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짧은 외전 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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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시점: 여름방학 끝나기 전)
한국대에는 별로 특수하지는 않은 규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휴학을 하려면 담당교수와의 면담을 거쳐서 승인을 받아내야 된다는 것.
그래도 보통은 자기돈 내고 학교 다니는 것이었기에 어지간하면 승인을 안해주지는 않았지만…가끔가다 ㅈ같은 이유를 대면 승인 안해주시는 교수님들이 있긴 했다.
대표적으로 어떤 학생은 자신이 너무 예쁘기 때문에 다른 애들이 자꾸 쳐다보는게 부담스러워서 학교 못가겠다고 했었는데, 개소리 하지 말라면서 취소당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얘기를 왜 하냐면..내가 아까 휴학신청을 했고, 지금 담당교수님께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일단 난 전화를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어 지은아. 너 휴학신청 했다면서?]
"네."
[기간은 어느정도니?]
"그..3년이요.."
[…뭐?]
목소리를 들어보니 정말로 당황을 한 거 같았다.
[3년? 내가 잘못들은거지? 응? 지은아.]
"아뇨. 제대로 들으셨어요. 3년 맞아요."
[니가 드디어 미쳤구나?]
"교수님만할까요?"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나랑 교수님은 친한편이다.
이정도 농담쯤은 가볍게 웃어넘길 정도로.
[하…이유나 들어보자. 도대체 왜 3년인데?]
"그…사실대로 말하자면…제가 사실 3살 연하의 애인이 있거든요?"
[…여보세요? 거기 경찰이죠?]
"아 그런거 아니라고요!!"
[뭐 자식아. 니보다 3살 연하면 아직 성인도 안된 애기라는 거잖아?]
"뭔 애기에요! 그래도 고등학생이거든요?"
[에휴, 뻔하다 뻔해, 하긴 그 얼굴로 못 사귈 남자가 있겠냐? 연하든 연상이든.]
"어…여자에요."
[아 그러냐?]
나도 모르게 뜬금 커밍아웃을 해버렸다.
물론 교수님은 그딴 거 신경 안쓰셨지만.
[뭐…그건 그렇고, 그래서 3년 연하 애인이 있는게 왜 휴학 사유가 되는 거냐?]
"그…걔가 우리 학교 올 때까지 휴학했다가 같이 다니려고요…"
[…뭐?]
교수님은 아까 3년 휴학이라고 말했을 때만큼 놀란 목소리로 물어봤다.
[아니..야. 6개월/1년이면 그렇다 치겠는데…심지어 2년도 아니고 3년? 이게 말이 된다 생각하냐?]
"안될게 뭐가 있어요? 그리고 정 그러면 2년 반만 할까요?"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그리고 우리 학교가 아무나 오는 학교야? 너가 더 잘 알겠지만 내신 1점 중반대는 꿈도 못꾸는 학교가 우리 학교야.]
"괜찮아요. 누구 애인인데."
[....]
내가 생각보다 완강한 태도를 보이자 교수님이 의외로 그냥 포기해주셨다.
[그래...뭐...너 정도면 알아서 잘 하겠지. 우리 학교 최고 우수생인데. 그럼 휴학승인한다?]
"네. 감사합니다."
역시. 일단 성적을 잘 받아야 해.
모범생으로 낙인이 찍히면 뭐든 잘 해준다니까?
[근데..]
"왜요?"
[니 여친..어떤 애냐?]
"뭐가요? 외모? 성격?"
[전부 다.]
"음..외모는 일단 이세상의 그 누구도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예쁘고요…아마 아프로디테정도는 되어야 비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키는 작고 성격은 약간 소심하지만 그 두가지가 맞물려서 보호욕구를 자극시키는 귀여움이 느껴지고, 그런 주제에 집착도 어느정도 하고 독점욕도 커요. 물론 그것마저도 귀엽지만.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착하고 자기가 맡은 일은 끝까지 하는 등의 책임감도 있어요. 공부도 이대로면 한국대는 무리없이 갈 수 있을 정도로 잘하고 수학경시대회 상도 탄적 있어요. 소심한 성격때문에 교우관계가 약간 좁긴 하지만 그 덕분에 저만 바라봐주기도 하죠. 유일한 오점이라면 운동을 못한다는 건데 그정도야 진짜 옥의 티 수준이라 별 상관은 없어요. 종합하자면 운동을 제외하면 다 잘하는 굳이 이렇게까진 완벽하지 않아도 되지만 완벽한 저의 사랑스런 여친이라는 거죠."
[.....]
"......"
[…어…그러냐…]
쌤은 내 긴 설명을 듣다보니 정신이 나간 것 같았고…그 때문인지그 뒤로 우린 약간의 잡담만 나누고 전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큰거 한건 했으니 이제 좀 쉴려는데..
"전화 끝났어?"
"어.……엥?"
뒤를 돌아보니 시현이가 내 방에 와있었다.
과일을 든 채로
"왜…왜 왔어?"
"과일 좀 주러."
"그…서…설마들은 건 아니겠지?"
"뭐를? '외모는 일단 이 세상의…(중략)…완벽한 저의 사랑스런 여친이라는 거죠.' 라고 말한거?"
"......"
시발..망했다..
"자. 그럼 굳이 이렇게까진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데 완벽한 지은이의 사랑스런 여친은 과일만 놓고 떠날게?"
"....."
"어라? 왜 그래? 굳이 이렇게까진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데 완벽한 지은이의 사랑스런 여친의 애인아?"
"아아아악!!!"
그 뒤로 일주일동안 시현이는 트라우마가 생길정도로 놀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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