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2부 16화 학교
* * *
지은이는 그 광경을 보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렇게 방안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지은이는 뒤늦게 현실부정을 시작했다.
몰카겠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잖아?
나보고 기다리라고 해놓고선 먼저 쳐 잔다고?
하하 우리 귀여운 아내님이 그럴 리가 없지!
"저기 시현아? 재밌었으니까 이제 자는 척 그만해."
"zz.."
"시현아?"
"zz.."
시발..
지은이는 확 밀려오는 배신감 때문에 시현이를 침대로 옮기지도 않고 자러 가버렸다.
다음날 아침.
학교갈 시간때 쯤 시현이가 잠에서 깨었다.
"흐아암~ 잘 잤....엥? 나 왜 책상에서 자고 있는..."
시현이는 그 말을 함과 동시에 어젯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리에 앉자마자 '피곤한데 잠깐만 쉴까?' 이지랄하면서 엎드렸다가 5분만에 잠자버린 어젯밤의 기억이..
어제의 공부 할당량을 못 끝낸건 큰 문제가 안된다.
오늘 좀만 더 열심히 하면 되니까.
근데 진짜 문제는..내가 어제 지은이보고 기다리라고 해놓고는 먼저 쳐 자버린 것.
운이 좋다면 별 일 없이 끝나겠지만 아니라면..
"…밖에 나가보자."
일단 상황을 보러 시현이는 방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방 밖으로 나가자 보인건 아무도 없는 거실과 닫힌 안방문이었다.
그리고 [이시현 접근 금지] 라고 적혀있는 안방문에 붙어있는 종이까지..
..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아 보였다.
지금까지 지은이가 화난 적은 많이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나 접근 금지령을 내린 적은 없었는데..
하하..
어떡하지?
일단 지금 필요한 건 사과다.
하지만..
사과를 하려면 접근을 해야한다.
접근을 해야 하는데 접근금지다.
접근금지를 풀려면 풀어달라고 부탁을 해야 한다.
부탁을 할려면 접근을 해야 한다.
..?
…일단 학교부터 가자.
여기서 이런다고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었기에 시현이는 일단 학교로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근데 이거 이러면 오늘 공부는 안해도 되는거겠지?
시현이는 학교로 가자마자 책가방을 놓고 바로 양호실로 향했다.
아파서 그런건 아니고 엄마로부터 조언을 좀 구하기 위해서.
드르륵!
"엄..언니! 물어볼 게 있어요!"
"응? 누구니?"
하지만 양호실에 있는건 엄마가 아니었다.
어..?
왜 다른 사람이..?
"엥..? 어..그..양호 선생님이세요?"
"당연하지. 그럼 내가 누구겠니?"
"아니 그..다른 양호 선생님 없어요?"
"없는데? 이 학교는 나 혼자야.
"그..그럼 어제는요?"
"어제..는 잠깐 어디로 출장갈 일이 있어서 양호실 문 닫았을걸?"
..?
그럼 엄마는 뭐지?
"그래서 여긴 왜 온거니?"
"아…그…머리가 아팠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진거 같아요. 하하…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응. 그래. 잘 가렴."
시현이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시각 양호실 안.
"저기…회장님? 이러면 된 건가요?"
양호선생인척 했던 인물이 커튼 안의 누군가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러자 그 안에서는 무척이나 인자한 (시현이의)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잘했어."
"저기..그럼 이제 전 일 하러 가도 되나요?"
양호 선생인척 했던 사람의 정체는 사실 엄마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었다.
엄마의 비서로 추정.
"아니? 오늘은 계속 여기에 있어야지. 귀염둥이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근데 왜 그 따님분을 안 만나시려는 거에요?"
"우리 귀염둥이가 그냥 쉬러 오는 거면 상관없는데…연애상담을 하러 오는 거라…"
"그게 왜요?"
"그건 나도 못해줘."
"?"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에 비서(추정)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니 회장님도 못하는게 있었어요?"
"너는 뭔 나를 신으로 아니?"
"네."
"...."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흠흠…어쨌든 그래서 나도 연애는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상담은 못해줘."
"근데 결혼은 어떻게 하셨어요?"
