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2부 22화 결석
* * *
그 전화를 받자마자 곧장 엄마집으로 향해서 자고있는 지은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왔다.
물론 혼자는 못 옮기기 때문에 엄마의 도움을 받아서.
"자. 그럼 엄마는 가볼게?"
"엉. 도와줘서 고마워 엄마."
"뭘, 별거 아니야~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귀염둥이의 부탁인데."
"헤헤.."
"그리고 가기전에 한마디만 하자면…죽이지는 마?"
"…알았어."
그 말을 끝으로 엄마는 다시 엄마네 집으로 갔다.
..
근데 사실 별로 화나거나 그러진 않았다.
물론 화날만 한 상황이긴 했었다.
그러니 엄마도 죽이지만 말라는 말을 한 거겠고.
근데 나는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그 대신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마음 속에 꽉 차있을 뿐.
..
근데 저 태평하게 자는 모습을 보니 좀 짜증이 나려 한다.
그래서 진짜로 짜증이 나기 전에 깨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가가서 어깨를 잡고 흔들어보았다.
"지은아 일어나."
"....."
"야. 일어나라고."
"......"
"…뒤지기 싫으면 일어나라?"
"......"
좋아. 지은이로부터 죽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허락을 받은 나는 가장 신사적으로 죽이기 위해 지은이의 입과 코를 막았다.
내 고사리같은 손이나 발로 때려봤자 별로 데미지도 안들어갈 것 같았기에 생각해낸 수법.
어쨌든 그렇게 막고 있자 30초정도 지나서 반응이 왔다.
지은이가 고개를 흔들어서 내 손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
하지만 어림도 없었고, 난 오히려 더 꽉 막아서 절대 떨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렇게 계속 막고 있었는데…
…
…왜 안일어나지?
그 뒤로 꽤나 지난거 같은데?
그러고보니 얼마 전부터 고개를 흔드는 것도 멈췄었다.
....
설…설마…죽…은건가?
순간적으로 불길한 생각이 들어 급히 코와 입을 막던 손을 빼고는 지은이를 깨워봤다.
"지..지은아 일어나봐! 지은아!"
하지만…지은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지은이를 흔드는 것에 따라 축 늘어진 팔다리만이 흔들릴뿐.
"지…지은아?
"......."
"죽은거야…?"
"푸흡!"
"응?"
"푸하하하하하하!!"
"..?"
죽은줄 알았던 지은이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래도 살아있었구나..다행이다.
"아니…중간에 갑자기 입이랑 코 막던 손을 빼고 급하게 내 몸을 흔들더니…갑자기 뭐? 죽은거냐고? 푸흐..진짜 발상도 귀엽네.."
"아니…도대체 언제부터 깨있던거야?"
"고개 흔들 때 부터?"
"그럼 왜 안일어난거야!"
"재밌을 거 같으니까?"
"...."
"그나저나 도대체 왜 죽었다고 생각한거야?"
"…고개 움직이던 것도 멈췄고…팔다리도 축 늘어져있고 그래서…"
"푸흡..시현아. 인간은 그리 쉽게 안죽어. 고작 1분정도 숨 못쉬게 하는 거 가지고 죽을 리가 없잖아?"
"......."
결론적으로 지은이를 깨운다는 목적은 달성했지만…졸지에 자신의 무식함까지 함께 자랑하고 말았다.
지은이에겐 귀엽게 느껴진 것 같긴 하지만…그래도 싫은 건 싫은 것.
"흠흠…어쨌든 그래서…내가 할 말이 좀 있거든? 그거 때문에 이런 짓을 해가면서까지 깨운거고."
"그래? 뭔데 그 할말이?"
"어..그..."
어..? 왜 기억이 안나지?
분명 지은이가 깨어나면 말할 게 많이 있었는데…
...
정황상 방금 지은이가 죽은 줄 알았을 때 머리가 백지가 되어서 다 까먹어버린 거 같았다.
"어…그…너 때문에 까먹었잖아!!"
"..?"
"그러게 왜 죽은 척을 해가지고..!"
"아니…내가 한건 자는 척인데? 죽은 척이 아니라.."
"시끄러!!"
"....."
지은이에게 의미없는 화풀이나 하는 시현이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점심밥을 먹고 있던 와중.
갑자기 카톡이 하나 왔다.
"응? 담임쌤한테 온거네?"
기껏해야 반톡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뭐래 담임쌤이?"
"어…수련회 안갈거면 담임쌤이랑 면담해야 된대서…지금 전화 되냐는데?"
"된다고 해. 뭐가 문제야?"
"…대신해주면 안돼?"
"너 면담을 왜 내가 해?"
"너 쌤이랑 알고 지내잖아…그리고 난 니꺼니까…"
"음…좋아 해줄게."
