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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살아가는 법-10화 (10/137)

〈 10화 〉 chapter 9. 다윤의 남자친구 (2)

* * *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싸가지가 없네.’

몇 마디 나눠본 게 고작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공격적인 말투를 보아하니 일단 시비를 걸려고 말을 걸었으며 나를 알고 있다는 것.

‘명찰 색을 보아하니 같은 학년은 아닌 거 같은데.’

바지를 얼마나 줄인 건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저거 내년에는 못 입겠네.

“...... 우연아,”

“아 응. 가자.”

“뭐? 가긴 어딜 가.”

어깨에 탁하고 손이 얹어졌다.

잠깐 인상이 찌푸려졌었지만, 쭈뼛거리며 애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싱긋 웃었다.

“먼저 가 있어. 먹고 있어도 돼.”

“으..... 응”

체감상 다 먹으면 도착할 것 같긴 하지만.

그렇게 애들을 보내자 여전히 구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골룸이 보였다.

머리는 펌했고, 피부는 화장으로 커버하려고 한 거 같은데 여드름 자국이 남아있었다. 상의는 후드티에 바지는 쫙 줄인 바지.

‘아무래도 논란이 생기는 애들은 이런 애들이 아니었을까.’

탐색전을 하듯 나를 째려보면서 있길래 메롱나가 다 녹기 전에 그냥 빨리 먹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내가 너희 누나 남자친군데,”

“음...... 누나는 남친 없다고 했는데요.”

“하. 그래 어떻게 보면 아직 아니긴 하지.”

순간적으로 다윤이 남자친구가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희한하게도 다윤의 남자친구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었다.

종종 하는 이야기들도 전부 친구 연애 얘기였고.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내 반응을 바라고 말하는 거 같아서 적당히 맞장구쳐줬던 기억밖에 없었다.

‘근데 아직은 아니라고?’

그러면 결론적으로는 남자친구가 아니라는 거 아닌가? 근데 왜 남자친구라고 본인을 지칭하고 있는 거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말을 잘못 이해한 건가.

“그래서 무슨 볼일이시죠?”

“그걸 몰라? 너 때문에 내가 다윤이랑 자꾸 못 만나잖아!”

“......”

나는 침묵했다.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들고.

‘할 말을 잃었네.’

크게 말해서 그런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시선들도 이쪽으로 차츰 쏠리고 있었다. 실상은 어린애가 빼액거리고 있는 거지만.

옆에 친구 세 명을 끼고 말하고 있는 저쪽과 혼자 있는 내 쪽.

사람들의 시선이 이곳이 어떻게 비추어질지 뻔히 보였다.

“혹시 왜 저 때문인지 알 수 있을까요?”

주위의 시선을 생각하며 사근사근 말했다. 하지만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상대는 이미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고.

“네가 멍청해서 다윤이 너를 챙겨준답시고 나한테 안 오잖아. 쉬는 시간에도, 학교가 끝나도!”

“음......”

다윤이 나를 챙겨줬다고?

오히려 내가 챙겨줬으면 모를까 다윤에게 챙김을 받은 적은 없었다. 쉬는 시간에 가끔 1학년 층에 내려오는 거 말고는 보는 것도 없고.

애초에 하교도 혼자 하는데. 얘는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더 상대하기도 귀찮은데.’

여기서 싸가지 없게 굴면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입소문을 탈지도 모를 일이었다.

최대한 이런 일에는 안 엮이는 게 좋지만, 엮이더라도 항상 피해자로 남아야지.

나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남자를 계속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어, 다윤 동생! 여기서 뭐해?”

의미 없는 대치가 2분 정도 지났을까, 낯선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자 아까 급식실에서 잠깐 봤었던 다윤의 친구들 중 한 명인 거 같았다.

‘작네.’

150? 아담하지만 도도하게 생긴 얼굴이 고양이를 닮은 것 같았다.

혹시 다윤도 있을까 싶어 그녀의 주위를 스캔했지만 다윤은 없었다. 옆에 있는 사람도 처음 보는 사람이기도 하고.

“안녕하세요.”

“어엉. 아까 인사했잖아 뭘 또 인사해.”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 앞에 있던 남자 네 명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자칭 다윤의 남자친구, 골룸은 어쩐지 입을 달싹이고 있었고 주위에 있는 녀석들은 딴청을 피웠다.

“다윤 동생한테 할 말 있어 너희들?”

“...... 다 했어.”

“으흥, 무슨 말 했는지 궁금한데. 나한테도 말해줄래?”

“그냥, 인사나 한 거지 잠깐.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맞아?”

그녀는 고개를 휙 돌려서 내게 물었다.

자동적으로 골룸과 그 무리의 시선까지 내게 쏠렸다. 너희가 나랑 언제 친해지고 싶었다고.

곧이곧대로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하나 부는 것도 별로였다. 음 그러면 적당히 발 빼야지.

“맞아요. 누나 남자친구가 저랑 친해지고 싶다고 하셔서. 음 그리고 누나가 저 때문에 연애도 잘 못 한 거 같아서......”

난 아무것도 몰라요. 머리를 잠깐 긁적이다가 이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누나한테 쉬는 시간에 안 와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학교 끝나고도..... 아 제가 들를 곳이 있어서. 부탁드려요.”

중간에 한 번 골룸 무리의 눈치를 보는 척 곁눈질하는 게 포인트.

멍하니 3초 동안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던 선배가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입을 열었다.

“뭐? 다윤이 남자친구라고? 쟤가?”

