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8화 (8/137)

〈 8화 〉 chapter 7. 친구를 사귀는 법

* * *

뭐지.

“화이트 필요해? 내 거 빌려줄게. 천천히 줘도 돼”

“아 고마워. 빨리 쓰고 줄게”

뭐가 이렇게 편하지.

“너도 한 입 먹을래? 자 여기.”

“어어..... 고마워”

근데 이건 한입 정도가 아닌데? 수북하게 쌓인 과자를 보다가 입안에 넣어버렸다. 음 짭쪼름 한 게 맛있네.

설문지에 체크를 잘못해서 필통을 뒤지고 있으면 옆에서 화이트를 빌려주겠다고 하고, 쉬는 시간에는 멀뚱멀뚱 앉아있다가 과자를 얻었다.

‘이게 학교라는 거냐?’

전생에 다녔었던 중학교랑은 묘하게 다른 거 같지만,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반 인원수는 총 서른 명. 21명이 여자고 나까지 총 9명이 남잔데.

‘왜 나는 같이 다니는 애가 없는 거지.’

난 자발적으로 아싸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어째서인지 반에 같이 다니는 친구가 없었다.

심지어는 남자 명수가 홀수여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아주 그냥 둘, 둘식 뭉쳐 다녀서 낄 틈이 없었다.

‘이거 맞는 거냐?’

다 같이 다니면 좀 좋아 어?

가뜩이나 핸드폰도 내서 할 것도 없는데...... 덕분에 내가 쉬는 시간에 하는 거라고는 낙서하기, 잠자기 아니면 놀러 온 다윤과 대화하기 밖에 없었다.

첫날에야 혼자 점심을 먹어도 이상하지 않았다지만 그 이후에는 혼자 가기 머쓱해서 그냥 급식실을 안 갔다.

‘급식이 맛없기도 하고.’

매점에 가서 빵이나 샌드위치를 사서 배를 채웠다. 진짜 급식이 맛없어서 그런 거다. 급식이 맛없어서...... 에라이.

그나마 여자애들이랑 몇 마디 섞어보긴 했지만 남자애들은 무슨 고양이라도 된 것처럼 굴어서 말도 못 했다.

“우연아! 나 왔어!”

“왔냐? 오늘은 좀 빨리 왔네.”

“응. 너 좋아하는 푸딩 나왔더라 오늘.”

“...... 푸딩?”

“엉, 오늘은 그래도 먹을만 했었는데 먹지.”

친구 없어서 급식 안 먹는다 왜.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삼켰다. 이 중학교가 경쟁이 쎄서 그런지 꽤 안면 있었던 애들은 다 떨어졌었다. 얘만 빼고.

한송이.

내 성장판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키가 비슷했다.

진짜 올해는 폭풍 성장이 할 예정. 조급해하지 말자.

“짠! 그래서 내가 안 먹고 너 주려고 갖고 왔지.”

“..... 야”

“응? 왜?”

“진짜 사랑한다. 푸딩 개좋아. 진짜.”

“..... 우씨 많이 먹어라 그래! 먹어!”

푸딩을 들고 진지하게 말하자 어버버거리던 송이가 이내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내 어깨를 아프지 않게 쳤다.

급식에서 제일 맛있는 건 역시 후식이지.

입안에 퍼지는 몰캉몰캉하고 단맛을 느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이 났다.

띠리리리링ㅡ

“종 쳤다! 나 갈게!”

“엉. 잘 가라.”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예비종이 치자 송이는 급하게 자리를 떴다. 아 쟤네 5교시 체육이랬나.

그러고 보니 우리도 6교시 체육이었다. 내가 체육복을 갖고 왔던가.

하나둘씩 자리에 앉아 교실이 어수선했다. 교과서를 꺼내고 나니 할 게 없어서 주변을 둘러보자

‘...... 맛있겠다.’

대각선 자리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푸딩이 포착됐다. 진짜 맛있었는데 양이 너무 적었어.

아, 자리 주인 왔네.

하지만 푸딩이 가려지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줄까?”

“어?”

“먹고 싶어 하는 거 같길래. 줄까?”

“.... 내가 너무 빤히 쳐다봤나? 주면 나야 좋지.”

“여기.”

“고마워!”

아싸 푸딩 겟. 수업이 시작하려면 아직 3분 정도 남았으니 그 안에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뚜껑을 까고 숟가락으로 한입을 퍼서 입안에 넣자 사르르 녹았다.

근데 계속 보고 있네, 먹고 싶나.

대각선이었지만 몸이 이쪽으로 완전히 틀어져 있는 게 아무래도 줬지만 먹고 싶긴 했나 보다.

“한 입 줄까?”

“..... 응?”

“자, 한 입 먹어. 내가 특별히 준다.”

곧 수업 시작할 텐데.

망설이는 여자애의 모습을 보고 그냥 입에 밀어 넣어버렸다.

“맛있지?”

“어, 어. 근데 이거 간......”

“다 자리에 앉아라.”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거 같았지만 들어온 영어 선생님에 말이 끊겼다.

‘이따 물어봐야지.’

다음 시간이 체육이기도 하고, 푸딩을 양보해주다니 참 좋은 친구 아닌가.

몇몇 예민한 성격을 가진 남자애들과는 달리 오히려 여자애들이 털털해서 더 편했다. 누나가 있어서 그런가.

