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chapter 16. 화력
* * *
“핸드폰이 없네?”
여자를 지나치며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리에 두고 왔나?’
내가 있었던 2층으로 가자 이미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눈이 마주쳤는데 별말 없는걸 보면 자리에는 없었나 본데.
“혹시 핸드폰 찾으세요? 그 저기 치우는 곳에 있었는데.”
“네? 아. 제 거 맞는 거 같아요.”
“밑에 카운터에 맡겨놨으니까 찾아가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자 옆에서 어떤 남자가 다가오더니 핸드폰의 행방을 알려주었다.
‘정리하면서 그냥 두고 갔었나 보네.’
웃으면서 남자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1층으로 내려왔다.
카운터 앞에는 손님이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 알바생한테 말 걸어야 하네.
“여기 혹시 핸드폰 하나 맡겨져 있나요?”
“엇, 넵! 여기 있습니다아.......”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허둥지둥 핸드폰을 건네주는 알바생에게 고개를 작게 숙였다.
‘알람 많이 와 있네.’
어디쯤이냐고 온 다윤의 카톡도 있었다.
그렇게 나가면서 답장을 하려고 하던 찰나
“죄송해요~”
“...... 아”
뒤에서 뭔가 들이받는 듯한 충격에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 뻔했네.
왜인지 모르게 등 뒤가 축축했다. 부딪힌 사람을 확인하려 뒤를 돌자
‘하 또 너냐?’
3층에서 만났던 물고기를 닮은 여자가 뻔뻔한 얼굴로 서 있었다.
“실수로 옷에 커피를 흘렸네요. 변상해드릴 테니까 번호 좀 주실래요?”
“하아...... 고작 번호 한 번 얻으시려고 이러시는 건가요?”
“말이 너무 심하시네. 아까는 아까고,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목적이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말에 나는 더 이상 말하기를 그만뒀다.
자기가 부딪혀 놓고 저렇게 당당한 표정이라니. 누가 봐도 실수가 아니었다.
‘저거 뒤에서 저러고 오는 거 알았으면 그냥 피해버렸을 텐데.’
그랬으면 꼴사납게 자빠졌을 거 아닌가.
혀를 차며 여자를 무시한 채 가디건을 벗어보니 연분홍색 가디건은 갈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안에 있는 반팔티에는 안 묻었지만.
‘이거 오늘 처음 입은 건데.’
원래 새 옷에 뭐 묻을 때가 제일 화나는 법인데 이거는 뭘 부은 수준이었다. 욕이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지금 당장 여기를 주시하고 있는 시선들이 많으니까.
1층 테이블에 앉아있었던 몇몇 사람들과 카운터에서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자.’
“됐어요. 변상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그냥 갈게요.”
“아니~ 내가 해주겠다니까?”
“놓으시죠.”
“세탁비라도 줄게. 응?”
“놓으라고.”
정정한다. 이건 그냥 똥이 아니라 재활용 불가 쓰레기다.
여자의 악력이 내 힘보다 강해 붙들린 팔을 뿌리칠 수 없었다.
‘하, 이렇게 남녀의 힘 차이를 겪어볼 줄이야.’
꼼짝도 안하는 손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나와는 달리 여자는 웃고 있었다.
‘저 면상에 주먹을 그냥 냅다 꽂아버릴까.’
그렇게 되면 아마 나는 경찰서로 연행되겠지. 짜증 수치가 올라가고 있던 와중 옆에서 어떤 여자 성큼성큼 이쪽으로 걸어왔다.
“싫다는데 빨리 놓으시죠.”
“누구신데 끼어드세요?”
“변상하고 싶으시면 여기서 세탁비 주고 그냥 가시던가요. 이거 신고해도 되는 거 알죠?”
“...... 허 참.”
뭐야 저 물고기 왜 이 사람 앞에서는 쭈구리가 되는 거냐.
잡고 있던 팔을 놓는 모습에 더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내가 말할 때는 듣지도 않더니.
그렇게 몇 분 정도 대치를 하다 나를 째려본 여자는 그대로 카페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내가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여자가 나간 카페 문을 어이없게 바라만 봤다. 아 맞다 도와준 사람이 있었지.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아니에요! 음 그 옷 더러워지셨는데 변상을......”
“괜찮아요. 안 받아도 상관없어요. 그리고 이미 가버렸는걸요.”
우물쭈물거리는 모양새가 오히려 이쪽이 배상해 줄 기세였다.
집에 가서 세탁하면 그래도 빠지겠지.
지잉ㅡ 지잉ㅡ
[누나]
“저 이만 가봐야 해서 먼저 가볼게요!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 저.......!”
가디건을 팔 한쪽에 걸고 전화를 받으며 카페를 빠져 나왔다.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었던 거 같은데.
“야 너 어디냐 진짜.”
“미안, 일이 좀 있어서.”
“이~일? 무슨 일. 아빠가 너 데리러 간다니까 어딘지 위치만 딱 말해.”
“어...... 그러면 스튜디오 앞으로?”
“거기서 딱 기다리고 있어.”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조금 억울했지만 이대로 늦게 도착한다면 잔소리에 플러스알파가 될 게 분명했다.
거의 뛰듯이 스튜디오로 향했다.
‘다시는 여기 안 와. 다시는.’
그 카페는 다신 안 갈 거다. 차라리 생과일주스를 포기하고 말지.
그렇게 차에 타고 나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잔소리(걱정)을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머리를 탈탈 털면서 핸드폰 화면을 켰다.
오늘 여러모로 피곤한 일들이 많아서 일찍 잘 생각이기도 하고.
“한 팀장님한테 캐톡 왔었네.”
