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2부 52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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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온 문자에 따르면, 다음주 주말쯤에 미국에 가고, 가서 바로 결혼식만 하고 올 것이라 했다.
엄마가 일이 바쁘다나 뭐라나.
물론 영어회화가 가능하다면야 엄마만 먼저 돌아가고 우린 남아있어도 되겠지만....그게 될리가 있나.
어쨌든 꽤나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우리들이었지만, 딱히 그렇다고 일상에 변화가 있는건 아니었다.
그냥 다가올 결혼식을 기다리며 전처럼 집에서 빈둥거릴 뿐.
그리고 그러던 중, 첫 눈이 왔다.
늦게 내린 첫 눈에대한 보답인건지 발목보다도 더 높게 쌓일 정도로 수북히 쌓인 눈이.
그리고 평소에 눈을 좋아햇던 시현이는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은아! 눈온다!"
"그러네."
"첫눈이야!"
"그러네."
"엄청 많이와!"
"그러네."
"눈싸움하러가자!"
"시러.."
"그럼 눈사람 만들러가자!"
"시러.."
하지만 딱히 눈을 좋아하지는 않았던 지은이는 굳이 나갈 필요성을 찾지를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시현이가 아니었고, 이번엔 방향을 바꿔서 접근을 시도했다.
"그럼 그냥 데이트하러 가자!"
"..데이트?"
역시 데이트라 하니까 바로 반응이 온다.
"응 데이트! 오랜만에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
시현이로부터의 데이트 제안은 얼마 없는 일이라 그런지 지은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가기엔 뭔가 찝찝하고, 안가기엔 아까운 기회.
하지만 결혼식도 얼마 안남았는데, 그 전에 데이트나 한번 하자는 생각에 결국 시현이의 제안을 수락했다.
"뭐, 그래. 가자."
지은이의 말이 떨어지자 시현이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하러 갔다.
"아. 근데 혹시 모르니 장갑은 두꺼운거 가져가!"
"왜?"
"...요즘 춥다해서 혹시 모르니까..?"
"왜 의문형이야?"
"아 몰라! 어쨌든 그냥 가져가!"
시현이는 그 말을 하고는 진짜 준비하러 갔다.
'귀엽네.'
시현이는 데이트하는 척 끌고나가 어떻게든 눈싸움(or 눈사람만들기) 을 하려는 속셈이었지만, 사실 지은이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울려주기로 한 이유는 절대로 시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
애교를 부리든 보상으로 유혹하든 뭘 하든간에.
그렇게 딱 데이트만 하고 바로 집으로 오는거지.
후후..
속셈을 알아채서 좀 미안하긴 하지만 먼저 데이트신청을 한 건 너기에 뭐라 불평은 못하겠지.
그와중 혹시 모르니 시현이가 말해둔 대로 장갑은 엄청 두꺼운 걸로 챙겼다.
뭐, 가져가서 손해볼 일은 없을 거 아냐?
"지은아 아직 멀었어?"
"아냐. 거의 다했어."
근데 쟤는 준비가 왜이리 빠르냐?
여자된지 얼마나 됐다고 나보다 화장을 잘하는거야?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마무리를 하고는 둘은 결혼 전 마지막 데이트를 하러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지은이는 자신의 신발에 무언가가 걸리적거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정체는 신발끈.
"어라? 신발끈이 왜 풀려있지? ..시현아 먼저 나가있어. 이것만 묶고 바로 나갈게."
"알았어."
지은이는 신발끈을 묶느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시현이는 사악한 미소를 짓고서 밖으로 나섰다.
마치 '계획대로'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그리고 잠시 후, 신발끈을 다 묶고 나온 지은이의 눈에 보인건 새하얀 눈밭이었다.
완전 새하얀 광경에 평소에 눈을 싫어하던 지은이였지만 이번만큼은 감탄을 안할수가 없었다.
"이야~ 진짜 새하얗.."
퍽!!!
"...."
그런데 감탄을 하던중인 지은이의 얼굴에 갑자기 눈덩이가 쳐박혔다.
물론 던진 사람은 당연히 시현이.
"......."
"........"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지만, 잠시 후 이정도는 괜찮다는 듯이 지은이는 눈을 털어냈다.
"그래. 뭐, 이정도야 예상했..."
퍽!!!
조금 털어내서 시야가 돌아오자마자 다시 눈덩이가 날아왔다.
"......"
"......."
이번에도 불길한 정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지은이는 참아내고 눈을 털어냈다.
다만 아까완 다르게 약간 짜증이 난 듯한 표정으로.
"후.. 시현아. 재밌었으니까 이제 그만.."
퍽!!!
