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22화 (22/137)

〈 22화 〉 chapter 21. 공백기

* * *

네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아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뭔가 중2병 같네.”

베개에 머리를 박았다. 최근 들어 잡생각이 많아져서 그런지 스물스물 중2병이 온 게 체감될 정도였다.

신사데이를 그만둬서 그런지 시간도 많이 남아돌았고.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내 말에 무슨 조건이든 맞춰주겠다고 한 번만 더 생각해보라는 팀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물론 내가 거절했지만.

‘소년나라도 끝이라는 소리가 있던데.’

그 이름값은 아직 남아있겠지만 신사데이도 어느새 소년나라를 견줄 만큼의 인지도를 가졌다.

나는 그런 신사데이 피팅 모델 일에 종지부를 찍었고.

메인 모델이긴 했지만 내가 나왔을 때를 기점으로 봐도 신사데이에는 두 명의 남자 모델이 더 있었다.

신사데이는 그만큼 성장했다는 말이고, 나 또한 함께 성장해 1년 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SNS 팔로워가 수직 상승하면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모델’이라는 이미지가 이우연이라는 사람에게 박히는데 한몫했다.

“...... 글이나 써야지.”

핸드폰 화면에 백지가 띄워져 있었다.

‘흑염룡 같은 건 아니지만.’

페북이나 아웃스타그램에서 감성 문구나 글들을 쓰는 페이지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걸 내가 직접 내 이름을 걸고 올리자니 흑역사가 될 거 같아서

블로그에 올렸다.

방문자 수 0. 조회수 0.

근 일 년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구사하는 어휘도 많이 달라졌다. 중2병이 돋을 때마다 올린 게시글이 그렇게 해서 3개.

지금의 공허함, 앞으로 바라는 미래, 그것을 위해 내가 해야 할 것들과 내가 원하는 나.

이름도 한 글자에 프로필 사진은 어디에도 올린 적 없는 그림자 사진이었다.

어쩌다 한 번 아무도 모르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취미이자 유희였고.

그렇게 게시물 1개를 추가로 올린 뒤 다시 페룩과 아웃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이거는 나도 꽤 썼던 건데.”

개인 메시지를 미리 보기로 보면서 내리던 도중 예전에 자주 썼던 수분크림 브랜드에서 온 메시지를 발견했다.

SNS 광고. 들어오는 돈의 단위가 달라졌기에 신사데이 피팅 모델 일을 그만둔 뒤로는 괜찮은 브랜드들의 광고를 가끔 받았다.

‘여기 제품은 성분도 꽤 괜찮으니까.’

이틀 전에 왔었던 메시지지만 답장을 작성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중2병 치료제 같은 개념으로 올리던 블로그는 게시물 6개에서 멈췄고

“그동안 운동이나 좀 해야겠다.”

시간이 지나 블로그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조회수 1.

그게 어떤 파장이 되어 돌아올 줄 모르고.

****

“여기 이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건 남성 전용 기구로......”

“헬스장에 유일한 남성 트레이너가 있습니다. 받으신다면......”

“저희 헬스장은! 이용하신다면 PT 이용권 30% 할인을 적용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헬스장들을 검색해서 총 5곳으로 추려 3곳을 돌았는데 전부 별로였다.

일단 막상 가보니 기구가 별로 없는 곳이 하나, 사람이 너무 많은 곳 둘, 남성 전용 기구가 있다고 하지만 그 근처에만 유독 많은 여자들과 그걸 사용하는 남자까지 셋.

‘안 부담스럽나.’

남성 전용 기구, 보이존까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워 보였다.

근육 빵빵한 여성 트레이너는 내가 돈으로 보이는지 자꾸만 PT 얘기를 해대서 귀에 PT가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PT를 끊을 생각? 절대 없지.’

근육을 만들려고 헬스장을 끊는 게 아니었다. 기초 체력을 늘리고 슬림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미리 운동을 시작하려는 거니까.

유산소 운동만 조져야지.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선호하는 몸은 슬랜더였다. 남녀가 달라져서 그런지 근육이 있는 모델들도 대부분 여성이었고.

한 마디로 모델 시장은 ‘마른 남자’를 원하고 있다는 말.

“어,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번째 헬스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앉아있던 여자가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처음 오시는 거 같은데 등록하시러 오셨나요?”

“네. 일단 상담 먼저 받아보려고요.”

“잠시만 여기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고개를 끄덕이고 안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내부 점수는 일단 합격. 인터넷에서도 봤었지만 시설은 여기가 제일 좋은 거 같았다.

‘손님도 별로 없네.’

헬스장 크기에 비해 운동하는 사람이 비교적 적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눈으로 헬스장을 훑어보고 있자 다가온 여성 트레이너가 파일을 들고 내 앞에 앉았다.

“헬스는 처음이세요?”

“네. 다이어트나 몸 만들려는 건 아니고 그냥 주기적으로 운동도 할 겸 유산소 운동 위주로 하려고요.”

