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chapter 1. 어린이집 제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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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많은 종교가 다른 답을 내려놓았지만 나는 별생각 없었다.
내가 죽어보기 전까지는.
“어쩜, 너무 예쁘네 우리 아들! 그치 다윤아?”
“웅!! 완전 숲속의 왕자님 같아!”
숲속의 왕자님...... 아직 적응하려면 멀었네.
그래도 처음보단 많이 나아진 상태다. 처음 동화책을 읽었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지.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님은 전부 왕자님으로 바뀌어 있고 백마탄 공주님이라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동화책뿐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치마를 매고 가정주부인 아버지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세계에서는 그게 보편적인 거였다.
기상캐스터도, 화장품 광고 모델도 전부 남자.
갓난아기였을 때야 잠만 자서 크게 와닿지 않았다지만 보고 듣고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주 잘 느껴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는 남자와 여자의 존재가 역전된 세상이었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인식은 그대로지만 거기서 딱 성별만 뒤바뀐 거 같달까.
뉴스에서 보는 강도들과 성범죄자들도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았다. 언뜻 본 남아출산율을 생각하면 인구수도 남자가 여자보다 적은 거 같고.
“밥쭈세요!”
“아구 우리 아들 배고팠구나, 아빠가 금방 밥 줄게.”
근데 알게 뭐야. 일단 난 남자로 태어났으니 개꿀이었다.
아버지가 안겨준 푹신한 곰인형에 얼굴을 부비며 헤벌쭉 웃었다.
‘군대를 안 간다니!’
이보다 더한 꿀은 없을 거다. 머릿속으로 행복회로를 돌리며 미래에 대한 계획을 그려나갔다.
“우연이가 어린이집 가면 잘 적응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일단 어린이집부터 가야 하는 신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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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주부인 아버지가 있어서 그런지 나는 하루종일 케어 받았다. 먹고 자고 싸고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얻는 휴식의 달콤함이란.
‘원래 아기는 잘 먹고 잘 자면 되는 거지.’
그걸 못해서 고생하는 부모들이 많았지만 난 웬만해서 잘 울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자는 건 기본이었고.
덕분에 아버지는 나한테 푹 빠진 것 같다. 먼저 태어난 다윤이 때는 힘들었다나.
하지만 그 행복도 이제 끝이지. 무의식중에 입가로 가져가고 있던 손을 다시 원위치시키며 작게 한숨 쉬었다.
‘어린이집. 그것도 미운 네 살이라는 애들을 싹 모아둔 곳에서 하루 반나절을 있어야 한다고?’
나는 지금 베이비 카시트에 사지가 묶여있었다.
표정은 아마 보지 않아도 뾰로통한 표정일 터.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집을 떠나는 게 좋은 사람이 있을까.
“다윤이 때보다 좀 늦긴 했는데.......”
“괜찮아. 그동안 논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그런 거잖아.”
“그래도 우연이는 너무 순해서 걱정이에요.”
어머니가 운전하면서 조수석에 앉은 아버지를 달랬다.
부모 입장에서는 4살에 처음으로 가는 어린이집이겠지만 내겐 별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아예 안 가도 별문제 없는데.
‘하지만 그러면 또 걱정하겠지.’
자신을 애지중지하면서 키우는 그들을 보고 이미 마음에 이 가족이 자리 잡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어려서부터 천재로 살아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심플 이즈 베스트지.’
아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아버지는 집에서 계속 전화를 돌리고 직접 가서 보고 상담도 해가며 어린이집을 수소문했다.
그걸 본 어머니는 그냥 다윤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을 같이 다니면 되지 않겠냐고 했지만 거기에는 남자애가 한 명도 없다고 기각.
“6세 반에 빨리 자리가 생겨야 할 텐데...... 다윤이가 너무 울어서.”
“그러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 생각하면 하.”
같은 어린이집에 가는 줄 알고 있다가 먼저 내리면서 울고불고 통곡하던 다윤의 얼굴이 생생했다.
유전자가 좋아서 그런지 우는 모습이 귀엽긴 했지만.
‘매일 그러는 거면.... 감당 불가다.’
울지 말라고 뽀뽀까지 해주고 나서야 간신히 달랠 수 있었다.
빨리 자리가 비어서 차라리 같은 어린이집에 가는 게 낫지. 매일 저러는 건 전쟁이다.
아 또 입에 손 넣을 뻔했네.
아무튼 지금 가는 어린이집은 근처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고 신설이라 시설도 좋다고 했다. 좀 먼 게 단점이지만.
남자아이들도 꽤 있다고 하는데.....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장래가 기대되는 얼굴이 있으면 대충 친구로 사귈 생각이었다.
“우연아, 선생님 말 잘 듣고 친구들이랑도 잘 놀아야 돼 알겠지? 우연이 집 오면 엄마가 푸딩 줄게.”
“웅. 알게써요.”
울음을 터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나를 달래는 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묘하게 섭섭한 표정으로 바뀐 거 같지만,
인사를 한 5분 정도 한 뒤 선생님의 손을 잡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에 한 번 뒤돌아보는 것도 잊지 않고.
