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2부 41화 겨울방학 직전 여행
* * *
여행 계획을 짜기 전, 나는 지은이에게 한마디를 했다.
"지은아 나 귀찮은데 이번 여행은 그냥 너한테 맡길게. 어디 가든 뭘 하든 따라 줄 테니까 나 신경쓰지 말고 알아봐."
"엥..진짜?"
"어. 나 한입으로 두 말 안해."
이 말을 한 것에는 2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순전히 지은이가 원하는 곳에가서 원하는 것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저번에 수학여행 대신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했던 지은이의 마음을 짓밟은 것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고.
어쨌든 이번 여행에는 지은이가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두번째는, 말했던대로 그냥 귀찮았다.
기말고사 끝나서 놀아야 하는데, 여행갈 곳을 고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세번째는, 수련회때랑은 어차피 당일치기일 텐데, 딱히 갈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고른다고 해봤자 내 마음에 드는 곳이 있을리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
그래서 이상의 이유로 지은이에게 모든 권리를 위임했고, 지은이는 아주 좋아하며 받아갔다.
이것이 바로 쌤쌤.
그렇게 나는 미래의 나가 지금의 나를 죽여버리고 싶어한다는 것도 모른 채 약간의 자유시간을 즐겼다.
며칠 뒤.
"자. 받아."
"? 이게 뭔데?"
"비행기 표."
"??"
"그래도 이왕 여행가는건데 제주도정도는 가줘야지."
"아니 당일치기인데 제주도를 간다고?"
비행기로 왕복하는데만 4~5시간정도 걸릴텐데?'
심지어 이번 체험학습은 하필 수요일이라서 주말과 연계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내 의문에 지은이는 근본부터 부정해주었다.
"응? 뭔 소리야 당일치기 아닌데?"
"엥? 뭔소리야?"
"전날(화요일) 학교 끝나고 바로 출발하는거지. 그리고 올 때는 목요일 새벽 비행기 타고 와서 넌 바로 학교로 가는거고."
지은이의 말대로라면 1박2일도 아니고 무려 2박3일을 제주도에 있는 셈이 되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제주도에 있는 시간은 40시간도 안되겠지만.
"이야…근데 새벽 비행기 타려면 꽤나 일찍자야겠네."
"뭔 소리야? 안자고 비행기타는거지."
"? 그럼 나 잠은 언제자?"
"비행기에서, 아니면 학교에서."
"…그냥 전날 밤에 오면 안돼?"
"이미 비행히 예약했어."
"....."
이럴 때만 쓸데없이 행동력이 좋다.
그 잘난 행동력으로 데이트할때 리드나 좀 잘 해볼것이지..
"뭔가 날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한데.."
"착각이니까 걱정하지마."
"그, 그렇겠지?"
"그럼. 이상한사람을 아상하게 보는게 어떻게 이상한거야?"
"...."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기행때문에 차마 반박을 할 수가 없는 지은이였다.
"아니 근데 최근엔 꽤나 얌전하지 않았나? 오히려 푸딩도 많이 사주는 등 꽤나 착하게 살았던거같은데."
"? 그래서 내가 뭐라 했어?"
"…아니."
확실히 시현이는 이상한 사람이라고만 했지 이유는 말 안했다.
그리고 그 전 상황으로 유추해보면 높은 확률로 비행기 표 때문이라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찔리는게 좀 많았던 지은이는 제 발이 저렸는지 시현이가 별 말 안했음에도 자기 변호에 나섰다.
물론 덕분에 더 이상하게 보였지만.
그 뒤로 시간이 지나 체험학습 전날이 되었다.
어차피 할 것도 없어서 최소한의 공부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놀기만 하다보니 시간은 빠르게 갔고,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체험학습 전날이었다.
지은&시현에게는 제주도로 출발하는 날.
"갈 준비 됐어?"
"어. 가자."
둘은 제주도를 향해서 출발했다.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반정도 지난 후, 둘은 드디어 제주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아, 제주도 공기 상쾌하네."
"그냥 갑갑한 비행기에서 내려서 편하게 느껴지는거 아니야?"
"어허, 조용히 해."
저번 퍼스트클래스 비행기 때와는 다르게 이번엔 각자에게 배정된 공간은 좁은 좌석 하나였다.
그렇기에 당연히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나저나 고작 한시간 반으로 이정도라니..해외로 가게되면 어떡하려고."
"당연히 퍼스트클래스로 가야지."
