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chapter 2. 작전명 내새끼
* * *
“우리 아들 오늘 어땠어? 친구들이랑은 잘 놀았고?”
“...... 웅”
올 때와 같이 베이비 카시트에 앉은 채로 집으로 향했다. 이미 ‘그 선생’이 아버지께 다 좋게 포장해서 말했겠지.
‘찝찝해.’
그때 여자애와 눈이 마주치고 작은 눈이 왕방울만 해지더니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치 나와 눈 마주친 적 없다는 것처럼.
덕분에 잠깐 멈칫한 건 나였지만 정신을 차리고는 문을 닫고 일어난 기척을 냈다.
그리고 밖에 있었던 선생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종료됐고.
아무리 봐도 네 살짜리 여자애가 할 행동이 아니었다. 찝찝하게 시리.
“흐흐흥, 으흥~”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척 넌지시 아버지한테 말하면 해결될 테지만,
‘그렇게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버지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기껏해 봐야 나 하나 그만두고 끝날 작은 해프닝 정도로 남을 게 분명했다. 그런 쓰레기들은 미리미리 치워둬야지.
‘참교육이 답이네.’
이렇게 쉽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러면 일단
“증거를 모아야게찌.”
“응? 뭐라고 했어요 우리 왕자님?”
“푸딩 먹꼬싶다고.”
“맞네! 아빠가 오늘 집가면 푸딩 준다고 했었지? 우리 아들 그런 것도 기억하고 기특하네.”
팔불출 모드를 킨 아빠는 일단 제쳐두고.
일단 그 여자애가 요주의 인물인 거 같으니 내일부터 지켜볼 생각이었다. 정작 그 애랑은 한 마디도 안 나눠봤으니까.
“자, 우리 왕자님 집 도착하면 손 먼저 씻어야지?”
“웅야.”
“...... 크흡, 큽”
딴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집에 도착한 줄도 몰랐네. 아직 중심 잡는 게 어려워 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가자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밖에 없는데?’
고개를 갸우뚱한 나는 다시 화장실로 걸어갔다. 잘못 들었나 보지 뭐.
그렇게 손을 닦고 거실에 얌전히 앉아 있자 아버지가 푸딩과 함께 내 옆에 앉았다.
‘아니 이 맛은?!’
입에서 사르르 녹는 우유 푸딩에 눈이 번쩍 뜨였다. 입을 다시 벌리니 한 숟가락이 더 들어왔고.
“푸디잉...... 더주떼여......”
“아잇, 하루에 한 번만 주려고 했는데 우리 아들이 너무 예쁘니까 딱 한 개만 더!”
우유 푸딩을 얻기 위해 나는 필살기를 꺼냈다.
그렇게 아버지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자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그리고 우다다ㅡ 하는 소리와 함께
“우여나! 우여나! 나 와써!!”
나를 덮친 짐승, 아니 다윤이 등장했다. 손도 안 닦고 나를 만져서인지 곧장 아버지한테 끌려갔지만.
그렇게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잘 시간이 되서야 어린이집이 생각났다.
‘...... 적어도 오늘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게 해야지.’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데, 네 살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
일주일이 지나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일단 그 여자애의 이름은 한 송이. 잠깐 마주쳤을 때도 좀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자꾸 보니 여자애들 중에서 제일 귀엽더라.
‘그래서 선생이 괴롭히는 건가?’
아이들한테 손을 대기는 했지만 심하진 않았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게 남자애들한테는 손을 안 대는 거 같고.
물론 웃으면서 꼽을 주긴 했다. 여자애들처럼 밀거나 힘을 주거나 하지 않을 뿐이지.
‘하지만 애들은 그걸 꼽이라고 생각하지 않지 쯧.’
대놓고 공포정치는 안 해서 그런지 송이를 선생으로부터 지키는 일은 꽤 쉬웠다.
나는 가만히만 있어도 주변에 아이들을 끌어모은 쪽이었고, 그런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함부로 손댈 수 없었으니까.
등원하고 계속 옆에 붙어있고 낮잠 시간에는 일부러 매일 옆자리에서 잤다.
‘나 손 잡아죠.’
‘으, 응?......’
‘잡으라구.’
‘웅......’
매번 깨어 있을 수가 없어 손이 허전하면 바로 깼지만, 뭐 덕분에 선생 대신 놀이방을 치우는 일은 첫날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이게 뭔 개고생인지.
처음엔 어색해하던 송이도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낮잠 시간이 되면 손을 내밀었다.
“송이야 이거 받아. 나랑 가치 인형노리 하자”
“...... 웅 알게써.”
내가 건네준 인형을 바닥에 대고 통통 튕겼다.
원래 조용한 성격인지 송이는 다른 애들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뛰어다니지 않았다. 내가 하자는 거면 전부 다했고.
이정도면 같이 놀기에 최적화된 친구 아닌가. 성별이 여자긴 하지만.
‘역시 인형 놀이가 제일이군.’
송이와 같이 있을 때면 같이 놀자는 여자애들이 오곤 했는데 인형 놀이를 하고 있으면 또 안 왔다.
우당탕탕.
“어머, 혜연아 괜찮니?”
큰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선생이 있었다.
