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2부 50화 데이트
* * *
화해는 하긴 했지만, 이번일을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근데.. 방법이 있나? 이런 일을 사전에 차단할 방법이."
"..없지?"
사람은 누구든간에 사생활이라는게 필요했고, 아무리 연인이라고 해도 사생활까지 간섭할수는 없었다.
물론 연인이 아닌 부부라면 상황이 좀 달라지긴 하겠지만..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그냥 이런 일이 있으면 혹은 있을거 같으면 솔직하게 얘기하자. 괜히 숨겨보려다 들켜서 ㅈ되지 말고."
"그래."
꽤나 싱겁게 결론이 나버렸다.
하지만 해결해야되는 일이 하나 더 있었는데..
"핸드폰 사러가자."
"잘다녀와."
"? 당연히 너도 같이 가야지."
"엥..왜?"
"너가 부숴먹었으니까."
"그..엄연히 따지면 부순건 너잖아..? 난 부수라고만 했을 뿐이지.."
"뭐?"
"아, 아니야. 따라가야지 당연히.."
방금 말은 자기가 생각해도 양심이 없었는지 시현이는 순순히 따라나섰다.
"근데 핸드폰만 사고 바로 돌아오는거 맞지?"
"음..이왕 나간거 데이트도 하고 오지 않을래?"
"추워 죽겠는데?"
"..그래도 우리 오랫동안 데이트 못했잖아."
"..."
지은이의 호소에 시현이의 마음이 흔들렸다.
확실히 최근에 서로 냉전상태여서 아무것도 못하긴 했지.
하지만 밖에 나가면 얼어 죽을 것 같은데..
"좋아. 대신 실내데이트하자."
"실내? 무슨 실내? 설마 집 말하는건 아니지?"
"아니야. 박물관이나, 백화점같은데 말하는거야. 밖은 추우니까."
"그래 뭐, 그 정도라면야."
둘은 합의를 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나선 다음 우선적으로 향한 곳은 당연히 핸드폰 가게.
그리고 최대한 가성비가 좋은 제품으로 산 다음 밖으로 나왔다.
"엥? 끝이야?"
"응. 그럼 끝이지. 여기서 더 할 게 있어?"
"폰 개통시키거나 통신사 설정하고 그러지 않나?"
"푸흡!"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시현이의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아이구~ 이 귀여운 애기를 어떡해야 좋을까."
"..쓰다듬지말고 답변이나 해줘."
그렇게 말하지만 시현이는 딱히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기서 더하면 싫어할 거 같으니 그만해야지.
"그건 진짜 모든게 처음일때고, 이런 상황에서는 유심칩 재발급만 받으면 돼."
"근데 그것도 안받았는데?"
"당연하지. 내 유심칩은 멀쩡하니까."
사실 망치로 핸드폰을 깨부순다 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유심칩까지 박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라고 지은이는 믿고 있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치우는 척을 하며 안을 보자 역시 정상적인 상태로 남아있었다.
이제 집가서 그걸 끼우기만 하면 되는 것.
"..뭐, 어쨌든 끝났으면 데이트나 하러가자."
빨리 화제를 돌리고 싶었던 시현이의 요청에 지은이는 흔쾌히 수락했다.
오랜만에 들뜬 마음으로 데이트를 시작하려는데..
"근데 우리 이제 어디로가?"
"응? 너가 정해놓은 거 아니었어?"
"??"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얘는 또 뭔 개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표정을 짓는 상대방을 바라보며 '왜 너가 그런 표정을 짓는거냐?' 라는 듯한 표정으로 바꾸는 것 까지.
"아니, 너가 데이트하자며? 그럼 당연히 너가 갈 곳 정해야 되는거 아니야?"
"원래라면 그럴텐데, 지금은 아니지. 너가 실내데이트하자 했잖아. 그럼 너가 정해야지."
이렇게 또 싸우는가 했지만..
"아니다 시현아. 내가 미안해. 데이트하자 했으면 내가 정하는게 맞는건데.. 미안. 지금부터라도 빠르게 찾아볼게."
"그래. 너 잘못....엥?"
지은이가 이번 데이트에서만큼은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어서 일부러 져주었다.
그동안 데이트는 커녕 애정행각도 못했기에 이번 데이트만큼은 즐기고 싶다는 소망에 의해.
하지만 그 모습이 또 쓸데없이 시현이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야. 너 지금 일부러 져준거지?"
