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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살아가는 법-16화 (16/137)

〈 16화 〉 chapter 15. 번호를 따이는 방법

* * *

“우연 군! 오늘도 수고했어요.”

“아니에요, 저야말로 잘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사체가 이렇게 완벽한데 못 찍으면 그게 더 문제 있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싱긋 웃었다.

‘오늘은 한 시간 일찍 끝났네.’

오늘로 벌써 네 번째 촬영이었다.

이제 다음 피팅은 다음주에 예정되어 있고.

첫 촬영이라고 스튜디오를 대관해서 찍었는데, 역시 편의를 잘 봐줘서 촬영이 끝났는데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뭐만 하면 잠깐 쉬었다 하자고 해서 내가 말렸지.

첫날엔 2시간 촬영 후 점심을 먹은 뒤 다시 2시간을 촬영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한 시간을 늘려 하루에 5시간 정도 촬영을 진행했다.

‘아직 폼 안 죽었네.’

베스트 컷을 만족할 때까지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준비한 옷에 비해 촬영이 일찍 끝났다. 오히려 중후반 촬영 즈음 가면 뭔가 더 집중이 잘 돼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벌써 통장에 찍힐 금액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네.

돈은 한 달에 한 번 통장으로 받기로 했고, 덕분에 내 명의로 새로 만든 통장은 매달 신사데이에서 돈이 꽂힐 예정이었다.

‘자기가 번 돈은 자기가 관리해야지.’

역시 뭘 좀 아시는 어머니.

아버지도 동의하시는 부분이었지만 과소비는 하지않기로 약속했다.

그래도 첫 달에는 좀 써야지.

다른 쇼핑몰에 있는 괜찮은 옷들이나 신발, 모자, 액세서리류를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일단 컴퓨터 한 대도 들여놓고 싶었고.

머릿속에서 행복 회로를 풀가동 시키고 있자 몸을 툭툭, 하고 조심스럽게 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오늘부터 올라가기로 했죠?”

“네. 전부 오늘 업데이트된다고 했어요 이벤트도 그렇고.”

“으 너무 기대돼. 이번 여름에는 진짜 뜰 거 같아요.”

“이벤트도 하고 그러니까 아마 사람들이 많이 구매하겠죠?”

“음...... 그거랑 다르게 우연 군만 봐도 매출이 그냥 오를 거 같은데.”

“그거 콩깍지예요.”

사진작가가 아니라며 손사래 쳤지만 이미 그녀에겐 콩깍지가 씌어 있었다.

그녀는 첫 촬영부터 지금까지 호들갑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저번에는 물 마시고 있을 때도 이건 찍어야 한다며 카메라를 들이댔었다.

한 번 거절한 후로는 아차 싶었는지 다신 안 그러긴 했지만.

“이번에 완전 새단장 한다고 했었죠?”

“아주 이를 간 거 같던데요.”

리뉴얼 과정을 전해 들은 나도 이번에 신사데이가 뜰 거란 예감이 들었다.

다른 쇼핑몰도 여름 이벤트가 많았지만, 첫 개시하는 내 피팅 사진을 더불어 홈페이지의 전체적인 디자인, 배너, 팝업창까지 전부 새로 만든다고 했으니까..

‘오늘 중으로 SNS 프로모션도 한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여기저기 광고를 한다고 했으니 아마 곳곳에서도 신사데이의 이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돈 다 끌어온 거 아냐?’

만약 제때 돈 입금 안 하면 바로 노동청에 신고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그럴 일이 없다는 걸 나도 알았다. 오늘 저녁에 나도 홍보 좀 해야겠네.

팔로워 20만 명이 코앞이니 나름 이것도 홍보 효과를 보겠지.

최근 간간이 촬영하면서 찍은 사진 몇 개를 허락을 구하고 올려놔서 꽤 달궈져 있었다.

옷이 어디 거냐는 말이 제일 많았으니까.

“오늘은 뭐 입고 갈 거예요?”

“두 번째로 입었던 거 입으려고요.”