절대로 방금 나는 너꺼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이러는게 아니다.
그렇게 바로 전화가 왔고, 내가 받았다.
[여보세요? 시현이니?]
"아뇨 저 지은입니다."
[그래? 근데 왜 너가받아?]
"아니 그..시현이가 쌤이랑은 전화하기 싫다고 해서 제가 대신…"
"야!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그래 뭐…대강 상황은 알 것 같네, 옆에도 있는 거 같고…그래서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수련회는 왜 안가려는 거야?]
"아…그게…아시다시피 저희 시현이가 낯을 좀 많이 가려서요…아싸 기질도 있어서 아직 반 애들이랑 친해지지도 못했고, 그래서 가기 싫대요."
일부러 시현이가 화낼만한 말들만 골라서 했지만 이번에 시현이는 가만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라서 그런건가..
[음…그런가. 그럼 너 생각은 어때?]
"저는…그래도 갔으면 좋겠죠. 한번뿐인 고등학교 수련회인데."
[그럼 너가 설득하면 되지 않아? 너 말이면 다 들을텐데]
"하하…저도 해봤는데 안되더라고요. 차라리 그 시간에 저랑 여행이나 가고 싶다고 하고."
[응? 수련회 안가도 학교는 나와야 되는데?]
""네?""
처음 들어보는 황당한 말에 나랑 시현이 둘 다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되물었다.
[아니…출석 안할거야? 수시 노릴거라면서?]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네요…"
"그럼 우리 여행 계획은 어떡해?"
"망한거지 뭐."
[그럼 혹시 생각이 바뀌는 건가?]
"아뇨 전혀 절대 네버."
여행은 그냥 수련회를 안갔을 때의 부수적인 이득에 불과했을 뿐, 근본적인 수련회를 안가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래? 그럼 진짜 안가는거지?]
"네. 누가 뭐래도 절대 안가요."
근데 아까부터 왜 시현이가 대답하는 거지?
분명 핸드폰은 내가 들고 있는데…
[그래. 그럼 안간다고 해둘게. 혹시라도 마음 바뀌면 알려줘.]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일단은 알겠어요."
[그래 그럼 남은 주말 잘 지내고 내일 보자]
"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그렇게 전화가 끝난 후, 둘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서 토론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내용은 여행에 관한 것.
"…그래서 우리 여행은 어떡해?"
"음…일단 3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번째는 그냥 당일치기 여행을 하는 것. 두번째는 학교를 빠지고 여행을 가는 것, 세번째는 그냥 여행을 포기하는 것."
"일단 당일치기 여행은 싫어. 그게 무슨 여행이야."
"그럼?"
"정 방법이 없으면 여행을 포기해야겠지만…그 전에 학교 빠진다는 건 뭔 소리야? 무단결석?"
"아니, 그럴리가. 당연히 병결같은 걸로 합법(?)적으로 빠지는 거지."
"근데 병결은 처방전 같은 거 필요하지 않아?"
"그렇긴 한데…그건 엄마한테 부탁하면 알아서 해 줄걸?"
"그런가?"
의사 자격증이 있고 현직 양호선생이기도 한 엄마의 힘이면 안될 게 없다.
"그럼 그렇게 할까?"
"…아니."
"엥?"
당연히 긍정의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부정의 대답이 나왔다.
…근데 왜?
도대체 왜 부정을 하는 거지?
여행가기 싫은 건 아닐테고, 학교에 가고 싶어서(..)는 말할 가치도 없고..엄마한테 빚지기 싫어서..같은 것도 아닐텐데?
"아니…왜?"
"일단 병결은 사실상 결석허용권이잖아?"
"뭐…그렇긴 하지. 근데 그게 뭐?"
"내가 좀 찾아보니까…수련회 안가고 등교하면 자습+오전수업만 하고 보내준대."
"그게 왜?"
여기까지 들었는데도 도저히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아직도 이해를 못했어? 기왕 빠질거면 이런 날보다 평범하게 7교시까지 하는 수업날 빠지는게 낫다는거잖아."
"....."
…
이 미친년이 돌았나?
"그 말을 듣고 확신했다. 죽어도 엄마한테 도와주지 말라고 해야겠어."
"엥..? 왜..?"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무슨 여행을 가?"
"아…아니…"
"그게 싫으면 약조해. '이번 수련회때 병결을 한 후 다시는 병결을 하지 않겠습니다(진짜로 아픈 경우 제외)' 라고. "
"그…그건 싫어…"
"그래? 그럼 엄마한테…"
"아…알겠어! 한다고 해!!"
"진작 그럴 것이지."
그렇게 시현이는 울상을 지으며 약조를 했고, 그 뒤로 그 둘은 어디로 여행갈 지에 대해서 찾아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