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9화 (9/137)

〈 9화 〉 chapter 8. 다윤의 남자친구 (1)

* * *

지잉ㅡ 지잉 지잉ㅡ

“우연아 너 전화 오는 거 같은데?”

“아. 무음이 아니라 진동으로 해놔서 울리나 보네.”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입에 물고 나오니 쇼파에 엎어져 있던 다윤이 말했다.

‘저러다 쇼파랑 한 몸이 되겠네.’

혀를 차며 선반에 있던 핸드폰을 들자 역시나 한 개의 앱에서 오는 알림이었다.

“뭐야 뭐야?”

“그저껜가, 페이스룩 시작했다고 말했잖아.”

“아 맞다! 너 나랑 친구는 해놨지?”

“응.”

옆에 딱 붙어서 몸을 밀착해오는 다윤에 옆으로 살짝 떨어지며 대답했다.

‘알림도 꺼야지 이참에’

간간이 울리고 있는 진동에 알림 설정에 들어가 모든 알림을 꺼버렸다. 그러자 계속 울리던 핸드폰도 잠잠해졌고.

아 내 배터리. 한 것도 없는데 40프로인 거 실화냐.

“야..... 너 팔로우랑 좋아요가 왜 이렇게 많냐?”

“누구누구는 역전한지 오래지.”

“뭐?! 야 너 이거 내가 찍어준 거잖아!”

“피사체가 좋으니 사진이 잘 나온 거지.”

팔로우 700명, 게시글은 사진 단 두 장이었지만 좋아요 수는 전부 1000개에 살짝 못 미쳤다.

‘댓글이 다 여자네.’

아는 사람은 드물고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몇 있고.

페이스룩. SNS가 다 그렇겠지만 반 정신병동이었다. 중2병, 공주병, 왕자병, 변태, 관종까지 모아둔 혼돈의 카오스.

좋아요수를 얻기 위해 자극적인 컨텐츠까지.

미리 보기로 봤지만 이미 나한테 온 메시지 중에서는 어디 사냐, 혹시 한 번 만날 생각 없냐 등 이상한 광고 문자를 포함해 이미 몇 명이 꼬여 있었다.

‘이래서 페룩이 평이 안 좋지.’

이런 녀석들 때문이다. 정신 나간 놈들이 좀 많아야지.

뭐 그만큼 팔로우가 많으면 많을수록 광고 수익을 얻는 거 같긴 하지만.

“이거나 좀 키워 봐야지.”

“뭘 키워? 페룩?”

“어, 그러니까 누나 네가 사진 좀 많이 찍어줘.”

“내가 네 사진을 왜 찍어.”

“갤러리 딱 대.”

“아 몰라!”

저 갤러리 열면 아마 내 사진 100장은 넘게 나올 거다.

아닌 척하면서도 아버지와 함께 팔불출끼가 있었다. 저걸 브라콤이라고 했었나.

‘아무튼 간에, 이름값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모델이라는 경계선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허물어졌다. 애초에 ‘홍보’라는 마케팅을 중심으로 움직이기도 해서 연예인, 혹은 일반인 등 패션에 관심 있는 유명인이라면 초청되는 일이 허다했다.

‘물론 국내 한정이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시작해야 해외까지 갈 거 아닌가. 모름지기 사람은 유명하면 유명할수록 대우받는 세상이다.

‘이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설한 SNS지만, 따지고 보면 처음은 아니지.’

올린 사진은 딱 두 장이었다. 한 장은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해놓은 다윤이 찍어준 사진, 다른 한 장은 전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담긴 사진.

사진만 몇십 장 찍었지.

어두운 청바지와 손목을 걷고 단추 몇 개 푸른 검은색 와이셔츠. 과하지 않고 깔끔한 옷이었지만 정작 포인트는 거울에 반쯤 비친 웃고 있는 내 얼굴이었다.

‘여기는 뭐, 얼굴 사진만 올려줘도 좋아할 거 같긴 한데......’

그렇다고 셀카만 주야장천 올릴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큰 수익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작은 발판 하나 만들어두려는 거니까.

“부모님이 허락 안 해주실까?”

“저번에 말했었던 거? 으음, 그래도 완전히 반대하시는 건 아닌 거 같던데.”

“그렇다면야 뭐......”

“근데 갑자기 웬 피팅모델이야? 막 길거리에서 캐스팅이라도 된 거야?”

“그건 아니고. 음 그냥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남성 쇼핑몰이 많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꽤 괜찮아 보이는 곳들이 많았다. 메이저보다는 음 가격대 좀 나가는 곳?

‘옷이 비싸단 말이지......’

몇 벌 사고, 신발부터 아우터까지 생각하면 살 돈이 없었다. 우리 집이 가난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사치를 부릴 정도는 또 아니라.

지금 나이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피팅 모델을 하면 얻을 수입이나 경력이 짭짤했다.

“키나 커야지.”

“지금도 작은 건 아니잖아.”

“이 정도면 작은 거지 뭐.”

“...... 야 너 그거 키 작은 애들이 들었으면 돌 맞았다.”

다윤이 째려봤지만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163이면 작은 거지.’

나이 평균보다는 조금 큰 편이었지만 전생에 키가 커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불만족스러웠다.

‘이 정도 얼굴이면 작은 것도 괜찮긴 하겠지만 뭐......’

다다익선이라고, 핏이나 비율을 생각하면 큰 게 훨씬 좋았다. 사진으로는 키가 커 보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도의 힘을 빌린 거고.

페룩에는 다른 사람이 찍어준 사진 아니면 목까지만 나온 전신사진을 올릴 생각이었다.

‘흑역사 생성은 절대 안 되지.’

