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chapter 19. 교복 모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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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룩이 커지면 커질수록 오는 메시지의 내용이 광고 제의부터 해서 전부 다양했다.
안녕하세요 학생복 전문 브랜드 스투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남학생 교복 모델로......
“으음, 사기는 아닌 거 같네.”
교복 피팅 모델은 워낙 사기가 많아서 함부로 하면 안 되지.
다른 제안들은 웬만해서 읽지 않거나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왠지 교복 모델을 묘하게 끌려서 찾아봤다.
‘교복 모델은 해봐도 괜찮을 거 같고.’
검색해보니 스투비는 내가 알고 있었던 비아이 같은 유명한 곳은 아니었지만 나름 검색하면 세 번째로 나오는 교복 브랜드였다.
페룩 개인 메시지를 보낸 계정도 스투비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페룩 아이디와 일치하는 걸 보면 본계정이었으니 사기는 아니었다.
“유명한 곳이야 워낙 연예인들을 데려다 쓰니까 나한테 그런 제의가 올 일은 없겠지만.”
페룩 프로필란에는 피팅 모델이라고 적혀 있었다.
팔로워 수가 많다 보니 협찬, 광고 제의로 메시지가 많이 왔지만 대부분 거절한 이유는 이미지 소모 때문이었다.
스투비에서 온 제안도 사실 파묻힐 뻔했지만 내가 그래도 자세히 목록을 읽어 봐서 다행이지.
그쪽에서 제안한 건 홈페이지에 사용할 남자 교복 메인 피팅 모델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제일 먼저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했는데,
“저 이번에 교복 모델 제의가 들어왔는데 어떡할까요?”
“응? 뭐라고? 교복 모델?”
“네. 그렇게 유명한 곳은 아니고......”
“교복 모델은 해야지! 세상에 우리 아들이 교복 모델이라니.”
쇼핑몰 피팅 모델을 하고 싶다고 했었던 때와는 반응이 정반대였다.
학기 중이라 주말마다 신사데이 피팅 촬영이 있을 때면 계속 힘들지 않냐고 물으셨던 아버지였기에 교복 모델까지 한다고 하면 오히려 반대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우였네.
‘뭐 그동안 인식을 바꿔 놓긴 했지만.’
돈을 벌기 시작한 후로부터 경제적 여유가 생겨 필요한 물건을 전부 내 선에서 해결했다. 잘 나온 사진 몇 개를 보여주면 좋아하시기도 했고.
그리고 확실히 어른들 입장에서도 교복 모델이 뭔가 신뢰도가 있어 보였다.
아무튼 아버지에게 먼저 적극적인 동의를 얻으니 어머니의 동의를 얻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촬영도 하루만 하고 오는 거니까.’
“거기도 직접 가야 하니?”
“아뇨, 등기로 계약서 보내준대요.”
이미 내 사진들은 페룩을 비롯해 신사데이에도 있기 때문에 그족에서 따로 면접이나 미팅을 원하지는 않았다.
딱 하루 촬영하는 단발성 촬영이니까.
그렇게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자 담당자 연락처를 통해 주소를 보내고 며칠 뒤 계약서가 도착했다.
꼼꼼하게 살펴본 뒤 부모님 동의서와 함께 작성해 다시 등기를 보냈고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됐다.
잡힌 촬영 일자는 다음주 11월 둘째 주 토요일.
원래는 신사데이 촬영이 예정되어 있는 날이었지만 양해를 구해 그날 촬영은 평일로 앞당기기로 했다. 겨울옷도 그때쯤이면 슬슬 들어올 테지.
여름을 지나 어느덧 가을 중반을 향했다.
“우연이 너 앞으로 춘추복 입게?”
“응, 요즘 쌀쌀해지는 거 같아서 그냥 입게.”
어떤 교복을 입건 정해진 날짜가 없었기에 제일 먼저 반에서 춘추복을 입었다.
추위를 잘 타서 그런 거지만 다들 한 명이 스타트를 끊어주길 바란 건지 다음날부터 춘추복을 입기 시작한 애들이 늘었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가고 중간고사가 끝난 가을.
