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chapter 12. 신사데이 (2)
* * *
“그렇게 쳐다본다고 핸드폰이 뚫려?”
“..... 뚫리라고 쳐다보는 거 아니거든.”
“하아, 그러면 여자랑 연락해? 요즘 자꾸 그것만 붙잡고 있잖아.”
다윤이 내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연락할 여자가 어딨어?”
“없기는 무슨, 어제 본 것만 해도 여자들한테 엄청 연락 오던데.”
그러면서 다윤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저저, 오리입술 저거 한 번 잡아 당겨버려야지.
‘그걸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봐서.’
어제 다윤이 본 페룩 메시지 때문이었다.
거실에서 페룩 메시지를 미리 보기로 목록을 보면서 대충 무슨 내용이 왔나 보고 있었는데, 과일 가져가란 말에 잠시 자리를 비웠더니 다윤의 손에 핸드폰이 들려져 있더라.
한 명의 메시지를 읽긴 했지만 다행히 다른 것들은 읽진 않았었다. 하지만 미리 보기로 무슨 내용인지는 알겠지.
“기다리는 연락이 있는데 연락이 안 오네.”
“...... 그 피팅 모델 한다는 곳?”
“어.”
“연락 안 와? 미친 거 아니야? 야 그냥 다른 곳 가. 어제 보니까 막 데일리 보이에서도 연락 오고 그랬었잖아.”
“일단 기다려 보는 거지 뭐.”
데일리 보이의 옷은 재질이 너무 구려서 걸렀던 곳이었다.
대학 원서나 이력서도 여기저기 넣어보고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데, 딱 한 곳에만 지원해서 그런지 자꾸 신경 쓰였다.
따로 결과 발표일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모든 연락망을 열어두고 기다리고만 있는 거고.
덕분에 지원하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내 모든 신경은 핸드폰에 곤두서 있었다.
‘팔로워 수만 늘어났네.’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팔로워 수가 올라가면 올라가면 갈수록 좋긴 하지만......
핸드폰을 계속 잡고 있다 보니 하는 건 소설이나 웹툰 보기 그리고 SNS였다. 개그와 유머, 양상 등 재밌는 컨텐츠들도 많았으니까.
그들에 비해 가짓수가 적은 내 피드를 보면서 그동안 쟁여놨던 사진들을 몇 번 올리다 보니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정작 큰 건 따로 있긴 하지만.’
그동안 다른 요청이나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었는데, 페룩 페이지 중 괜찮은 곳 두 곳이 출처를 밝히고 사진을 사용해도 되냐는 말에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만 물어보고 허락했었다.
“근데 너 진짜 여자 만날 거면 나한테 제일 먼저 데리고 와야 된다. 여자는 여자가 잘 알아.”
“그런 거 없다니까. 연애도 고등학교 들어가서 할 생각이고.”
“아주 국민 남친 되겠던데 뭘.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안 믿어 임마.”
“...... 게시물 지워 버려야 돼 진짜.”
이를 갈았다. 아니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대부분의 사진이 남이 찍어준 거라던가, 되도록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 ‘남친짤’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홍보되어버렸다.
‘그냥 올린 사진만 가져가서 홍보한다면서......’
댓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너무 예쁘다, 사귀고 싶다, 여친 있냐, 먹고 싶다 등 그러면서 자연스레 유입이 많아졌지만 이것보단
“아~ 나도 이런 남친 있으면 좋겠다! 남! 친!”
“하......”
내가 참자. 참아야지.
다윤처럼 마치 건수라도 잡았다는 듯 놀리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학교에서도 그렇고.
‘팔로워 10만 때문에 참는다.’
그만큼 제대로 홍보가 되긴 됐으니 말이다. 어디는 10만 찍으면 무슨 버튼이라도 보내준다는 데 페룩은 그런 게 없었다.
물론 광고 단가가 훅 뛰어서 혹할 때가 있긴 했지만...... 아니 사실 신사데이에서 연락이 안 온다면 여기서 몇 개 골라 할 생각이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돈인걸’
제일 많이 들어오는 건 역시나 화장품이었지만 다른 것들도 무시 못 했다. 이것이 바로 광고비의 힘인가.
뒷광고 문제만 안 생기면 되지 뭐.
사람 여럿 보냈었던 사건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난 해도 앞광고 해야지.
“한 이주만 더 기다려 보고. 안 되면 그냥 접어야겠다.”
모든 조건이 맞았었던 곳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아쉬움이 조금 남긴 했다.
하지만 그쪽 사정이 어떨지도 모르는 일이고 나이 때문일지도 몰랐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길 찾아 떠나야지.’
그렇게 연락을 넣고 기다린 지 일주일, 이주일, 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던 때에
[신사데이: 피팅 모델 합격하셨습니다. 미팅은......]
연락이 왔다. 그토록 연락을 기다렸던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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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래 이렇게까지 진심은 아니었는데.
‘약간 진심이 되어버렸네?’
