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14화 (14/137)

〈 14화 〉 chapter 13. 신사데이 (3)

* * *

“저는 홍보마케팅 팀장이고 이쪽은 저희 인사과 과장님이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우연이 보호자 이민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어머님이시죠? 아드님이 어머님 유전자를 아주 잘 물려받은 거 같네요.”

“아닙니다.”

둘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머지 둘은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대화가 끝나자 나와 인사과 과장이라는 사람도 인사를 했고.

가벼운 인사만 나누었을 뿐인데 왠지 둘이 확 다르다는 게 느껴지네. 한쪽은 살가운 느낌이고 한쪽은 좀 날카로운 느낌이었다.

“저희 신사데이에서는 현재까지 모델이라고 할 사람이 크게 없었어요. 외주를 맡긴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사진이나 제품으로 승부를 보는 쪽으로 틀었죠. 애초에 지원해주시는 분이 적기도 했고.”

솔직하네.

당차게 말하는 여자의 말을 듣고 느낀 내 감상이었다.

신사데이는 이름이 알려진 메이저도 아니었고 사회에서는 남자들이 보호받는 이미지가 강했으니까. 조금 보수적이기도 해서 지원자가 적을 법도 했다.

“우연 군 페룩도 확인해 봤는데, 광고 게시글이 전혀 없는 거 같아서요. 별다른 이유라도 있나요?”

“제가 어리기도 하고.... 연락 오는 게 영 신뢰가 가지 않았어요.”

“저희 브랜드를 SNS에 따로 홍보해주시면 따로 광고비도 지급해드리는데, 하실 의향 있으실까요?”

나한테 말하면서도 옆에 있는 어머니를 힐끗거리면서 팀장이 말했다.

‘아무래도 허락을 구하는 게 내가 아닌 거 같은데.’

어머니는 별다른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어쩔 거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평범한 14살이었으면 이해 못했겠지만

“좋아요. 홍보도 같이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아!”

이쪽은 만사 오케이였다. 어차피 신사데이가 유명해질수록 내게 오는 이득도 커지고, 신사데이 옷을 입은 사진을 페룩에 올리면 어디 옷이냐는 질문이 올 게 분명했기에.

이왕 말해주는 거 돈이라도 받고 하면 일석이조 아닌가.

“자 그러면 지금부터 간단한 질문 몇 가지 먼저 드릴게요.”

“네.”

“혹시 진로가 모델 쪽인가요?”

“맞아요. 어렸을 때부터 꿈이 모델이 되는 거라서 지원하게 됐어요.”

“우연 군은 나이에 비해 많이 성숙한 편이네요.”

너무 애 같지 않은 모습만 보여줬나?

하지만 뭐 초등학생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더 일하기 좋은 아이로 남는 게 나았다.

“가장 중요한 거긴 한데, 우연 군이 어린 남자아이라서 충분한 휴식시간은 보장하겠지만 아무래도 촬영을 하면 하루에 몇 시간은 계속 촬영을 해야 돼서 이 부분이 좀 염려되거든요.”

어머니가 몸을 움찔했다.

지금 주변에서 스물스물 나오는 저 아우라는 걱정이었다. 아마 지금이라도 안 한다고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을 가지시고 계시겠지.

하지만 내 귀에 저 말은 나를 혹사 시키겠다는 말이 아니라 사진은 찍어야 되는데 찡찡대거나 싫증 내지 않겠느냐는 말로 들렸다.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타 이상은 치고, 운동도 조금씩 시작할 생각이었기에 체력을 늘려도 됐다.

“전 하나에 집중하면 꼭 끝을 보는 스타일이라. 좋은 옷 입고 사진 찍는 거 엄청 좋아해요. 그리고 다들 편하게 잘 해주실 거 같구요!”

“다행이네요. 저희는 우연 군한테 최대한 맞춰드릴 생각이에요.”

내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내내 가만히 듣고만 있었던 인사과 과장이라는 사람이 반응했다.

‘좋은 옷, 이라고 말할 때 반응한 거 같은데?’

저쪽은 꽤 옷에 자부심이 있는 타입인 거 같았다. 칭찬해주면 좋아하겠네.

홍보마케팅 팀장은 나를 잡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럼 마지막으로! 다른 곳이 아니라 신사데이에 지원해주신 이유가 뭔가요?”

“음......”

세 사람 모두 궁금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거는 그냥 이유가 한 개인 것도 있긴 한데.

“신사데이 옷이 제일 좋았어요. 재질도 그렇고 마감처리도 그리고 디자인도.”

내 앞에 앉아있던 인사과 팀장의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옷이 재질이 좋고 마감처리가 좋은 건 당연히 비싼 값을 하는 거고, 디자인은 뭐 다른 사이트들에선 너무 밝은 단색에 유치한 옷들도 있어서 그런 거지만

이런 진실은 묻어두는 게 훨씬 좋을 걸 알기에 뒷말은 삼켰다.

“...... 괜찮네요.”

인사과 과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괜찮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내포되어 있겠지. 가령 ‘이우연’이라는 모델 자체라던가.

“원래는 저희가 준비해둔 의상이 하나 있어서, 카메라 테스트도 할 겸 사진 한 번 찍어보고 계약서를 드릴 생각이었는데......”

