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chapter 20. 교복 모델 (2)
* * *
“빨리 다음, 다음 거 찍어요!”
“어, 어, 네! 그 우연 군은 이쪽으로 나오시고 윤아 양은 들어가셔서 찍으시면......”
마이를 입고 벗은 사진을 포함해 찍는 내내 계속해서 오케이를 외친 사진작가였다.
마지막 오케이 사인을 외치고 그가 카메라로 여태 찍은 사진들을 넘겨보고 있자 지켜보고 있던 스투비 관계자가 다음 사진을 찍자며 말했다.
‘그래도 분위기는 달라졌어.’
대기하고 있었던 설윤아가 날 스쳐지나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슬쩍 보니 체육복을 입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탈의실 쪽으로 가니 내게 건네진 것도 체육복이었다.
‘나쁘진 않은데?’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촬영장으로 들어가니 설윤아가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진작가가 여전히 지시를 내리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경험이 없는지 설윤아에게는 그쪽이 더 편한 듯 보였다.
말하는 대로 전부 시행하는 걸 보면 완전히 감각이 없는 것도 아닌 거 같고.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 촬영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20분만 쉬었다가 갈게요!”
촬영 시간은 휴식시간 포함 4시간,
하복까지 촬영을 마치자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여자 모델과 같이 촬영하는 부분이 없어서 그런지 설윤아와 나는 항상 크로스 되면서 촬영에 들어갔고, 잠깐씩 쉬는 시간이 있어서 힘들진 않았다.
‘오히려 기다릴 때가 지루하면 모를까.’
순식간에 끝나는 느낌을 받는 건 아마 내가 카메라 앞에만 서면 시간 개념이 사라지기 때문이겠지.
이제 남은 촬영은 1/3 정도.
핸드폰을 켜보니 캐톡 몇 개가 와 있었다.
“여기 밑에 카페에서 마실 거 좀 사오려고 하는데 우연 군은 뭐 마시고 싶은 거 있어요?”
“어...... 저는 스무디 종류면 다 좋습니다.”
“윤아 양은요?”
“저는 땨뜻한 아메리카노만 있으면 돼요.”
설윤아가 마지막이었는지 그녀에게까지 물어본 스투비 관계자가 스텝과 함께 촬영장을 나갔다.
‘핸드폰이나 하고 있어야지.’
할 일도 없겠다, 구석에 앉아서 다윤에게 온 카톡에 답장을 보냈다.
“저기ㅇ......”
“우연 군! 사진작가님이 우연 군 찾아여!”
“네? 알겠어요 지금 갈게요!...... 그 혹시 하실 말씀 있으세요?”
누군가 말을 거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눈앞에는 설윤아가 있었지만 멀리서 메이크업 담당자가 부르는 소리에 그녀의 말이 묻혔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네 그럼 잠시만요.”
분명 무슨 말 하려고 했었던 거 같은데.
‘이따 기회가 되면 다시 물어봐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걸음을 옮겨 사진작가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사진을 보고 있었던 건지 노트북에는 교복을 입은 내 모습이 띄워져 있었고.
“부르셨다고 해서요.”
“사진 나온 것 좀 같이 보자고 하려고 불렀어요. 어디 쇼핑몰 모델 했었다면서요?”
“네. 신사데이에서 피팅 모델을 하고 있어요.”
“아직 패션 잡지나 다른 광고 촬영은 해본 적 없고?”
“없습니다!”
“거 참 희한하네...... 찍는 게 무슨 현역 모델 같은데 말이야.”
“감사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사진을 넘기는 사진작가를 보며 속으론 괜히 찔렸다.
“보정하면 이것보다 훨씬 더 잘 나올 거예요.”
그러면서 오늘 찍었던 사진들을 돌려봤다. 이 사진이 잘 나왔네, 저 사진이 잘 나왔네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내내 칭찬의 연속.
그러던 도중 카페에 음료를 사러 갔던 스투비 관계자와 스텝이 돌아왔다.
“여기 이건 우연 군 딸기 스무디!”
“감사합니다!!”
굳이 딸기라고 하진 않았는데. 제일 먹고 싶었던 게 손에 들어왔다.
