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2부 35화 다시 일상
* * *
그 뒤로 시현이는 집에 도착하고 한동안 우울한 상태로 있었다.
헌혈을 못했기 때문(=4시간 추가로 봉사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껏 나갔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들어온 게 억울해서이기도 했다.
지은이도 화 풀어줄 방법이 없어서 그냥 알아서 풀리길 바라며 냅두고는 자기 할 일(인방보기)을 했다.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고있었는데…
"아무래도 안되겠어. 나 오늘부터 살찔거야."
"힉!! …응? 뭐라고?"
갑자기 시현이가 비장한 눈빛을 하고는 나와서 말했다.
"나 살쪄서 반드시 헌혈할거야 진짜."
"그래. 잘 생각했어. 넌 좀 쪄야 돼."
상식적으로 몸무게 앞자리수가 3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앞자리수만 따지면 나의 절반이었다.
절대 내가 살찐게 아니다.
..
아니겠지?
"시현아. 나 혹시 살쪄보여?"
"…응? 아니 전혀."
"아니 보기만 해서 어떻게 알아. 만져보고 말해봐."
"…안쪄보인다니까?"
"아니야. 난 믿을 수 없어. 빨리 만져봐."
"....."
결국 지은이의 억지에 시현이는 지은이의 배 부분을 만졌다.
그것도 생으로.
그렇게 시현이가 만져본 것에 따르면 지은이의 배는 그동안의 운동때문인지 매우 딴딴했고, 초콜릿 복근도 느껴졌다.
그리고 키가 커서인지 내가 지은이 복근에 안겨있는 듯한 느낌도....기분 좋..
"어때?"
"복근 개쩌네……가 아니라!!…흠흠.뭐, 딱히 살찐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 고마워."
이 고마워는 복근 개쩐다는 말에 대한 것이었을까 살찐게 아닌 것 같다는 말에 대한 것이었을까?
조금 식상하지만 둘 다였다.
"어쨌든 그래서 살을 찌워야 하는데, 뭐 어떡해야 되는거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많이 먹는 수밖에."
"운동은? 안해도 돼?"
"음…그건 일단 좀 찌우고 생각하자."
그렇게 시현이의 많이 먹기 특훈이 열렸다.
"좋아. 일단 많이먹는데에는 뷔페만한게 없지."
"근데 뷔페는 비싸지 않아?"
"당연하지.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너가 책임감을 가지고 많이먹지 않을까?"
"오..그거 말 된다!"
"그래 그럼 가자!"
그리고 그날 시현이는 토했다.
덕분에 몸무게는 1kg
다음날.
"음…억지로 먹이면 확실히 부작용이 나오네. 그럼 그냥 집밥을 먹는 대신 진짜 배부를 때 까지먹자."
"알았어."
그렇게 밥을 먹었지만…이번엔 맛이 없었다.
"나 못먹겠어.."
"엥 벌써? 어제보다도 훨씬 적게 먹었는데?"
"어제는 맛있는 것들이라서…그나마 괜찮았는데…집 밥은 맛없어."
"....."
확실히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다보면 질려서 맛없어지는데, 별로 맛없는 음식을 계속 먹으니 당연히 먹기 힘들었다.
배가 부른 건 아니었지만 더는 못먹겠다는 점은 매한가지.
그렇다고 이제와서 맛있는걸 먹으러 가거나 주문하기엔 그래도 밥을 먹었기에 어느정도 배가 불렀고.
"…그럼 어쩔 수 없지. 일단 지금은 그만먹고 이따 점심 저녁 때 많이 먹자."
"응.."
그리고 점심.
"이번엔너가 좋아하는 햄버거 시키자. 그리고 남겨도 되니까 많이 시킬게. 최대한 많이 먹어."
"응. 알았어."
확실히 시현이가 좋아하는 햄버거라면 많이 먹더라도 어느정도 부담이 덜할 것이다.
그리고 남겨서 돈 손해가 발생하더라도…어제 뷔페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햄버거를 시켰고, 하나를 통째로 먹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특훈 덕분인지 배가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고, 다음 버거를 먹으려 손을 뻣어보려 했지만…
"치즈가 너무 느끼해서 더 못먹겠어.."
"응? 아니 너가 이거 골랐잖아?"
"맛있어서 골랐지. 근데…먹다보니 너무 느끼해…"
"그럼 지금까진 어떻게 먹었는데?"
"본격적으로 느끼해질 때 쯤 버거를 다 먹었어."
"아. 뭔지 알겠네. 근데 지금은 그 버거를 하나 더 먹어야 되는 상황이라는 거지?"
"응. 완벽해."
하씨…정말 창의적으로 실패를 하는구나.
"그럼 그냥 안 느끼한 버거를 먹으면 되는거 아니야? 치즈 안들어가는거."
"그건 맛없어."
"....."
그렇게 점심도 실패를 해버렸다.
그리고 저녁.
"후…그래서 종합해보면, 느끼하지 않고, 맛 없지 않고, 많이 사둬도 될 정도로 비싸지 않은 음식이면 되는 거지?"
