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chapter 5. 후일담
* * *
유괴 사건이 있고 난 후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병원에 급하게 온 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끌어안으면서 통곡을 했고,뒤를 이어 도착한 어머니도 조용히 나를 안았다.
‘괜히 내가 다 미안해지네.’
그 품이 꽤 따뜻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거기서 더 울었으면 탈수 올지도 몰랐다.
“혹시 그 아줌마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니?”
“킁,사실 후문에 오기 전에 정문에서 한 번 봤었는데여.그때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는데......”
경찰 누나가 와서 다윤에게 먼저 보고 들은 것을 묻더니 내게는 좀 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 여자와 했었던 모든 대화와 일들을 말해줬다.
아빠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같이 가자고 했다는 말을 하자 소스라치게 놀란 아버지가 나를 끌어안긴 했지만.
‘개새끼 감빵에나 들어가라!’
그렇게 열성적으로 진술을 하고 나자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본 경찰이 부모님과 무슨 애기를 잠깐 하더니 갔다.
아버지의 만류로 나는 하루 정도 병원에 있었고,다음날 바로 퇴원했다.
“우리 금쪽 같은 아들......아이스크림은 아빠가 많이 사줄게.”
그렇게 나는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요양했다.
‘맞을 때는 진짜 개아팠었는데.’
맞은 곳에는 멍만 들었다는 게 좀 억울했다.크게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긴 하지만.
그렇게 이번 일이 해결되나 싶었지만......그건 아니었다.
[하교 시간을 노려10세 남아를 초등학교 후문에서 유괴를 시도한......]
대낮에 얼굴도 가리지 않고 초등학교 근처에서 얼쩡거릴 때부터 알아봤지만,증거가 너무 명확했다.
후문 근처에CCTV가 있어서 그런지 나와 여자가 있었던 곳이 아주 잘 찍혀 있었다.지금은 뉴스에서도 나오고 있고.
‘뉴스에 내 얘기가 나오다니.이런 식으로 나오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지.’
주변 친척들과 지인들한테서 오는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학교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뒤집어졌다고 하고.
하나 의외인 건 그날 이후로 그 여자를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것 정도.법정에 한 번은 가야 되는 줄 알았는데.
‘세상이 달라서 그런가.’
여자보다 남자가 보호받는 세상이라지만 이번 일은 꽤나 화제였다.
괜히 유치원 때의 일이 생각나 어깨를 으쓱했다.어디서 많이 본 상황 아닌가?아님 말고.
하지만 이번 일로 다시는 정신 나간 놈들과 엮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앞으로는 그런 일이 있으면 그냥 회피할 생각이었다.
“전학 가는 게 낫지 않겠니?앞으로 학교 갈 때마다 생각나면 어떡해......”
“괜찮아여!누나랑 같이 가면 하아나도 안 무서워!그리고 정문으로 다니면서 떡볶이도 먹으면 돼!”
가만히 듣고 있던 어머니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우연이도 괜찮다고 하고 어차피 핸드폰도 새로 맞추잖아.학교에서도 무슨 대책도 마련한다니까......”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가 여기였기에 다른 학교를 가려면 이사를 가야 했다.하지만 그건 어머니도 곤란해 보이고,
‘애초에 트라우마 같은 건 남지 않았는걸.’
아버지의 걱정과는 달리 나는 멀쩡했다.이게 다 괜히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는 의사 소견 때문이야.
보통 남자애였다면......애초에 이렇게 끝나지도 않았으려나?
아무튼 아버지가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낼 때면 나는 항상 씩씩하게 대답했다.
“오늘은 같이 잘래여......”
“헉 이리 오렴!”
너무 애 같지 않게 군건가 싶어 어느날 베개를 들고 밤에 찾아가기도 했다.
잠이 안 오기는커녕 침대 한가운데에서 꿀잠 잤다.
그렇게 시간은 점점 지났고 아버지는 좀 진정이 됐는지 우리는 이사를 가지 않고 다녔던 초등학교를 다시 다니게 되었다.
“아빠 여깄어!”
하교 시간 때 하교를 도와주는 학부모 어쩌고에 신청해서 매일 하교를 같이했지만.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원래도 집에서 챙김을 받았다지만 이제는 다윤이까지 나를 과보호했다.
모르는 사람이 나를 쳐다보기만 해도 으르렁대는데 새끼 맹순 줄.
아버지는 어딜 가든 나를 절대 혼자서는 못 다니게 했다.좀 편하긴 했지만...양심이 아팠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좀 말려주셨는데.’
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어머니가 아버지를 말리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나도 그런 그들을 이해했다.
‘전부 나를 소중하게 여기니까 그런 거겠지.’
분명 난 어린애가 아닌데,아 맞긴 하지만.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
순탄하진 않았지만 그로부터3년이 흘렀다.
스마트폰으로 핸드폰이 바뀐 후부터는 나는 매일 기사를 보거나 모델,연예계 쪽의 정보를 수집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번 시험을 백 점 맞아와서 천재가 아니냐는 둥 작은 소동이 있었긴 했지만.