트레이너는 그 말을 듣더니 가져온 파일은 한 장, 한 장씩 넘기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대표 수상 경력이 꽤 많네,

이어서 시설 이용 방법, 시간대, 역시나 PT에 대해서 말하더니 이어서 가격을 설명했다.

정신적으로 지쳐서 그런지 갔었던 세 곳 중 여기가 제일 나았기에 트레이너의 말을 들으면서 등록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일단 한 달 이용권 먼저 끊어볼게요.”

“이용 요금을 보시면 한 달 이용권보다 여기 삼 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비용은 괜찮습니다. 등록 절차 밟아주세요.”

“일단 여기 이거 작성해주시고 PT 이용도 원하실 때 언제든지 말씀해주시면”

오티를 해준다는 말에 정중히 거절했다. 아직도 PT에 미련을 못 버렸는지 작성하는 내내 설득하는 말이 들려왔지만 꿋꿋하게 작성했고.

“중학생...... 이셨네요?”

“네.”

종이를 받아든 트레이너의 표정이 어쩐지 좀 충격받은 표정이었지만, 등록 절차가 끝났다.

‘원래는 오늘부터 하려고 했는데.’

원래 이런 건 내일부터가 국룰이다.

그렇게 다음날 새로 산 운동복을 입고 헬스장에 와 2시간 동안 운동을 한 뒤 샤워를 하고 나왔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흐음......”

헬스장에 사람이 늘었다.

언뜻 헬스장을 둘러봐도 당장 어제보다 비교적 오늘이 더 사람이 많은 거 같았다.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렸지만, 눈이 마주치는 사람도 많았고.

‘날 알아봤나?’

페북이나 아웃스타그램 때문에 알아보나 보다. 귀에 다시 이어폰을 꽂고 런닝머신을 뛰었다.

“저 혹시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중학생이라서요. 죄송합니다.”

헬스장에서 번호를 물어본 사람이 총 3명. 그들 모두 내가 중학생이라고 말하자 조용히 돌아갔다.

카페에서 만났던 그런 또라이가 없어서 다행이지.

“앗. 먼저 쓰세요!”

“...... 감사합니다.”

같은 기구를 쓰려고 마주치면 어쩐지 양보를 받은 경우도 많았다.

‘나야 편하지만.’

이용권을 끊었던 한 달이 끝나자 다른 헬스장으로 바꿀까 생각했었다.

“6개월 이용권 끊으시면 이번에 개인 락커 하나......”

절대 개인 락커 하나에 넘어가서 연장한 건 아니다.

다른 곳 알아보기가 귀찮기도 하고, 계속 다니던 곳 다니는 게 제일 편하기도 하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연장을 한 후부터는 번호를 물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조금 불편했던 부분이 개선되니 쾌적한 환경에서 운동을 할 수 있었고

‘관리할 때는 이것보다 훨씬 더 빡세게 해야 돼.’

원래도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먹고 싶은 걸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중3 입시 전까지 헬스장을 다니면서 몸을 유지했고, 키가 컸다.

****

“오늘은 왔나 보네요.”

“네. 저기서 자전거 하고 계세요.”

“하아, PT도 하면 좋을 텐데 말이죠.”

“찾아보니까 무슨 모델이라고 하던데요? 그래서 다른 기구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거 같아요.”

여성 트레이너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중학생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마음을 접긴 했지만 저 얼굴의 사기성은 여전했다.

나이를 생각하면 성형은 절대 있을 수 없고, 그렇다면 자연이라는 말인데 화장도 안 한 거 같았다.

‘대체 부모님이 누구시길래.’

땀을 흘려도, 지쳐도, 거친 숨을 몰아쉬어도 전부 화보 그 자체.

뺄 살이 있는 것도 아닌데 거의 이틀에 한 번씩은 무조건 헬스장에 출석체크했다.

‘툭 치면 부러질 거 같아서 챙겨주고 싶은데.’

아마 이런 생각을 가진 건 그녀 혼자만이 아닐 게 분명했다.

“없었지?”

“네. 쳐다보는 사람은 몇 명 있어도 다가간 사람은 없어요.”

“다행이네.”

우연이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한 뒤로 헬스장 회원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어디서 소문이라도 난 건지 기존 회원보다는 신규 회원이 늘면서 비매너인 사람들도 많았기에.

남성 회원들도 같이 조금씩 늘고 있어 이 같은 문제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헬스장들은 남성 전용 기구도 있는 반면에 이곳은 그런 혜택들이 없었으니까. 실제로 대표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회원 관리라도 똑바로 해야지.’

있는 거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알게 모르게 헬스장에서는 회원 관리에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시설은 두말할 것도 없었고.

“이 친구는 돈 안 받더라도 계속 다니게 하고 싶네.”

회원이 늘면서 PT도 늘었다. 사람이 왜 늘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는 정보였고 덕분에 매출은 4배 이상 오르는 기함을 토해냈다.

그리고 헬스장을 다닌 지 10개월, 우연은 헬스장을 끊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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