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18화 (18/137)

〈 18화 〉 chapter 17. 브라더 콤플렉스

* * *

다윤은 하나뿐인 남동생이 너무나도 좋았다.

우연이 태어나고부터 그가 어렸던 다윤의 보물 1호가 될 정도로.

하루의 시작인 눈을 뜨고 나서부터 잘 때까지 둘은 항상 함께였다. 같이 놀고, 먹고, 자고 하는 모든 일상들이 전부였고.

“흐아아앙 나두...... 나도! 우여니랑 가티 있고 시픈데. 끅”

“우연이는 가면 아야 해. 다윤이도 우연이 아야 하는 거 보기 싫지?”

“으웅.....”

“다윤이는 완전 멋진 누나니까 어린이집도 갔다 올 수 있지? 우연이는 요기 이렇게 앉아서 누나 기다린다네.”

처음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을 때, 다윤은 우연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에 펑펑 울었었다.

하지만 그런 다윤을 살살 달래는 아빠의 말에 우연이 있는 쪽을 쳐다보니 우연은 마치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 우연의 모습을 히끅, 거리면서 뿌연 시야로 쳐다보던 다윤은 이내 어린이집에 가기로 결심했고

이것이 바로 다윤의 기억 속 우연과 처음으로 오랫동안 떨어진 날이었다.

“맨날 동생이 내 장난감 뺏어 가.”

“나도! 아빠는 맨날 동생 편만 들어주고......”

“울면서 자꾸 떼쓰면 다 사주고 그래. 진짜 완전 싫어!”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씩 동생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았다.

‘우연이는 안 그러는데.’

그들의 말을 다윤은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자신이 놀고 있는 장난감을 뺏은 적도 없고, 뭔가를 사달라고 떼를 쓴 적이 없었으니까.

“다윤이 너도 동생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응, 나도 있어.”

“너희 동생은 어때? 난 오늘도 동생 혼내주고 왔어.”

주먹을 치켜세우며 여자애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 나는 동생이랑 한 번도 안 싸워봤어.”

“뭐?”

“헐 야 이다윤 동생이랑 한 번도 싸운 적 없대!”

“거짓말 치는 거 아니야?”

“아니야!”

“거짓말 치지 마! 이 바보야!”

옆에서 다윤의 말을 엿듣고 있었던 여자애가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그러자 동생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던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고,

“거짓말 아니야!”

“애들은 다 싸웠다는데 너만 안 싸웠다잖아!! 네가 이상한 거야!”

“아ㅡ니ㅡ거든!”

“이다윤은 바~보래요 바보 멍청이!”

“이게 이씨!”

화를 참지 못한 다윤이 먼저 여자애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우연과 관련되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다윤은 쉽게 흥분했고, 소란은 얼마 가지 않아 선생님에 의해 제지되었다.

다윤은 선생님에게 혼난 뒤 친구를 때린 벌로 반성문까지 쓰고 나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눈나 와써?”

“......”

어린이집은 초등학교보다 빨리 끝났기에, 집에 오자마자 안에 있던 우연이 버선발로 나와 다윤을 맞이했다.

그런 우연을 잠시 바라보다 다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갔다.

‘내가 이상한 거야? 그치만......’

손을 닦으면서도 괜히 자신이 이상한 거라는 여자애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럼 그냥 다들 싸우는 것처럼 한 번 싸우면 되잖아.’

그렇게 하면 내일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동생과 싸웠다며 얘기를 꺼낼 수 있을 거다. 그러면 그 여자애도 자신을 이상한 애라고 부르지 않을 테고.

다윤이 그런 생각을 하며 거실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푸딩을 먹고 있는 우연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빠는 부엌에 있나 보네.’

하루에 한 번 먹는 우연의 간식, 푸딩.

다윤은 동생이 푸딩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았다. 푸딩을 먹을 때면 항상 활짝 웃었기에 그 얼굴을 보려고 자신의 것도 양보했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웅?”

“......”

푸딩을 먹고 있던 우연의 앞에 다윤의 그림자가 졌다.

힐끗 바라본 푸딩은 반 이상이나 남아있었다. 아마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거겠지.

우연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니 이걸 빼앗으면 아마 친구들이 말했던 것처럼 떼를 쓰면서 울고불고 난리를 칠 게 분명했다.

‘우는 건, 정말 정말 싫지만......’

우연이 가끔 우는 것조차 안절부절 못하는 다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아마 싸울 수 있겠지.

다윤은 손을 뻗어 우연의 손에 들린 푸딩을 가로챘다.

“이, 이거 내가 먹을 거야! 내가 다 먹을 거야! 우연이 거는 없어!”

그렇게 소리치며 다윤은 눈을 질끔 감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울음소리도, 말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이상함을 느낀 다윤이 눈을 슬그머니 뜨니

“쟈.”

“......”

푸딩을 뺏긴 우연과 푸딩을 빼앗은 다윤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우연은 울면서 떼를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들고 있던 숟가락을 다윤에게 내밀고 있었다. 그걸 본 다윤은,

“끕.... 끅 내가 미아내 흐아아앙”

“아고, 얜 또 왜 이렇게 서럽게 운담. 울면 안 돼~ 뚝 해야지 뚝”

울음을 터트렸다.