한 모금을 머금자 입안에서 딸기 스무디의 시원한 상큼함과 달달함이 퍼졌다. 나도 모르게 싱글벙글 웃자 그런 나를 본 건지
“확실히 어리긴 어리네.”
사진작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맛있는 걸 어떡해.’
커피도 마시라면 마실 수 있었지만 입맛에는 스무디 같은 달달한 것들이 딱이었다.
스투비 관계자와 함께 이쪽으로 온 설윤아도 함께 찍었었던 사진들을 보면서 코멘트를 남겼고, 음료를 다 마셔갈 때즘 다시 촬영에 돌입했다.
‘배고픈데.’
촬영이 막바지로 흘러갈수록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거 같았다.
과자가 몇 개 마련되어 있긴 했지만 전부 내 취향이 아니었고, 그나마 아까 음료를 먹어서 배에서 소리는 안 났다.
“우연 군 마지막 촬영 들어갈게요!”
“네!”
설윤아가 촬영을 하는 걸 보는 내내 점심 메뉴를 생각하고 있었다.
애매한 날씨여서 그런지 난방도 애매해서, 마지막 촬영이 하복 체육복 반팔 반바지였기에 맨살이 공기에 닿자 조금 추웠다.
‘몸이 떨릴 정도는 아니네.’
이번엔 활짝 웃어달라는 사진작가의 말에 활짝 웃은 채로 포즈를 취했다.
“개구쟁이처럼! 아주 좋아요, 한 컷 더.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그가 카메라를 내리고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주변에서도 박수 소리가 작게 들렸고, 나는 촬영장을 빠져나와 원래 입고 왔었던 옷을 들고 탈의실로 바로 들어갔다.
‘어우 이제 끝이네.’
주린 배를 채울 생각에 옷을 갈아입는 손길이 빨라졌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촬영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아니에요! 수고하셨습니다!”
갈아입은 옷을 정리해서 스텝에게 건넸다.
“이 사진은 개인적으로 아웃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
“어...... 아웃스타그램이요?”
“페룩한다더니 아웃스타그램에는 관심이 없나 보네. 뭐 최근에 뜨긴 했지만 계정 하나 만들어둬요.”
“그럴게요. 올려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페룩 하나만 해도 바쁘긴 하지만.
아웃스타그램에 관해서는 꽤 들어봤었다. 댓글 중에서도 아웃스타그램은 안 하냐는 말이 있기도 했었고 요즘 연예인들이 한다는 SNS였으니까.
SNS는 모델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집에 가면 당장 만들어야겠다.
‘할 일 하나 추가됐고.’
더 할 말이 없는 줄 알았는데 망설이는 듯 보이더니 이내 사진작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이제 촬영도 끝났고, 혹시 이따 끝나고 같이 밥 먹을래요?”
“밥이요?”
“네. 우연 군만 괜찮다면 제가 사줄게요.”
“저야 감사하죠.”
일하는 사람들이 다 이렇다니까.
일할 때랑은 다르게 평소 모습은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많았다. 앞에서 수줍은 표정으로 내게 묻는 사진작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고.
‘같은 남자랑 밥 한 끼 먹기를.’
그래도 사주겠다니까 마다하지는 않는다. 설마 맛없는 걸 사주겠어.
“사진은 메일로 다 갈 거예요. 그중에서 셀렉된 사진들은 따로 말해줄 거고요.”
“알겠습니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사진작가가 짐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돌면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남은 스텝들이 뒷정리를 마무리했고 스투비 관계자가 제일 먼저 촬영장을 나갔다.
‘설윤아도 갔나 보네.’
아까 어렴풋이 목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먼저 간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무슨 말 하려고 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당사자가 별말 없이 갔으니 신경을 껐다.
“우리도 이제 가죠!”
“네에.”
“전 25살이에요. 이름은 김현우고 편하게 현우형이라고 불러요!”
“옙. 형님도 편하게 말 놓으세요.”
주차장에 차가 있다며 가는 동안 우리는 통성명을 했다.
