는 바니걸이 더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아까 말하시는거 보니까 바니걸 입은 모습도 못 보신거 같은데요."
..
심도있어 보이는건 착각이었나 보다.
보다 못한 나는 토론중인 둘의 사이에 끼어들면서 말했다.
"저기..우리..그..책가방 사러 온 거 아냐?"
"아니..잠깐만 기다려봐. 이건 자존심을 건 싸움이야."
"그래~ 이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라서..우리 귀여운 아이는 잠깐 이거라도 먹으며 기다려줄래?"
그러면서 점원이 큰 막대사탕을 내밀었다.
..
아니..고작 이런 사탕따위에 내가 넘어..
....갔다.
오물오물..
그렇게 사탕에 넘어간 나는 자리에 앉아서 얌전히 사탕을 맛보고 있었다.
헤헤..맛있당..
그렇게 사탕을 먹고 있었는데..
이번엔 또 그 모습을 보더니 둘이서 뭐라고 토론을 시작했다.
"역시 시현이는 뭔가를 먹을 때가 제일 귀여운거 같아요. 마치 고양이 같아서요."
"뭔가를 먹을 때가 제일 귀엽다는건 동의하지만..저건 누가봐도 햄스터 아닌가요?"
"아니..이거 안되겠네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지은이가 핸드폰을 꺼내서 무언가를 보여줬다.
"뭐죠? 이...."
그리고..그걸 본 점원이 굳었다.
..
뭐지?
뭘 봤길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가보니..핸드폰에 비친건 내가 동물잠옷을 입은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걸 본 나는 자동적으로 지은이에게 화를 냈다.
"야!!!"
"아니.. 이 사람이라면 보여줘도 괜찮을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니 그래도 그걸 막 보여주면 어떡해!!"
"아니 뭐..고작 사진가지고.."
"그게 평범한 사진이 아니니까 이러는거 아냐!"
..
그 와중 우리가 그렇게 말다툼하는 동안 그 점원은 아직도 사진에서 눈을 못떼고 있었다.
뭔가 그 모습이 짜증나게 느껴져서 나는 그 핸드폰을 점원에게서 뺏었다.
"아앗!!"
"그..그만 보세요.."
"칫....알았어.."
어라..?
의외로 순순히 뺏기네?
"어..화 안내시네요?"
"당연하지~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애한테 화를 내겠어~."
"...."
"음..확실히 그건 맞지."
내가 가만히 있자 옆에서 지은이가 동의헸다.
..
이 배신자가..
"그..그..가방이나 고르러갈까?"
내가 째려보니까 지은이가 미안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
이미 늦었어..
나에게 지은이의 신뢰도는 이미 바닥을 친 직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방을 안 고를 순 없기에 지은이를 뒤따라 나섰다.
그렇게 우린 가방으로 고르고 있었고, 그러면서 온갖 잡담이 오갔다.
"와..근데 진짜 고등학생이에요?"
"네.."
"와..버스 450원에 타도 아무도 뭐라 못할거 같은 얼굴로 고등학생이라니.."
"...."
"그럼 이쪽 분은 몇살이세요?"
"전 성인이에요."
..
지은이가 별 생각없이 그렇게 말했는데..
"엥? 그..그럼 교복은 왜.."
"아.."
자신이 교복을 입었다는 것조차 까먹었나 보다.
"아..하하..뭐..그럴 수 있죠~ 누구나 다들 고등학생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한번쯤은 하시잖아요?"
생각에서 끝내는거랑 실제로 교복을 입기까지 하는거랑은 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그 와중 지은이는 지은이대로 억울했는지 변명을 했다.
"아..아니거든요!! 얘가 강제로 입힌거에요!"
"에..엥? 나?"
갑자기 나를 왜 끌고 와 미친년야;;
물론 내가 시킨게 맞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점원은 안 믿어주었다.
"아뇨..이런 귀여운 아이가 그런 짓을 시켰을리가 없잖아요? 모함하지 마세요."
"아니..얼굴이 무슨 상관이야!"
이젠 존댓말도 안한다. 어지간히 억울했나 보지.
"당연히 상관있죠. 귀여움=정의라는 말도 모르세요?"
"큭..정론이다.."
정론은 뭐가 정론이야 미친년이;;
"후후.. 그럼 정의에 대항하는 당신은 악인 건가요?"
"그..그럼..나는 나도 모르게 악에 물들어 버린 건가?"
..
잘들논다 아주..
그 사이 나는 적당한 걸로 가방을 고른 다음 카운터로 가져가서 계산을 했다.
어차피 카드는 내가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다음 지은이에게 가자는 언질을 보내자 지은이가 아쉬워하면서도 따라왔고, 그 점원과는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한 다음 우린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근데..
그 여자를 또 와야 되나?
그 여자가 나쁜건 아니긴 한데..좀 거북하다.
나같은 씹아싸에게 저런 초 하이텐션 여자가 안 부담스러울 리가..
근데..생각해보면 지은이도 아싸아닌가?
친구 나밖에 없는 걸로 아는데..
..
역시 자발적 아싸는 뭐가 달라도 다른건가..
그런 패배감(?)을 느낀 나는 애써 잊어버리고는 다음 것을 사러 갔다.
"근데..필기도구는 굳이 살 필요가 있나? 그냥 너꺼 쓰면 되는거 아냐?"
"안돼. 필기도구는 예쁜걸로 사야지"
"..?"
"농담이고.. 그냥 좋은 샤프 하나 사주려는 거야. 좋은 샤프 쓰면 확실히 느낌이 다르긴 하거든."
"그래..?"
왠일로 정상적인 대답이 나와서 놀랐다.
아까 '예쁜걸로 사야지' 라는 말이 진짜인줄 알았는데..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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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던 대답처럼 샤프 사는 일은 별 재미가 없었다.
지은이가 샤프를 감별하고 나는 그냥 그 옆에서 숨만 쉬는 들러리 느낌.
"저기..이거 좋아보이는데.."
난 가장 괜찮아 보이는 샤프가 있을 때마다 그렇게 말했지만..
"안돼. 이 젤리샤프는 젤리가 약간 이상하게 생겨서 그립감이 이상한 데다가 제로심기능이 없어서 샤프심 가성비가 구린 데다가 심지어 쿠션 기능도 없어. 나머지는 괜찮긴 한데 그 두개가 없어서..그냥 쓰레기란 소리지."
..
제로심..? 쿠션?
그냥 짜져있어야겠다.
그렇게 30분 뒤에야 샤프를 골랐다.
그 동안 진짜 지루해서 죽을 뻔 했지만 근성으로 참아내었고, 드디어 결실을 맺은 셈.
아니 근데..며칠만의 데이트인데 내가 지루함을 느끼는게 말이 되나?
아까는 배신이나 하고..
..
흥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