"응..? 아, 아닌데?"
"거짓말하지마. 너 엄마닮아서 그런지 고집은 드럽게 쌔가지고 한번 자기 뜻을 밝히면 절대 안굽히는주제에. 갑자기 이렇게 져준다고?"
"....."
시현이가 이렇게 눈치가 좋았을 줄이야.
하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상황. 내가 잡아땐다면 딱히 방법은 없겠지.
"아니 그냥 다시 생각해보니 너 말이 맞는거같아서. 진짜 그것뿐이야."
"..그럴리가 없는데.."
시현이는 매우 의심스러워했지만 더 물고늘어지진 못했다.
확실히 심증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난 시현이가 더 뭐라고 하기 전에 새로 산 폰으로 여행갈 곳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와이파이 통하는 곳에서)
시현이는 처음엔 지은이가 왜 그랬는지 몰랐으나, 지은이가 데이트장소 찾는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알아챘다.
원활한 데이트를 위해 내 기분을 생각해서 지은이가 일부러 져준거라는 사실을.
즉 날 배려해준거라는 것.
..
뭔가 짜증나는데..
감히 날 배려해?
사실 짜증이라기보단 내가 지은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지은이가 날 더 사랑하는게 느껴진 것에 대한 패배감이었지만,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었다.
어쨌든 알수없는 짜증을 느낀 나는 복수를 결심했다.
당연히 복수의 내용은 지은이가 해주는 것보다 지은이를 더 배려해주는 것.(?)
이렇게라도 지은이를 이겨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지은이가 멀지 않은 곳의 백화점을 찾아냈고,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가는 중.
"지은아. 이쪽으로 와."
"? 알았어."
"사, 사랑해."
"? 나도 사랑해."
난 지은이를 보호하듯이 도로 안쪽으로 오게 했고, 사랑을 속삭이기까지 했다.
물론 나도 처음해보는거다보니 좀 어색했지만..
"시현아 춥지? 손 잡아줄까?"
"..응. 잡아줘."
하지만 지은이의 외투까지 벗어주는 자연스러운 배려에 난 상대가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자연스러운 거랑 어설프게 흉내낸 거랑은 비교가 불가능하니까.
그리고 새삼스래 지은이가 얼마나 날 배려해주는지가 느껴졌다.
지금은 내가 일부러 지은이를 도로 안쪽으로 오게 한 거지만 그 전까진 무조건 내가 안쪽이었고, 손도 잡아주고, 안아주고, 퇴투도 벗어주고, 지하철 같은 곳에서 자리 한자리 남으면 나 먼저 앉게 해주고..등등.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건가.
헤헤..뭔가 기쁘다...
사실 하나를 깨달은것 만으로 나는 날아갈 것 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옆에서 날 귀엽게 보는 누군가의 존재도 잊을만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대론 안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러면 나만 너무 받는 것 같잖아.
물론 계산적인 연애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도 뭔가를 좀 해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혼자 낑낑대봤자 뭐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기에 난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옆에서 나랑 데이트중인 전문가의 도움을.
"지은아. 나 할말이 좀 있는데, 일단 어디 좀 들어가자."
"응? 알았어."
밖은 너무 추웠기에 얘기할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우린 일단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할 얘기가 뭔데?"
"음..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자연스럽게 배려해줄 수 있을까?"
"? 지금 하고 있잖아?"
"아니 너 말고 내가."
"그니까 하고 있잖아."
??
뭔 소리야 도대체?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지은이는 바로 그거라면서 기뻐했다.
아니 그래서 그게 뭔데?
내가 아직도 모르겠다고 하자 지은이는 나에게 거울을 보여주었다.
"뭐가 느껴져?"
"..귀엽다?"
"그래 그거야!"
"..? 뭐가?"
"귀엽잖아! 그거면 된 거라고!"
"..?"
개소리 하지 말고 빨리 진지하게 말하라고 하려 했는데.. 지은이의 눈빛은 진지했다.
설마 이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귀여움은 정의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야."
"아니 진짜로 그거면 된다고?"
"그래. 내가 뭘하든 너가 미소 한번만 보여주면 내가 한 것 이상의 대가를 받는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장난이라는건 알았지만 저 말을 하는 지은이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난 차마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쓴웃음을 지어줄 뿐.
그런데 그 웃음을 본 지은이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커헉..! 너, 너무 귀여워♡"
..연기는 아닌거 같은데..진짠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