"응. 그거면 돼."
"음…떡볶이는 어때?"
"매워.."
"국밥은?"
"맛없어.."
…국밥이 맛이 없을 수가 있나?
"근데 그럼 없는데?"
"..그냥 포기할까..?"
먹고 싶은 걸 참는 것도 힘든 일이긴 하지만 못먹을 것 같은데 강제로 더 먹는 건 정말 상상이상으로 힘들었다.
그리고 자칫하면 한번 더 토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망설여졌다.
"그래 뭐, 그냥 포기하고 평범하게 봉사하자. 내가 같이 해줄게."
"…위로해줘서 고맙긴 한데, 그건 당연한거야."
"위로를 해줘도 참..그래서 포기할거야?"
"어. 그냥 포기하고 비참한 패배자의 삶을 살아가자."
그 뒤로 저녁은 맛있는 갈비먹으러 갔다.
그 뒤로 며칠 지난 후.(주말)
오늘도 후원을 하고 있던 지은이는 중대한 사실을 눈치채고 말았다.
"크..큰일났다!!"
"응? 뭐야 왜?"
"돈이 없어.."
그저께의 뷔페, 어제의 2연속 외식, 그중에서도 한번은 그 비싸다는 갈빗집이었고, 나머지 한번은 그나마 싼 햄버거였지만, 그것도 꽤나 많이 시키다보니 무시할 수 없는 가격이 나와버렸다.
하지만 그동안 돈을 꾸준히 모았으니 원래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약간 달랐다.
지은이가 인방에 돈을 꼬라박았기 때문.
그리고 당연하지만 지은이가 그 사실을 시현이에게 알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기서의 선택지는 두가지.
1. 돈을 쓴 거 자체를 비밀로 한다. =가만히 있는다.
2. 돈을 쓴 사실은 알리지만 다른 돈을 쓴 알리바이를 준비한다.
일단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2가 정답이었다.
위험도도 낮고, 들킬 확률도 낮았다.
하지만…지금 당장이 조금 귀찮았다.
지금 당장 돈이 없다는걸 어필해야 하니까.
반면 1은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된다.
물론 나중에 돈 쓸 때가 되면 들키겠지만 지금은 편하다.
음..
"왜 그래 지은아?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일도 없는데? 왜?"
결국 1번을 택했다.
모든 게 다 우세해도 결국 지금의 귀찮음이 승패(?)를 가른 것.
"근데 우리 점심 뭐먹을까? 시켜먹을까?"
"아…아니 오늘은 그냥 집 밥 먹는게 어때?"
"음…오늘따라 입맛이 없어서 시켜먹고 싶었는데…안돼?"
아니 갑자기 왜 이러세요;
지금까지 한번 불평없다가 갑자기 내가 돈 없는거 숨기려니까 돈 쓰겠다고?
그렇다고 거절하기엔…날 눈 치껴뜨며 바라보는 시현이가 너무 귀여웠다.
진짜 쓸데없이 귀여워가지고..
…쓸데있나?
"알았어 사줄게!"
"진짜? 고마워!"
"근데 그 전에 나 잠깐 밖에 돈좀 찾으러 갔다올게."
"응? 알았어."
누가 봐도 은행에 갔다 올 것처럼 말한 다음에 난 바로 은행…이 아니라 어머니의 집으로 갔다.
돈 좀 찾으러.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 용돈 1개월치만 가불해주십쇼!!"
그리고 가자마자 바로 그랜절 박음과 동시에 구걸을 했다.
그게 제일 가능성이 높았기에.
"그게 다야?"
"아니 그럴리가. 제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자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심성마저 고우신데다 카리스마와 재력까지 갖추신 둘 이상은 존재할 수가 없는 완전체 어머님."
"음…나쁘지 않네."
좋아..!
엄마에게 뭔가 부탁을 할 때는 조건이 있다.
1. 귀여울 것
2. 자신을 찬양할 것
(귀여울수록 2의 컷이 내려감>시현이정도 되면 2스킵가능)
어설프게 자기가 왜 이게 필요한지 같은 이유를 말해봤자 엄마는 관심도 안가진다.
중요한 건 찬양.
물론 그 전에 1을 통과해야 하지만.
1은 다행히 나정도면 통과인 듯 했고, 2도 다행히 통과한 것 같았다.
"그래서? 한달치 용돈만 가불해줄까?"
"엉."
"그래. 넣어줬으니 이제 가봐."
"고마워 엄마!"
그래도 이왕 왔는데 그냥 가긴 좀 그래서 엄마 뺨에 뽀뽀한번 해주고 갔고, 덕분에 기분 좋아진 엄마가 5만원 더 넣어줬다.
어쨌든 그렇게 성공적으로 돈을 찾아온 나에겐 이제 생색내는 일만 남았다.
"시현아! 먹고싶은거 다 시켜!"
"진짜?"
"당연하지! 난 한입으로 두말안해!"
그리고 일주일만에 가불받은 용돈을 탕진해버렸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지은이는 인방에 더이상 돈을 쓰지 않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