대망의 토요일, 교복 피팅 촬영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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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으응...... 졸려.”
조금만 더 잘래.
어제 괜히 소설 한 화만, 한 화만 더 보겠다고 하다가 결국 연재가 되어 있는 편까지 전부 정주행해버렸다.
그 결과 수면 시간이 반토막 나버렸고.
‘태워달라고 할 걸 그랬나.’
어머니가 차로 태워다 준다고 하셨지만 가서 촬영 내내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해서 혼자 가겠다고 한 거였는데, 조금 후회됐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자고 있을 시간이지.
비척비척 걸음을 옮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침은 그냥 안 먹어야겠다.”
머리를 말리고 빈둥대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벌써 9시 50분이었다.
‘11시까지 가야 하는데.’
여기서 지하철을 타고 촬영 장소까지 가는 데만 1시간이었다.
메이크업은 거기서 해준다고 했으니 할 필요 없고, 얼굴에 수분 크림만 잔뜩 바른 뒤 지갑과 핸드폰을 챙겨 방을 나왔다.
“어, 지금 가?”
“응. 오늘 그때 말했던 교복 촬영.”
“맞다 교복 모델도 한다고 그랬지..... 나중에 사진 보내.”
“알겠어, 얼른 자.”
또 게임하다 밤새웠나 보네.
퀭한 얼굴의 다윤과 부엌에서 마주쳤다. 저래서 게임을 하면 안 되는데.
물을 한 컵 마시고 다윤에게 인사를 한 뒤 집을 나섰다.
밖을 나오자마자 찬바람이 내 몸을 강타했다. 반쯤 열려 있었던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려도 한기는 가시지 않았다.
“으으, 빨리 가야지.”
역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1시간이나 가야 했기에 모르고 졸다가 못 내릴 뻔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어쨌든 촬영 장소에 5분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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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앗 안녕하세요! 오늘 교복 남자 모델 맞으시죠?”
“네 맞아요,”
“이쪽으로 오시면 돼요.”
주소에 적혀 있던 스튜디오 2층으로 들어서자 스텝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를 보더니 안쪽으로 이끌었다.
그러자 스텝 몇 명과 여자 교복을 입고 있는 사람, 정장을 입은 여자가 보였는데
‘척 봐도 저기가 여자 모델인가 보네.’
마침 그쪽에서도 날 봤는지 정장을 입은 여자가 내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잠깐 여기로 와봐요!”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나는 이번 스투비에서 나온 담당자 조민지예요. 이쪽은 여자 모델 설윤아 양이고 이쪽은 남자 모델 이우연 군!”
“안녕하세요, 이우연입니다.”
“음...... 안녕하세요.”
스투비 관계자의 소개가 끝나자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그러자 반대편에 서 있던 여자 모델, 그러니까 설윤아는 나를 위아래로 탐색하듯이 훑었고
‘얘는 얼굴이랑 하는 행동이 안 맞네.’
인사만 했을 뿐인데도 호감도가 쭉 떨어졌다. 얼굴이 강아지상인 거에 비해 성격은 그렇지 못한 거 같네.
‘어차피 오늘 한번 보고 말 사인데’
나는 설윤아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럼 우연 군은 저기로 가서 준비부터 하고 와요!”
“네. 그럼”
“피부 화장하시고 온 거 지우고 오셔야 될걸요?”
“어...... 저요?“
“네.”
“저 화장 하나도 안 했는데요.”
처음엔 나한테 하는 말인가 싶었는데 주변에 그런 말을 들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답했다.
하마터면 의도치 않게 무시할 뻔했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자 뚱한 표정의 설윤아가 보였다.
“...... 화장 안 했다고요 하나도?”
“네. 선크림도 안 바르고 왔어요.”
“여기 앉으시면 메이크업 해드릴게여!”
“그럼 먼저 가볼게요.”
어쩐지 황당한 얼굴을 뒤로하고 다시 걸음을 옮겨 빠르게 자리에 착석했다.
