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chapter 14. 카메라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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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제일 먼저 고민하는 게 ‘포즈’였다.
컨셉에 맞춰서 바꿔야 하고, 과하지 않아야 하며 무엇보다 옷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개성을 가진 포즈.
‘가장 자신 있는 포즈를 해보세요.’
그 말을 어찌나 많이 들었었는지.
사진작가마다 원하는 스타일이, 디자이너마다 추구하는 느낌이 달랐기에 그 니즈를 충족시키는 건 오로지 모델의 몫이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명품처럼 고급스러움을 표현해내는 게 아니라 일상의 편안함을 표현해야 하는 옷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면서 표정을 더했다.
살짝 미소 짓고, 활짝 웃었다가, 웃지 않되 눈을 크게 뜨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주변에 그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은 채 카메라 셔터음에 맞춰 계속해서 포즈나 표정에 변화를 줄 뿐.
그렇게 쉬지 않고 몇 분을 찍자
“다...... 찍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사인을 보내는 과장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목이 마르네.’
여기에 오고 나서부터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아서 그런지 목이 말랐다.
“여기 혹시 물은 어디 있나요?”
“아 잠시만요! 가져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차가운 생수병의 뚜껑을 열었다.
크, 살 거 같네.
물을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니 한쪽 모퉁이에 혼자 서계신 어머니가 보였고 나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저 어땠어요?”
“.... 잘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하고”
“우연 군! 이리 와서 사진 보세요!”
“네! 어머니 같이 가요.”
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지 입을 오물거리는 어머니였지만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우리는 사람들이 몰려 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A컷 고르기가 힘들겠는데요?”
“그러니까요. 옷도 너무 잘 나왔어요. 제가 남자라면 꼭 살 거 같은데.”
옆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귀에 꽂혔지만 모니터 안에 있는 내 모습을 시야에 담아내느라 바빴다.
‘대체로 괜찮게는 나왔는데, 좀 아쉽네.’
사람들의 칭찬과는 달리 아쉬운 부분이 더 눈에 들어왔다.
사진에 담기다 보니 화장을 안해서 얼굴이 유독 수수해 보였다. 눈도 렌즈를 끼면 훨씬 더 또렷해질 거 같고.
‘옷이 기본적인 옷이 아니었으면 얼굴이랑 잘 매치가 안 됐겠는데?’
조금이라도 화려한 옷이나 밝은 색감이었더라면 묻혔었겠지만, 무채색에 일반적인 옷이라 그런지 그거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몇 십장의 사진을 하나하나씩 넘겼다.
개인적으로 활짝 웃는 사진보다는 살짝 미소 지은 게 더 나은 거 같다.
“오!”
“이거다. 이거!”
“지금 당장이라도 이 사진으로 바꿔도 문제 없겠는데요?”
딱 보는 순간 알았다. 이번 사진들 중에 A컷은 저거구나.
약간 튼 고개와 아래에서 카메라와 눈이 마주친 각도, 살짝 미소 지은 얼굴과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렇지만 저런 사진을 올리게 둘 순 없지.’
난 항상 베스트컷이길 바란다고. 저 사진이 올라가는 일은 없어야 했다.
“저 사진 올리지 말고, 다음에 찍을 때 더 잘 나오게 해서 그걸 올리죠.”
“여기서 더 잘 나올 자신이 있다는 거네요?”
“...... 네”
어쩐지 놀리듯 묻는 말에 마지못해 긍정했다. 저 옷에 맞는 메이크업을 하면 충분히 더 잘 나올게 분명했으니까.
옆을 돌아보니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이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님한테도 메일로 보내드릴까요?”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죠! 여기 포스트잇에 적어주시면 약간 보정만 하고 바로 보내드릴게요.”
그런 어머니를 나만 본 건 아니었는지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볼펜과 함께 포스트잇을 건넸다. 어머니는 메일 주소를 적어내려갔고.
내가 그 사진을 보고 단번에 A컷이라 직감했듯, 다른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도 봤으니 이제 할 것도 없고.
“옷 갈아입고 올게요.”
“아, 아니에요! 그건 그냥 입고 가도 돼요. 택만 떼 드릴게요.”
탈의실에 다시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런 나를 홍보마케팅 팀장이 막아섰다.
‘나야 입고 가면 좋지.’
새 옷을 입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기에 마다하지 않았고 직원은 가위를 들고 와 옷에 있는 택을 전부 제거해 주었다.
“저희는 그러면 이제 가도 되는 건가요?”
“아, 네! 가셔도 돼요. 아 여기 이거 계약서 사본이고요.”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감사해요! 내일 중으로 일정 관련해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수고하세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어머니가 종이봉투를 받아들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연신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빠져나왔고 엘리베이터에 타자 시끄러웠던 주변에 조용해졌다.
‘배가 좀 고프네.’
점심시간을 놓친 애매한 시간이었다. 에너지를 소모해서 그런지 허기가 느껴졌다. 차에 초콜릿이 남아 있었나?
불편하지 않은 조용한 침묵으로 시위가 조용했다.