세번째 눈덩이가 날라와 지은이의 얼굴에 쳐박혔다.
"......"
"......."
아까보다도 훨씬 긴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죽고싶다 이거지? 오냐. 소원대로 해줄게."
결국 제대로 열받은 지은이에 의해 눈싸움이 발발했다.
시현이의 입장에서 이건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충분한 눈덩이와 유리한 고지와 선빵.
사실상 눈싸움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는 전부 갖추었다.
근데 왜 지는거지?
일단 데이트를 신청한 후 준비를 하러 가는 척 하며 일부러 지은이가 자주신는 신발의 끈을 풀었다.
그리고 지은이가 그걸 묶는동안 빠르게 나가서 미리 정해뒀던 고지를 선점하고, 눈덩이를 만들어놓는다.
그다음 지은이가 나올때까지 기다린다음, 나오자마자 공격을 연달아 한다.
그러면 결국 지은이의 승부욕에 의해서 절대 이 승부를 피해갈 수는 없겠지.
그렇게 벌어진 눈싸움을 고지+눈덩이 로 이길 생각이었는데..
압도적인 격차로 패배하고 말았다.
"(퍽) 악!! 자, 잠깐만!! 지은아 타임!! (퍽) 아악! 타임! 타임!"
"그러게 내가 그만하자 했을때 그만했어야지."
패인은 딱 하나였다.
압도적인 운동신경 차이.
지은이는 무슨 야구라도 배운 적이 있는건지 엄폐물 뒤에 숨었음에도 던지는 족족 나를 맞췄고, 공격력도 내가 던지는 거랑은 차원이 달랐다.
흔히들 말하는 돌을 넣어 던지는 수준.
거기다 또 회피는 뭐이리 잘하는지 맨 처음 맞췄던 3방을 제외하고는 난 지은이에게 단 한대의 유효타도 맞추지 못했다.
이게말이되나?
그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결국 나는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뒤로도 이어진 지은이의 공격에 무방비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해."
"선빵쳐놓고 뭐가 너무해?"
"그건 너가 눈싸움 안하겠다고 하니까.."
시현이는 패배의 여운(?)을 즐기며 탈진해서 눈밭에 대자로 뻗은 채로 지은이에게 소소한 불평을 했다.
물론 쥐뿔도 안먹혔지만.
"..근데 이제 뭐해?"
"흠, 눈사람 만들까?"
"??"
시현이는 지은이의 입에서 눈을 이용한 놀이를 하자는 말이 나올 줄은 몰라서 그런지 엄청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너 어디 아픈거 아니야?"
"아니 그냥, 이왕 눈싸움도 한거 눈사람도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지은아 사랑해!"
눈사람을 만들겠다는 말에 바닥이 났었던 시현이의 기력은 어느새 풀충전이 되었다.
그렇게 바로 일어나서 둘은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완성했다!"
"뭘? 쓰레기를?"
"아니! 눈사람!"
둘은 각자 상대의 모습을 본딴 눈사람을 만들어주기로 했으나 시현이의 손에 탄생한건 지은이를 닮은 눈사람이 아닌 쓰레기였다.
적어도 지은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몸통은 크게 만들었지만 얼굴부분은 들어올리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매우 작게 만들었고, 그 안에 눈코입을 어떻게든 다 우겨넣으려고 하니 웬 괴생명체가 탄생했다.
"그래도 약간 닮은 것 같지 않아?"
".....그러네."
그래..눈코입 달렸다는 점에서 닮긴 했지..
음..
이건 나도 개판을 쳐도 된다는 암묵적인 신호겠지?
아니면 아까 그만둔 눈싸움 제2막을 시작해보자는걸까?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머지않아 답을 찾아냈다.
"시현아. 너 닮은 눈사람도 한번 만들어봐."
"엥? 그건 너가 만드는거 아니었어?"
"아니, 난 갑자기 다른 만들게 생각나서."
"흠..알았어!"
좋아.
여기서 잘만들면 시현이가 날 엿맥이려는 거고 못만들면 그냥 실력이 없는거다.
아니면 진심으로 자기딴에는 닮게 만든걸지도..
"지은아! 다만들었어!"
"그래? 어디?"
음, 다행이다. 그냥 실력이 모자란 거였구나.
"예쁘지?"
"......응. 예쁘네."
"헤헤.."
그래. 뭐, 저렇게 기뻐하면 된거지.
뭐든 귀여운게 최고지.
난 체념한듯 시현이의 말에 긍정을 했고, 그 반응에 시현이는 더욱 즐거워했다.
그 뒤로 우린 시현이의 뜻에 따라 적당히 더 놀다가 손이 얼거같기 직전에 집으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