침대에 누워서 답장을 보내니 보낸 지 30초 만에 1이 사라졌다. 와 칼답.
한 팀장님: 우연아.
: 네?
한 팀장님: 우리 서버 지금 터졌어 ㅎ...... 접속자가 너무 많아서.
: 음, 좋은 일인 거죠?
한 팀장님: 좋은 일.... 맞지.... 우연이 홍보 덕을 아주 쓸 정도로 쪽쪽 맛봤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씻기 전에 글 하나를 올려두고 가긴 했는데.’
이걸 칭찬으로 봐야 하는 건가. 무슨 답장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으나 캐톡이 한 번 더 울렸다.
한 팀장님: 신사데이가 관심을 많이 받았다는 말이니까 좋은 일이긴 해 뭐...... 아무튼 됐다 넌 얼른 자기나 해 키 커야지.
‘아니 이걸 갑자기 키 얘길 꺼낸다고?’
나는 키에 예민한 사람이었다.
크길 바라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잘 안 큰다고.
대충 알겠다는 메시지와 팀장님도 빨리 자라는 말을 보낸 뒤 핸드폰을 껐다. 침대에 누워있으니까 잠이 솔솔 오네.
“머리 말려야 되는데......”
하지만 눈은 떠질 기미가 안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올린 글도 올린 이후로 확인을 안 했는데,
내일 하면 되지.
나는 이불 속으로 꿈틀꿈틀 들어갔다.
****
신사데이가 새로 리뉴얼하고 오픈된 지 3일, 첫날부터 터진 서버는 이후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어터지는 접속자로 인해 지연되고 있었다.
“아니 여기에 왜 10만 명이나 동시에 들어와 있는 건데!”
“제 말이요......”
“모델 관련 문의 넣지 말라고 공지 띄웠어?”
“지금 띄웠어요. 근데 이래도 오겠죠.”
신사데이에 걸려오는 문의 전화의 종류는 다양했다. 그중 2/3가 우연에 관한 기출 변형 질문인 게 문제지만.
우연의 이름을 넣어 올라간 공지사항은 순식간에 조회수가 치솟았다.
“이제 홍보는 그냥 가끔, 아주 가끔 우연이한테 올려달라고만 하자.”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라간 신사데이는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요즘 유행인 쇼핑몰들처럼 저렴한 가격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사데이는 거의 이틀 만에 모든 종류의 옷들의 재고가 소진됐다.
사이즈, 색깔 별로 싹 다.
‘아니 옷도 못 사면서 왜 들어와 있는 거야.’
홈페이지에 개시된 모든 옷들이 완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문자 수는 줄어들려고 하질 않았다.
차라리 옷이 계속 팔리기라도 했으면 전부 돈으로 환산이라도 됐을 텐데.
공장부터 시작해서 거래처에 전화를 돌리고 있는 사무실은 평화로웠던 때와는 다르게 북새통을 방불케 했다.
‘모델이 너무 잘났네.’
사진을 받아서 봤을 때부터 이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지금 홈페이지에 접속해 있는 사람들은 전부 우연의 사진을 보고 있겠지. 그거 말고는 들어와 있을 이유가 없었다.
“월급 오르겠죠?”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오르겠지. 우연이 모델로 있는 한 이 상태를 유지할 테니까.”
“저희 직원 더 뽑죠.”
“건의해놓을게.”
그렇게 말한 홍보마케팅 팀장, 한아리는 작금의 상황이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지를 상기시켰다.
모든 것은 페룩 게시글 한 개, 그 한 개가 시초였다,
작성자: 우연
내용: 최근 올렸던 사진들 옷은 전부 신사데이 거예요. 앞으로 여기서 피팅 모델로 활동하니 다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한 번씩 들어가 보기!
(사진)
좋아요 32.6만개 댓글 10.4만개
: 여잔데 앞으로 여기서 옷 삽니다 ㅅㄱ
: 신사데이 뭐냐고! 신사데이 뭐냐고! 신사데이 뭐냐고!
: 와 아직 애긴데 무슨 분위기가 미쳤네.
: 형 모델 언제부터 하셨어요?? 완전 개예쁘다 진짜ㅠ
: 자 신사데이 드가자~ 자 드가자~
: 전부 못 산다는데 이거 실화냐ㅋㅋㅋ? 문 열어!!!!
우연의 팔로워 수도 30만 명을 넘겼다. 그리고 이런 반응은 페북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남초, 여초 카페에서도 있었는데
[반도의 흔한 남중생_jpg]
내용: 이런 남자 애니에만 있는 거 아니었냐고ㅋㅋㄹㅃㅃ
[ㄹㅇ 이런 게 페룩 스타지.]
내용: (사진) 이게 중학생 얼굴이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형들! 요즘 핫한 쇼핑몰 알아?]
내용: 실시간 검색어에도 뜬 신사데이. 모델이 입은 옷 봤는데 여기 옷 완전 사고 싶더라 ㅠㅠ 근데 다 품절이라 넘 아쉽당...... 재고 입고 빨리 하겠징??
> 댓글
: 아 나두 여기서 사려고 지금 대기중. 여기 옷 평 되게 좋드랑.
ㄴ 진짜?? 힝ㅠ 근데 모델 엄청 이쁘더라.
ㄴ 성형하면 다 그렇게 됨.
ㄴ 신사데이 모델 14살인데요?
ㄴ 14살이라고 성형 못하진 않음ㅋㅋㅋㅋ
: 나 항상 저기서 옷 샀었던 사람인뎅 사람 너무 많아졌어.
ㄴ 22 나도 항상 저기서 삼
정작 당사자만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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