‘돈 좀 썼나 본데?’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깨끗하고 넓은 게 돈 좀 쓴 티가 났다. 외관으로 봤을 때도 다윤이네 어린이집보다 좋았지만.
요즘 어린이집 좋네.
“짜잔! 여기가 우연이 반이에요. 여기 클로버반!”
“와아......”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는 선생님에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문밖인데도 안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유 선생님, 이번에 새로 오기로 한 우연이에요.”
“아 네! 우연아 이리오렴.”
“그럼 수고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과 놀고 있었는지 이쪽으로 걸어오는 젊은 여자가 보였다.
‘그다지 착하게 생기진...... 않았네.’
관상을 볼 줄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딱 그랬다. 예쁘지도 않고 못생기지도 않고.
“딸랑딸랑, 여기 보세요 친구들! 우리 반에 새로운 친구가 왔어요.”
“......”
“이름은 이우연! 우연이가 친구들한테 인사해볼까?”
“이우연입미다.”
와아아아ㅡ, 열심히 박수를 치는 아이들을 대강 훑었다. 눈을 반짝이는 애부터 관심 없어 보이는 애까지.
‘확실히 여자애가 많네. 대략 열 명 정도에 남자애들은 다섯 명?’
“자. 이제 가서 친구들이랑 놀아!!”
그 말과 함께 강한 힘이 어깨를 밀었다. 이런 씹, 순간 앞으로 넘어질 뻔했으나 가까스로 안 넘어졌다.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휙 돌리자 웃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 하?”
정정한다. 난 관상을 좀 볼 줄 아는 거 같다.
이거 재밌게 돌아가네.
다시 고개를 돌린 뒤에도 뒤통수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
전생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별별 미친놈들을 만나봤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애들, 수준이 떨어지는 애들.
좋은 사람을 찾기보다 미친 사람을 찾는 게 빠른 세상이다.
‘그런데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지.’
간식으로 나온 쿠키를 입에 집어넣었다. 이미 초코칩 쿠키를 먹어본 입장에서 그저 그런 맛. 아무래도 직접 구운 것 같았다.
“우여나 우여나 우리 가티 인형노리 하자.”
“머? 안대! 나랑 가치 소꿉노리 할구야.”
“아니고든!!”
“마자!!”
“...... 에휴”
벌써부터 나를 두고 싸우다니. 아무래도 조용히 살기에는 글렀군.
애초에 아버지를 쏙 빼닮은 외모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다. 승리자는 어머니였지만 이대로만 크면 내 미래도 아주 창창해.
아직도 싸우고 있는 애들을 뒤로하고 집에서 갖고온 곰인형에 얼굴을 부볐다.
‘이거 은근 부드럽고 좋다니까.’
간간이 선생이 무슨 짓거리를 하나 감시했으나 처음 내 어깨를 세게 밀쳤던 게 무색하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애들을 때리거나 하지는 않는 건가.
하지만 한번 시작한 의심은 멈추지 않았다. 책상 주변에 있는 아이들과 웃으면서 대화하는 모습이 괜히 더 수상쩍었다.
밥이랑 간식도 먹었겠다, 곧 있으면 낮잠 자고 좀 있다가 집으로 갈 텐데.
“하암......”
집에서 있을 때랑은 다르게 몸을 움직여서 그런가 눈이 감겼다. 너무 졸려.
선생이고 뭐고 너무 졸려서 안 되겠다.
나는 낮잠방으로 몰래 들어가서 아무 이부자리나 잡고 발라당 누웠다. 어차피 곧 있으면 잘 테니.
눈을 감기 무섭게 잠들어버렸다.
.
.
“ㅡㅡㅡ, 나ㅡㅡㅡ래!”
아 무슨 소리야.
“잘ㅡㅡ지!.... ㅡ하기나ㅡㅡ”
잠잘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잠귀가 밝아서 그런지 다시 자기는커녕 정신이 선명해졌다.
“...... 선샌?”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선생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애들은 다 자고 있고...... 어 한 명이 없네? 이부자리 하나가 비어 있었다.
소리가 나는 곳은 낮잠방 밖이었다.
애들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이면서 문 앞으로 가자 소리가 더 잘 들렸다.
끼익ㅡ
“아 진짜 빨리빨리 못해?”
“..... 윽.”
와 저게 바로 인간쓰레기인가.
문을 살짝 열자마자 작은 여자애가 엉덩방아 찧는 장면을 목격했다. 앞에는 미소는 어따 팔아먹었는지 흉흉한 눈빛을 쏘아대는 선생이 있고.
여자애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아 얼굴이 안 보였다.
선생의 재촉에 다시 일어나서 어질러져 있는 장난감을 치우는 게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다.
‘안 되겠다 일어난 척해야지.’
인기척을 내기 위해 다시 문을 닫으려던 찰나.
‘!’
‘!’
마침 이쪽 방향에 있었던 장난감을 줍는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