그러자 아까 말한 남자가 메이크업 담당인지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왔고
“와 피부 진짜 좋네여. 이 정도면 화장 안 하고 다녀도 되겠어여. 혹시 어디 피부과 다녀여?”
“어...... 안 다니는데요?”
“윤아 양 먼저 촬영 들어갈게요!”
“네!”
그는 내 얼굴에 뭔가를 두드리고, 바르면서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지치지도 않나.’
그나저나 말투가 좀 신기한 사람이네.
페룩 댓글로 몇몇 남자들이 저렇게 말하는 걸 보긴 봤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듣는 건 또 처음이었다. 적응 안 되게 시리.
메이크업을 하는 내내 감탄사와 질문을 내뱉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머리는 가볍게 고데기로 정리하는 걸로 끝났고, 그렇게 수다 아닌 수다를 떨면서 메이크업이 끝났다.
“일단 이걸로 갈아입고 오시면 돼여!”
“네! 갈아입고 올게요.”
드디어 해방이구나.
싱긋 웃으면서 남자가 건넨 남색 바지와 와이셔츠, 교복 조끼와 넥타이를 들고 나는 마련되어 있는 탈의실로 들어갔다.
새 교복이라 그런지 반듯해서 좋네.
아침밥을 안 먹어서 그런가 허리가 좀 남는 거 같았다. 나가서 말하면 아마 옷핀 꼽아주겠지.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점검한 뒤 탈의실을 나왔다.
‘뭐지 이 데자뷰는?’
어디서 봤었던 장면 같은데. 탈의실을 나오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이쪽으로 꽂혔다.
신사데이에서도 카메라 테스트했었을 때도 이랬던 거 같은데.
“앗 허리가 좀 크신가여?”
“네. 옷핀으로 집으면 될 거 같은데......”
“잠시만여. 탈의실 다시 들어가 계세여!”
음 그냥 밖에서 대충 집어도 되지 않나.
하지만 들어가 있으라고 했는데 막상 밖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뻘쭘해서 다시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옷핀을 갖고 온 남자가 남는 허리 부분을 뒤에서 집어줬고.
“허리가 진짜 얇네여.”
“하하......”
엄지를 척하고 내미는 남자에게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럼 우연 군 바로 촬영 들어갈까요? 윤아 양은 옷 갈아입고 오고.”
“네 알겠습니다.”
촬영장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촬영을 한 설윤아가 안 좋은 표정으로 나를 지나쳐갔다.
‘무슨 일 있나?’
설윤아의 표정이 안 좋은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한 손에 카메라를 든 채 한숨을 쉬고 있는 남자가 바로 보였으니까.
“하아...... 이대로 찍으면 오늘 시간 좀 초과하겠는데요? 표정이 너무 부자연스러워.”
여기 와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누가 봐도 나 사진작가요, 라고 말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 앞에 했었던 촬영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은 모양이네.
‘나랑 또래 같아 보였는데.’
얼굴이 꽤 예쁘장한 거에 비해 경력이 별로 없나 보다.
인사를 하면서 촬영장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밝은 조명들이 나를 비췄다.
“잘 부탁해요. 일단 정면부터 찍고 다음 동작은 지시해줄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활짝 웃었다.
여태껏 사진작가들을 하도 만나봐서 아는데,
‘아무래도 이 사람은 호랑이 같은 타입이네.’
하지만 지시라는 말이 쏙 들어가게 해줄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 촬영은 모델이 표현하고, 사진작가가 기술적으로 담아내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나는 활짝 웃고 있었던 얼굴을 지워내고 살짝 웃으며 카메라 렌즈를 또렷하게 응시했다.
플래시 터짐과 동시에 들리는 오케이 소리, 허리에 손을 올려달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그에 맞춰 바로 포즈를 바꿨다.
“좋아요! 지금 아주 좋아요! 한 번만 더!”
지시를 해주겠다는 사진작가의 말과는 달리, 이후로부터는 내 자유 포즈에 연속이었다.
촬영장 안은 어느새 그의 격양된 목소리와 함께 셔터음만이 들렸고
“...... 말도 안 돼.”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상황을 목격한 설윤아 또한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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