그가 아는 샤부샤부 맛집으로 행선지를 정하고 가는 차 안에서는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서로에 대한 신상정보를 물으면서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가 얼마 전에 촬영한 남자 모델이, 아 진짜 이런 거 말하면 안 되긴 한데 너 혹시 윤범준이라고 알아?”
“어...... 아뇨.”
“다행이네. 걔 성격 완전 파탄 났잖아. 내가 그런 애는 또 처음 봤었는데......”
사준다는 말에 배가 터질 때까지 먹었지만 내가 그러든지 말든지 그는 모델에 대한, 아니 정확히는 푸념이 담긴 얘기들을 하느라 바빴다.
나는 한 귀로 들으면서 적당히 한 귀로 흘려들었다. 자기가 여태까지 일하면서 겪어온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데 거기서 내가 뭐라고 말해줘.
물론 적당한 맞장구는 잊지 않았다. 밥도 얻어먹는 입장인데.
분명 가격이 꽤 나왔을 텐데 샤부샤부 집을 나서는 그의 얼굴은 오히려 뿌듯하다는 얼굴이었다.
차로 역까지 데려가 나를 내려준 뒤 우리는 핸드폰 번호 교환까지 끝냈다.
“집에 가면 꼭 아웃스타그램 만들어! 연락하고!”
“네에!”
‘왜 이렇게 피곤하지.’
분명 오늘 촬영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기가 빨린 느낌이었다.
식곤증 때문인지는 몰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도 조금 졸았다. 아주 잠깐.
‘또 못 내릴 뻔.’
어쨌든 내렸으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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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대학교 과제 제출 때문에 학교를 가야 했던 남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채 터벅터벅 지하철에 올라탔다.
‘아침 11시부터 이게 뭔 개고생이야.’
가뜩이나 조원도 전부 여자였다. 중간중간 게임 얘기를 할 때마다 소외감 느꼈지만 굳이 끼고 싶지도 않았고.
집에 가면 바로 뻗을 생각이었다.
‘아 화장 지워야 되는데.’
사람이 붐비는 시간이 아니라서 지하철 안은 아침과 마찬가지로 꽤 널널했다.
‘어. 저 사람 아침에 봤었던 그 사람 아닌가?’
앉을 자리를 물색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왠지 익숙한 옷이 눈에 들었다.
맞은편에 자리를 대충 잡고 앉자 주위에서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남자를 쳐다보는지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괜히 느껴졌다.
‘고작 지하철에서 봤다고 사람을 기억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죽 인상이 깊었어야지.
자세히 보니 아침과는 얼굴이 조금 달랐다. 지금은 화장을 한 얼굴 같은데, 아침에 봤었을 때는 저 얼굴이 아니었으니까.
‘그게 생얼인 건가?’
진짜면 정말 말도 안 됐다. 사람 피부가 어떻게 저렇게 좋아 보이지.
아침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남다른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키가 좀 작은 거 같지만 말라서 그런지 가냘파 보였다. 아침보다 더 예뻐 보이기도 하고. 역시 남자는 화장을 하면 예뻐진다니까.
눈을 감고 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디서 본 거 같은 얼굴이긴 했다.
‘어디서 봤지? 광고에서 봤나?’
기억이 날랑 말랑하던 때
이번 역은 노아역, 노아역입니다......
“아.”
“어.”
누군지 알았다.
이우연. 페북스타. 신사데이.
얼마 전에 자신이 산 옷도 신사데이의 옷이었다.
단말마와 함께 잠에서 깬 우연은 눈을 비비려다가 눈을 꾹꾹 누르고 있었고, 노아역에 도착하자 하차했다.
‘어려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어렸네.’
중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완전 애 같진 않아서 그런가.
멍하니 있다가 다다음역에서 내리게 된 남자는 곧장 핸드폰을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대박 내가 오늘 지하철에서 아침 11시에 같이 탔었던 사람이 방금 집 가는데 또 같은 지하철 탄 거야 근데 미친 얼굴이 어디서 본 거 같아서....”
“누군데? 예뻐?”
“너 이우연이라고 알아? 페북스탄데 신사데이 모델. 대박이지? 실물 개쩔어. 존예.”
그날 몇 개 올라오던 우연의 목격담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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