이제 지긋지긋한 초등학교 생활도 막을 내릴 때가 됐다,이 말이야.
“우리 아들 졸업 축하해!아구 예쁜 내새끼......”
“우연이랑 같은 교복 입고 등교할 생각에 벌써부터 신나!”
“졸업 축하한다 아들.”
꽃다발을 받으면서 환하게 웃었다.주변에도 나처럼 꽃다발을 받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내 꽃다발이 가장 화려해 보였다.
“우연아!나랑 같이 사진 찍자”
“나랑도 나랑도!”
“좋아.같이 찍자”
플래시가 터지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 세계는 이미 내가 살아가고 있는,이우연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었다.
빛나는 곳에 다시 한번 발을 들일 때가 되었다.
****
전생에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그곳에 뛰어들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들어간 소속사에서는 나를 배우로 데뷔시키려고 했었고,작품이 엎어지자 별다른 기대 없이 화보로 찍었을 뿐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모델’이라는 천직을 찾은 것이.
단순히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컨셉에 몰입해 연기하며 옷을 보여주는 것,나를 보여주는 것,
조명과 카메라 메이크업과 의상.그 외 많은 것들이 사진 하나에 영향을 주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아닌 카메라에 비친 내 모습이 더 좋았다.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내가‘모델’이라는 직업에 빠져든 건.
뒤늦게 시작했지만 미친 듯이 노력했다.트렌드와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했으며 연습했다.
패션쇼 한 번을 서기 위해 워킹 연습을 밤새도록 해서 발에 물집이 잡히고 자세와 각도를 맞추기 위해 온몸이 쑤셔도 걸었다.
나는‘재능’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진 노력 덕분인지 여러 곳에서 협찬과 제의가 빗발쳤고 차근차근 계단을 밟듯 올라갔다.
모델로서의 김현수를 내가 직접 쌓아 올렸다.
하지만 배우를 중점으로 뒀었던 소속사는 내가 성공하기 무섭게 온 화력을 내게 집중했고 여러 매체에 출연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빠른 성공과 함께 빠른 추락이 따라왔던 걸까.
애초에 모델 에이전시가 아닌 곳에서 발이 묶인 것부터가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우연이는 장래희망이 뭐니?”
슈퍼 모델이었던 김현수는 이곳에 없다.
웃으며 내게 묻는 선생님의 말간 얼굴을 보며 나는 입을 달싹였다.
‘다른 직업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
전생을 기억하는 만큼 모델이 아닌 다른 직업,의사나 교사를 넘어 판사나 검사를 목표로 잡는다고 해도 남들과는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전생에 학업에 충실하지 않았기에 이번 생은 최선을 다할 생각이긴 하지만.
내가 아무리 빠른 출발을 했다고 해도
‘추월당하겠지.괴물 같은 놈들에게.’
노력하면 될 수 있다지만 노력하는 천재는 이길 수 없었다.
천재라는 녀석들은 어느 곳에나 있기 마련이다.근데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내가 그런 애들을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하고 싶지 않았다.
공부를 잘해야 얻을 수 있는 직업,돈도 잘 벌고 안정적인 직업이지만
‘역시 나랑은 안 맞아.’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지?
인생은 쉽게 살 수 없다지만 쉽게 살고 싶었다.성공도 해보고 싶었고.
어려서부터 몸에 흉터가 생기지 않도록,피부가 타지 않도록 한 것부터가 이미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인물이 훤하면 뭘 하든 좋긴 하겠다만.
그토록 꿈에 그렸던 파리 패션 위크에 서기 한 달 전에 추락해버렸으면서.눈부신 조명을 보는 게,터지는 플래시를 보는 게 여전히 좋았다.
슈넬에서 처음 연락 왔을 때의 기쁨을 아직도 잊지 못해.
입안을 맴도는 그 말을 천천히 곱씹다,크게 내뱉었다.
“모델이요.저는 모델이 되고 싶어요!”
“가수도 아니고 모델?다른 애들은 다 가수하고 싶다고 하는데.”
“저는 모델이 좋아요.”
“그래.우연이는 꼭 최고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거야.벌써부터 이렇게 예쁜 걸?”
후련했다.어쩌면 이미 마음 한켠에서는 모델이라는 직업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걸지도.
나는 차근차근 마음 정리를 해갔다.앞으로의 계획,목표는 세계적인 모델이 되는 것.
남성 의류가 발달한 이곳은 남자 모델도 꽤 많았다.
“어머 이 그림은 뭐니?”
“......런웨이에 선 제 모습이요.”
‘꿈 그리기’라는 주제에서 나는 런웨이에 서 있는 내 모습을 그렸다.
나름 열심히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물은 초등학생 그림 수준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여전히 그림에는 소질이 없네.
도화지 상단에 이름과 직업을 적자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아이들 걸 소개해줬다.
집으로 와서 가져온 그림을 아버지에게 슬쩍 보여주자
“우리 우연이는 모델이 되고 싶은가 보네......어쩜 좋아.하긴 우리 아들이 모델을 안 하면 누가 하겠어.”
......역시 반대는 없었다.애초에 팔불출이 반대할 일이 없었으려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