"내가 좀 많이 이쁘고 능력이 출중하긴 하잖니? 그거 덕분이지 뭐."
"...."
너무 건방진 말이었지만 비서는 도무지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뭐…어쨌든 이유는 알겠는데요. 그럼 왜 제가 양호선생이라느니..그런 사람은 없다느니..같은 거짓말을 한 거에요?"
"아 그거? 그냥 재밌으라고 한 농담인데?"
"재미없는데요?"
"여기 묻히고 싶다고?"
"다시 생각해보니 재밌는거 같기도 하네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둘의 사이는 꽤나 좋아보였다.
"그나저나 아까 따님분이 진짜 귀엽긴 하네요. 왜 귀염둥이라고 부르는지 알거 같아요."
"그래? 근데 며칠전에 호적에서 파서 이제 따님이 아니야."
"? 장난치지 마요."
"장난 아닌데? 진짜야."
사실이긴 했다. 다만 앞뒤 이유를 짜르고 결과만을 들려줬을 뿐.
"아니 그럼 호적에서 파였는데도 연애상담을 하러 온 거라고요?"
"호적에서 파였으니까 연애상담을 하러 온게 아닐까? 누가 자기 엄마한테 연애상담을 하겠어?"
"어…그런가?"
의외의 논리에 비서가 납득을 했다.
"근데 그럼 그 애 지금 부모가 없는 거에요?"
"패드립은 나쁜 거란다."
"아니 그게 아니라…겨우 고등학생인데 부모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건가 해서…"
"그건 걱정하지마. 곧 생겨."
"엥? 누구요?"
"나."
"???"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은 비서는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호적에서 파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엄마가 된다고요?"
"어. 잘 이해했네."
"하나도 이해 못했는데요?"
"뭐 어쩌겠니. 머리가 나쁜 걸."
"아니 이 설명을 듣고 대체 누가 이해할 수 있는데요?"
"내가."
"...."
"근데 그 애 이쁘지?"
"네. 할 수만 있다면 제가 입양하고 싶을 정도네요."
"그래? 그럼 나랑 비교하면 어때?"
..
비서는 시현이처럼 귀여운게 취향이었지만 나르시스트 기질이 있는 회장님의 눈치를 봐서 대답했다.
"솔직히 두분 다 너무 예쁘시긴 한데…그래도 전 회장님이 좀 더 예쁘신 것…"
"미쳤니?"
"네?"
말을 끝내기도 전에 들려온 격노한 목소리에 비서는 당황했다.
"내가 귀염둥이보다 더 예쁠리가 없잖아? 눈은 장식이니?"
"아..하하..그럴지도.."
확실히 엄마에게 나르시스트 기질이 있는 건 맞지만 그것보단 딸바보기질이 더 컷다.
"후..안되겠다. 넌 나중에 회사에서 보자. 내가 안 예뻐 보일 정도로 괴롭혀줄게."
"아…살려주세요 제발…"
"그런거 없단다."
"아…안돼에에…"
양호실에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한사람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반으로 돌아온 시현이는 그냥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기로 했다.
물론 지은이가 준 오늘의 숙제는 없었지만 그냥 문득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걸 해야만 이따 집에 가서 지은이에게 사죄할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생길 거 같은 느낌.
물론 지은이가 화난 이유는 같이 자게 기다리라고 해놓고는 먼저 쳐 잔게 크겠지만..그래도 공부 안한것도 어느 정도 지분은 있겠지.
그러니 어제 못한 할당량+오늘치 할당량을 지금 학교에서 끝낸 후 집가서 지은이이게 사과를 한다.
완벽한 계획.
하지만..시현이가 하나 간과하고 있는 게 있었다면 실행가능성.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실행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걸 잘 알고있던 시현이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바에 차라리 공부에 집중하기로 했고..
시원하게 망했다.
당연히 처음에는 시현이도 의지에 불타서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의지가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고..점심시간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의지가 사라져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오전중에 빡새게 한 덕에 이미 하루치의 분량은 다 했다는 점.
그리고 불행인 점이라면 어제치의 분량까지 할 의지는 없다는 점.
추가로 밥을 먹은 직후라 엄청나게 졸리다는 점까지.
덕분에 시현이는 567교시를 연속으로 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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