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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살아가는 법-4화 (4/137)

〈 4화 〉 chapter 3. 수상한 여자

* * *

부모가 어린 자식들에게 하는 말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아이스크림 많이 먹으면 배탈 나고, 떼쓰면 이놈 아저씨 오고. 뭐 기타 등등 더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부모님은 내게 몇 번이고 아니 몇백 번이고 강조한 말이 있었는데.

“모르는 아줌마, 이모, 누나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도 절대! 절대 따라가면 안 돼 알겠지 우리 아들?”

“...... 웅”

그건 다름 아닌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기’였다.

뉴스에 남자 아동과 관련된 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아버지는 연신 신신당부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

‘먹을 거 사준다고 따라가다니, 내가 애도 아니고.’

속은 이미 몇십 년 산 남자가 있는데. 하지만 부모님을 이걸 모르니까 하시는 소리였다.

나는 항상 정말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야 항상 아버지나 어머니와 함께였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왔니? 오늘은 학교에서 누가 괴롭히는 애 없었구?”

“웅. 없어. 나 애들이랑 다 친해.”

학교가 집이랑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기에 매일 다윤과 함께 등하교 했다.

내가 두 살 더 어려 항상 더 일찍 끝났기에 1, 2학년 때는 아버지가 매일 학교로 데리러 왔었지만

3학년이 되고 나서는 같은 반에 있는 남자애랑 같이 방과후 수업을 들으며 시간을 맞췄다.

폴더폰이지만 핸드폰도 있었고, 학교가 끝나거나 방과후가 끝나면 꼭 끝났다고 문자를 보냈다.

“연희 아빠, 그 얘기 들었어? 옆 동네에서 실종사건......”

“여보. 우리 우연이 폰 이번에 나온 스마트폰으로 바꿀까요? 그건 위치추적도 된다는데......”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도 아버지의 걱정은 막을 순 없는 건가.

항상 주변 아버지들에게 상담하거나 스마트폰이 세상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도 안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나한테 사주자고 할 정도였다.

‘물론 폰 있으면 개꿀이지만.’

스마트폰이 생기면 알차게 쓸 자신은 있었다. 내심 기대했지만 너무 비싸서 그런지 어머니도 안 된다더라.

‘이게 다 내가 너무 귀엽고 예ㅃ, 아니 잘생긴 탓이지 뭐.’

어머니 쪽도 어머니 쪽이지만 아버지 쪽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쪽쪽 빨아먹은 결과물이다.

몸에 흉터가 남지 않도록 조심조심 생활하고, 살이 타지 않기 위해 항상 그늘에 있었다. 최소한의 운동은 실내에서 했고.

여자애들이 축구를 해서 망정이지.

몇몇 애들은 피구를 하자고 모였으나 다른 남자애들도 나처럼 그늘에 있었다.

미리 집에 ‘우리 아들은 약해!’라는 이미지를 심어놔서 그런지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뭘 시키려고 하면 빠지는 것도 수월했고,

‘좀 연약한..... 이미지가 된 거 같긴 하지만.’

다시 시작할 모델 활동을 생각하면 어려서부터 관리하는 게 좋았다.

덕분에 나는 반에서, 아니 반에는 남자애들이 별로 없으니까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는 외모로 비빌 애는 없는 것 같으니까.

지극히 객관적인 평가다. 태어나서 나보다 귀여운 남자애는 못 봤으니까.

‘이 아기 피부랑 무쌍 큰 눈은 꼭 가지고 간다.’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키가 0.1cm라도 더 크길 바라며 오늘도 새나라 어린이 모드로 돌입했다.

‘일찍 자고 더 커야지. 남자가 키가 작아서 되겠어?’

아무튼 나는 아무 생각 없었다. 유괴든, 납치든. 눈을 감자 다음날 아침이 되었고

“아가, 아빠가 저어기로 누나랑 같이 오라고 했는데. 누나랑 같이 갈까? 여기 초콜릿도 줄게.”

그날은 내 인생 10년 만에 경찰서에 전화를 걸게 된 날이었다.

****

“우연아 오늘 방과후 취소됐.......”

“오늘 방과후 취소됐다는데 나랑 같이 떡볶이 먹을래? 내가 사줄게.”

내 옆에 있던 남자애가 말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송이가 튀어나왔다.

‘얜 또 언제 온 거야?’

한 송이. 네 살 때부터 어린이집에선 꼭 붙어 다닌 사이였지만 같은 초등학교에 와서는 한 번도 같은 반이 되질 않았었다.

3학년이 돼서 처음으로 같은 반이 되고, 어쩌다 보니 같은 방과후도 듣고 있었지만.

미묘한 거리가 있었다.

‘이곳에서의 여자와 남자의 차이랄까.’

주로 반에 몇 안 되는 남자애들은 뭉쳐 다니는 게 대부분이었고 뭐 나도 크게 혼자 다니진 않았다.

1학년 때 혼자 다니다가 왕따 당하는 거 아니냐고 선생님과 상담, 부모님 소환식을 당한 이후로는 절대로.

“응 좋아. 그리고 나는 콜팝 제일 좋아해.”

“응응! 알고 있어!”

“알겠어. 그러면 학교 끝나고 먹으면서 같이 있자. 나 누나 기다려야 돼.”

“응 나 시간 대따 많아!”

왜인지 모르게 흥분한 송이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얘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좀 커서도 꽤 조용한 편이었다. 운동을 잘해서 그런지 애들한테 인기가 많긴 하지만.