“오! 오늘은 그래도 전체적으로 밝네요. 세 번 다 어두운 옷만 가져가길래.”

“제가 블랙을 좋아해서요.”

남자는 블랙이지.

하지만 요즘엔 핑크가 대세였다. 사람들이 다채로운 색상을 선호하는지 옷 색깔이 아주 다양했고.

나는 촬영할 때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집고 집에 갔다. 피팅한 다른 옷들은 나중에 한 번에 택배로 오니 들고 갈 필요가 없으니까.

‘오늘은 이게 제일 잘 어울리네.’

메이크업을 청순하게 해서 그런지 두 번째 옷이 제일 잘 받았다.

연청바지에 흰색 반팔티, 연분홍색 얇은 가디건.

초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전부 에어컨을 세게 틀어서 걸칠 게 필요했다.

이 몸은 더위보다 추위를 너무 잘 타서 문제야.

“수고하셨습니다! 이만 가볼게요.”

“우연 군도 수고했어요!! 지금 입은 옷 너무 잘 어울린다.”

“잘 가요!”

“감사합니다.”

얼추 정리가 끝난 스튜디오를 둘러보며 먼저 퇴근 신청을 하자 다들 웃으면서 배웅해줬다.

‘아침부터 날씨가 좋더니만.’

건물을 나오니 머리 위로 햇볕이 내리쬈다.

아침에도 날씨가 좋더니 지금도 날씨가 좋았다. 아 이런 날은 바로 집에 가면 안 되지.

“좀만 둘러보다가 갈까?”

여태 세 번 스튜디오를 가는 동안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갔으니 오늘 한 번쯤은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 걸음은 착실히 시내 쪽으로 옮겨졌다. 아마 기억상으로 이 횡단보도를 건너서 조금만 들어가면 로데오 거리가 나오는데.

‘맞네.’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거리에 사람이 많았다.

이따 버스 타도 사람 많겠네. 오늘은 지하철 타고 가야 하나 근데 버스 타고 내려야 집에서 더 가까운데.

버스를 타고 갈지 지하철을 타고 갈지 고민하며 계속 걸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얼마나 걸었을까,

[생과일주스 출시, 2000원 할인!]

“목마른데 그냥 들어갈까.”

생과일주스가 크게 박혀 있는 사진은 정처 없디 돌아다니던 하이에나의 발을 멈추는 데에 충분했다.

3층까지가 카페인 건지 크기도 꽤 컸다. 저 정도면 혼자 앉아 있을 자리야 충분하겠지 뭐.

유리문 너머로 카운터 앞에 사람이 몇 명 있는 걸 보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

“어서오.... 세요!!”

눈이 마주친 알바생에게 나도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뭐 마시지.’

망고 생과일 스무디, 딸기 생과일 스무디.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자신이 더위가 아닌 추위를 잘 타는 것을 포함해 달고 매운 것을 아주 좋아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푸딩에 길들어져서 그런가.

앞에 순서인 사람들이 주문할 때까지 내적 갈등하며 메뉴판에 있는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건 망고다.

“주, 주문하시겠어요?”

“망고 생과일 스무디 M 사이즈로 하나 주세요.”

“할인 2천 원 적용해서 3500원입니다!”

“여기요.”

“네, 여기 진동벨 울리면 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알바생이 참 기운차네.

진동벨을 받아들고는 곧장 2층으로 향했다.

‘근데 저 사람들은 아직 안 갔네. 주문을 다 안 했나.’

나보다 앞서 주문한 사람들이 카운터에서 비켜선 채 서 있었다. 주문 더 하려나 보지 뭐.

그렇게 2층으로 올라가자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남자들이 조금 더 많은 거 같긴 하지만.

‘3층까지 올라가긴 귀찮은데.’

아 저기 구석에 자리 있네.

구석이어서 그런지 근처에 사람도 없었다. 1인용 소파 두 개와 작은 테이블에 놓여 있는 게 매우 안락해 보였고.

자리를 찾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몇몇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지만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눈 마주치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국룰이지.

그렇게 정해둔 자리로 가 앉자마자 진동벨이 울렸다.