“네! 누나 남자친구 분이시래요.”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너 미쳤냐? 이다윤은 이거 알고?”

고양이가 하악질 하는 거 같다.

미간을 찌푸린 채 골룸 무리에게 쏘아붙이는 모습이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기백이 있어 보였다.

띠리리링ㅡ.

“어, 종 쳤네. 죄송해요 저 빨리 가봐야 돼서...... 먼저 가볼게요!”

“응 빨리 가~”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누나한테는 아까 했던 말 전해주세요!”

고양이를 닮은 선배가 나른한 표정으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골룸 무리는 어딜 가냐는 눈빛이었지만 자기들이 어쩌겠는가.

‘점심시간 다 버렸네.’

원래 같았으면 반에서 애들이랑 과자나 젤리를 나눠 먹으면서 놀고 있었을 텐데.

쯧, 혀를 찼다. 하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매점 앞이기도 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목격한 거 같으니 내일 중으로는 어떻게든 소문이 퍼질 게 분명했다.

처음부터 다윤의 남자친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아마 그쪽에서는 내가 그 골룸을 다윤의 남자친구라고 인식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터.

“다윤이나 놀려야지.”

작게 흥얼거리며 반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내게 달려오며 무슨 일이 있었냐는 둥, 그 선배 누구냐는 둥 병아리들이 재잘거렸고

내 몫을 남겨둔 것인지 내 책상 위에는 젤리와 과자가 남아있었다.

“역시 너희들밖에 없어.”

“흐하핳 그게 뭐야!”

볼이 발갛게 물든 애들을 보며 입에 젤리 하나를 넣었다.

‘단하영이었지.’

명찰에 붙어 있던 이름이 꽤나 예쁜 이름이라 기억했다.

****

“다윤다윤! 내가 완전 어이없는 얘기해 줌. 아 그리고 전해줄 말도 있고.”

“앙? 뭔데.”

친구들과 팔씨름을 하고 있던 다윤이 이제 막 교실로 들어온 하영을 바라봤다. 매점 갔다 온다고 하더니 완전 털어 왔네.

“야야. 이제 그만하자. 그래서 뭔 일인데?”

“아니 나랑 민지랑 같이 매점 갔는데 너희 동생 있는 거야.”

“...... 어. 근데?”

검은 봉투에서 자연스럽게 과자를 꺼내 뜯으려던 다윤이 멈칫하고는 하영의 말에 집중했다. 하영은 그런 다윤이 내려놓은 과자를 뜯었고.

“근데 너희 동생 앞에 박성훈 무리 애들이 단체로 있더래?”

“박성훈? 5반?”

“엉. 너 작년에 같은 반이었다고 했었던 애 있자나.”

“걔가 우연이 앞에 있었다고?”

“움냠, 아니 들어봐 봐. 약간 분위기가 너희 동생 삥 뜯는 거 같은 분위기인 거야. 그래서 갔더니 걔네는 네 동생이랑 친해지고 싶다고 둘러댔는데......”

들어보니까 너 남자친구라고 그러면서 막 뭐라고 한 거 같더라. 뭐 시발?

미친 새끼들이 돌았나. 가만히 듣고 있던 다윤이 하영의 말이 끝나자 욕설을 내뱉었다.

화가 난 듯 살벌해진 다윤의 모습에 과자를 먹고 있던 친구들이 공감의 말을 한마디씩 던졌다. 그거 미친놈들이네, 내일이 없는 듯.

그런 다윤을 보고 있던 하영이 입에 있던 과자를 삼키며 말했다.

“근데 동생은 걔가 너 남자친구인 줄 아는 듯.”

“하아 뭐라고?”

“뭐랬더라, 자기 때문에 너 연애도 제대로 못한 것 같다고 이제 쉬는 시간에 오지 말래. 아 오늘 학교 끝나고 들를 곳 있다던데.”

“미치겠네 진짜.”

“근데 들를 곳 있다는 거 구라 같아. 그냥 너 데이트하라는 거 같음.”

“아니 데이트 할 남친이 있어야지. 빡치게 하네.”

발을 동동 구르던 다윤이 머리를 쓸어넘겼다. 하영은 자기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과자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고.

“이번 시간 끝나자마자 바로 5반으로 간다.”

“나두 데려가.”

“하...... 우연이한테는 이따 집에 가서 다 말해줘야겠네.”

“근데 너희 동생 완전 천연 아니야? 그렇게 예쁜데 성격도 그러면 여자 존나 꼬이겠다.”

우연과 대화를 했었던 하영은 다윤이 왜 저렇게 안절부절 못하는지 이해했다. 애가 순해가지고는 잘못하면 홀라당 잡아먹히겠어.

물론 그렇다기에는 다윤이 브라콤끼가 좀 심하긴 했지만.

멋쩍게 웃으며 말하던 우연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았다.

그렇게 다윤은 한 교시를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종이 치자마자 5반으로 달려갔고,

“야 너 미쳤냐? 네가 언제 나랑 사귀었냐.”

“아니 안 사귀긴 했는데......”

“이거 완전 상사병 도진 새끼 아니야.”

“...... 말이 너무 심하잖아! 내가 연락할 때마다 동생이랑 뭐해야 한다고 하고, 뭐만 하면 동생! 이우연!”

“그래서 네가 뭐 보태준 거 있냐? 내가 우연이랑 있겠다는데.”

흐으윽. 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아주 울면 다지 다야.

울지 말라며 그를 달래는 남자애들을 보며 다윤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진짜 한 번만 더 지랄하면 맞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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