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2부 40화 기말고사 이후
* * *
그래도 결국 전교1등이란 사실을 알리는데에는 성공했고, 그 뒤로 신나게 놀 수 있었다.
푸딩도 3개씩 먹고,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데이트도 하고, 등등으로.
다음날이 되어 학교에 가게 되었지만, 어차피 기말끝난 학교는 수업을 안했다.
그리고 학교에서랑은 별개로 시현이도 좀 쉴 기간이 필요하다 판단했는지, 혼자 하던 공부도 며칠간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놀기만 할 뿐.
물론 그럴만한 성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놀다보니, 점점 겨울방학이 가까워졌고, 그에따라 자연스럽게 결혼식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우리 결혼식은 언제한대?"
"몰라. 엄마가 알아보고 있을 걸?"
"아니, 우리 결혼식인데 왜 엄마가 알아봐?"
"너 미국인이랑 대화할 수 있어?"
"아니.."
"아니면 엄마보다 더 일 잘할 수 있어?"
"아니.."
음, 다시 생각해보니 엄마한테 맡기는 것도 꽤나 괜찮은 것 같네.
"그럼 엄마한테 아직 소식은 없는거지?"
"엉."
"이제 방학도 얼마 안남았는데..뭐, 괜찮겠지?"
띵동!
"엥? 누구..?"
라 말은 했지만 사실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당연히 엄마겠지.
"앗! 그럼 혹시 결혼식에 관련된 소식 전하러 온건가? 빨리 나가보자!"
"흠, 그렇..겠지? 그게 아니라면 딱히 올 일이 없을테니."
그렇게 지은이도 내심 기대하며 엄마를 맞으러 나갔다.
"자."
그런데 엄마는 만나자마자 큰 통을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뭐야?"
"김치. 김장한 김에 좀 가져왔어."
"어..그렇구나. 지금 김장철이네. 고마워 엄마."
"고마워할 필요 없어. 어차피.."
..?
왜 고마워할 필요가 없다는거지? 뒷말이 있던거 같았는데 너무 작게 말해서 들리지가 않았다.
뭐, 굳이 유추해보자면 김장김치 좀 나눠주는 건 고마움 받을 일도 아니라는 거였을라나?
"뭐, 그럼 일단 엄마는 가볼게. 둘이 잘 놀고."
"응..알았어 엄마."
근데 내가 더 이상의 생각을 하기 전에 엄마는 내려가버렸다.
..근데 결국 결혼식 관련 이야기는 아니었다.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받았으니 먹어볼까?"
"저녁 보쌈으로 가자!"
나의 의견에 지은이도 암묵적인 동의를 해주었다.
역시 김장김치엔 보쌈이지.
마침 집에 돼지고기도 남아있어서 만들기도 어렵지 않았다.
사실상 보쌈을 먹으라고 하늘이 강요하는 수준.
...이라 굳게 믿고 돼지고기를 삶았다.
잠시 뒤.
"다 된거야? 이제 먹으면 돼?"
"어."
지은이는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보쌈고기를 김치에 싸서 먹기 시작했...
"..이거 맛이 왜이래?"
"엥? 왜?"
혹시 고기가 상한건가? 아니 그럴리가 없는데..
"아니, 김치가 뭔가 맛이 이상해."
아, 김치 문제였구나. 다행이....가 아니라 김치가 왜?
그런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지은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대답을 해줬다.
"뭐라해야되지? 그 약간 쓰다고 해야하나?"
"아니 김치가 어떻게 써?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아니 진짜라니까? 한번 먹어봐."
"도대체 어떻길래.."
그런 말을 하며 나도 김치를 한입 먹었다.
"음..이건 쓰레기가 맞는거 같다."
어떻게 김치에서 쓴맛이 나지?
"역시, 엄마가 우리한테 쓰레기를 떠넘긴거였어."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생각을 해봐, 지금까지 김장의 ㄱ자도 모르던 엄마가 갑자기 김장을 해와? 그것부터가 말이 안됐어. 그런데 그 엄마가 김장김치를 우리한테 무보상으로 주고는 감사할 필요도 없다고 하네?"
"..확실히 그렇게 말하니 맞는 거 같네."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린 엄마의 함정에 당한 거라는 사실을.
물론 엄마도 처음부터 우릴 엿맥이려고 이런 건 아니겠지.
시작은 순수한 마음이었을 거다.
그냥 한번 직접 김장해볼까? 같은 마음.
하지만 그 괴멸적인 요리솜씨에 탄생한 건 김치가 아닌 쓰레기.
먹긴 좀 힘들고 그렇다고 버리기엔 노력이 아깝다.