만약 떨어지더라도 그냥 떨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연락이 오니 기분이 좋았다. 첫 활동이다 보니까 더욱.
역시 1트에 바로 성공, 믿고 있었다고 신사데이!
사실상 거의 붙었다고 보면 됐다. 이력서에 적혀 있는 정보들이 전부 합격되었으니 남은 건 뭐 카메라 테스트 정도?
실물과 사진이 많이 다르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나한테는 전혀 해당 사항 없었다.
‘난 실물파니까.’
특히 피부는 사진도 사진이지만 실물이 더 나았다.
메시지에 적힌 일시는 다음주 토요일. 마침 다음주 금요일에 방학식이었으니 바로 다음날이었다.
“나 다음주 토요일에 면접 보러 오래.”
“토요일이면 너네 엄마랑 같이 차 타고 다녀오면 되겠네.”
“일단 한 번 물어봐야지. 구로라서 여기서 한 40분 정도 걸리더라.”
저녁 준비를 하는 아버지에게 가서 말했다.
메시지에도 부모님 동반으로 와도 되고, 안 와도 된다고 적혀 있었다. 나이도 그렇고 제한이 많이 걸려 있어서 같이 가면 나야 편했다.
저녁 식사시간, 밥을 거의 다 먹어가자 나는 입을 뗐다.
“그 피팅 모델하기로 한 곳에서 연락 왔어요, 다음주 토요일에 미팅하자고 해서 가야 되는데......”
장소가 구로 쪽이라고 말하자 묵묵히 듣고 있었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내가 같이 가지. 어떤 곳인지 직접 보는 게 편할 거 같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엄마!”
난 봤다. 방금 어머니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는걸.
평소에 하지 않던 엄마 소리를 하니 낯간지러웠지만 차를 타고 편하게 갈 생각을 하니 대수롭지 않았다.
“그래서 어딘데? 연락 오면 말해준다고 했잖아!”
“말해도 모를걸, 신사데이야.”
“으음......”
역시나 모르는 눈치였다. 소년나라라고 하면 모를까 신사데이는 잘 모를 법도 하니까.
그리고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옷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당장 다윤의 옷장만 열어봐도 부모님이 사다 준 옷이 2/3였으니.
보다 못한 내가 골라준 옷들이 몇 벌이긴 했다. 예산이 별로 없어서 당장 밖으로 나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옷들이었지만.
‘돈 벌면 쟤도 옷 좀 사줘야지.’
다윤의 옷장에도 몇 벌 괜찮은 옷을 집어넣어 둘 생각이었다. 평범한 옷도 얼굴이 커버해서 괜찮다고는 하지만
옷이 날개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네?”
“나도 아빤데.”
“...... 아빠도 고마워요.”
뚱한 표정을 하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 풀렸다. 이상한 거에서 반응한다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눈 깜빡한 새에 방학식을 지나, 토요일이 되었다.
****
“.... 어머니는 깔끔한 옷이 더 괜찮은 거 같아요,”
“크흠, 갈아입고 오마.”
무난하게 청바지와 반팔 셔츠를 입은 나와는 달리 정신없는 꽃무늬 패턴 원피스를 입고 나온 어머니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이게 훨씬 낫네.’
그 꽃무늬 원피스는 어디 숨겨 놔야 했다. 불 태워버리거나.
“20분 정도 걸리네.”
차에 타자 조수석에 달린 거울로 머리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차로 가서 그런지 대중교통보다 20분이나 덜 걸렸다.
‘머리도 안 망가지겠네.’
고데기로 스타일링 한 머리도 안전했다.
차가 출발하자 나는 라디오의 노래를 틀었고 그렇게 차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델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기대나 걱정, 설렘 같은 건 들지 않았다. 일에 대한 것보다는 카메라에 담긴 내 모습이 기대될 뿐.
전문 카메라로 찍는 건 화질이 달랐고 컴퓨터로 하는 포토샵도 색감이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달렸을까,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갔고 차를 주차했다.
“그래도 건물은 괜찮네요.”
“3층이라고 했었나?”
“네.”
차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런 나를 보더니 어머니도 옷매무새를 다듬었지만 뒤에 옷이 바지에 들어가 있었다.
“잠시만요.”
들어가 있는 옷을 빼고 정리하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건물 자체의 크기는 꽤 컸지만 3층만 신사데이였다.
모델 일을 하면서 참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났었는데, 예의 없고 제멋대로인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앗,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인성만 좋으면 80프로는 먹고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방예의지국에서는 웃는 얼굴이 제일 잘 먹힌다는 사실도.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던 여자가 일어나 이쪽으로 오라며 안내하는 쪽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우리는 어느 방 같은 곳으로 들어갔고 그곳에는 빔프로젝터, 긴 책상과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하곤 안내해준 여자가 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문이 열렸고.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상반된 표정을 가지고 있는 여자 두 명이 잇따라 들어왔다.
바야흐로 비즈니스의 시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