몇몇 사람들은 기본 카메라로 찍어도 괜찮을 거 같은데. 필터를 넣어서 부담스럽게 나온 사진들이 많았다.

난 오로지 기본 카메라로 승부한다.

SNS를 하는 사람 중에 클린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봤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 보면 치기 어린 마음이 들기 마련이었다.

이미 그 관심에 데어본 나로서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지만.

“나 먼저 씻으러 갈게.”

“이렇게 일찍?”

“일찍 자야 키 커.”

다윤의 머리를 꾹 누르고 가자 자기가 누나라는 둥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당장은 허락받지 못했지만 다윤이 말했던 것처럼 부모님도 고민하고 계신 것 같고.

‘그동안 꿈을 계속 모델이라고 말하길 잘했어.’

그래도 1년 안에는 허락을 받을 생각이었다.

‘내일도 학교를 가야 된다니 인생.’

일단 내일 학교부터 가고. 이놈의 학교는 몇십 년을 가는 건지 모르겠다.

****

장담할 수 있다.

“우연아! 너도 여기 와서 같이 먹어.”

“응. 지금 갈게 챙겨줘서 고마워.”

적어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 학교 논란이 터지지 않는다고.

‘이런 병아리들이 날 보면서 짹짹거리는데 어떻게 무시해.’

이제 막 초등학교를 부모님이 사준 몸보다 조금 큰 교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은 순했다. 다른 반에는 화장을 진하게 하는 애들이 있긴 한 거 같지만.

내 범주는 우리 반밖에 없다.

다른 반이라고 해봐야 송이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송이를 못 봤네.’

쉬는 시간에도 반 밖을 나가질 않으니 마주칠 일이 없었고, 점심시간에는 타이밍이 안 맞았다.

‘나중에 보면 되지 뭐.’

간간이 캐톡으로 연락을 하니 문제는 없었다.

“아 맞다 국어 수행평가 4인 1조라는데 우리랑 같이 할래?”

“음.....”

나는 고개를 돌려 남자애들이 있는 곳을 힐끔 쳐다봤다.

역시 안 될 것 같군.

“그래.”

“앗싸! 그러면 이따 조 정할 때 그렇게 할게.”

성향이 워낙 달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아직 남자애들은 그들만의 세계가 뚜렷하게 있더라.

여자애들은 나를 거리낌 없이 편하게 대했으나 남자애들은 나를 조심히 대하는 게 느껴졌다. 친한 건 아니지만 뭐랄까 선이 그어져 있다고 해야 하나.

수가 적고 둘 혹은 넷씩 다녀서 아무래도 자기들끼리 하면 인원도 딱 됐다.

‘과거의 나, 왕따를 걱정했다니......’

이 얼굴을 가지고 그런 걱정을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던 거 같다.

“조금만 주셔도 되는데.”

“아유, 마이 묵어야지~”

“감사합니다.”

옆 사람과 확연하게 차이 나는 배식이었지만 나는 활짝 웃었다. 과일이 두 배!

급식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3학년이 점심시간에 스포츠 대회를 해서 1학년이 먹는 시간이 조금 앞당겨져 있었다.

‘음, 이제 들어오나 보네.’

누가 봐도 3학년으로 보이는 이들이 급식실로 들어왔다. 갑자기 시끄러워진 것도 있기도 하고.

“다 먹었어?”

“다므그가”

“천천히 먹어.”

적당량을 먹고 고기들을 애들한테 나눠준 나는 대신 사과를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먹는 속도가 좀 차이가 났고.

‘많이 먹어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연아!”

“아. 안녕하세요.”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다윤이 있었다.

손인사를 하니 주변에 다윤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고 그들에게도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니 반응이 돌아왔다.

“꺄! 안녕 안녕, 너 진짜 너무 예쁘다.”

“피부 좀 봐. 파데도 안 한 거 같은데.”

“...... 감사합니다.”

“야 뭐해 빨리 가자.”

“아 진짜 이다윤 이 기지배 네 동생이랑 좀 친해지자 어?”

다윤과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꽤 친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집에 한 번도 친구를 데려온 적이 없었네?’

나야 딱히 집에까지 데려올 필요성을 못 느껴 밖에서 놀거나 놀러 간 적은 있어도 데려온 적은 없었다.

“..... 이제 일어날까?”

“그래.”

언제 다 먹었데. 싹 비워져 있는 급식판을 바라보며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식실을 나오자 다들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더니 입에 넣었고 난 젤리를 얻어냈다.

“고마엉.”

“으응, 아냐”

그러면서 내 손에 젤리를 부으려는 걸 말렸다. 가끔 이런단 말이지.

“우리 매점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을까?”

“좋아! 얼른 가자”

“앞으로도 계속 3학년이 늦게 먹었으면 좋겠다.”

점심을 일찍 먹어서 그런지 여유 시간이 꽤 남았다.

‘아이스크림은 못 참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건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불문율이었기에 다같이 매점으로 향했다.

매점에 도착하자 사람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꽤 있었다. 주변에서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봐봤자 내 얼굴밖에 더 보겠어.

척 봐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가 먹는 아이스크림은 정해져 있었기에 재빠르게 메롱나를 꺼내 계산하고 먼저 나왔다.

메롱나 껍질을 까서 입으로 곱게 넣으려는데, 어깨를 툭툭 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너. 이우연 맞지?”

“네? 맞긴 한데요.”

“맞으면 맞는 거지 뭐 이렇게 말이 길어”

그렇게 말하는 남자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캔했다.

‘음, 요즘 세상 많이 좋아졌구나.’

골룸이 사람한테 말도 걸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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