“...... 맞다.”

그냥 다녀오려고 했지만 그 사이에 자리를 뺏길 수도 있는 노릇이니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서 자리에 내려놨다.

‘이러면 자리 있는 줄 알겠지.’

1층으로 내려오니 어쩐지 아까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았던 알바생과 바로 눈이 마주쳤다.

‘저거 내 건가? 근데 저건 안 시켰는데.’

그녀의 앞에 있는 쟁반에는 망고 스무디와 초코 쿠키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여기요.”

“앗 네! 여기 주문하신 거 가져가시면 돼요.”

“어...... 저 이거 안 시켰는데요?”

“서, 서비스예요! 그...... 맛있게 드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얼굴이 홍당무가 돼서 말하기에 일단 서비스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쟁반을 받아 들고 올라갔다.

‘아까는 근처에 사람이 없었는데.’

내려갈 때와는 달리 덩그러니 있는 가디건을 제외하고 근처 테이블에 사람이 전부 앉아 있었다.

가디건이라도 올려둬서 다행이네.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3층까지 올라갈 뻔했다.

“완전 맛있어.”

한 모금 마시자마자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생과일이라고 하더니 역시 망고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어.

‘다음에 오면 또 여기 와야지.’

한 손에 망고 스무디를 마시고 쭉쭉 마시고 있었을 찰나, 쟁반 위에 올려져 있던 초코 쿠키 옆에 있는 영수증이 눈에 들어왔다.

[010­xxxx­xxxx 너무 예쁘세요. 괜찮으시다면 연락 한 번 넣어주세요.]

“으음......”

이래서 초코 쿠키를 서비스로 줬었던 거였구나.

번호를 따였다, 아니 번호를 받은 건가? 객관적으로 봐도 나는 어려 보일 텐데 번호를 주다니 연하가 취향인 건가.

알바생의 나이를 가늠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집에 가서 버려야지.’

영수증을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고 초코 쿠키를 집어 들었다. 서비스라고 준 걸 다시 되돌려줄 순 없으니까 이건 먹어야겠지.

목이 막힐 때마다 망고 스무디를 계속 먹어서 그런지 망고 스무디는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춥다.’

차가운 음료를 한 번에 먹어서 그런지 몸에 한기가 올라왔다. 옆에 벗어 뒀던 가디건을 다시 입으니 한결 나아졌고.

지잉ㅡ

[한 팀장님: 지금 홈페이지 들어가 봐요!!]

‘홈페이지?’

신사데이 홈페이지를 들어가자 뜨는 팝업부터가 일단 내 사진이 박혀 있었다.

밝은 톤으로 바꿨네.

회색이 메인 컬러였던 홈페이지가 개인적으로 조금 더 마음에 들었지만 뭐 여름이기도 했으니 나쁘진 않았다.

피팅 사진도 전부 업데이트됐는지 그간 내가 찍었었던 옷들이 미리 보기나 움짤로 보였다.

하나하나 들어가서 살펴보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너 어디야?”

“아, 목말라서 카페 들어와 있었어.”

­“아으, 너 오늘 일찍 끝났다는데 안 와서 아빠 난리야.”

“지금 갈 테니까 말 좀 잘해줘,”

­“내가 못 말린다 진짜. 일단 알겠어 끊어!...... 조심히 오구.”

“응.”

전화를 끊고 시간을 보니 벌써 카페에 들어온 지도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빨리 가야겠네.’

원래 같았으면 도착했을 시간이었다. 쟁반과 음료를 정리한 뒤 화장실 한 번 들를 겸 3층 화장실에 갔다.

볼일을 보고 나오자 내 앞을 누군가가 막았는데,

“저기요.”

“네?”

“저 그쪽한테 관심 있어서 그런데 번호 좀 줄 수 있을까요.”

웬 물고기를 닮은 여자가 핸드폰을 내밀고 있었다.

음 고민할 가치가 없군.

“죄송합니다.”

빠른 거절이 답이다. 그렇게 나는 여자를 지나쳐갔다.

여자가 어떻게 나올 줄 모르고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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