혜연이라는 여자애는 애써 울음을 꾹 참는 것처럼 보였고. 송이를 못 괴롭혀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다른 애들을 밀거나 화내는 빈도수가 높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다. 이 쓰레기야.
이제 곧 있으면 계획을 실행할 시간이었다.
‘하원 시간.’
낮잠을 자고 난 뒤라 곧 있으면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주위는 비교적 조용했다.
그동안 이걸 어떻게 터트릴까 고민했었는데.
이제는 인상을 대놓고 찌푸리고 있는 선생에게 한 방 먹여줄 차례다.
‘음. 이제 슬슬 움직여도 될 거 같네.’
시계를 슬쩍 보고는 선생에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선샌밈.”
“왜 불렀니 우연아?”
“제가 비밀 얘기 해주께요!”
비밀 얘기라는 말을 크게 하자 몇몇 아이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 게 느껴졌다. 이건 못 참지.
귀를 달라는 듯 손짓하자 마지못해 선생은 무릎을 굽혔다. 그 귀에 나는 손을 갖다 대고
“몽춍한 선샌밈. 애기들 괴로피니까 좋냐?”
“이, 익! 이 애새끼 주제에......!”
최대한 또박또박 말하려고 했는데 발음이 샌다. 그나저나 제대로 잘 알아먹은 거 같네.
어지간히 화가 나는지 씩씩거리면서 나를 쳐다보다가 손으로 머리를 쳤다.
와 이거 진짜 오버 액션 하려고 했는데.
‘개아파 씹, 얘는 내가 네 살인 것도 모르나’
도덕성을 상실한 선생의 타격으로 인해 크리티컬을 입었다. 앞이 뿌얘. 이런 썅 네가 나를 쳐?
“흐아아아앙, 끄앙, 흑, 흐아앙ㅡ”
맞은 머리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그러자 각자 다르게 놀고 있던 아이들도 전부 내 쪽을 쳐다봤다. 어린이집에 와서 한 번도 안 울었던 애가 엄청 크게 울고 있으니까.
“우, 우여나 마니 아파?”
“송이, 야 훌쩍 선샌밈이 나 때려써 흐아앙ㅡ”
한달음에 내 옆으로 달려온 송이가 안절부절 못하는 게 느껴졌지만 난 더 크게 울었다.
“이거! 우여니가 조아하는 곰이녕!”
“우, 울디마. 훌쩍 으아앙......”
다른 애들도 내 근처로 오더니 몇몇 애들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아픔아 날아가라를 하고 있고 몇몇은 같이 울기 시작했다.
와 쩐다. 이게 동요 현상이라는 거냐.
달래는 애, 같이 우는 애, 선생한테 따지는 애까지 아주 다양했다.
당황한 목소리로 달래려는 선생의 목소리가 잠깐 들렸지만 울음소리에 묻혀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준형아! 왜 울어!”
“어, 아빠앙...... 으아아앙”
왔다.
나랑 같이 울고 있던 남자애 한 명이 아빠 품으로 골인했다.
원래 이런 건 엄마 아빠 보면 더 서러운 법이라고, 안 울던 애들도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를 찾으러 온 부모님들이 당황하면서 애들을 달래거나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있었고
“우, 우연아!”
“으이이잉, 아빠아......”
윽, 뭔가 자존심이 깨진 것 같지만.
착실하게 내 눈물샘은 일하고 있었다. 아빠 품으로 달려가 5초 정도 울고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설명하려고 했는데,
“아빠! 저 선샌밈이 우여니 머리 이케이케 때려써여!”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울진 않았는지 또랑또랑한 송이 목소리였다.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느껴지고 주변이 웅성거렸다.
“마자! 선샌니미 우여니 때리는 거 나도 봐써!”
“선샌밈이 저번에 나두 이케이케 해써써!”
“흐잉..... 선샌밈이 애들 다 막 때려써......”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이미 몇몇 부모님들은 화가 났는지 선생에게 따지고 있었다.
“아니에요! 애들이 다 오해한 거예요 제가 다 설명 드리겠......”
‘이제 마무리 지어볼까.’
아빠 품에서 꼼지락거리면서 나오자 몇몇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 선샌밈이 훌쩍, 코오할 때 송이 불러서 막 이케 밀치구 장난깜 치우라고 해써. 그리고 예비니 몽춍하다구 이케 때리구 윤수도 이케이케 하고......”
약간의 과장이 섞인 액션과 함께 애들 이름 한 명, 한 명을 불러주며 말했다.
그러자 다른 애들도 기억은 안 나겠지만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내 말이 끝나자 시위는 정적에 휩쌓였고
‘후. 처리했나?’
완벽한 증거를 마련한 나는 뿌듯함에 막힌 코를 훌쩍였다.
여기서 콧물 흘리면 폼이 안 살아.
“법으로 상대하겠습니다. 그전에”
송이 엄마다.
송이는 이미 아빠 품에서 울지도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네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냐 이년아!”
선생의 얼굴에 주먹을 꽂는 송이 엄마에 나는 속으로 따봉을 날렸다.
“이, 이 내 금쪽 같은 아들한테.......”
나를 안은 팔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우리 아버지도 많이 화가 난 거 같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죠? 송이 어머님 이러시면......”
음...... 뒷감당은 알아서 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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