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2부 47화 막간
* * *
1. 문과vs이과
기말고사 끝나고 며칠 뒤.
시현이는 다음주까지 문/이과를 선택하라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하지만 딱히 생각해둔 게 없었던 시현이는 지은이게 물어보기로 했다.
"지은아. 나 문과갈까 이과갈까?"
"음, 너 국어가 좋아 수학이 좋아?"
"둘 다 없애버리고 싶을만큼 싫어하는데?"
"그럼 사회랑 과학중에는?"
"둘 다 없애버리고 싶을만큼 싫어하는데?"
"..너 어떻게 전교 1등했냐?"
"그 증오를 공부로 불태웠지."
"...뭔 소리야?"
같은 전교 1등이었던 지은이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럼 넌 좋아하는 과목이 뭔데?"
"기술.가정."
"왜?"
"중간에 햄버거만들기 실습하거든."
"..그거 말고 없어?"
"없는데?"
정말 생산적인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의 결정을 내리는데 정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정도로.
..는 개뿔이.
"그럼 뭐,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그나마 덜 싫어하는 과목같은건 없어?"
"응! 난 공평하거든!"
공평은 개뿔이..
지은이는 본능적으로 이 일이 꽤나 골치아파질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대학교때 가고싶은 학과는 있어?"
"너랑 같은 학과."
"..어라? 나 공대라서 그럴려면 이과가야 될 텐데?"
"그럼 이과 가지 뭐."
"..?"
뭐지? 왜 이렇게 쉽게 끝나?
"아니, 한번 정하면 못바꾸는데 그렇게 쉽게 정해도 돼?"
"너랑 같은 학과 가려면 이과 가라며? 그럼 넌 나랑 같은 학과되기 싫어?"
"아,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이의 없지? 이과간다?"
"..어."
시현이는 이과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거기서 끝은 아니었고..
"흠, 이걸 어떡하지?"
"왜?"
"이과일 경우에 과학을 뭐들을지 선택하래." (문과는 사회)
"선택하면 되지. 그게 왜?"
"하나같이 토가나올 정도로 역겨운 것들 뿐이야."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정말 이름만 들어도 구역질이 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역겹지?
이중 2개를 고르라니..
"음,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난이도는 물>=화>생>>>지 순이라 생각해. 그리고 재미는.."
"없어. 4개 다."
"하하..부정은 못하겠네."
과학이 재밌으면 그건 정상인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결국 답이없다고 느긴 시현이는 치트키를 썼다.
"넌 뭐했어?"
"나? 나는 그냥 물리/화학 들었는데?"
"그럼 나도 그냥 그거 들어야겠다."
"엥? 진짜로? 이건 학과랑은 상관 없는데?"
"그치만 너랑 같은 길 걷고 싶어."
"시, 시현아..!"
시현이는 별 생각없이 뱉은 말이었지만 지은이는 크게 감동받아선 시현이를 껴안았다.
"...이거 작성해야 되니까 저리 좀 가줄래?"
"....."
..바로 쫓겨났다.
2. 학생8
학생8이 자신의 숨겨진 속성을 깨달은지 며칠 뒤.
학생8은 미칠지경이었다.
계속 느껴지는 이 갈증(?)을 해결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이걸 계속 모르고 있었더라면..
이 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존재는 현재로서는 시현이가 유일했지만, 자신은 시현이랑 딱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을 뿐더러, 그냥 단순히 시현이랑 접촉하는 게 아닌 경멸을 받을 필요가 있었기에 난이도는 배 이상으로 뛰었다.
잘못하면 학교내에서 자신의 평판이 나락으로 갈 수도 있는상황.
물론 내가 가끔 '밟아주세요!' 같은 말을 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장난으로 여겨졌을 뿐.(물론 난 진심이었지만)
진심이었다는 걸 들키거나 다른 뻘짓하다가 걸리면 당연히 내 인식은..좀 많이 떨어지겠지.
단순히 마조인 걸 들키는 것 뿐 아니라 동성애자인걸 커밍아웃하는 느낌이니까.
물론 난 동성애자가 아니다.(?) 그냥 시현이에게 밟히고 싶은 것 뿐.
근데 어쨌든 그렇다면 다른 상대를 찾는 수밖에 없는 걸까?
친한 친구 몇명을 데리고 내가 마조인걸 들키지 않는 선에서 실험을 해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여왕은 선천적인 것.
왕가의 핏줄을 타고난 자만이 왕이 될 수 있듯이 '여왕님'은 선천적인 것이다.