“.... 밥 먹으러 갈까?”
“네? 네! 좋아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 정신을 퍼뜩 차리고는 대답했다.
어머니도 묘하게 들뜬 기색이 보이는 게 아무래도 자기 아들이 이렇게까지 잘 할 줄 몰랐던 거겠지.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었지만 크게 티 내진 않았다.
“이 근처에 맛있는 초밥집에 있는데 어떠니?”
“초밥 완전 좋아요. 대찬성.”
맛있는 초밥은 비싸다. 어린애가 초밥을 먹으러 갈 일이 뭐가 있겠나. 혹시 다른 메뉴로 바꿀까 빠르게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의 행선지는 맛있는 초밥집으로 결정 났다.
탁ㅡ.
“오, 가게가 되게 좋아 보이는데요?”
“맛도 있으니 얼른 들어가자꾸나.”
차에서 내리니 꽤 비싸 보이는 외관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간대가 애매한 시간대여서 그런지 어머니를 따라 들어간 가게 안은 몇 테이블을 제외하고 꽤 한산해 보였다.
‘초밥만 파나 보네.’
메뉴판을 열자 초밥만 판매하는 것인지 초밥 종류가 꽤 많았다. 다른 건 일절 없었고.
“여기 특선 초밥으로 2인분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 사이다도 하나 주세요.”
“네~”
어떤 걸 시켜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을 찰나, 고민할 새도 없이 어머니가 바로 주문했다.
‘특선 초밥이 제일 비싸 보이는데......’
가격대가 꽤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른 걸로 바꿀 수도 없고 특선 초밥이면 맛은 보장해 주겠지.
이왕 비싼 걸 사주시겠다는데 마다하는 건 자식 된 도리가 아니다.
먼저 나온 사이다를 따르자 얼마 안 있어 초밥 두 피스가 먼저 나왔다.
간장에 한 번 찍고 입에 와앙, 하고 한 입에 넣자
‘!’
이 집 일 잘하네. 입에서 사르르 초밥이 녹아내렸다.
“입에서 살살 녹아여......”
“맛있다니 다행이구나.”
“넘무 마시따......”
감탄사를 연신 내뱉으며 초밥을 계속해서 입에 넣었다.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먹고 있다 어느정도 배가 찰 때쯤 반대편에 초밥이 반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어머니의 젓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꼭꼭 씹어먹어라. 더 먹고 싶으면 말하고, 앞으로도 자주 데려와줄 테니까.”
“...... 어머니도 빨리 드세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에서 뭔가가 샘솟는 듯한 느낌.
천천히 입에 초밥을 넣었다.
주말 중 하루를 통째로 반납하면서 자신의 뒷바라지해 준 어머니.
“오늘 네가 사진 찍는 걸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왜 모델을 하고 싶어 하는지도 알겠고...... 무엇보다 가장 즐거워 보이더구나.”
어머니는 잔잔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언제든지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으면 말해라. 엄마는 네 편이니”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응..... 알겠어요 엄마.”
우리는 서비스로 받은 초밥까지 싹 비우고는 초밥집을 나왔다.
‘다음에는 내가 사드려야지.’
마음 한켠은 이미 따뜻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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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떠난 신사데이 본사에서는.
“제가 말했죠? 놓쳤으면 아주 땅을 치고 후회하고도 모자랐어요.”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홍보마케팅 팀장이 말했다. 실제로 그녀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반대하던 쪽이 넘어가버린걸.
신사데이에 한 명의 모델 이력서가 들어왔을 때, 내부의 반응은 엇갈렸었다.
출중한 외모와 인지도 높은 SNS를 보유하고 있는 우연을 무조건 모델로 들여야 한다는 쪽과 나이가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쪽.
사실 반 이상은 이미 우연의 얼굴을 보고 넘어간 상태였지만 언제나 소수는 존재하는 법이었다.
어린 나이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했었던 것이 바로 인사과 과장이었고.
결국 한 번 미팅을 해보고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에 대한 결과가 바로 지금.
“사진은 내가 찍었지만 사실상 내가 찍은 게 아니었지.”
어쩐지 허탈한 목소리로 인사과 과장이 말했다.
경험이 전무하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앵글 안에서 뛰어놀던 건 우연이었다. 각도와 위치까지 계산해서 포즈를 취하는 것 같았으니까.
사진을 찍은 건 분명 자신이었는데 모델이 이렇게 찍는 게 더 잘나와, 하면서 그를 안내한 기분이었다.
아니, 압도 당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뭐에 홀린 것처럼 계속해서 카메라 버튼을 눌러댔고 결과물은 단연 최상이었다.
여태 사진을 어깨너머 배웠다지만 본인도 알 수 있었다.
당장 쇼핑몰에 걸린 사진을 치워버리고 이 사진을 올리고 싶을 정도의 월등한 퀄리티.
“완전 괴물 신인이구만.”
우연이 모델이 된 신사데이가 과연 얼마큼 성장할지 감이 안 잡혔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이건 대박이야......”
무조건 뜰 거라는 직감이었다. 됐어, 이건 무조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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