‘그리고 자기가 사 주는 입장 아닌가?’

콜팝이 아니어도 괜찮긴 했지만 뭐 사준다니까 마다하진 않았다. 어제 용돈을 받아서 모르고 동전 지갑에서 돈을 빼오는 걸 깜빡했다.

‘그래도 일방적으로 얻어먹는 건 양심에 찔리니까 다음엔 내가 사줘야지’

고개를 돌리니 또 왜인지 모르게 시무룩해 보이는 남자애가 보였으나 그냥 모른 척했다.

왠지 물어보면 피곤할 같아.

오늘은 비교적 늦게 끝나는 날이었다. 대충 다윤이 40분 정도 늦게 끝나니 학교 앞 분식집에서 사고 놀이터에서 먹고 있으면 얼추 시간이 맞을 거다.

“자 여러분! 가방 다 챙겼죠?”

“네!”

“자 그럼 반장~”

“선생님께 차렷! 공수! 배례!”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 드디어 끝났네.

수업 시간 내내 그림을 그리는 것도 고역이다 고역.

이제 더 이상 그릴 것도 없어 내가 전생에 입었던 옷들을 그리고 있었다.

그래 봤자 졸라맨이 옷 입고 있는 거지만 나름 그림 실력이 발전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우연아! 가자!”

“그래 가자.”

상기된 얼굴로 송이가 가방을 두 손에 꼭 쥔 채 옆으로 왔다.

이미 교실 밖을 뛰쳐나와 미친 듯이 뛰어나가는 애들이 반이었지만 나는 천천히 걸었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이거 봐봐 저번에 새로 산 지갑이다?”

“아, 응. 멋지네.”

우리 집에 있는 당근 모양 동전 지갑이랑은 다르게 가면라이더가 그려진 게 참 멋지네. 멋져.

원래는 토끼 모양이었는데 그마저도 당근 모양으로 타협 본 거였다.

돈만 빼서 들고 다니지만 그래도 용돈을 받으면 거기에 넣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다.

“너는 뭐 먹을 거야?”

“나도 너랑 같은 거 먹을 거야!”

“콜팝 먹는다는 거지?”

“응!”

10살짜리의 보폭으로 걷는 걸음이라서 그런지 학교 앞 분식집에 도착하기까지 좀 걸렸다.

그동안 쓸데없긴 하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꽤 편하네?’

새삼 이 녀석이 좀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름 종알종알 말하는 게 귀엽기도 하고.

‘어렸을 때 꽤 미래가 기대되는 얼굴이었는데, 아직까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네.’

옆에서 저렇게 열성적으로 말하는데 어떻게 안 받아주겠는가. 이대로 잘만 크면 예쁜 소꿉친구 하나 얻는 거지.

그렇게 분식집에 도착하자 역시나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애들이 있었다.

그래도 다른 학년이랑 하교 시간도 안 겹치고 한차례 애들이 빠져서 그런지 그렇게 많지는 않네.

“우연아 콜팝만 사오면 되지?”

“응 다음에는 내가 사줄게.”

“다, 다음에? 아, 아냐 다음에도 내가 사줄게!”

얼굴이 벌겋게 변하더니 그대로 아이들 틈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배가 고팠나?’

다급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 걸음을 옮겼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니 먹고 싶네.

분식집 바로 옆에 있는 문구점 앞 그늘에 서서 기다렸다.

“우연아! 여기 이거 네 거!”

“고마워 송이야. 잘 먹을게”

주변을 살펴보다 어느 한곳을 계속 관찰했다. 그러자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송이는 콜팝을 건네줬다.

‘어째 같은 콜팝인데 내 거가 양이 더 많아 보이는데......?’

그래 봤자 몇 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에 그냥 내 거가 더 많았나 보다, 하면서 입에 하나 넣었다.

“어디서 먹을까?”

“학교 놀이터 정자에서 먹자.”

“그네는 안 타게?”

“이미 타고 있는 애들 있을걸,”

“아......”

뺏ㅇ...면... 송이가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나한테 하는 말은 아닌 거 같아 그냥 슬러시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이 맛에 내가 학교 앞 분식집을 못 끊어.’

우리는 콜팝을 먹으면서 천천히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응? 우연아 뭐 봐?”

“...... 아무것도 아니야.”

아까 송이를 기다리면서 어떤 여자를 좀 봤었는데 아무래도

‘고개 돌리기 전에 눈이 마주쳤던 거 같단 말이지.’

놀이터를 가다가 다시 그 자리를 확인해 봤으나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거리가 있어서 눈이 마주친 것도 확실한 건 아니었다.

얼굴도 안 가렸고, 옷도 깔끔했는데......

‘좀 걸린단 말이지.’

멀쩡한 성인 여성이었지만 뭔가 걸렸다. 그냥 기분 탓으로 넘기지 뭐. 갈색 머리인 건 기억했다.

“아 맞다 문자.”

아빠 저 오늘 방과후 취소돼서 송이랑 같이 콜팝 먹으면서 놀이터에서 누나 기다렸다가 같이 갈게영

누나 나 오늘 방과후 취소돼서 송이랑 같이 콜팝 먹으면서 놀이터에서 기다리고 있을겡

전송 완료라는 창이 뜨자 다시 핸드폰을 목에 걸고 다시 콜팝을 들었다.

“이제 됐어?”

“응. 우리 무슨 얘기하고 있었지?”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좋은지 해가 쨍쨍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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