물론 후천적으로도 노력하고 연습하면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느낌만 비슷할 뿐, 진짜 여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시현이밖에 없는 건...
퍼억!
딴 생각을 하고 걷다가 누군가랑 어깨를 부딪혔다.
"아이씨, 앞 좀 잘 보고.."
"뭐?"
어깨를 부딪혔던 학생이 돌아보며 한 말에 순간 학생8은 소름이 돋았다.
무서워서나 그런 것 때문은 아니고 순간적으로나마 갈증이 채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자세히 보니..
"어라? 학생3이잖아?"
"뭐야. 너였냐? 학생8."
다행히도 (그렇게 친하지는 않은)같은 반 친구였다.
그리고 아까 그 눈빛..
얘는 진짜다.
진짜 여왕이야.
아직 자신도 모르는 것 같지만..
"근데 지금 어디가는 중이야?"
"그냥 잠깐 화장실 좀."
"그래? 그럼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가자!"
"뭐, 그래."
학생8은 이렇게 일단 학생3이랑 천천히 친해지기로 했고,
결국 학생8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먼 미래에는 결국 둘이 그렇고 그렇게(?) 잘 지내게 되었다.
3. 봉사활동
전에 헌혈하는 걸 실패한 덕에 시현이는 크나큰 위기에 몰렸었다.
"..이대로면 진짜 15시간을 쌩으로 봉사하게 생겼는데?"
"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하기 싫어.."
하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었고, 마침 겨울방학이 다가왔기에 더는 미룰 수가 없었던 시현이는 근처의 유치원으로 향했다.
아이돌봄 봉사를 하기 위해.
"..근데 난 왜 같이?"
"나중에 해달라는거 다 해줄게."
"..1번만?"
"3번."
"괜찮네."
계약이 성립된 둘은 같이 봉사를 시작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이구~ 우리 귀여운 아이는 언니 따라온거야?"
"이거라도 먹고 있을래?"
"동생분이 너무 착하네요~ 언니가 봉사하는 것까지 따라오고."
나는 그냥 들러리 취급을 받았다.
이런 취급을 참을 수가 없었던 나는 나도 봉사하러왔음을 밝혔다.
"언니따라서 봉사하러 온거야? 아직 어린데도 착하네~."
"이거라도 먹고 있을래?"
"이렇게 착한데다 귀엽기까지.."
..도대체 뭐가 잘못된거지?
안되겠다. 행동으로 보여야겠어.
내가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는 걸 보면 교사들도 인정을 해 주겠지.
그런 생각을 품고 나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앗! 귀여운 언니다!"
"헤헤..내가 좀 귀엽긴 한..게 아니라 난 예쁜 거라고! 귀여운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아닌 유치원생한테 귀엽다는 말을 듣고싶지는 않았다.
"그럼 귀엽진 않은 예쁜 언니!"
"아니 또..귀엽지 않은 건 아니고.."
그렇다고 정면으로 부정을 하지는 말고..
"에..그럼 귀엽고 예쁜 언니야?
"아니..그냥 언니라 불러."
어쨌든 이런 식으로(?) 나름 열심히 놀아주었다.
이제..평가가 조금 바뀌지 않았을까?
"역시, 나이차이가 크게 안나서 그런가? 잘 놀아주네요."
"이거라도 좀 먹여주고 싶다.."
"저렇게 어린나이에 봉사를 저렇게 잘하다니, 진짜 너무 귀엽네요."
음, 뭔가 그래도 평가가 바뀐 것 같긴 한데..왜 이리 마음에 안들지?
"하하, 저희 동생이 좀 귀엽긴 하죠?"
..근데 넌 거기서 뭐하냐?
내가 혼자 아이들을 전부 커버치자, 지은이는 일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는지 구석에서 휴식중인 교사들이랑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제가 혼자 가겠다고 하는데도 시현이가 어떻게든 언니랑 같이가고 싶다며 떼를 쓰는 바람에.."
얼씨구
이젠 그냥 소설을 쓰네?
그리고 더 짜증나는건 그런 소설들이 저 교사들에겐 사실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진짜 그냥 저희가 데려다 키우고 싶을 정도네요."
"이거 좀 먹이고 싶다.."
"너무 귀엽다 진짜.."
뒤늦게라도 내가 가서 반박을 하려 했지만..
"언니 어디가? 역할놀이 하는 중이잖아!"
"응? 아..미안."
"자. 그럼 아기 흉내내봐."
"...."
정말 거지같은 하루였다.
그리고 더 거지같은 사실은..평일에는 봉사를 4시간밖에 못해서 이 일은 최소 3일이나 더 해야 한다는 것.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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