애초에 꼭 친구를 남자로 사귈 필요는 없지. 여자가 반에 21명이나 되는데 오히려 이쪽이랑 더 친해지기 쉽지 않나.

음 친구를 자연스럽게 사귀는 법, 친구......

‘친절하게?’

친절한 사람을 누가 싫어하겠어. 그렇게 생각한 나는 노트에 ‘친절함’을 작게 썼다. 다가오기만을 기다릴 게 아니라 먼저 다가가 봐야지.

“나도 같이 있어도 돼?”

“응? 어어. 있어도 되지.”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어 너 신발 나랑 같은 거네.”

얼굴에 철판을 깔고 갔다. 다들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으나 그래도 사회생활을 한 게 몇 년인가.

아무리 그래도 왕따는 될 수 없다는 심정으로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친절함’을 마인드로 가진 채로 웃으면 웃는 얼굴에 침도 못 뱉는다고, 처음엔 물음표를 띄우다가도 이야기꽃을 피워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한 명, 한 명씩 친해져 갔고.

..... 그래서인지 반장 후보로 추천까지 돼서 기겁하며 바로 손을 들고 후보 사퇴를 했다.

주변에서는 아쉬운 소리가 들린 거 같았지만. 뭐 이거 좋은 거지?

****

반에 아는 애가 있는 애들은 조금씩 말을 나누긴 했으나, 아직 어색함이 감도는 학기 초반이기에 교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자기소개나, 이런저런 옆자리와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들 슬슬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그중에도 못 친해진 사람이 있었으니.

‘아 진짜 뭐라고 말 걸어야 되지......’

바로 그 이우연의 옆자리였다.

번호순으로 앉아서 그런지 중간쯤인 자리는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시선이 박혔다.

선생님의 시선만 박히면 다행이지,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종종 여기를 주시하는 눈빛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혼자 낙서를 하거나 멍을 때리고 있었고, 그의 짝꿍은 결국 한 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저렇게 사색에 잠겨 있는데 어떻게 말을 걸어.....

무언가 벽이 쳐져 있는 느낌이었다.

쉬는 시간에는 종종 그를 보러 온 예쁜 3학년 선배가 내려왔고 점심시간에는 옆반에 예쁜 여자애가 놀러 왔다.

‘아니 예쁜 것들은 자기들끼리만 놀아?!’

평소 무표정이다가도 그들과 있으면 꽤 웃는 모습을 목격할 수가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쪽을 흘깃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가 우연과 대화를 나누던 여자들과 눈이 마주치면 바로 시선을 돌렸지만.

뭘 꼴아 보냐?

말은 안 했지만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가 속한 반은 쉬는 시간 때에도 다른 반에 비해 조용했고, 그가 잘 때면 더 조용해졌다.

가끔 필요한 거나 먹을 거를 나누어주는 정도의 대화밖에 할 수 없어 항상 우연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도 있긴 했다.

‘아 그냥 오늘 푸딩 먹지 말 걸.’

‘아직 안 먹었는데, 이따 쉬는시간에 가서 줘야지.’

‘아니 그걸 같은 숟가락으로 먹는다고? 쟤는 좋아죽겠네.’

수업 시작하기 직전이었지만, 싱글벙글 웃으며 푸딩을 먹는 우연을 주시하는 시선은 많았다.

그런 이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했지만 우연이 푸딩을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를 알아냈다는 거에 의의를 뒀다.

하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 수업이 끝나고부터 반에서 그 누구와도 친하지 않았던 우연이,

“내가 도와줄게.”

“아 진짜? 고마워. 넌 어디 살아? 나는....”

“야 나 밥 먹을 친구 없어서 그런데 나랑 같이 밥 먹어주면 안 돼?”

체육 시간, 아니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오기 시작했고,

‘진짜 개쌉잘생겼네......’

‘얘 기초 어디 쓰는 거야. 같은 남잔데도 예쁘네.’

그런 아이들을 함락시키는 데에는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얼굴로.

****

“아들 요즘 학교는 어때? 친구는 많이 사귀었고?”

“응. 나 친구 많아.”

“...... 저번에는 친구 없다고 쉬는 시간에 자주 내려오라고 했으면서.”

“앞으로는 안 와도 된다고 했잖아. 그동안 수고했어.”

“하......!”

왜인지 모르게 입이 오리처럼 튀어나와 있는 다윤의 밥그릇에 계란말이 하나를 올려주었다.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점에서 사 온 걸로 매번 끼니를 때우기에는 물려서 반 애들과 급식을 먹었다.

다 주머니에 과자 주전부리 하나씩은 넣고 다니는지 쉬는 시간에는 뭐가 자꾸 입으로 들어왔다.

‘이러다 살찌면......’

여태까지 살찌는 체질이 아니라서 마구 먹었다지만 조금 자중할 필요가 있었다.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고, 스트레칭과 운동을 하는 건 어느새 일상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말 꺼내볼 때가 된 거 같은데,

“아빠. 저 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갖고 싶은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뭔데?”

“저 쇼핑몰 피팅 모델 해도 돼요?”

부모님 동의가 필수였다. 말하고 나서 아버지를 보자 아버지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안 돼.”

딱 잘라서 말하셨다. 안 된다고.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