다윤이 우는 소리에 부엌에서 거실로 온 아빠가 자신을 안아서 달래줄 때까지도, 다윤은 계속 울었다.

그렇게 몇 분을 더 울고 나서야 진정할 수 있었고 이날 다윤은 다짐했었다.

절대 동생과 싸우지 않을 거라고.

다윤이 자신의 남매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날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변할 수도 있었지만 다윤은 그대로였다. 물론 커가면서 말이 조금 거칠어지긴 했지만

“야 나 너희 동생 소개 좀. 진짜 진지하게 관심 있음”

“닥쳐, 내 눈앞에서 그냥 꺼져버려”

시간이 지나 더 예뻐진 동생을 지키는 누나의 길은 더 험난했다.

주변 친한 친구들한테는 진지하게 당부를 한 번 해놔서 그런지 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우리 학교에 페룩 스타가 있다니 레전드다 진짜. 아 졸업하기 시러어어억!”

옆에서 무슨 말을 하든지 말든지, 다윤의 시선은 우연의 사진이 띄어져 있는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유명해질 줄 알았으면.’

페룩을 하지 말라고 할걸, 우연의 앞에서 페룩 얘기를 종종 꺼냈던 과거를 후회했다.

다윤은 완벽한 ‘브라콤’이었다.

****

어머니와 신사데이에 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온 다음날,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복병을 겪게 되었다.

“그럼 촬영장은 어떻게 갈 건데? 아빠가 매일 태워다 줄 순 없잖아.”

“태워다 줄 수 있긴 하다만......”

“그냥 버스랑 지하철 타고 다니면 되지.”

“하아?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다구? 요즘 치한이 얼마나 많은데!”

“밥 다 먹고 말해.”

입안에서 내용물이 튀어나올 것처럼 열변을 토하는 다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신사데이 자체도 여기서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갈 수 있는 거리기도 하고, 아마 앞으로 갈 모든 촬영 장소가 그럴 거다.

항상 우리 집 주변에서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근방에는 스튜디오나 그런 곳도 별로 없으니까.

“오는 건 차로 데려다주신다고 하셨으니까.”

“그러면 가는 건 어떻게 할 건데.”

뭘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그냥 버스나 지하철 타고 가면 되지.

이렇게 말하면 분명 태클이 들어올 게 뻔했다.

신사데이 쪽에서 내가 많이 지쳐있거나, 시간이 늦으면 데려다주겠다고 했으나 사실 이것도 매번 데려다주는 건 아니었다.

‘데리러 오라고 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고.’

다윤이 저렇게까지 말하니 아버지도 슬슬 걱정이 옮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하시기 시작했다.

그나마 어머니는 그때 신사데이에서 내 모습을 보고 나를 신뢰하시는지 별말이 없으셨다. 어떻게 돼도 괜찮다는 중립 입장.

“중학생이면 전부 다 버스랑 지하철 같은 건 혼자 타. 누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타고 놀러 다녔잖아.”

“윽...... 그래도 너는 남자애잖아!”

“그런 남녀 차별적인 발언이 어딨어? 그리고 나도 잘 탈 줄 안다고.”

“그래도 걱정된다고! 걱정!”

진입장벽이 높네.

저렇게 무논리로 떼를 쓰는 거에는 그 어떤 설득도 먹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지.’

나는 빈 밥그릇을 들고서는 몸을 일으키며 숨겨뒀던 최후의 패를 꺼냈다.

“몰라. 나 혼자 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 만약 따라오거나 그러면 누나한테 말도 안 걸고, 연락도 안 하고, 같이 안 있을 거야.”

“ㅁ, 뭐?”

“나는 나 믿어주는 사람이랑만 대화할 거니까.”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다윤이 상처받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그건 내게 아무 영향도 주지 않았다.

‘저거저거 한 번 받아주면 안 돼.’

내 몸은 내가 간수할 필요가 있었다.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최근 들어 과보호가 심해진 건 사실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 앞을 서성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그렇게 하루 동안 우리는 냉전 상태였고, 다윤은 마주칠 때마다 무언가 말하고 싶다는 사람처럼 입을 오물거렸지만 나는 철저히 모르는 척했다.

“내가 졌어..... 대신 연락 꼭 해야 돼! 치한 만나면 무조건, 무조건 주변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하거나 여기를 주먹으로 콱”

“그래그래.”

그렇게 이틀째가 되자 포기한 것인지 다윤은 내 옆으로 와 일장연설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마저도 안 들어주면 삐질 테니까.

‘어쩌다 이렇게 과보호가 된 거지?’

내가 그렇게 만든 건가.

확실히 유괴범 때를 생각하면 다윤이 충격받을 만도 했지만 그때와 지금의 양상은 달랐다.

‘아 모르겠다. 그냥 그러려니 하자.’

그렇게 일장연설을 하고 뿌듯한 얼굴인 다윤을 뒤로하고, 나는 촬영을 하러 대중교통을 혼자 이용할 수 있었다.

지잉ㅡ 지잉ㅡ

물론 다윤은 까먹지도 않고 매일 같이 전화를 걸었지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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