"돈있어?"
"다시 생각해보니 굳이 해외로 나갈 필요는 없는거같아. 우리나라 국민은 우리나라에서 살아야지."
"정말 테세전환이 남다르네."
"시끄러."
그런 소소한 얘기들을 하며 둘은 미리 잡아뒀던 숙소로 향했다.
"근데 숙소가 어디야? 차 안타고 걸어가도 돼?"
"아, 여기 근처에 있어. 걱정하지마 금방이야~."
"그래? 그럼 뭐....가 아니라 근데 왜 산길로 가는거야?"
"가장 빠른 길로 가는거니까 걱정하지마.
"흠…그래?"
뭐, 원래는 빙 돌아가야 되는걸 산으로 가면 직선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이겠지?
산이라면 질색을 하는 시현이였지만 '그래도 빨리 갈 수 있다면야'라는 생각에 지은이를 따라나섰다.
20분 뒤.
"허억..허억..여기로 가는거 맞아? 얼마나 더가야 돼?"
"여기로 가는거 맞고. 거의 다 왔어. 걱정하지마."
"허억...다 오긴 개뿔이..근처에 집은 커녕 사람도 없는데.."
"아 그건 여기가 좀 외진 길이라 그래. 걱정하지마."
"헉..너의 그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믿으면 안됐었는데..허억.."
"아하하, 섭섭하게 왜 그래?"
"허억..숨차니까..말걸지마.."
시현이의 그 말을 끝으로,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걸었다.
물론 아무 말도 없었다고 해서 (시현이 헉헉소리 때문에)조용한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10분정도가 지나서, 드디어 숙소로 보이는 곳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여기 맞아? 여기 산 중턱인데?"
산 아래로 내려가는거 아니었어?
제발..좀 더 걸어도 되니까 여기가 진짜 숙소가 아니라고 해줘..
"응? 뭔소리야?"
앗..! 설마 진짜?
"여긴 산 입구나 다름없는 곳인데."
"아..."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그래도 일단 숙소는 숙소였기 때문에 힘들었던 나는 들어가서 짐을 풀고는 쉬었다.
그리고 잠시 후, 좀 안정되자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래서, 도대체 왜 숙소를 산 중턱으로 잡은거야?"
설마…아니겠지?
그래. 그냥 값이 싸서 같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슈때문일거야. 암.
하지만 아까 말했듯 현실은 잔혹했다.
"당연한거 아니야? 당연히 산 올라가려는 거지. 제주도에 왔으면 한라산에는 가 봐야하지 않겠어?"
"아…제발…"
제발 아니었으면 했지만 그럴리가 없다는 건 시현이 본인이 가장 잘 알고있었다.
..진짜 과거의 나를 죽여버리고 싶다.
"아니 도대체 왜 여행까지 와서 산을 올라가는건데?"
"아니지. 여행까지 와서 산을 올라가려는 게 아니라 산을 올라가려고 여행을 가는거야."
"....나 안가."
소심한 반항을 해봤지만.. 지은이는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눌렀다.
[……그냥 너한테 맡길게. 어디 가든 뭘 하든 따라 줄 테니까 나 신경쓰지 말고 알아봐.]
[엥..진짜?]
[어. 나 한입으로 두 말 안해]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것의 정체는 녹음기.
그 와중 맨 앞문장의 앞부분이 잘려있는 걸 보니 미리 켜둔게 아니라 내가 말하는 걸 듣고 그 짧은 시간안에 '이건 녹음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마친 뒤에 녹음기 앱을 켜서 녹음버튼을 눌렀나보다.
..좀 무서운데..
"그래서, 이 소리를 들으니 뭔가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갈게…"
"뭐라고?"
"간다고!!! 가면 되잖아 가면!!!!!!"
들었으면서 굳이 한번 더 묻는 지은이가 짜증나서 화를 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조차조 귀여워하는 지은이에게 다시 한 번 화가났다.
"어쨌든 내일은 아마 힘들테니까 푹 자."
"그것 참 위로가 되는 말이네요."
"음…그럼 껴안고 잘까?"
"..갑자기?"
"싫어?"
"아니."
절대 내가 거부 안할거라는 자신감이 담긴 목소리.
시현이는 그런 당당함에 짜증이 나면서도 안긴 지은이의 품이 너무 기분 좋아서 편안하게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지은이는 그런 시현이가 잠자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본 뒤 잠에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