그렇기에 이 김치인 척 하는 쓰레기를 없애려면 나 대신 먹어줄 다른 누군가가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그런데 마침 바로 윗집에 사는 우리 딸들이 있네?
>현재
물론 이건 단순한 가정이었지만 이 가정 이외의 가능성은 떠오르지가 않았다.
[벌써 알아차리다니..꽤나 대단한걸?]
본인도 그걸 긍정하고 있었고.
"아니 엄마! 진짜 이건 너무한거 아니야? 우릴 쓰레기처리반으로 여긴 거 아니야!"
[...결혼식 빨리 알아봐줄게]
"그럼 어쩔 수 없지."
엄마도 미안하다 느꼈는지 사죄용 조건을 거셨다.
물론 그게 마음에 들어서 난 바로 용서를 해줬고.
그러고보니 그동안 결혼식 관련 소식이 없었던 건 김장하는 것 때문인거였나?
물론 김장은 2일정도면 가능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정보찾는 시간 + 시행착오 시간까지 포함되다보니 훨씬 늘어날 것이 뻔했다.
[그럼 엄마는 이만.]
"엉, 빨리 가서 찾아봐."
[....]
뚜뚜..
엄마는 대답하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뭐, 결혼식 알아보느라 대답할 시간도 없다는 거겠지?
[담임쌤 시점]
보통 학급들은 기말고사 끝나고 겨울방학을 하기 전에 체험학습을 한 번 간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시현이네 반도 마찬가지.
다만 시현이네 학교는 기간이 기간이다보니 학생들에게 최대한 자유를 주기 위해 체험학습 가는 곳을 학생들 스스로 정하게 해주었다.
학생들이 모여서 투표로 가고싶은 곳을 정하고 담임쌤은 어지간하면 그걸 받아줘야했다.
하지만..
[가고싶은 곳: 시현이네 집]
이걸 받아줘야 하나?
물론 갈 수 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전에 어떤 애들은 북극, 달, 에베레스트 같은 것들을 써냈었는데 그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천사지.
다만..그렇다고 이걸 용인해도 되는건가?
정황상 시현이는 당연히 반대했겠지만 민주주의 특성상 한명의 반대는 결과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전원이 찬성해서 결국 가결됐겠지.
"쌤, 그래서 찬성해주시는 거죠?"
"당연히 해주시겠죠?"
눈 앞에 쌤이 거절할 거라는 생각은 1도 없이 종이를 내미는 반장과 부반장이 보였다.
"..시현이 데려와."
"아 왜요! 투표로 정한 건데!"
"사유지는 예외지. 당연히 그런 곳은 주인의 허락이 필요한거 아니겠니?"
"아 진짜 그렇게 안봤는데 쌤 실망이에요."
"개소리하지말고 다시 정해오기나 해."
"흥!"
"어디서 애교야. 빨리 안나가?"
"칫, 알았다구요."
내가 약간 화난 척을 하자 투덜거리며 나갔다.
..쟤네들은 언제 사람될런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
"야 애들아 쌤이 거절했어!"
"아니 왜?"
"도대체 왜?"
"하..이렇게 민주주의가 죽는구나.."
"죽긴 개뿔이 죽냐 이년들아. 이게 당연한거지."
이놈들의 한심한 소리들에 조금 험한 말이 나와버렸다.
물론 나도 실제로 허락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했지만 다행히 거절해주셨다.
정의는 살아있다!
"어쨌든 그래서 다시 갈 곳을 정해야 해."
"하, 이걸 다시 정하라고?"
"더러운 세상!"
당연하게도 애들은 반발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그런 걸.
어쨌든 그렇게 다시 정했고, 이번엔 평범하게 아쿠아리움이 나왔다.
당연히 쌤은 승인을 해줬고.
그리고 그 뒤로는 딱히 별 일 없이 집으로 와서는 지은이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래? 아쿠아리움이면 잘됐네. 너 놀이공원같은데는 싫어하잖아."
"아니, 어차피 난 빠질건데?"
"..?"
지은이는 잘됐다는 반응을 보였었지만 내 뒷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멀쩡한 체험학습을 왜 안가?"
"저번에 너랑 수학여행 포기하고 여행가려다가 그냥 수학여행 갔었잖아. 그 대신 이번엔 빠지고 너랑 여행가려고."
"시..시현아!"
지은이가 감동받은 표정을 하고는 날 껴안았다.
뭐, 이런 반응을 바라고 한 말은 맞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
그리고 나도 내심 껴안아주는게 기쁘긴 했으니 지은이의 이런 행동에 나도 같이 껴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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