맨 처음 들어올 때 옆 의자에 내려뒀던 종이를 책상 위에 올리며 말했다.

“부족함이 없네요. 먼저 드리고 사진 찍어도 달라질 건 없을 거 같아요.”

종이를 어머니와 내 쪽으로 슥 밀었다.

종이는 총 두 장, 하나는 모델 다른 하나는 SNS 광고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려운 말도 크게 없었고 말장난을 친 조항도 없었다.

혹시 몰라 나도 두 번 정독했건만 어머니는 아예 눈에서 불이 나올 정도로 계속해서 읽고 계셨다.

페이는 시간당 3만 원. 최저시급이 5500원인 걸 감안하면 6배 약간 못 되는 정도였다.

‘피팅모델 알바가 확실히 시급이 쎄긴 하지.’

아마 여기서 경력이 더 쌓이거나 시간이 지나면 금액은 더 높아져 있을 것이다.

다만 SNS 광고비는 여태 페룩 메시지로 왔었던 광고 단가보다는 금액이 낮았는데, 이거야 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회사 크기 자체가 다를 테니까.

어차피 이쪽 옷을 입으면서 페룩에 사진을 올리면 어디 옷이냐고 물어올 게 분명했다.

어차피 대답해주는 거 돈 받고 하면 일석이조지.

“6개월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건 나중에 더 좋은 조건으로 다시 계약을 할 수도 있고......”

설명하듯 홍보마케팅 팀장이 말했지만 더 좋은 조건은 무슨, 일단 찍먹해보겠다는 말이었다.

어린 모델을 쓰는 만큼 패널티가 올 수 있다는 걸 저쪽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한테는 적용되지 않겠지만.

‘뭐 그래도 그때 가면 나야 좋지.’

다시 계약한다는 가정하에 더 좋은 조건이 된다는 건 사실이었다. 당연히 쇼핑몰은 지금보다 커져 있을 테니 난 그때 가서 할지 말지만 정하면 될 일이고.

“일단 피팅 촬영은 한 달 동안은 주 3회에서 4회 정도, 이후에는 주 2회 정도 할 거 같아요. 상황마다 달라지긴 하겠지만요.”

“알겠습니다! 열심히 해야겠네요.”

어머니가 더 무어라 하기 전에 먼저 말을 가로챘다. 어차피 주말에 할 것도 없었는데 일이라도 하는 게 낫지.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꼼꼼히 계약서를 읽고 몇 가지 질문을 했던 어머니가 사인했다. 나도 사인했고.

종이 두 장을 다시 넘기자 인사과 과장이 종이를 가져갔다.

“이제 카메라 테스트 한 번만 받고 가시면 될 거 같아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오니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는 인원이 꽤 많아져 있었는데, 볼이 따끔거렸지만 무시하고 복도를 지나 안쪽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촬영했나 보네.’

안쪽은 사진 촬영을 하는 곳이었는지 배경부터 곳곳에 옷이나 가방이 있었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들은 여기서 찍었나 보네.

“오셨군요 팀장님!”

“예진씨 내가 준비해놓으라고 했었던 옷 알지?”

“네! 말씀해주신 사이즈로 준비해놨어요. 여기요.”

“고마워, 아 그리고 여기는 우리 이번에 모델이 된 이우연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초롱초롱한 눈이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웠다.

“저기 탈의실 가서 갈아입고 오면 돼.”

“알겠습니다. 갈아입고 올게요.”

옷을 건네받고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잘 안 써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나쁘지도 않았지만.

옷은 검은색 슬랙스에 흰색과 회색 가로 줄무늬로 되어 있는 반팔이었다. 이제 여름이기도 하고 가장 기본적인 옷으로 준비한 거 같았다.

아방한 핏도 아니고, 옷을 입고 위에 있는 반팔티를 바지에 적당히 넣고 다시 빼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역시 재질이 괜찮네.’

슬랙스 재질이 싸구려 재질이 아니었다.

옷을 갈아입고 탈의실 밖으로 나오자 모두의 이목이 한쪽으로 집중됐다.

아까보다 두세 명 더 늘어 있네.

“역시 잘 어울리네. 하긴 저 얼굴이 안 어울리는 게 뭐가 있겠어.”

“완전 짱! 저희 옷이랑 완전 잘 어울려요.”

“...... 예쁘네.”

홍보마케팅 팀장이 입을 열자 옆에 있었던 사람이 이어서 말했다.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도 짧게 말했고 인사과 과장은,

‘카메라를 들고 있네?’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오늘 포토그래퍼가 자리를 비우기도 했고, 우리 과장님이 사진 촬영도 많이 해서 오늘은 과장님이 찍어주실 거예요.”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러면 기본컷부터 찍죠.”

누가 찍든 상관없었다.

나는 배경 가운데에 가서 섰고 지시에 따라 그대로 정면, 좌측, 뒤, 우측 한 바퀴를 돌면서 기본자세로 한 장씩 찍었다.

찰칵거리는 셔터음이 연이어 들렸고

“이제 자유 포즈 해주세요!”

그 말이 들리자마자 나는 씩 웃었다.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했고 촬영 장소에선 카메라 셔터음이 끊이질 않았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